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한민족의 자존심 광개토대왕

2011년 8월 6일 토요일
통화 – 집안 – 단동

오늘도 역시 새벽 일찍 통화 호텔에서 일어나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타고 집안시로 향합니다. 매일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밤 12시가 넘어 들어와 새벽에 다시 나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더니 여행은 고행의 연속입니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20대 후반에 대수술을 받아 장기를 하나 손실하고, 한 창 힘을 써야할 30대 초반에 힘을 못 쓰고 방에 누워 지내던 날들, 그리고 40대에도 여전히 할머니 할아버지들 뒤에 줄 서 있다가 물리치료를 받던 내가 모든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서도 이렇게 열심히 해외를 다니며 여행도 하고 봉사도 할 수 있으니 살아 있다는 자체가 감격이고 감사입니다.

우리가 밤마다 와서 이틀 동안 잠만 자고 가는 통화시는 초기 독립운동의 본거지였습니다. 통화 북쪽의 유하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이시여, 지청천, 오광선, 이범석 등이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서로군정서를 지휘하였습니다. 일본 헌병의 눈을 피해 독립군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통화의 모습은 밤에만 보아서 그런지 네온사인으로 휘황찬란하고 상당히 깨끗하고 발전한 도시처럼 보입니다. 이곳의 호텔들은 주로 백두산 관광객을 위하여 영업을 하기 때문에 겨울철이 되면 호텔을 비우고 자기 고향이나 다른 곳에서 보낸답니다.

통화에서 집안으로 가는 도중에 오녀산 밑을 지나게 되는 데 숲이 울창하고 계곡이 깊어 여름 더위를 피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오녀산 근처에는 채석장이 곳곳에 눈에 띄는데, 옛날 고구려 시절에도 이곳은 채석장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집안의 광개토왕비와 태왕릉, 장군총 등 수많은 적석총(돌무지무덤)의 돌은 엄청나게 큰데 바로 이곳에서 돌을 채취하여 겨울철에 얼음이 덮인 통구하라는 강을 이용하여 운반했다고 합니다.

약 3시간 걸려 집안시에 도착하였습니다. 집안시는 고구려가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유리왕부터 장수왕까지 425년간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과 환도산성이 있던 곳으로, 고구려가 성장하기까지의 많은 애환과 영광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곳입니다. 동천왕 때는 위나라 관구검에게 성을 빼앗기기도 하는 고통을 당하기도 했고, 고국원왕 때는 선왕의 무덤이 파헤쳐지고 대비가 적에게 납치당하는 수모를 안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광개토대왕 때는 정복군주로서 옛날 고조선의 영토를 거의 다 회복하는 영화를 맛보기도 한 말하자면 고구려와 고락을 함께한 지역입니다.

이곳에는 약 1만 2천 기의 고구려 무덤이 남아 있는데, 이로 보아 국내성이 얼마나 번성하던 곳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댐 공사로 인해 대부분의 무덤이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유물로는 우리 고대사연구의 가장 핵심이 되는 광개토대왕비가 있고, 장수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장군총, 광개토대왕의 무덤으로 인정되는 태왕릉, 수렵도로 잘 알려진 무용총, 각저총, 사신총 등의 고분과 우리 역사해석에 중요한 단서가 되는 모두루총과 비석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중국이 이 지역의 고구려 문화유산을 유네스코에 등록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 프로젝트 추진 일환으로 제일 먼저 한 일이 만주지역의 뿌리가 되는 고구려의 중국화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구려 문화 유적의 핵심 지역인 집안시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와 발굴을 시작하여, 집안시 지역을 유네스코에 고구려 문화유산으로 등록했습니다. 당시 북한에서도 평양성 주변을 고구려 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경쟁하였지만, 유네스코는 중국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이제 세계인들은 고구려 문화의 중심지로 당연히 중국의 집안시를 떠올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고구려의 정통성 또한 중국에 있게 되었습니다.

