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릴없는 선교지의 일상

2011년 10월 3일, 월요일.



숙소 주변의 온 마을 사람들이
새벽마다 각 종 신들에게 공양을 바치느라 분주하고 시끄럽다.
3천 3백여 명이나 되는 신에게 경배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이들은 마치 신들에게 공양드리기 위하여 인생을 사는 것 같다.
아침마다 신전에도 가지만 집집마다 집에도 신상을 모셔놓고 공양을 드린다.



오전 6시.

이웃집 아주머니가 옥상 베란다 난간위에
공양을 마친 붉게 물든 쌀을 쏟아 놓는다.
까마귀, 비둘기들이 먼저 날아와 먹을 채비를 차리고
작은 참새들은 멀리서 바라만 본다.

욕심 많고 힘센 까마귀가 먹이를 독차지 하려고
다른 새들을 쫓아내고 혼자 먹는다.
욕심 부리는 모습은 인간이나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



냉장고를 열고
어제 카투만두 가서 사다 놓은
된장과 콩나물과 양파를 꺼내 다듬어 아침준비를 한다.
냄비에 물과 콩나물을 넣고 된장을 푼 다음, 양파를 썰어 넣는다.
이름하여 콩나물 된장국이다.

이국에 와서 콩나물국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밥을 안치고 밥이 되는 동안 시간절약을 위해 빨래를 한다.
어제 물을 많이 썼다고 주인이 단수하여
물을 아끼기 위해 두 번만 헹구고 넌다.

세수도 네팔 식으로
왼손에 물 한 컵 들고 오른손으로 대충 씻는다.
물 한 컵으로 머리 감고, 물 한 컵으로 뒤처리 한다.
오늘도 단수 시킬까봐 미리 두 통 받아 둔다.

된장찌개가 맛있게 끓는 냄새가 난다.
이국에서의 된장국 냄새는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입맛을 돋운다.
멸치와 다시마가 없어 다싯물도 만들지 못하고 끓인 된장찌개가
네팔의 달밭보다는 훨씬 맛있다.

후- 불으면 날아갈 듯 한 끈기 없는 쌀밥을
한 공기 퍼서 먹으려고 숟갈로 누르니
숟갈이 힘없이 밥공기 속으로 반은 쑥 들어간다.

장로님이 남겨두고 간 고추장 한 숟갈을 넣고
된장찌개 몇 숟갈 떠 넣어 비벼가며 혼자 맛있게 먹는다.
내 몸 내가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간섭해 줄이 없다.
밥맛이 꿀맛이다.


천정에 붙어 있는 도마뱀이 움직이지 않고
쥐 죽은 듯이 멈추어 나를 쳐다본다.
그놈도 자기 교구에서 파송 받아 혼자 이 방으로 배정받은 모양이다.

아마 나를 보호하기 위해 천국에서 보낸 호위병인지도 모른다.
그 놈은 파리나 모기 등 해충을 잡아먹는데 탁월한 놈이다.


한국에서 떠나오기 전부터 봉사실을 준비하겠다고 약속한
현지인 라형제가 아무 준비도 없이 나를 오라하여 답답하기만 하다.
봉사실로 쓸 룸은 마련되었지만
며칠 전부터 온다는 환자용 침대가 오지 않아 며칠째 할 일없이 지낸다.



오전 11시.

방안에만 있기가 지루하여 작은 배낭을 짊어지고 전도 나간다.
내 숙소 아래층 지하 쪽으로 난 출입구를 나선다.
햇빛도 없는 음침한 골목에 10세 안팎의 어린아이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무언가 열심히 한다.

가까이 가 보니 돈을 놓고 노름을 한다.
장난인줄 알고 잠시 서서 자세히 보니 진짜 돈 따먹길 한다.
아직 코흘리개나 다름없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놈들이
거리에 좌판을 펴놓고 노름을 한다.
우리 어릴 땐 겨우 딱지치기 정도였는데 이 아이들은 차원이 다르다.
가난할수록 더욱 돈을 좋아하고 물질에 집착하게 된다.


왜 문단속을 이중 삼중으로 하는지 이제 좀 이해가 간다.
저 아이들이 노름하다 할 일 없으면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다
문이 열려 있으면 아무거나 집어갈게 아닌가.

▲ 노름하는 아이들

오후 3시.

더르바르 광장에 간다.
많은 외국 관광객들 틈에 간 혹 네팔의 대학생들이 지나간다.
그들과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으며 대화를 나눈다.

▲ 박타풀-더르바르 광장

오후 4시.

드디어 환자 침대가 도착하였다고
더르바르 광장에 있는 나에게 라형제가 전화를 하였다.
출입구가 좁아 올라갈 수 없어
3층까지 밧줄로 올리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고.


기쁜 마음으로 부리나케 숙소로 달려간다.
병원에서 침대를 가져온다 하여 기대하였었는데,
어디서 녹슨 고물 철근 틀을 주워왔다.
그것도 좁은 곳에 올리느라 여기저기 쇠톱으로 잘라 병신이 되었다. 
그 위에 주워온 합판 한 장을 덮어놓고 침대 완성이란다.

기가 막힌다.



오후 6시.

이대로 지내다간 귀국하기 전에 영양실조로 쓰러지든가
더 말라깽이가 되겠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처음으로 겨란 장조림을 해본다.


교인들이 만들던 걸 회상하며
먼저 겨란 15개를 삶아서 깐다.
양파를 통째로 세 개를 까서 잘라 놓는다.
그 놈을 작은 냄비 두 개에 나누어 담가 둔다.
간장 소스를 만든다.

슈퍼에서 소이빈 소스라고 쓰여 있어 사 왔더니
색깔만 간장일 뿐 쓰기만 하고 짜질 않다.
그 놈 한 스푼에 물 한 컵 섞어 소금 좀 넣고
설탕도 조금 넣어 간장소스를 만든 다음 삶아 놓은 겨란 위에 붓는다.
칼칼한 맛을 더하기 위해 매운 고추 몇 개 통째로 넣는다.
약 30분 정도 달이니 갈색으로 변하여 제법 장조림 모습이 나온다.
맛도 짜지 않고 적당하다.


이것을 매일 두세 알씩만 먹으면 약 일주일은 버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