떠돌이 예수를 묵상함 - 정성수의 시 '무전 여행가 예수'
 
눈은 내리는데
무전여행중인 나사렛 목수 한 사람이
마음이 가난한 교회로 가는 번지를 못 찾고
서울 바닥을 헤매다가
고향 잃은 사나이의 방 윗목에서
하룻밤 함께 흐른 뒤
눈은 내리는데
이른 새벽 홀로 일어나
꺼져가는 연탄불 위에 라면을 끓이고
집집마다 문 두드려
망각의 가슴마다 대못을 치고
눈은 내리는데
길 잃은 땅 위에 속옷 벗어
길 없는 길을 만들고
흰 수염 나부끼며
떠났다
사랑을 파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눈먼 눈 위에 선지피를 흘리며
금강석마냥 번쩍이는 교회당 지나
나무 십자가 걸린 빈집을 향하여
다시 길을 떠났다
늙은 떠돌이의 등뒤로
벙어리의 말처럼 눈은 내리는데...
(정성수·시인,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