▲ 광개토대왕비 외부 모습

광개토대왕비


집안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광개토대왕비를 보러 갔습니다. 각자 팀을 이루어 온 많은 관광객들이 팀 별로 가이더에 의해 역사해설을 듣느라고 시끄럽습니다. 전에는 한국인들이 중국인들보다 더 많이 왔었다는 데, 중국의 동북공정 이후론 한국인들보다 중국인들이 더 관심을 갖고 많이 온답니다. 칼과 총으로 영토싸움을 하는 대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슬며시 역사를 왜곡하여 황해도까지 만리장성을 그려놓고 그리고 고구려 통치지역을 자기네 영역이었다고 말하며 은근히 중원고구려비가 있는 충주까지도 넘보고 있는 중국인들의 심보를 알 길이 없습니다.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하며 서서히 다가오고,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역사를 바꾸어 말하며 말없이 한반도를 넘보고 있는 때에 우리 정부와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어떤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지요? 정부는 물론 기술 인재를 양성하여 지속적으로 국가 산업발전을 이루어야겠지만, 우수한 인문학자들도 많이 발굴하던가 배출하여 소리 없는 국가 간 영토전쟁에 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벌써부터 그런 분야에 손을 쓰고 있는데, 후발대의 입장에 있는 우리나라는 아직 경제력 증진에만 매여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화시대에 인문학적 소양을 충분히 갖춘 국가지도자가 필요한 때입니다.

집안성 서북부에 위치한 광개토대왕비는 414년 광개토왕의 아들 장수왕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높이 6.93m, 무게 37톤이나 되는 화강암으로 만든 거대한 비석입니다. 총 44행 1775자의 글자가 4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왕의 계보와 약력, 광개토대왕의 업적, 그리고 수묘인(무덤을 지키는 사람들)에 관해 적혀 있습니다. 이 비는 원래 비바람을 맞으며 천오백 년 이상 버텨왔는데, 지금은 지붕을 얹고 유리로 사방을 씌워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지붕의 형태를 고구려의 양식이 아닌 청나라 양식으로 한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 광개토대왕비 내부 모습

광개토대왕 비문 내용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광개토대왕의 업적인데, 이에 의하면 광개토대왕은 남쪽으로 백제와 신라를 복속시켰을 뿐 아니라 가야지방과 왜까지 정복했습니다. 북으로는 거란과 숙신, 후연 등의 이민족을 공략하였고 오랫동안 복종하지 않았던 동부여도 복속시켜 고구려에 편입시키는 등, 우리 역사에서 가장 정복군주다운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학자들 사이에는 일본이 비문의 일부 내용을 왜곡시키고 날조했다며 문제를 삼고 있습니다. 즉, 일본이 비문의 일부 내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일본의 임나정복설을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왜 중국과 일본이 이렇게 역사를 왜곡하며 야단들일까요? 사회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미래세계는 지리적 영토의 개념보다 문화적 영토의 개념이 더 중요시하는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의 강대국들은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먼저 깨닫고, 문화적 영토 확장 작업을 이미 시작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우리는 가난해서 뼈 빠지게 일하며 동전 모으기에 바쁠 때 그들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문화적 영토 확장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허물어져 가는 광개토대왕릉

광개토대왕릉


광개토대왕비를 보고 서남쪽으로 약 500m 가니 태왕릉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임금 중에서 가장 영웅적인 기상을 보인 광개토대왕의 무덤이라 알려진 이곳은, 지금은 무너져 내려 그 원형을 짐작할 길이 없고 그저 돌무덤 쌓아 논 것 같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는데, 무덤 주변에서 발견된 기와 파편에 ‘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태왕릉이 산처럼 견고하고 튼튼하기를 원한다.)’ 라는 글귀가 발견되어 이 무덤을 광개토대왕의 무덤으로 추정합니다.

▲ 광개토대왕의 시신을 안치하였던 곳

한 변의 길이가 67m, 높이 30m의 돌무지무덤인 이 무덤의 꼭대기에는 기와로 된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지만, 원형이 파괴되어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꼭대기 부분에 시신을 놓는 관대가 있는데, 지금은 이 관대까지 계단을 만들어 관광객들이 쉽게 오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태왕의 시신이 놓였던 곳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 옛날이지만 시신을 안치할 석실을 단정하게 꾸며 논 모습이 과연 태왕릉의 묘실다웠습니다. 그러나 허물어진 외부 능의 모습은 밭 한 가운데 돌무더기 쌓아 놓은 것처럼 초라하여 안타까웠습니다.

