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진보를 위한 발걸음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에서 종교가 인간 삶에서 해온 주요 역할을 설명, 훈계, 위로, 영감 네 가지로 정리한다. 우주와 존재 자체에 대한 설명은 과학으로 전면 대치되었고 훈계는 도덕에 관한 것으로 자연선택으로 설명하였다고 한다.

위로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대화가 가능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동료이자 비밀을 털어놓을 친구로서 역할하는 것이다. 도킨스는 신이 없어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진정 어른다운 견해는 우리 삶이 우리가 선택한 만큼 의미 있고 충만하고 경이롭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삶을 정말로 대단히 경이롭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신이 없이도 영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도킨스의 입장과는 별개로 신이 기독교에게 요구하는 가치가 있다. 기독교가 이 땅에서 추구하여야 할 가치이다.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유시민은 도봉 강연회에서 진보의 개념을 설명하였다. 하나가 이남곡 선생의 <진보를 연찬하다>에서 이야기된 진보에 대한 개념이다. 진보란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억누르는 물질적 결핍이 주는 억압, 불합리한 제도가 주는 억압, 낡은 의식에서 오는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최저로 필요한 물질조차 없으면 고통을 겪는다. 물질을 이용하여 인간을 지배하려는 가진 자에게 매여 고통을 받는다. 과거의 신분 제도, 여성참정권 차별 등은 불합리한 제도이다. 그때에 낮은 신분과 여성은 억압을 당했다. 똑같은 직장에서 똑같이 일하는데도 월급이 반밖에 안 되는 비정규직의 고통도 불합리한 제도의 산물이다. 이슬람권에서는 여자가 불의하게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는데도 가족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한다. 부르카를 쓰지 않았다고 총에 맞아 죽기도 한다. 낡은 의식으로 인한 억압이다. 유시민은 자녀가 아버지의 성만을 따라야 하는 것이나 아내가 경제력이 큰 경우에 불편해하는 남편의 모습도 낡은 의식에 의한 억압의 예로 제시한다.

이 개념에 의하면 경제 성장을 통하여 물질의 결핍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은 진보이다.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는 것 곧 구조적인 악을 최소화하는 것은 진보이다. 낡은 의식을 밝혀내고 벗어나도록 돕고 새 의식을 가지고 살도록 하는 것은 진보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예수는 그 당대의 금식 관행을 앞세워 자신에게 따지러온 무리들에게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밀밭의 이삭을 자르는 제자들에 대해 그 당대의 안식일 개념으로 비난하는 이들에게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지 않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라고 말씀하신 후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다(마가복음2:18-2:6).

예수는 그 당대의 유대인 지도자들을 강하게 질타하셨다. 그 내용 중의 하나가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는 것이었다(마태복음23:4). 불합리한 제도나 낡은 의식으로 그 당대의 유대인들을 억압하는 것에 대한 질책이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예수는 율법 중심의 시대에서 억압당하는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자 하셨다. 그분은 허물과 죄로 억압당하는 이방인들을 해방시키고자 하셨다. 새 시대를 여시고 새 틀을 짜서 억압에서 해방되도록 하시는 역사이다. 그것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곧 복음이다.

죄와 사망의 법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것의 근원적인 뿌리는 죄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른 삶, 온전한 삶과는 동떨어진 삶으로 인간을 이끌어가는 힘이 죄와 사망의 법이다. 바울 사도의 진술을 따르면 구체적인 내용은 네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로마서1:18-32). 신을 저버림, 진리를 거짓 것으로 대체함, 순리를 버리고 역리를 따름, 구체적인 여러 윤리적인 범죄들이다.

