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교회의 모델: 한국교회 사례를 중심으로

한 국 일
(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학 교수)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교회를 강조하는 신앙관을 형성하였다. 이런 특징은 일반적으로 비기독교 사회에서 박해와 핍박을 받으며 신앙을 갖게 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신생교회가 있는 아시아 지역교회 중에서도 교회중심적 신앙관은 한국교회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2000년 선교역사에서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로 하여금 국내적으로 복음화와 교회성장을, 그리고 해외 선교를 활발하게 진행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한국에서의 선교활동과 한국교회에 의한 민족의 복음화 과정은 민족적 시련과 고통의 시기에 진행되었다. 19세기 말 외국의 침입과 국권 상실의 위기 속에서, 36년간의 일제의 강점기간과 동족간에 전쟁의 폐허에서, 그리고 가난과 정치적 혼란이 반복되는 근 현대사의 질곡의 시간 속에서, 한국교회는 연약한 민족의 운명과 장래를 하나님께 의지하며 희망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고난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의 성장한 한국교회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이 우리보다 먼저 복음을 받았지만 우리와 같은 복음화를 이루지 못했다. 한국 민족의 복음화에는 세계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작고 연약한 민족이지만 하나님의 선택과 축복이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온 천하에 드러내고자 하는 뜻이 있다고 믿는다.

민족의 복음화를 향한 한국교회의 노력은 눈에 띄는 개교회의 성장을 통하여 결실을 이루었다. 이러한 개교회 중심 구조는 다른 지역의 교회들과 비교할 때 한국교회에서 발견하는 독특한 현상이다. 예를 들면, 서구교회, 특히 독일교회를 볼때 전체 교회(Kirche)는 사회 안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나 지역의 개교회(Gemeinde)는 매우 쇠약한 상태이다. 이러한 현상은 서구의 다른 지역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한국교회 상황에서 개교회는 매우 역동적이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나 교회들이 모인 노회나 총회는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크지 못하다. 이런 현상은 한국교회가 개교회 중심의 신앙과 교회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선교역사에서 삼자원리(자치, 자전, 자립)가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된 교회이며 선교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교회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삼자원리의 부작용도 나타났다. 그것은 삼자원리가 지나치게 개교회를 기준으로 적용되어 왔다는 점이다. 결국 개교회주의는 한국교회 부흥과 성장, 복음화와 해외선교활동을 주도하는 원리로 작용하였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특징은 교회성장 이면의 어두운 면을 초래했다. 개교회주의는 지역사회로부터 교회 자신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같은 지체들과 경쟁적 관계도 불사하였다. 개교회 중심의 선교활동은 지역에 속한 개교회의 활발한 선교활동을 통하여 교회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지만 교파나 지역 교회간에 지나친 경쟁적 의식을 유발시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개교회주의 형성은 한국사회의 특징―비기독교사회, 다종교사회―과 시대적 요인(일제시대의 박해), 문화적 요인(유교와 무속신앙 등), 시대정신(자본주의, 경쟁주의, 현실주의 실용주의) 등 비신학적 요인들과 교회관, 구원관, 선교관, 세계관, 평신도관 등 신학적 요인이 매우 복합적으로 함께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여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신학적, 선교학적 토대를 형성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교회에 발생하는 많은 문제는 개교회주의로부터 파생되기 때문이다.

21세기의 한국교회에 관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보고서와 평가들을 볼 수 있다. 신생교회로서 한국교회는 민족복음화율이 약 20% 정도에 미치고 있으며, 90년대 이후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있다. 노회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사실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사회 속에서 교회가 갖는 신뢰도는 비단 전문기관의 연구결과를 통해서가 아니라(기윤실 보고서) 일상적 차원에서 교회를 향한 비판적 평가를 피부로 실감한다. 지역사회에서 전도는 아주 힘든 과제가 되었으며, 교회개척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교회 밖으로부터의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교회 안에서 제기되는 비판의 소리도 적지 않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교회의 현주소이다. 이러한 교회의 현실을 변화시킬 방도가 있는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향한 확신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교회의 희망의 근거는 교회가 인간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세워진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란 사실이다. 성경에 의하면 교회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증인이며(사 43: 10) 이 세상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유일한 몸이다(엡 1:23). 세상의 주관자인 그리스도는 교회와 함께하고 교회를 통해 일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신이 선교의 주체가 아니라 세상으로 파송된 선교 공동체로서 자기인식을 가져야 한다.

교회의 선교적 차원은 전도활동 이상의 성격을 지닌다. 한국과 같은 비기독교사회에서는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고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복음을 전하는 말과 함께 말씀을 전하는 사람, 즉 메신저 자신이 곧 메시지가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 사실을 소홀히 한 바 있다. 세상은 우리가 전하는 내용을 들을 뿐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주목하고 보고 있다. 지역사회에 속한 교회의 존재와 매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선교의 내용이 된다. 우리의 삶 자체가 우리가 전하는 내용을 신뢰할 수 있는 증거가 되지 않으면 전하는 내용 또한 신뢰를 받기 어렵다. 전도를 향한 우리의 열심은 진실함과 정직함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말뿐이 아니라 세상에서 정의를 실현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구체적인 실천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진정한 복음화는 교회들간에 경쟁관계를 극복하고 지역사회의 복음화를 위해 서로 연합하고 협력하는 관계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지역복음화는 민족복음화를 이루는 출발점이다. 각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지역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그곳에 속한 사람들과 열린 관계를 통해 진정으로 지역을 위해 섬기고 봉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주어진 선교사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려면 올바른 교회관, 선교관에 기초하여 건강한 교회성장을 추구해야 하는데, 이것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지역교회들의 협력과, 한국 사회 안에서 교파주의를 극복한 연합과 세계교회들과 함께 오늘의 세계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다. 본 강연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하여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지역사회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신앙공동체로서 선교적 과제와 또한 지역사회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교회들의 사례를 제시하고자 한다.