▲ 장수왕릉 앞에서

장군총

다시 온 길을 되돌아 광개토대왕비를 지나 주차장에서 버스를 타고 약 5분 거리에 있는 장군총에 갔습니다. 장군총은 돌로 쌓아 올려 만든 무덤(돌무지무덤)인데, 이 양식은 초기 백제의 수도였던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장군총은 장수왕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 변의 길이가 34m, 높이 13m의 크기로, 피라미드형의 화강암으로 7층을 쌓아 올린 거대한 무덤입니다. 1층은 4줄, 2층부터는 3줄씩 쌓아 올렸습니다. 원래는 무덤 위에 기와로 지붕을 씌웠는데 지금은 흔적이 없고 기와 조각만 널려 있습니다. 많이 파손되었지만 적석총 중 그나마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무덤입니다.

▲ 장수왕릉이 무너지지 않도록 바쳐 논 암석

동양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장군총은 몇 백 톤 되어 보일 듯한 거대한 돌들을 무너지지 않게 홈을 파서 서로 맞물려 쌓은 그 정교함에도 놀라지만, 이렇게 큰 돌을 어디서 어떻게 구해 쌓아올렸을까를 생각하면 더욱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꼭대기 층에는 관대가 둘 놓여 있는데, 왕과 왕비의 시신을 놓은 곳입니다. 물론 지금은 도굴되어 남아 있는 것이 없지만, 그 규모와 정교함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 관심을 끄는 것은 이곳의 무덤들은 시신의 머리가 항상 동북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위치를 추정해보면 백두산과 일치하는데, 이로 보아 고구려 사람들은 태백산(백두산)에 강림했다는 한인의 아들 한웅이 세운 단군의 후손임을 기억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집안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 보는 곳입니다. 점심을 먹고 압록강 표지석이 있는 강가에 가서 강 건너 북한을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으로 가까이 바라보는 북한 땅이라 신기해서 몇 번이나 바라보고 사진도 촬영하였습니다. 북한지역을 가리고 우뚝 선 산은 모두 개간하여 옥수수 밭을 만들어 놔서 옥수수를 다 베고 나면 겨울엔 벌건 산만 보인답니다. 나무를 가꾸지 않는 이유는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옥수수를 재배하기 위한 면도 있지만 더 중요한 점은 북한 주민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함이랍니다. 옥수수 밭 뒤로 집들이 제법 크게 보여 주민들 집이냐고 림에게 물어보니 전시용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지어 놓은 집이랍니다. 우리 대원중에 발 빠른 분은 아이를 데리고 벌써 압록강 물속에 들어가 손을 흔듭니다. 잠시나마 고구려의 왕과 군사들이 더위를 식히던 역사의 물줄기에 몸을 다그는 것도 좋은 체험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코스 단동으로 향합니다. 집안에서 단동까지의 농촌 풍경은 매우 깨끗하여 선진농업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잘 정리된 가로수와 포장도로 그리고 멀고 넓게 펼쳐진 기계로 경작하는 옥수수 농장 등은 개혁개방정책을 통하여 농민들까지 잘 살리려고 노력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공동체적 마인드를 엿보게 됩니다. 약 4시간 정도 걸려 단동시 가기 전에 있는 호산장성을 방문하였습니다.

▲ 잘 정비된 농촌의 거리 모습

호산장성

중국 수,당의 침략에 대비해 고구려가 세운 천리장성의 일부 박작성으로 추정되는 성곽으로 단동시내에서 압록강변을 따라 북쪽으로 31km 정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0년대에 중국에서 중국성 형태의 성곽으로 새로 축조한 후 지금은 만리장성의 동단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곽의 축조 지형으로 단동 쪽 서쪽방향을 방어하기 위해 호산의 서쪽 지형으로 축성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성곽의 모양은 동녘을 방어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다만 성안에 고구려의 옛 우물 유적지가 남아있는 것은 중국 측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중국 측은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계적 유산인 중국의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다. 북한과 중국을 접경으로 두고 있으며 단동시에서 북쪽으로 약 31km 떨어진 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최고봉은 146m이다. 약 500여 년 전 명성화 5년(1469)에 세워 졌으며, 명대 만리장성의 최동단 기점으로 확인 되었다. 한 면은 산으로 삼면은 강으로 둘러 싸여 있고 산 형세가 마치 누워있는 호랑이 모습과 같다 하여 호산장성(虎山長城)이라 불리어 진다.”


