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아래 새것이 없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성서의 말씀이 진리였습니다.” 
몇 주 전 한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글벗이 나에게 보내온 이메일 속에 담겨있는 한숨 소리다.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스라엘의 지혜주머니 솔로몬 왕의 작품으로 알려진 구약성경 전도서 일장에서 인용한 말이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는 구호를 외치면서 미국에서 시작된 데모가 세계 각국으로 점점 확산되어가고 있다. 유럽 몇 개국에서는 성난 데모대들이 금융가를 습격해서 방화하며 건물들을 파괴하기도 했다.
 
그 외침들 또한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미국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위대한 사회로 발돋움하고 있던 1960년대에도 일부 미국지성들과 히피족들이 “Let It Be”노래를 부르면서 자본주의 문명의 병폐를 비판했었다. 이렇듯 역사에는 새로운 것이 있을 수가 없다. 되풀이만 있을 뿐이다.        
   
나는 신천지를 약속하는 개혁이나 혁명 같은 요란한 구호들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한, 인류의 지난 역사는 한 번도 이를 화끈하게 증명해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는 데모만 해도 그렇다. 내 눈에는 구호를 외치는 99%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월스트리트 주인공 1%나 탐욕 면에서 만큼은 전혀 다름이 없어 보인다. 도토리 키재기 같은 정도와 차이의 문제이다.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를 흉보는 것 같이 들리기도 하고,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 잣대로 보이기도 한다. 솔직히 한 편은 운 나쁘게 99%의 옷을 걸치고 있고, 다른 한 편은 운 좋게 1 %의 옷을 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다 더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99%에 속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언젠가는 자기도 1 %의 옷을 입어보겠다는 탐욕스런 야망을 마음속에 불태우고 있을 것이다.
 
오래 전에  한 신앙서적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미국의 중북부 한 시골교회에서 일어났던 실화다. 그 교회는 신도들이 목사파와 장로파, 두 패로 갈라져서 몇 년째 극심한 분열의 진통을 겪고 있었다. 목사는 어느 날 출근길에  자기 집 정원에서 서로 고성을 지르면서 싸우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자기 아들과 장로 아들이었다.
 
"이 장로 같은 사탄자식아 !" 하고 자기 아들이 장로 아들을 공격하자, "이 목사 같은 사탄자식아! "하며 장로 아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덤벼들고 있었다. 목사는 그 싸움을 지켜보고 "집에서 얼마나 상대편을 욕했으면 아들까지 저럴까 ?"하며 크게 반성을 한 후 장로와 화해를 했다고 한다.
 
1% 와 99%의 싸움도 그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99% 측 눈에는 1%가 사탄같이 탐욕스런 나쁜 놈들처럼 보일 것이고 1% 측 눈으로 99%는 남의 재산이나 빼앗으려 드는 사탄같이 나쁜 놈들로 보일 것이다.
 
나는 미국에 이민 와서 지난 30여 년을 부동산업에 종사하며 밥벌이를 하고 살아왔다. 특히 지난 20여 년 동안은 수만 채의 집을 족히 감정했을 것이다. 부동산 경기는 레이건정부의 공급(supply)경제학 덕분에 1980년대 말, 몇 년간 버블로 반짝했다가 그 뒤 7년 가까이 심한 침체를 겪었다.

그리고 2000년에 들어서 컴퓨터 산업의 호황과 월스트리트의 범죄적 사기극인 서브프라임 금융으로 부동산경기가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더니 뒤이어 7년째 나락의 바닥까지 추락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나는 억만장자, 정부각료, 상하의원, 군사성 장군, 교사, 성직자, 경찰, 극빈자.... 등, 별의별 사람들을 고객으로 만나 보았다. 인종으로 말해도, 백인, 흑인, 스페니시, 동양인, 인도, 중동인..., 만나보지 못했 던 인종은 별로 없을 것이다.
 
수십 에이커 땅에 왕궁같이 우뚝 선 저택을 감정하면서는 "인간이 이렇게까지 누릴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 하고 분노하기도 했었고, 모기지를 내지 못하고 쫓겨난 불 꺼진 집을 감정하면서는 리빙룸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찢어진 가족사진, 장난감들을 내려다보면서 눈시울을 적시기도 숱하게 했었다.

그러나 결론은 부자들이든, 가난한 사람들이든 인간들은 한결 같이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집을 House 라고 부르지 않고 Home이라한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고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하는 “Home Sweet Home” 노래가사처럼 집이란 단순한 건물만이 아니다. 사랑과 행복을 서로 나누고 베푸는 가족의 안식처요 보금자리가 바로 집이다.

그러나 그런 스위트홈의 개념이 미국사회와 멀어진지 이미 오래 된다. 집은 재산을 증식하는 도구요, 돈 자체다. 어찌 변한 것이 집뿐이겠는가 ? 가족 간의 사랑을 판단하는 척도도 돈이다. 부모, 부부, 자식 간의 사랑을 돈으로 평가해서 값어치를 매기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물리학에 "에너지는 양이 줄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만 바뀐다."는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의 탐욕은 인간의 본성적 에너지다. 그런 면에서 탐욕 자체의 물량을 가감할 수는 없다. 통제나 억제로 극복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변화는 가능할 것이다.
 
예수는 인간탐욕 불변의 법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 며  부의 축적문제로 고민하던 그는 "부를 땅에 쌓아두지 말고 천국에 쌓아두라 "고 대안을 제시했었다. 쉽게 말해서 탐욕의 에너지를 사랑의 에너지로 바꾸라고 한 것이다.
 
아무리 작은 낙타라도 바늘구멍을 통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에 있는 모든 돈을, 아니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돈들을 바늘구멍으로 물처럼 흘러가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는 달걀을 깨서 책상위에 세우는 콜럼버스 식의 오만한 억지가 아니다. 우주의 창조원리다. 
 
물은 공평하다. 그러기에 차별이 없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 물의 속성이다. 조용히 흐르다가 계곡을 만나 격류를 이루기도 하고, 폭포로 쏟아져 내리기도 한다. 그러다 가장 낮은 곳에 모여 바다를 이룬다.

바다에 모인 물은 거센 파도, 무서운 쓰나미가 되기도 하고 수증기로 하늘에 올라가 보슬비 폭우, 홍수로 쏟아 내리기도 한다. 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순환하며 생명을 키우는 사랑의 에너지다. 
 
공산주의의 비극은 칼막스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막스는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흐르지 못하도록 수평적으로 가두어 두려고 했었다. 결과는 결국 썩고 부패해서 결국 망하고 말았다. 막스는 우주의 창조원리를 몰랐던 무지한 학자에 불과했다. 

오늘날 탐욕스런 금융자본주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물이 한 곳에 갇히면 결국 썩고 만다. 돈도 마찬가지다. 썩은 돈은 자신, 가족, 나아가서는 사회전체, 우주를 병들게 한다.

돈을 물처럼 흐르게 하라.
이것 또한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