▲ 한국일 박사가 제2회 Missional Church Colloquium “Missional church, Emerging ministries”에서 강연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생교회로서 비기독교사회에서 시작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교회가 신앙생활에 중심이 되는 교회중심적 신앙에 바탕을 둔 선교 패턴을 형성해 왔다. 120여 년의 짧은 역사 속에서 한국교회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교회를 향한 사랑과 열정으로 표현해 왔다. 교회중심적 신앙패턴은 교회를 섬기는 일에서 잘 나타나 있다. 좋은 교인은 주일 성수하고 교회 안에서 봉사를 잘 하는 신앙인을 지칭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교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가진 특징이다. 다른 신생교회들과 비교할 때 한국교회는 어떤 교회보다 모이는 교회로서의 특징이 뚜렷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짧은 교회사 속에서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선교하는 교회로 발전하게 한 긍정적인 요소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면에 역기능도 작용한다.

한국교회가 신앙생활에서 교회를 강조하고 교회중심적 신앙관을 형성하게 된 이면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첫째 요인으로, 기독교 문화와 전통을 지닌 서구사회와 다르게 비기독교사회 속에서 신앙을 가지려면 사회로부터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면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선교학적 용어로 한국교회는 “가는 구조”(go-structure)보다 “오는 구조”(come-structure)의 성향이 강하다. 서구사회에는 천년 이상의 기독교 역사와 문화가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교회 밖에서도 신앙적 영향을 받을 많은 매체가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짧은 교회 역사로 인해 전혀 다른 상황을 경험을 하였다. 약 100년 전 선교 초기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강력한 개인적 결단을 요구하는 사건이었다. 당시 한국은 이미 불교와 유교, 토착종교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한국인의 전통과 습성을 형성해 왔기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하는 과정에서 많은 반대와 핍박을 감수해야만 했다.

둘째, 다종교사회인 한국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기존의 종교로부터 떠나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선택과 분리는 불가피한 과정이다. 다종교 상황에서 신앙을 갖는 것은 기존종교와 그것이 준 고정관념과 틀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을 소유한 삶의 형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기존의 종교 문화를 떠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분리되어야 하며 새 종교인 기독교에 소속하는 것이다. “떠남”과 “분리”와 “새로운 소속감”의 과정에서 기독교 신앙은 새로운 변혁을 향한 강력한 결단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이것이 현재 한국교회의 신앙적 특성을 형성하였으며 서구 사회와는 달리 신앙이 ‘강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한국교회는 일반적으로 신앙생활을 ‘영적 전투’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런 경향은 옛날에는 더욱 심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현상은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특성이 교회중심적인 신앙과 선교패러다임을 형성하는 데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주변국의 다른 지역의 교회들과 비교해 보면, 일본은 사회가 종교다원주의적 성향에 의해 다양한 신을 섬기고 있고 새로운 종교를 가진다고 해서 지난 종교를 버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중국 역시 지배적인 유교가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기독교 신앙을 선택할 때 과거의 종교를 버리거나 떠나야 하는 결단을 강조하였다. 다종교사회에서 다른 종교는 그리스도인이 버리고 떠난 종교이기 때문에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런 과정은 자연히 신앙의 관심을 교회 안으로 집중하였으며 이런 교회중심적 신앙은 교회절대주의를 초래하였고, 교회와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이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자의식을 주로 “교인”으로 이해하며 교회를 “성전”의 개념으로, 예배시간을 “거룩한 시간”으로 구별하면서 자연히 교회 밖의 공간과 시간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교회와 세상을 분리하면서 교회중심의 내향적 특성은 70년대부터 활발하게 전개된 교회성장운동을 통해서 더욱 강화되었다.

한국교회가 가장 선호하는 교회관은 “구원의 방주”와 “도피처” 개념이다. 여기에서 교회와 세상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큰 간격이 형성되고 이원론적인 인식이 고착되어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교회 안에서의 활동에만 신앙을 적용하는 기형적인 그리스도인 상과 교회상을 초래하였다. 그 결과 교회 안에서 교회적인 삶에는 열심이었으나 교회바깥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들만의 잔치”로 보여졌다. 사회로부터 고립된 교회 안에 갇혀진 신앙형태는 70-80년대에 군사독재시대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교회들이 표방한 교회의 탈정치화는 탈사회적 현상을 가져왔다. 교회중심적 사고가 목회자 중심의 신앙과 선교패러다임으로 이어졌다. 신앙생활을 잘 하던 사람들은 대체로 신학대학에 진학하여 목회자가 되었다. 지금까지 소명은 목회자에게만 적용되며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향한 외부의 비판과 내부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진지한 반성과 새로운 자기 이해를 형성해야 할 것을 요청한다. 이제 우리는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우리 안에서가 아니라 세상과 역사적 차원에서 어떤 소명과 약속을 받았는가를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방향을 확립해야 할 시점에 왔다.