약간 빗방울이 떨어지지만 등산 전문가에 버금가는 우리 팀원들은 어린이를 포함하여 한명도 빠짐없이 우비를 걸치고 약 30분에 걸려 정상에 올라 망루에서 압록강을 내려다봅니다. 유유히 흐르는 압록강 가운데에 북한 측 섬(검동도?)이 내려다보이고, 강 건너편에 신의주가 아련히 바라다 보입니다.

▲ 세갈래로 갈라져 흘러 온 압록강

여러 연행록을 종합해보면 압록강은 크게 세 줄기로 나뉩니다. 의주 쪽에서 붙어 흐르는 물줄기가 압록강 본류입니다. 그 다음에 있는 좀 작은 물줄기는 소서강(小西江) 또는 중강(中江)이라 불렀습니다. 소서(小西)는 압록강 서쪽에 있는 작은 물줄기라는 의미에서, 중(中)은 압록강 본류와 중국 쪽에 붙어 흐르는 별도의 물줄기 사에게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듯합니다. 두 물줄기 사이에는 커다란 섬이 놓여 있습니다. 청말의 지도들에서는 이 섬을 ‘중강대(中江臺)라 명기하고 있으니, 여기가 바로 중강개시(中江開市 : 조선시대에 의주의 중강에서 행해지던 조청 간의 무역)가 열리던 곳입니다. 한편 《신국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이 섬을 검동도(黔同島)라 하고, “섬이 양 물가 사이에 있으며, 삼씨량(三氏梁)이 있습니다. 강을 건너는 사람은 반드시 이 섬의 북쪽을 거치는데, 연행사가 입조하는 길이기도 하다”는 설명을 달았습니다. 멀리 의주 땅에는 지형상 나루터였다고 추정되는 개활지가 있는데, 여기서 배를 티고 건너면 바로 검동도입니다.

중강을 건너면 하나 물줄기가 나오는데 이는 분수령(分水嶺)에서 발원하는 것입니다. 애하(靉河) 또는 애랄하(愛剌河) 라고 하는데, ‘애하’는 만주어로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달리 삼강(三江) 또는 진강(鎭江)이라고도 했습니다. 삼강이란 조선에서 건너면 세 번째 있는 물줄기라는 의미에서, 진강은 구련성의 옛 이름이 강을 진무(鎭撫)한다는 뜻의 진강부(鎭江府)였으니 거기서 연원한 것입니다. 이 물도 얼마간 흘러 위화도를 지나 압록강으로 합류합니다. 압록강을 대총강(大總江)이라 했던 이유입니다. 이 물은 건너 20리쯤 가면 연행사들의 첫 숙영지인 구련성이 나온다고 했으니, 마지막 국경선이었던 셈입니다. 이 물을 건너면 남의 땅에 들어온 실감이 났고 반대로 돌아올 때는 고국 땅의 감촉을 맛보았습니다. 아래 신정(申晸)의 시는 떠날 때, 허균의 시는 돌아올 때의 감회를 노래한 것입니다.

저물녘 삼강을 건너노라니
먼 산 너머로 해는 기울어가네
가고 가고 또 가서 쉬지 않으며
저 멀리 구련성을 가리키누나

-신정,<저물녘 진강을 건너며>-

강 건너 아스라한 통군정 바라보니
정든 님 본 것처럼 문득 반가웁네
나라 일 마치고 만릿길 돌아오니
양옆의 살쩍에는 흰 빛만 더 생겼소

-허균,<진강에서 통근정을 바라보면서>-


호산에서 마주 보이는 강 건너 산은 소나무 숲으로 우거졌는데, 맑은 날 정상을 가만 응시하면 소나무 사이로 누정의 처마 선이 어렴풋이 보인답니다. 통군정입니다. 통군정은, 군사를 통솔하는 곳이라는 이름이 말하듯 장대(將臺)의 기능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정확히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기록으로 보아 고려 중기로 거슬러 오릅니다. 국경에서 적정을 살피며 외침을 1차 저지하는 상징적인 누정으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한중 관계가 안정되었을 때는 군사적 긴장이 풀어져, 연행사들이 의주에 머물면서 자주 찾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참고 : 김태준 외, 문명의 연행길을 가다. 푸른역사,2005.-


