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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안내] 종말론의 역사와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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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9월 26일 (월) 17:34:35
최종편집 : 2011년 09월 26일 (월) 17:44:23 [조회수 :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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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의 역사와 주제

 



교회와 인류를 사로잡은 위대한 희망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무엇보다고 예수가 죽기까지, 그리고 그의 부활 후에는 교회가 죽음을 무릅쓰고 증언해 온 희망, 곧 하나님 나라의 희망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왔다. 그 결과로 나온 이 책은 기독교가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위대한 희망의 종교였는지를 역설한다.  

 

 

지은이 이신건
펴낸이 신앙과 지성사
형태 판형 A5 페이지 수 278
정가 10,000원



 

이신건 교수 약력

 

   

 

서울신학대학교,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독일 튀빙엔대학교 수학(신학박사),

서울신학대학교(www.stu.ac.kr) 교수,

성결신학연구소(sgti.kehc.org) 소장

 


지은 책

칼 바르트의 교회론(성광문화사, 한들출판사)
조직신학입문(한국신학연구소)
평신도 눈높이 신학(예영 커뮤니케이션)
하나님 나라의 지평 위에 있는 신학과 교회(한국신학연구소)
어린이 신학(한들출판사)
공의를 위해 다시 오시리라(기독교대한성결교회출판사)
인간의 본질과 운명(신앙과지성사)

옮긴 책

교의학(, 한국신학연구소)
교회(후버, 한국신학연구소)
칼 바르트의 정치신학(단네만, 한국신학연구소)
고대교회와 동방교회(콧체 외, 한국신학연구소)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누구신가(몰트만, 대한기독교서회)
나는 어떻게 변하였는가(몰트만 외, 한들출판사)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역사(몰트만, 대한기독교서회)
생명의 샘 - 성령과 생명신학(몰트만, 대한기독교서회)
희망의 신학(몰트만, 대한기독교서회)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그루노프 엮음, 대한기독교서회)
디트리히 본회퍼 묵상 52(본회퍼, 신앙과지성사)
성도의 교제(본회퍼, 대한기독교서회)
나를 따르라(본회퍼, 대한기독교서회)
윤리학(본회퍼, 대한기독교서회)
몰트만 자서전(본회퍼, 대한기독교서회)



책을 펴내는 말

교회는 ‘예수’로부터 출발했다. 하지만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출발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처음부터, 그리고 철저히 희망의 종교요, 종말론적인 종교다. 어떤 사람들은 흔히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고 말한다. 성서와 신학은 지금까지 사랑을 매우 강조해 왔다. 예컨대 한 율법사가 예수에게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5~40)라고 대답했다. 예수의 정신을 철저히 이어 받은 듯이, 바울도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가 ‘믿음의 종교’라고 강하게 역설한다. 참으로 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믿음을 강조하며, 교회의 역사도 믿음의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예컨대 하박국은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고 말했고, “사랑이 제일이라!”고 강조한 바울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고 말했다. 루터는 바로 이 말씀을 위대한 종교개혁의 신호탄으로 삼았다. 철옹성과 같던 가톨릭교회가 이 말씀 하나 때문에 완전히 흔들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말씀의 위력은 얼마나 대단한가!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분명히 드러낼 때, 소망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한 것이 과연 있었을까? 믿음의 조상과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희망을 걸고 고향을 떠났다.(창 12:1~4)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출 3:14)으로 계시되었고,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면서 활동을 개시했다. 성령은 특히 미래의 능력으로 나타났다.

물론 기독교의 뿌리는 믿음이고, 믿음은 궁극적으로 사랑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 믿음의 토양에서 자라난 열매라면, 믿음과 사랑을 끝까지 지탱하고 강하게 키우는 것은 희망일 것이다. 그러므로 희망이 없는 기독교는 엔진이 없는 자동차와 같을 것이다. 믿음이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할지라도, 그리고 사랑이 아무리 아름답고 풍성할지라도, 희망이 없는 믿음과 사랑은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교회와 인류를 사로잡은 위대한 희망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가 죽기까지, 그리고 그의 부활 후에는 교회가 죽음을 무릅쓰고 증언해 온 희망, 곧 하나님 나라의 희망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지금까지 계속 노력해 왔다. 그 결과로 나온 이 책은 기독교가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위대한 희망의 종교였는지를 역설한다. 전반부(종말론의 역사)가 ‘희망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후반부(종말론의 주제)는 ‘희망의 내용’을 설명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기독교가 선포하고 실천하는 희망의 본질에 관해 다시금 개관할 수 있도록 안내하며, 인간과 역사와 우주의 궁극적 미래와 목표를 진지하게 성찰하기를 요구한다.

한국 교회는 가슴이 뜨겁고 손발이 부지런한 성도들은 많이 배출했지만, 유감스럽게도 - 아니 기이하게도 - 두뇌가 명석한 성도들은 별로 배출하지 못했다. 평신도들은 아직도 신학서적 읽기를 꺼려하며, 목회자들도 평신도들의 신학서적 탐독에 종종 우려의 눈초리를 보낸다. 필자는 신학적 고민과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오는 성도들을 여태까지 거의 만나보지 못했으며, 목회자들도 거의 대동소이하다. 만약 튼실한 신학적 확신과 강력한 신학적 토대 위에 신앙을 세우지 않는다면, 이런 신앙은 머잖아 무너질 모래성이 될 것이다. 그런 탓인지는 몰라도, 지금 한국 교회는 양적으로 감소하는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교회의 진정한 위기는 양적인 위기가 아니라 질적인 위기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거품은 쉽사리 꺼지고, 쭉정이는 금방 날아가기 마련이다. 그래도 알곡과 같은 신자들은 남아서 건강한 교회를 다시 세울 수 있다. 하지만 거품과 쭉정이가 사라진 뒤에 알곡마저 별로 남아 있지 않다면, 교회의 미래는 정말로 절망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이런 위기를 이미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교회에 과연 미래가 있는가? 교회에 여전히 희망을 걸어도 좋겠는가? 교회에 대해 실망하고 떠난 사람들을 무엇으로 다시 불러들일 수 있겠는가?