한국교회는 짧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사회의 다양한 분야와 영역에 그리스도인이 없는 곳이 없다. 정치가, 연예인, 기업인, 군인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기독교인의 모습은 과연 어떤지 심각하고 진지하게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겉으로 드러난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인식과 평가를―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 포함하여―통해서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자의식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이 자의식을 형성한 신앙관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서 한국교회는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내용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가를 볼 수 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보냄을 받은 선교적 공동체이다. 구체적으로 모든 교인들이 가정, 직장,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복음화는 교회의 전도활동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실현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하나님 나라와 교회, 세상이 어떤 관계를 갖는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 모티브는 구약의 예언자들의 메시지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 이스라엘을 자신을 증거하는 백성으로 선택하였지만 하나님의 통치는 이스라엘 경계선을 넘어 전 세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구약의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그의 통치가 전 세계 위에 임하며 모든 사람으로부터 영광을 받는 분으로 묘사한다.

신약성서는 하나님 나라를 예수의 삶과 사역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증언한다. 예수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보여주기 위해 왔다. 그의 공생애 첫 사역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워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공생애 사역에서 중심을 이룬다. 그가 전하는 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며 그가 행하는 모든 기사와 이적은 하나님 나라의 표상이며 예수의 인격과 행동은 곧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가를 친히 보여주는 실체이다. 즉 예수의 말과 행동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현재적인 실재로 만든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예수님 안에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무엇인가?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안에서의 삶을 향해 어떤 약속을 하고 있는가?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는 교회와 세상, 전 인류를 향해 어떤 약속을 하는가?

하나님 나라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임하는가를 말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극단적인 입장을 극복해야 한다. 이원론적 세계관은 하나님 나라를 영적이고 개인적 실존이나 또는 초월적이고 내세적인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종말론적 현실로 이해할 때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이나 역사와 무관하며 교회가 현실에 참여할 어떤 근거도 갖지 못한다. 반대로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과 역사 속에서 실현되는 어떤 제도나 정치형태와 동일시 할 경우 하나님 나라의 초월성과 종말론적 완성의 여지가 사라진다. 후자가 하나님 나라를 현실 참여적 급진주의적 입장이라면, 전자는 현실 도피적 보수주의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개인의 영적, 내면적 차원에 속한 비역사적, 비정치적인 것이 아니며 반대로 세상 속에서 인간의 힘으로 실현되는 역사 내적인 정치현실도 아니다. 예수의 말씀과 삶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 나라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이며, 현세적이고 역사적이면서 동시에 종말론적이고 우주적이며 역사 초월적이다.”

하나님 나라가 역사와 세계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다면 어떤 형태로 임하는가? 이에 대하여 몰트만은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위에서 언급한 양극단적 형태를 극복하면서 역사와 종말론적 관점에서 잘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는 “역사적으로 해방하는 <하나님의 주권>의 종말론적 성취를 의미”하는데, 희랍어 단어인 basileia는 “세계 속에서 전개되는 현실적인 하나님의 통치와 (그것의) 우주적 목표를 모두 의미”한다. 만일 하나님의 주권을 완성된 미래의 종말에서만 보려고 하거나 하나님 나라를 그의 통치의 현실성과 같이 두려고 하면 둘 다 오해라고 지적한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감추어진 방식으로 통치하며 그 실체를 모두 완전하게 드러내지 않지만, 그러나 역사 속에서 이미 갈등과 함께 그 빛을 비추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역사의 조건과 ―그것이 이미 현존하는 것이든 요청되는 것이든 간에 ―동일시해서도 안 되며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을 지상적, 역사적 삶과 전혀 무관한 피안 속으로 넘겨버려도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역사적 종말에 완성에 이를 것이지만 역사 속에서 이미 다가오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시작하였다. 예수 안에서 역사와 종말은 연결되어 있다. 몰트만은 예수는 그의 선교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역사 속으로 이끌고 왔다고 설명한다. 그 나라는 종말론적 미래로서 현재를 결정하는 권능이 되었으며 이러한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미 <옛 시대>의 상황 속에서 <새 시대>의 빛 안에 살 수 있다. 종말론적인 것은 이러한 방식으로 역사적인 것으로서 되기 때문에 역사적인 것도 역시 종말론적인 것이 된다. 희망은 현실적이 되고 현실은 희망적이 된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사상에는 분명히 역사적이며 정치적인 차원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마 6:10)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영역은 정치적 현실을 포함하는 인간의 삶의 전 영역을 포함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하나님 나라는 이 세계 역사의 모든 현존하는 정치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 “종말론적인 정의와 사랑과 평화와 기쁨의 나라이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는 어떤 방식으로 이 땅에 전개되고 실현되는가? 그 하나님 나라는 어떤 특성과 내용을 담고 있는가?