검동도로 여겨지는 섬에는 옛날에 많았다던 갈대밭을 일구어 옥수서 밭을 만들어 놓았고, 밭 한가운데 단정하게 줄지어 지어 논 농가주택들이 보입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비록 농민들이지만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산답니다. 접경지역이기 때문에 탈북 할 것을 염려하여 신분이 뚜렷한 사람들만 들어와 살게 하는가 봅니다. 우리 일행은 북한을 향하여 다함께 손을 높이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 호산장성에 올라

호산장성에서 내려와 보트투어 하는 곳에 가서 모터보트 두 대에 나누어 타고 북한 접경을 보트투어 하였습니다. 낮에는 북한 주민들이 물가에 나와 보트투어 하는 여행객들이 던져주는 선물을 받으려고 나온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트를 탓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둑어둑하여 북한당국에서 민간인들 접근을 금지시켰나 봅니다. 신의주지역 옛날 통군정이 있던 산 아래 군인 초소가 들어섰습니다. 군부대 초소를 가까이 보트가 접근합니다. 북한 군인과 우리가 서로 마주 봅니다. 약간 긴장감이 감돕니다. 서로 아무 말도 없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처다 보는 사이 보트가 지나갑니다. 산속 방카에서 저녁 식사를 마쳤는지 한가히 쉬고 있는 군인들이 간혹 보입니다. 여군들이 근무하는 초소 옆으로 보트가 다가갑니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여군들이 가까이 다가가자 몸을 피합니다. 북한은 의무적인 군복무 기간이 남자 10년 여자 8년입니다. 여자인 경우 초등학교 입학하여 10년간의 학교수업을 마치면 17세 정도 되는 데, 그 때 바로 군에 입대하여 8년을 의무적으로 복무하게 됩니다. 아직 소녀티도 벗지 않은 여군이 장총을 메고 담 너머에서 우리 쪽을 바라보며 보초를 서다가 우리를 보고 머리를 낮춥니다. 호산장성에서 바라보았던 압록강 가운에 있는 섬(검동도?)으로 사람을 태워 나르는 조그만 여객선이 떠 있습니다. 여객선은 지프차와 자전거 그리고 남녀 어린아이 포함하여 열대여섯 명의 사람을 태우고 섬으로 다가갑니다. 이들은 제법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라는 데 그들이 입은 옷은 남루하여 마치 공장에서 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나온 것 같습니다. 요번에도 그들과 우린 서로 경계하며 웃음도 짓지 못하고 어정쩡한 모습으로 바라봅니다. 우리를 태운 보트가 서서히 그들에게서 멀어집니다.

▲ 호산장성 아래 압록강 북한 접경지역

긴장감속에 보트투어를 마치고 최종목적지인 단동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약 1간 걸려 압록강 철교에 도착하니 벌써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중국 쪽엔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데 반대편 압록강 건너 신의주는 캄캄하여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습니다. 국가 지도자 한 사람의 잘못이 전 국민을 캄캄한 감옥 같은 세상으로 몰아넣었고, 한 사람의 성공적인 개혁개방정책이 밝은 빛에서 살게 하였습니다.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기 전까지만 해도 단동은 변방으로서 북한의 신의주처럼 낙후된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국가 지도자는 참으로 중요한 자리입니다. 국민은 지도자를 잘 세워야 편안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경제체제 개혁 중국의 경제체제 개혁은 현대화 추진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장애요인을 극복하여 사회주의를 완성하려는 필요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즉, 생산력발전에 방해가 되는 각종 요인들을 제거하여 생산력을 높여 이를 통하여 사회주의의 완성--공산주의를 실현하려는 배경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크게 볼 때, 경제체제개혁은 내용별 혹은 시기별로 3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1단계(1978-1984)는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제2단계 (1984-1987)는 도시부문의 경제개혁을 중점으로 진행되었으며 이 단계에서는 기업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가격, 세제, 금융개혁 및 대외무역 활성화 등이 추진되었습니다. 제3단계(1987-)는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대외개방정책이 적극적으로 실시되었습니다.