만약 교회가 오직 양적인 성장에만 온통 관심을 기울이고 질적인 성숙을 무가치하게 생각한다면, 만약 날로 성숙해지는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덮어놓고 믿을 것을 강요하고, 일시적인 감정적 흥분에 호소하고 무책임한 희망을 계속 퍼뜨린다면, 교회는 점점 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로 전락할 것이다. 만약 교회가 세상의 가치관을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만약 교회가 세상의 헤게모니만을 추구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희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촛대를 다른 곳으로 옮기시지 않을 것이라고 감히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저런 걱정과 불안 속에서 교회는 일시적인 전략과 과시적 행사와 세상의 유행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뿌리를 냉철하게 되돌아보고 이로부터 다시금 새롭게 출발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아니 오직 교회만이 인류에게 줄 수 있는 진정한 선물이란 무엇인가? 교회가, 아니 오직 교회만이 인류에게 줄 수 있는 기쁜 소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도 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것은 바로 온 인류와 우주에게 미칠 희망의 기쁜 소식, 곧 하나님의 궁극적인 통치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기독교가 희망의 종교라고 아무리 힘써 강조할지라도, 만약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지(벧전 3:15) 못한다면, 교회가 존재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물론 희망은 여전히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온유와 두려움으로 대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에게 희망의 이유를 묻는 자에게 담대하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누가 우리의 말을 기꺼이 들으려고 하겠으며, 절망과 회의에 빠진 이웃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이 책은 필자가 오랫동안 강의해 온 ‘종말론 강의노트’를 보완하고 수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매우 바쁜 일과 속에서도 비교적 빨리 원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기쁘고 감사한 일은 해마다 필자가 한 권의 책을 쓰기로 공개적으로 약속한 말을 다행히도 지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본질과 운명』처럼 이 책도 주로 신학생을 위한 강의에 초점을 맞추었다. 비록 주제는 조금 무겁고 내용도 방대한 편이지만, 필자는 일관된 주제 아래 가급적 짧고 쉬운 문장을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평신도들이 읽기에도 어려움이 없다고 감히 자부해 본다. 다만 종종 나오는 무거운 주제와 복잡한 논리가 독자들을 당황케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충 믿고 쉽게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진지하고 성숙한 성도들에게는 이 책이 결코 무겁지만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부족한 필자를 도와주신 여러 분들을 기억하는 것은 필자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필자를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출판을 위해 기꺼이 후원해 주시는 서울수정교회와 필자를 격려하고 지원하는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독서의 맛을 더하기 위해 멋진 사진을 제공해 주신 한중산 작가님에게도 감사한다. 특히 부족한 남편과 가난한 아빠를 만나 고생하면서도 소망 중에 늘 기뻐하며 살아온 사랑하는 아내와 믿음직한 두 아들에게 바울의 편지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행한 일들과 사랑으로 행한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소망을 지켜 가는 모습을 보며,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살전 1:2~3)

2011년 8월 20일
부천 성주산 아래서
이 신 건

 


차 례


책을 펴내는 말 / 3

1. 종말론의 의의 14
2. 시간 이해와 역사 경험 26
3. 종말론의 역사 32
1) 구약성서의 종말론 32
(1) 초기 왕조시대 34
(2) 7세기 후반~8세기 초엽 예언자들 38
(3) 포로기 전후 40
(4) 묵시문학 41
(5) 구약성서의 종말론의 일반적 특징 49
2) 신약성서의 종말론 53
(1) 예수 53
(2) 바울 61
(3) 요한 65
3) 고대의 종말론 70
(1) 속사도 교부들과 호교론자들 70
(2) 이레네우스 71
(3) 테르툴리안 72
(4) 오리게네스 72
4) 중세의 종말론 75
(1) 아우구스티누스 75
(2) 피오레 77
5) 종교개혁자들의 종말론 80
(1) 루터 80
(2) 칼뱅 84
6) 웨슬리안의 종말론 88
(1) 웨슬리 88
(2) 초기 성결교회 90
7) 19세기의 종말론 103
(1) 칸트 103
(2) 헤겔 104
(3) 슐라이어마허 107
(4) 리츨 108
8) 현대의 종말론 111
(1) 바이스 111
(2) 슈바이처 112
(3) 다드 114
(4) 불트만 115
(5) 쿨만 116
(6) 바르트 118
(7) 틸리히 120
(8) 판넨베르크 121
(9) 몰트만 123
9) 올바른 종말론의 준거 126

4. 종말론의 주제 132
1) 파루시아 132
2) 죽은 자들의 부활 151
3) 공의로운 심판 171
4) 새 하늘과 새 땅 184
5) 개인의 종말 192
(1) 영혼불멸인가, 몸의 부활인가? 192
(2) 성도가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는가? 206
5. 나가는 말 : 종말신앙의 의미 220

부록:‘역사와 종말론’ 관련 서적 서평
1. 희망의 신학 226
2. 몰트만의 신학 234
3. 그리스도교 244
4. 하나님 나라의 모델 252
5. 내 안에 있는 하나님 256
6. 거시사의 세계 270
7. 목적이 이끄는 삶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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