몰트만은 하나님 나라가 “역사 안에서 해방하는 통치로서 현재한다면 이러한 해방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그의 약속과 복음의 선포 속에서 분명해진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말씀과 신앙, 약속과 희망, 계명과 복종, 권능과 성령을 통해서 통치하신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는 역사 안에서 성령의 실재를 통해 구체화 된다. “하나님의 영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는 믿을 것이 전혀 없는 곳에서 사랑을 창조하며 희망할 것이 전혀 없는 곳에서 희망을 창조한다. …하나님의 영은 새로운 미래의 창조자로서 그리고 이러한 미래를 위해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새롭게 창조하는 분으로서 역사 안에서 활동한다.” 예수의 선포에서 나타난 현저한 특징은 하늘의 아버지께서 누구보다 우선적으로 가난하고, 고통당하고, 죄짓고, 버림받은 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자비와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통치는 중세나 제국주의 시대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강제적인 지배나 억압적 방식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수님 제자들에게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말씀한다. 세상 나라와 권세는 일방적이며 임의적으로 지배하고 다스리지만, 하나님 나라는 이러한 위계질서나 힘의 논리가 아닐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막 10:42-45). 하나님 나라의 최고의 권위는 사랑과 섬김이다. “너희는 그렇지 아니하니”란 표현을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주권이 실현되는 방식을 세상 나라의 방식과 대조시킨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연약해 보인다. 또한 몰트만이 표현한 것같이 하나님 나라는 세상 눈에는 감추어진 방식으로 통치한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에게 익숙한 힘의 논리, 즉 무력적, 혁명적 정치 투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에게서 보여진 가난하고, 고난당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한 자기희생적 사랑과 섬김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세상이 하나님 나라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는 십자가에 감추어진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대변한다.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의 능력인 십자가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거나 걸림돌이 된다(고전 1:18).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를 통해 회개와 결단을 요구한다. 누구나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며 그 나라를 맛보려면 회개와 자기부정을 통해 신앙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회개를 통한 죄용서를 경험하며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이며 성령의 능력을 통해 교회를 지속적으로 새롭게 만들어간다.

하나님 나라는 잔치와 같은 공동체의 특성을 갖는다. 그 잔치는 안에 구성원들만이 아니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초청하는 잔치이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미리 맛보는 교회는 지역사회와 함께 하며 잔치의 공동체를 넓혀가는 것이 선교활동이다. 이 잔치는 세상의 모든 차별을 뛰어넘어 사람들을 초대한다. 이 잔치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평등과 포괄성과 사랑을 나눈다. 그러므로 이 잔치의 초대소식을 전하는 선교적 교회는 타인을 위한 교회이기 전에 타인과 함께하는 교회이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 안에서 거창한 방식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작고 조용하게 시작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 속에서 심겨져 변화를 가져오는 겨자씨나 누룩과 같다고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이 또는 누룩과 같이 작은 것으로 시작하였으나 주변을 향해 변화를 가져온다고 가르친다. 하나님 나라는 좋은 씨를 심어 많은 열매를 맺으려는 사람과 같다고 묘사하기도 한다(마 13:24-30).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는 좋은 씨를 심었으나 그것을 훼방하고 방해하는 세력이 뿌린 가라지와 함께 자란다. 그렇지만 가라지가 좋은 씨에서 나오는 곡식의 성장을 억제하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두가지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잘 가리킨다. 하나님 나라는 현세와 무관하게 내세에 주어지는 상태가 아니며, 세상과 분리되어 교회 안에서만 나타나는 사건도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과 역사의 관계 속에서 분명한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교회는 언제나 시대정신이나 특정 이데올로기에 유혹을 받아왔음을 알 수 있다. 베르너 콜레(W. Kohler)가 바르게 지적한 바와 같이 서구 교회는 예수의 왕권을 종으로보다는 세속적 통치자의 모습으로 이해하여 왔다. 한 시대의 권력과 야합하거나(중세교회), 문화와 결합된 모습을 가질 때도 있었다. 독일 교회는 히틀러의 독재정권하에서 독일 민족주의 이념과 결합한 왜곡된 민족주의 교회를 지향하기도 했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교회의 개교회주의 역시 한 시대를 지배하는 개인주의, 자본주의, 성장주의와 같은 세속적 이념과 혼합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의 본질을 왜곡하고 교회 자신을 목적으로 삼고 하나님을 오히려 교회를 위한 도구화 한다. 몰트만은 교회가 특정한 구조들이나 정치적 성향, 또는 문화, 이념들에 의해 왜곡되는 현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데올로기 비판적 교회론” (ideologiekritische Ekklesiologie)를 제시한다.

하나님 나라에 비추어 교회의 본질과 선교를 살펴보기 위해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통해서 좀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르네 빠딜라만큼 복음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분명하게 설명한 학자가 많지 않을 것이다. 빠딜라는 성경에서 사용된 세상(cosmos)이라는 단어가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에 대한 관찰만으로도 우리는 복음의 전 우주적인 차원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하나님이 하신 일은 단순하게 한 개인과의 관계가 아닌 전체로서의 세계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로서 하나님 나라가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온 우주의 주로서 예수를 인정하는 공동체로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에 대하여 빠딜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 속으로 침입해 들어왔고 성령을 통하여 계속하여 활동하고 있다. 교회는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행동의 결과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시작된 새로운 삶의 활동 영역이다. 성령은 이 새로운 삶을 신자들에게 공급해 주는 행위자(Agent)이다. 이와 같이 성령은 교회에서 선교적 공동체로서 그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은사를 준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현존과 분리하여 교회의 선교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회는 사회행동과 봉사와 함께 복음선포를 통해 비록 온전하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물을 완성하시는 그의 약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진다(엡 1:22-23). 세상의 이중적 특성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즉 하나님을 떠난 세상과 하나님의 회복의 대상으로 선교의 장을 구분하여 교회가 세상과 다른 성격에서 구분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세상 안으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와 세상을 분리하는 이원론의 문제를 그리스도 안에서 바르게 연결하는 성경적 근거를 에베소서 1장 23절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 본문에 따르면 교회와 세상은 본질상 구분되지만 예수의 주권을 통하여, 그리고 교회에 주어진 약속을 통하여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증거한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주관자이며 동시에 교회의 머리이다. 이 사실은 교회와 세상이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통해서 세상 안에서 일하시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연결되어 있다. 레네 파딜랴가 이미 잘 설명한 것같이 교회가 자신의 파송의 목적과 교회를 향한 약속이 세상 속에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아니 세상을 향한 약속을 교회에 주셨다. 이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하나님의 선택의 목적이기도 하다. 만일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교회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세상과의 연관성에서만 자신의 존재이유와 목적을 알게 된다. 그것은 교회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이기 때문이다. 이 약속은 종말의 선취로서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모든 세상은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경험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는다. 