1.농촌 경제체제의 개혁

중국의 개혁은 먼저 농촌에서 시작되었으며 농촌개혁의 내용은 바로 종전의 인민공사와 같은 방법을 지양하고 책임제를 실시하여 농민의 적극성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농촌에서부터 개혁을 시작해야 했었는가? 그것은 중국인구의 80%는 농촌에 있으므로 만약 그들의 생활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사회는 안정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약 농촌이 계속 빈곤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되면 공업의 발전이라든지 상업 혹은 기타 경제활동들도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농촌개혁으로서 농촌개혁은 농민으로 하여금 자주권과 실질적인 혜택을 얻게 하였습니다. 개혁을 통한 생산력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민들의 창조적 활력을 해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농촌개혁은 농촌의 산업구조를 다시 조정하여 이전의 식량위주의 단일구조에서 농업, 임업, 목축업, 어업 그리고 부업 등 다양한 경영구조로 발전시켰습니다. 셋째, 농촌개혁은 또 향진기업의 발전을 초래하였습니다.

▲ 잘 경작된 자동화 옥수수 농장

2. 도시경제체제 개혁

원래 개혁, 개방의 기본전략은 농촌에서 출발하여 도시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정부는 농촌개혁의 중점을 도시에 두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도시부문의 개혁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생산의 기본 단위인 기업운영 메커니즘의 개혁, 즉 도시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국가소유기업에 대한 개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도시개혁의 중심인 기업개혁의 목적은 기업의 활력과 생산성의 제고입니다.


3. 대외개방

모택동집권 하에 중국은 자급자족적 경제를 추구한 나머지 대외개방을 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중국은 바로 이러한 폐쇄 정책으로 인하여 낙후상태를 면할 수 없었다고 여기면서 등소평은 "중국이 오랫동안 정체와 낙후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주요 원인은 폐쇄성에 있다. 문호를 닫은 상태로 건설을 추진한다는 것은 성공할 수 없는 동시에 중국의 발전이 국제 관계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은 경험을 통해 입증되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등소평의 이 말은 개혁이 바로 성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관건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내적 경제개발을 촉진하기 위해서 서구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중국은 개혁정책과 더불어 대외개방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더욱 더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체제 개혁

중국의 개혁, 개방정책 혹은 현대화의 핵심은 하나의 중심 즉 경제발전입니다. 경제발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체제개혁은 물론 정치체제개혁도 불가피합니다. 더욱 정확히 말해서 정치체제개혁 없이는 경제체제개혁도 성공을 거둘 수 없는 것입니다. 정치체제 개혁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 당 · 정의 분리입니다.

당과 정부직능이 분리되지 않은 것은 혁명전쟁 때 실시한 당의 일원화체제에 의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권력이 과도하게 개인에게 집중되고 당과 국가권력기구간의 한계와 직책이 불분명하고 당이 정부를 대신하는 상황이 야기됨으로써 국가기능성이 위축되었습니다. 당정의 분리는 정치체제개혁이 성공하느냐 못하느냐의 관건입니다. 당의 영도방식과 활동방식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의 조직형식과 공작기구를 조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당,정 분리의 효과를 달성시킬 수 있습니다.

2. 둘째 : 권력하방입니다.

정치체제의 또 하나의 중요한 임무는 과도로 집중된 권력을 하부단위로 이양하는 것입니다. 권력하방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를 조정하여 지방의 자주권을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등소평의 주장에 의하면 정치체제개혁의 주요 내용의 하나는 권력하방으로 중앙과 지방관계를 해결하는 것이며 동시에 지방의 각급 기관도 더욱 하부기관으로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앙이 지방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권력을 이양하거나 지방이 적극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권력하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음으로 권력을 기층조직, 특히 기업에 이양해주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자주권을 누려 적극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입니다.

3. 셋째 : 기구 개혁입니다.