신이 없다면서 스스로는 그분을 찾지 못한다. 찾을 수도 없다. 스스로가 자신에게 신이 되거나 어떤 우상을 신으로 만들어 섬긴다. 신과 신의 뜻과는 다른 삶을 추구한다. 신의 우주 창조와 그분이 정하신 법칙을 거부한다. 스스로 신이 되어 환경을 조성하고 방법과 기술로 만물을 통제하려고 한다. 진리를 상대화시켜서 사람의 원대로 조정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순리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섬기면서 상대방과 함께 온전해지는 것이다. 역리는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라 지배하려는 것이다. 사람의 삶에 바탕으로 있는 질서가 파괴되어 고통을 겪는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에 세운 질서를 파괴하고 욕심을 채우려고 한다.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찼다. 시기와 살의와 분쟁과 사기와 적의로 가득 찼다. 불순하고 오만하며 자기 자랑에 사로잡혔다. 신의가 없고 무정하며 무자비하다.

예수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인간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다. 그에 부합하는 삶의 원리를 제시하시면서 그 당대에 몸으로 사셨다.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죄 값을 지불하셨다. 신자가 자신 안에서 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살아가도록 일하신다. 인간다운 인간으로 온전하여지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도록 도우시는 것이다. 예수가 이 땅에 사시면서 보여주신 삶의 원리를 각 시대에 구현하는 방식이다.

인간 사랑과 진보

요한 사도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는 신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씀했다(요한일서4:20). 신을 신앙함이 신과의 관계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신앙이 이 땅에서의 인간에 대한 태도와 직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신은 인간을 억압하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죄 문제를 해결하여 억압에서 해방시키고자 하셨다.

인간이 죄에서 파생한 여러 억압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물질적 결핍, 불합리한 제도, 낡은 의식으로 억압을 당하고 고통을 겪고 있다. 그 억압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인간 사랑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신앙은 인간 역사에서 진보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진보를 지향해야 한다. 신학적으로 진보이어야 진보적 삶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신학적으로 보수이면서 진보적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바른 신앙은 신학적으로 보수이면서 진보적 삶을 지향한다.

바른 신앙은 역사의 진보를 향하여 자신을 내어놓고 한 알의 밀알로서 기꺼이 죽는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삶의 가치를 알고서 현재보다 더 나은 수준으로 이끌어 올리기 위하여 헌신한다. 자유, 평등, 평화, 정의, 인권, 복지, 환경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가치이다. 그 가치의 온전한 실현을 위하여 희생하는 삶이 기독교 신앙의 정수이다. 온전한 인간 사랑이기 때문이다.

먼저 신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다. 신의 다스림을 신자 자신의 삶에서 구현하는 것이 신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다. 교회 생활만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이나 학교 등 모든 삶의 영역에서 신의 다스림을 구현하는 것이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의 모든 영역에서 신자가 그 삶으로 신의 다스림을 구현하는 것이다.

예수는 교회를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라고 하셨다. 그 정체성은 그에 맞는 삶을 요구한다. 소금으로서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고 살맛나게 하는 역할이다. 빛으로서 신의 영광을 반영하는 역할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교회의 배후에 있는 신을 인식하고 신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것이다. 현실은 어떤가?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기독교가 없어지는 것이 사회에 유익하다고 이야기되는 형편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기독교가 인간다운 삶을 위한 가치를 고양하기 위하여 움직이지 않고 기득권자에게 붙어서 기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인 것이다. 거기에다가 윤리적인 범죄에 있어서도 뒤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논리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보수는 바른 신앙에서 벗어난 것이다. 죄의 영향력으로 정체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보수는 바른 신앙과 거리가 멀다. 지금보다 더 나은 수준으로 이끄시려는 신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보수이다. 신의 다스림과 동떨어진 길을 가고 있다는 말이다. 자연히 신의 뜻이 삶의 현장에서 실현될 수가 없다.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맛을 잃어버린 소금과 다르지 않다. 이대로 가면 밖에 버려지고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될 것이다. 돌이켜야 한다.

신이 기독교에 주는 것을 바르게 이해하고 추구해야 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실에서 그분의 주님 되심을 삶으로 고백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