교회의 선교를 말할 때 교회는 “창조세계 전체를 그리스도의 주권 밑에 모으고, 인류와 창조세계를 교제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아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해 만유를 하나님께 화해시키고, 그것들 상호간에 화해를 일으키시는 그리스도의 선교에 동참한다.” 교회는 이것을 예배와 예전을 통해서, 창조세계에 대한 봉사와 케리그마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실재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의 구원과 변화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에서 자신의 존재이유를 발견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따라) 가난한 사람들과 곤궁 속에 있는 사람들과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변호하고 돌봄으로써 모든 사람들과 고통을 나누도록 부름을 받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과 은사를 받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온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을 나타내는 징표요, 그것을 일구는 도구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화해와 치유와 변혁을 증거하고 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세상으로 파송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온전성(integrity)은 선포를 통한 증거와 JPIC(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를 위하여 선한 뜻을 가진 모든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행동에서 실현된다.

교회중심주의적 신앙관의 가장 큰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목표와 내용, 그리고 소명의 장을 교회 안으로만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현상이다. 한국교회가 성장하여 교회와 교인의 숫자는 증가하지만 교회를 떠나서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일상적인 삶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본을 보이지 못하고 세속적 가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 또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보다도 더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내세 중심의 신앙관을 가지고 천국에 대한 확신만 강조되었지, 이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신앙 안에서 세상을 위해 책임적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충분한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주제와 관련한 사례를 들어보자: 교회 직분이 집사인 한 직장인이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종교란을 통해 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떠오르는 생각은 첫째 까다롭겠다, 둘째 직장에서 교회 일을 많이 하겠다, 셋째 시계가 퇴근시간을 알리면 가장 먼저 퇴근할 것이다라는 생각이었다. 이것인 그리스도인이 직장에서 만난 다른 그리스도인에 대한 평가이며 어쩌면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현주소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 속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 직업적 소명을 무시하고 단지 교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그가 전도를 할 수 있겠지만 그의 삶은 전혀 세상으로 파송된 “선교적 존재”로부터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자기중심적, 교회중심적 신앙은 결과적으로 한국교회 전체적으로 볼 때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선교와 복음화에 큰 장애가 된다.

지역사회 속에서 교회의 선교적 책임은 교회가 단지 말로만 복음을 지역 주민들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교회를 통해 변화시켜가는 책임이 있다. 그것은 선교의 궁극적 목적이 교회자체가 아니라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교회는 지역사회와 함께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으로 파송된 공동체라는 것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기 이전에 그들과 함께하는 관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세상은 단지 하나님의 피조물만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선교의 영역이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교회는 세상의 어느 부분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교회의 선교적 과제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는 만물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새 창조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선교활동을 지향하는 “선교하는 교회”와 교회 자신을 세상으로 파송된 공동체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선교적 교회” 사이의 차이점을 올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전자가 활동으로 선교를 이해한다면, 후자는 교회 자체가 선교적이라는 자기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가 선교적 교회의 자기인식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선교는 단지 교회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으로 파송된 “선교적 교회”로부터 나오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만일 선교를 교회의 많은 프로그램들 중의 하나로 정의한다면 우리는 교회 자체를 내부지향적 양태로 규정하게 된다. 지역사회를 향해 개방적이며 함께하는 태도 없이 단지 전도를 위해 나간다면 그것은 “선교하는 교회”와 “오는 구조”에 서 있는 세상을 향해서는 닫혀 있는 교회이지만, 오는 구조 만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하는 “선교적 교회”는 오는 구조와 함께 “가는 구조”를 지향하는 교회로서 지역교회는 지역사회와 함께 하며, 교인은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교회이다.

선교전략적 차원에서 이해할 때 전체 교회의 선교는 세상으로부터 공신력을 얻고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은 선교의 인프라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그것을 전달하는 “증인”으로서 지역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교회의 선교는 눈에 보이는 특정 프로그램 이전에 개 교회들의 보이는 부분과 함께 전체 한국교회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중요하다. 교회의 선교활동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지역사회에서의 교회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질 때이며 사회적 공신력을 얻을 때이다. 이것은 지역사회에서 교회의 선교적 차원이 복음증거와 사회적 책임을 함께 수행하게 될 때 선교의 효력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4. 지역사회를 섬기는 지역교회 사례

1) “하나님 나라의 도구”로서 용학교회 사역의 선교학적 평가

첫째, 담임목사는 교회가 지역사회 안에서 선교적 교회로 자리잡고 활동하는 데 필요한 선교신학, 하나님의 선교에 근거한 교회론을 정립하였다. 용학교회 박석종 목사는 현재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판을 받게 된 주된 이유를 “교회가 세상을 섬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교회는 교인들만의 교회이지, 세상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교회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박목사는 그 이유를 목회자들의 교회론의 부재에서 찾는다. 그래서 박 목사는 자신의 교회를 철저하게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기초하여 기존의 교회론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선교에서 보면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며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의 도구이다. 박목사는 중요한 것은 교회가 아니라 선교라고 말한다. 따라서 교회는 선교 중심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선교적 교회를 실현하기 위해 교회구조를 개편하였다. 박석종 목사는 하나님의 선교에 기초한 선교적 교회로 활동하기 위해 기존의 교회 모습이나 틀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선교적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기존의 교회 내부적 활동을 위한 조직 외에 지역사회 속에서 선교활동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교회 조직의 개편을 시도하였다. 하나님의 선교를 구체화하는 교회구조로의 개편은 실제적으로 교회가 대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다섯 개의 선교위원회를 구성하고, 그것을 통하여 지역사회 안에서 교회의 공적 책임을 활발하게 실천하고 있다.