기구와 체제는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으므로 기구개혁은 체제개혁과 표리관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당,정분리가 제대로 성공하는 가의 여부는 바로 기구개혁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등소평은 '기구개혁을 체제에 대한 혁명'이라고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즉 기구개혁은 기구들의 통폐합과 인원들의 감축으로 업무의 효율을 제고하려는 것이므로 당,정분리 심지어는 정치체제개혁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넷째 : 사회주의 민주정치제도의 건립입니다.

문화대혁명은 민주와 법제를 완전히 파괴하였습니다. 그래서 등소평은 집권이후 민주제도의 회복에 특히 주력하였습니다. 민주정치의 확립은 한편으로는 인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적극성을 유발시켜 경제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이룩하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5. 다섯째 : 사회주의 법제건설입니다.

건국초기 중국은 비록 완비되지는 않았지만 법률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치가 잘 실행되지 않고 인치가 실행되었습니다. 등소평은 인민들이 국가권력을 관리하고 그것을 제도와 법률의 형식으로 체계화, 규범화, 정형화하여 안정과 권위를 획득함으로써 정치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민주법제화라고 칭하였습니다. 요컨대, 사회주의민주는 사회주의법제의 내용이고 기초인 동시에 또 그것의 전제이며 사회주의 법제의 완비는 사회주의민주의 발전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즉 사회주의 민주와 법제는 하나의 변증법적 통일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간단하게 중국의 정치, 경제체제 개혁에 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위의 분석에서 볼 때, 중국정치체제개혁은 주로 경제발전에 부응하기 위한 행정개혁의 차원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에 따른 문제점과 전망

중국은 중국적 사회주의와 현대화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혁, 개방정책을 물러 설 수 없는 마지막 선택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국의 개혁, 개방정책은 10여 년 동안 정치,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여러 현상들에서 볼 수 있듯이 높은 인플레이션, 관료들의 부정부패, 농민소득의 저하, 소득분배의 불공정,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갈등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중국이 처한 문제점으로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중국경제가 중대한 부진과 경제정책의 변화로 인한 계층 간의 심대한 소득격차가 발생한 것이다.

둘째, 개혁, 개방정책에 대한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정책노선의 대립입니다.

중국에서는 항상 주요 정책의 실패는 권력투쟁이라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이는 또한 정책의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정책노선이 자주 변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간 중국은 경제개혁의 둔화와 정치개혁의 미진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셋째, 중국이 현대화 추진에 있어서 야기된 사상과 이념의 갈등입니다.

중국이 처한 현실적 모순은 과거에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라고 비난했었던 바로 그 자본주의 사상들을 이제는 고취, 선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 땅에 '사회주의 잡초가 자라는 한이 있어도 자본주의의 싹을 키울 수는 없다'고 저주하고 맹세했지만 결국은 국민경제를 붕괴 직전에까지 몰고 간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러한 개혁, 개방이라는 정책에 따라 지난 10여 년 동안 현대화라는 목표에 대하여 경제발전의 표면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성장의 배후에는 심각한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황금만능주의의 팽배, 소득의 불균형에 대한 계층 간의 불만, 사회주의 평등사상에 대한 회의 그리고 당과 관료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부정부패의 문제는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심각한 사회적 불만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많은 문제점을 야기한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은 계속될 것인가? 너무도 성급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관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혁개방이 시작되어 이미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며 또한 모든 국민이 평가할 수 있을 만큼의 성과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진로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제 중국에는 제국주의 침략자도 없으며 인민을 착취하는 지주나 자본가도 없습니다. 투쟁의 대상은 이미 제국주의자나 착취계급은 아닌 것입니다. 공산주의라는 이상적 사회의 건설에는 100년이 넘는 사회주의가 필요하다고 선언한 중국 공산당은 이제 막 사회주의의 초급단계를 시작한데 불과한 것이며 사회주의 초급단계에서의 임무는 적대계급에 대한 투쟁이 아닌 사회주의현대화의 달성 즉 경제발전의 목표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경제발전의 목표실현은 곧 공산당 일당 통치를 보증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참고 : 김정계, 정차근 <중국정치론>, 1995년.-


우리 일행은 압록강변에 서서 전등불이 없어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는 북한 땅을 한 참 바라보다 가까이 평양고려식당이 있어 냉면 한 그릇씩 시켜 먹고 잠자리를 찾아 호텔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