셋째, 용학 교회의 공적 영역에서의 참여는 일반적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적 선교활동이다. 박석종 목사가 지적하는 지역사회의 공적 주제들을 다음과 같다: 1) 농업활동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농업과 환경파괴, 건강한 먹거리 생산과 유통 등), 2) 고령화 사회에서 발생하는 노인복지와 노인 일자리 창출, 3) 지역사회의 공동체 문화를 개발하여 발전시키며, 향락문화와 퇴폐 문화에 병들어가는 농어촌 사회에 건강한 문화형성, 4) 점증하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배려와 지원 등이다. 교회는 이 중에서 무엇보다 지역사회 인구의 20-30%에 육박하는 고령화 현상에 대하여 노인 복지 차원에 주력하여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

넷째, 평신도들을 잘 교육하고 훈련하여 교인으로서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그리스도인과 시민으로서 올바른 삶을 실현하도록 인도한다. 예를 들면, 창조질서 회복운동을 목표로 하여 용학 교회 10대 환경수칙과 66가지 창조세계보존수칙을 만들어 친환경적 생태적 생활화를 지향하고 있으며 생활화하는 것을 노력하고 있다.

다섯째, 교회가 지역사회 안에서 여러 가지 면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교회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함께 하거나 기관의 관계자들과 협력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것은 지역사회에서의 교회의 활동이 고립적이거나 일방적 방식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존재하고 함께 활동하는 교회로 인식되기 위한 노력이다.

용학 교회는 작은 단위의 농촌 지역에 속한 교회로서 큰 규모는 아니지만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와 세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선교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교회로 자리잡고 있다. 교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기 위해 지역사회에 필요한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그것이 교회의 선교활동을 이끌어가는 원리가 되고 있다. 용학 교회의 이와 같은 활동은 지역사회와 주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전달하며 지역사회에 교회가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이 형성되어 결과적으로 교회전도와 성장의 열매로 연결되고 있다.

2) 복음전도와 공적 책임의 균형과 조화를 이룬 완도 성광교회 사역의 선교학적 평가

첫째, 교회의 활동은 목회자의 사회적 책임의식과 그것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 인식에 바탕을 두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운동권 출신의 목회자로서 사회적 문제에 참여하는 것이 교회의 선교적 사명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정우겸 목사는 80년 5.18 광주 항쟁을 경험하면서 구약의 예언서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명하게 깨달아졌고 이때부터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신학적 연구와 함께 사회를 이해하는 인문학적 연구에도 시간을 투자하였다. 민주화, 인권운동, 도덕성회복, 지역개발 등이 정 목사의 주된 사회적 관심사였으며, 이러한 사회적 의식은 그의 목회활동의 방향과 내용에 큰 영향을 끼쳤다.

둘째, 담임목사의 사회를 향해 열린 신학은 교회를 “친(親)지역주민, 친지역사회”적 특성을 갖게 하였다. 교회의 다양한 친지역사회적 활동은 교회가 직접 홍보하지 않아도 주민들에게 교회에 대한 좋은 인식과 특히 지역사회를 위해 교회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셋째, 성광교회는 무엇보다 평신도 사역을 통한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이다. 평신도가 가진 은사와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함으로 교회 내부적으로는 생명력 넘치는 활동적인 교회가 되었고, 밖으로는 지역사회를 구체적이며 효과적으로 섬기며 봉사하는 교회가 되게 하였다. 530개의 위원회들은 지역사회의 필요성과 교인들의 은사에 따라 다양하고 자율적으로 조직하여 모든 교인들이 참여하는 섬김의 활동이다. 기존 교회들은 목회자 중심의 구조로서 대부분의 평신도들이 목회자 의존적 특성을 지니며 그들의 활동이 거의 교회 내부적인 것에 반하여, 성광교회는 평신도가 주체가 되어 자발적 방식으로 사회적 영역에서 대부분의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정우겸 목사는 평신도 훈련에서도 목회자와 평신도가 신앙적인 면에서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교회 안에 “작은 목회자”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문서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평신도야말로 “교회와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그의 선교적 사명과 역할을 정확히 수행하고 있다.

넷째, 성광교회는 무엇보다 복음전도와 교회의 사회적 공적 책임의 균형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정우겸 목사는 전도와 교회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한 목회자이다. 효과적인 전도방법을 배우기 위해 전국적으로 30여 개 전도 세미나를 참석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전도는 기술이 아니라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고 그것을 전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 후 교회의 전도와 성장에 대한 관심을 여전히 갖고 있었지만 그 출발점과 접근방식은 달랐다. 기존교회와 같이 전도하여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교회는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문제들에 대하여 교회가 구체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 역시 교회의 필수적 책임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성광교회 교인들은 복음전도활동에서 열심히 참여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속한 위원회를 통해서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에도 동일한 관심과 열정으로 참여하고 있다. 성광교회는 로잔 언약의 제 5항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복음전도와 교회의 정치 사회적 책임은 둘 다 교회에 속한 필수적 의무라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이것은 전도와 교회의 사회적 영역에서의 책임적 실천이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님을 실천적으로 예증하고 있으며, 전도는 보수교회가 사회참여는 진보교회가 하는 것이라는 기존의 잘못된 이분법적 생각을 교정하고 있다.

3) 도시교회로서 지역사회를 섬기는 한남제일교회 사역의 선교학적 평가

한남제일교회는 도시에 소재한 중소형 교회로 지역사회 속에서 주민들, 그리고 기관과 협력하여 사회봉사활동을 실행하고 있는 모델을 제시한다. 한남제일교회의 봉사활동은 먼저 지역의 특수성을 조사하여 필요에 적합한 활동들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목회자의 목회신학과 의지가 교회의 봉사활동의 방향과 성격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담임목사의 목회신학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교인들을 돌보는 사역에 제한되지 않고 지역사회를 목회영역으로 인식하고 있는 “선교적 목회”를 지향한다. 따라서 교회관도 건물로서의 교회나 교인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개방적인 교회관을 정립하고 있다. 사회봉사의 목적에서 근본적으로 전도를 지향하고 있으나 봉사활동을 단지 전도의 도구나 전략으로 생각하지 않고 지역사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실천한다. 여기에서 봉사활동은 선교에 속한 활동으로 이해한다.

지역사회를 목회의 장으로, 지역주민의 목사로, 지역사회를 위한 교회의 목회신학은 목사를 주민들의 신뢰를 받아 지역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로, 교회를 지역의 센터역할을 수행하는 곳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지역기관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교회와 담임목사가 지역사회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남제일교회의 사회봉사는 교회와 지역주민과 지역기관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것을 토대로 함께 일하는 방식을 만들어 갔다.

오창우 목사가 이렇게 지역사회봉사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그의 목회관, 선교관을 형성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인터뷰를 통해서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하였다.

첫째, 오 목사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성장하면서 교회가 지역사회로부터 분리되는 이중적 의식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불신자들을 단지 전도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태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불신자들도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받은 귀한 피조물이며 아직 구원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그리스도인가 차이가 있을 뿐 모두 귀한 존재로 여겨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본인이 목사가 된 후에 이러한 생각을 목회에 적용하게 되었다.

둘째, 교회 주변에서 교회 목사가 지역주민들과 다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지역주민은 교회가 하는 일을 싫어하고, 교회는 그러한 지역주민의 반응에 대하여 똑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오 목사는 지역주민들이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교회가 품고 기다리며 함께 가야할 사람들로 생각하였다.

셋째, 지역사회는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현명한 결정이나 실천에 있어 적절한 리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목사의 선교적 목회론의 하나는 따라서 “교회의 리더가 지역사회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회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으나 지역은 특히 도시지역은 공동체를 갖지 못하고 있다. 지역의 문제가 발생할 때 교회의 리더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참여하고 지역사회발전에 앞장서서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것이 교회 밖의 지역주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고 교회가 신뢰를 받는 계기가 된 것이다. 교회가 지역활동에 참여하여 지역의 의식과 활동의 수준을 한층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경험적으로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동네 환경정화를 위해 동장의 단순히 청소하는 일만 구상할 때 오 목사는 보다 근본적이며 거시적인 안을 제시하였다. “깨끗한 마을, 아름다운 마을, 사랑의 마을”의 표어를 제시하고 보다 넓은 차원에서 지역환경의 정화활동을 이끌어 간다. 이것은 교회가 지역사회발전을 위해 넓은 안목으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 어머니 합창단에도 교회 성가대원을 보내어 참여시키면 음악수준도 높아지고 지역주민들과 유대관계도 깊어지는 경험을 하였으며 지역전도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적지 않은 교회들이 지역사회로부터 분리되어 교회 자체만을 목회영역으로 생각한다. 교회가 가진 역량을 교회 자신을 위해 사용하며 지역사회는 단지 전도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지역사회 역시 교회를 낯선 곳으로 인식하고 서로 배타적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남제일교회는 교회중심적 경향을 극복하고 도시상황에서 중소형 규모의 교회로서 지역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기관과 연합하여 활동하는 명실공히 지역사회의 중심에 선 교회로서 주목해야 할 사회봉사 모델이다.

한남제일교회의 사회봉사활동으로부터 얻는 교훈과 내용들을 종합 정리해보자.

첫째, 한남제일교회는 지역사회와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들을 단지 전도의 대상으로만 보는 교회중심적 선교관을 극복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있다.

둘째, 교회가 가진 공동체성을 지역사회에 적용 실천하고 있다. 도시의 개인주의, 익명성이 특성으로 파편화되어 있는 상황에 교회의 공동체성이 지역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한다.

셋째, 교회의 리더가 지역사회에 리더로 봉사하게 한다.

넷째, 지역의 기관들, 회사 등 지역 내 자원들을 발굴하고 그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교회가 그들과 연합하여 봉사활동을 전개한다.

넷째, 교회가 지역사회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주민들과 기관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교회가 되었으며 한국교회, 특히 도시 교회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지역사회와의 분리현상에 대해 교회가 지역사회의 센터로서 존재하고 활동하는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남제일교회는 사회봉사활동을 통해서 지역사회에 선교를 위한 좋은 분위기와 만남의 장을 조성하였으며, 교회와 목사, 교인들의 존재와 삶 자체가 선교의 메시지가 되는 “현존으로서의 선교”, “삶으로서의 선교”,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선교”의 패러다임을 실현하고 있다.

4) 지역의 문화를 형성하며 이끌어가는 송악교회 사역의 선교학적 평가

농촌을 하나님의 나라로: 교회와 목회의 비전

70년대 산업화와 함께 급격히 진행된 이농현상은 농촌을 황폐화하고 있다. 도시에 비해 여러 가지 면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곳, 나이가 들거나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남아 있는 곳, 교회 역시 도시교회에 의존하여 겨우 존재하는 곳 등으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농촌의 열악한 환경과 편견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향한 꿈을 지니고 선교하는 교회들과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송악교회는 약 150명 출석하는 전형적인 농촌 교회에 속해 있다. 그러나 이제 이들은 교회를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오늘의 세계 상황에 대안교육, 대안농업, 생명문화를 이끌어가는 센터로서 긍지와 희망을 품고 선교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교인들로부터 시작하여 마을 주민들이 합세하여 함께 실시하고 있는 친환경 생명농업은 이제 전국에서 인정받는 유기농업지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국제적 차원의 대안농업포럼에 모범적인 지역으로 선정되어 참가자들이 견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중심에 송악교회가 있고 교회 안에 의식있는 목회자가 있다.

담임목사는 신학교 시절부터 농업으로 선교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이종명 목사가 부임할 때 이미 전임자가 10년 동안 농업선교의 꿈을 가지고 목회의 기틀을 마련해 놓았다. 이종명 목사는 이전의 2명의 전임 목회자와 같은 목회, 선교적 방향을 가지고 일관성 있는 목회활동을 실천하였다. 지역사회 속에서, 지역사회를 품는 교회관에 근거하여 30년 동안 지역사회 속에서 일관성 있게 활동함으로써 현재 지역사회의 중심에서 지역사회 전체를 위한 교회가 된 것이다.

지역사회를 품는 선교: 통전적 선교

이 목사는 선교는 전도보다 넓은 의미이며 지역사회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을 하나님의 선교, 사회선교로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열악한 농촌 교회의 환경으로 인해 자주 목회자가 바뀌는 현실에서 이 목사는 농촌선교의 꿈을 안고 지역사회 전체를 선교의 영역을 품고자 했다. 선교의 내용을 교회 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의 필요성을 발견하고 그것으로부터 선교를 시작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친환경 생명농업, 폐교 살리기와 대안교육, 공동체 문화 실현, 지역사회복지 등은 모두 지역사회의 필요성으로부터 시작한 사회봉사활동이다.

이종명 목사는 송악교회에 부임한 이래 이전에 다양한 선교현장(80년대 운동권, 구조 개혁, 민중 해방, 광주 민주화 운동 등)으로부터의 도전과 하나님의 선교로부터 폭넓은 선교개념을 가질 수 있었다. 교회 중심의 목회관을 지양하고 하나님 나라를 목표로 하는 목회를 추구하였다. 그는 농민을 위한다기보다 먼저 농민 옆에서 함께 살면서 “농사짓는 마음으로 수행하는 목회와 농촌선교”를 희망하였다. 영과 육체, 개인과 사회를 분리하지 않고 통전적으로 목회와 선교과제를 이해하고 있다.

이종명 목사는 농촌 선교가 한국의 농촌 교회로 하여금 농업과 지역의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세계경제질서의 대안적 방안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교회 제직을 지역사회 리더로”: 평신도 선교

송악교회 교인을 소개하는 이 목사의 글에서 흥미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교인들이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권사는 한살림 송악면 지회회장과 송악농협의 이사를 맡고 있으며, 어떤 집사는 한살림 송악면 지회 총무이고, 어떤 집사는 한살림 아산생산자 협의회 실무자로, 어떤 여집사는 지역내 참교육학부모회와 생협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 교인은 지역아동센터 교사와 아산 Y생협 실무자로 활동한다. 많은 교회들이 교회 제직은 교회만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에 반하여 송악교회 제직은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것은 이 목사의 소박한, 그러나 시대적으로 의미있는 꿈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 목사의 꿈을 옮겨본다.

얼마 전에 이렇게 제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때 우리의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주 쉽고 구체적으로 말했는데 ‘우리 송악면을 농약병 없는 동네로 만들어봅시다.’ ‘송악동네를 사람이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어봅시다’. ‘사람도 물고기도 새도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어 봅시다’ 했습니다. 새가 살기 좋은 동네라면 사람도 살기 좋은 동네구요. 물고기가 살기 좋은 동네라면 분명 사람도 살기 좋은 동네구요. 꽃과 나비가 살기 좋은 동네라면 보통사람도 살기 좋은 동네구요. 공부 못하는 사람이 살기 좋은 동네라면 공부 잘하는 사람도 살기 좋은 동네지요. 외국인 노동자가 살기 좋은 동네라면 우리나라 사람도 살기 좋은 곳이구요.
생각해 보면 꿈 같이 마음 설레이는 말이지만 한편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내 맘 같지 않거든요. 몇몇 사람의 노력으로 될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함께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언젠가는 되지 않겠어요?

생명은 21세기 온 세계가 추구하는 화두이다. 도시의 발달된 문명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농촌은 다만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속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나고 기피하는 지역, 교회조차도 패배의식을 가지고 연명하고 있는 곳, 도시교회의 후원에 의존적인 상태 누구도 이런 곳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농어촌 교회에서는 이 나라와 세계를 살리는 대안적 삶이 제시되며, 참교회의 본질을 회복시켜주는 신앙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적으로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인한 생명위기에 직면해 있는 오늘의 시대에 농촌지역의 한 작은 마을에 있는 송악교회와 같은 의식있는 농촌 교회들이 제시하는 오늘의 세계의 대안적 방향에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