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람이 어찌 인육(人肉)을 먹는단 말인가!

2011년 8월 3일 수요일 료녕성 대련시

대인훼리 일등실 112호
저녁식사 후 예배
새벽 1시 30분 - 컵라면 파티, 이런저런 이야기 밤샘
새벽 5시 - 112호실에 모여 새벽예배
아침 6시 - 선상 아침식사
오전 9시 - 대련항 도착
10시 – 저녁 7시, 대련시내


우리를 태운 대인훼리호는 16시간의 긴 밤 항해를 마치고 무사히 대련항에 정박하였습니다. 지난 밤 선상에서 있었던 일들은 영화의 한 장면에 출연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우리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실, 차창으로 바라다 보이는 잔잔히 넘실대는 파도, 침대에 누워 휴식하는 이, 샤워브스에서 샤워로 몸을 푸는 이, 조용히 책을 보는 이, 한 밤중에 시커먼 바다를 바라보며 테이블에 마주 앉아 컵라면 먹던 일 등 등. 약 600여명의 승객이 탑승하였지만, 그 중에 우리들끼리 사용할 수 있는 특별공간이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혼자 다니다 모처럼 팀을 이루어 함께 가며 즐거운 교제를 이루니 여행의 또 다른 맛을 느끼게 됩니다.

대련항으로 우리를 픽업하러 나온 중국 현지 가이더는 생각지도 못한 북한에서 온 아가씨입니다. 북한에서 온 가이더라는 안내양의 인사말은 단숨에 우리 모두의 호기심을 발동시켰습니다. 우리 각자의 가슴속에 깊이 숨어있던 북한 동포에 대한 긍휼과 자비의 잠재성은 모두 가동되어 활발하게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한의 민족이고 한이 많은 만큼 정도 많은가 봅니다.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의 관심과 시선이 북한 아가씨에게 쏠렸습니다. 전에 한 번 우연히 교회에 집사와 함께 온 탈북한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지만 말한 마디 건네 보지 못하고 그냥 헤어져 아쉬웠었는데 금번엔 모든 일정을 북한 동포 가이더와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야릇한 감정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외계에서 온 사람을 보는 것처럼 신기한 듯 안내 마이크를 들고 있는 아가씨를 바라보며 이런 저런 질문 공세를 퍼부었습니다. 점심시간 전까지 그저 시간이나 때울 겸 시내 관광으로 되어있던 계획은 별 관심 없고 북한 아가씨와 대화하는 것이 더 큰 관심이었습니다. 한국인 장로님이 운영하는 단동의 여행사 측에서도 아마 한국 사람들의 이런 심정을 간파하고 북한 아가씨를 가이더로 배정했는가 봅니다. 23세라고 밝힌 가이더는 실제로 보기엔 18세 정도로 소녀티가 나고 연약해 보입니다. 성장기에 영양공급이 제대로 안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 보입니다. 자기 나름대로는 잘 차려 입은 옷이겠지만 옷차림새도 아주 촌티가 납니다. 성해광장을 가기 위하여 해변 도로를 달리며 우린 계속 중국에 관한 질문은 하지 않고 북한에 관한 질문만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질문에 그녀가 답한 것들을 정리해 봅니다. 물론 가명이겠지만 가이더는 그녀의 이름을 림으로 소개하였습니다.

림이 중국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외삼촌이 당의 고위간부직에 있기 때문에 유학 간다는 구실로 오게 되었고, 6개월에 한 번씩 비자 문제로 북한을 다녀와야 한답니다. 림은 3년 전에 중국에 처음 오게 되었는데, 처음 비자문제로 북한에 돌아갔을 때 중국에서 좋았던 일들을 친구나 오빠 그리고 아빠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었으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엄마한테만 살짝 말하였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엄마는 깜짝 놀라고 의아해하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입 조심을 시켰답니다. 만일 당국에서 알면 조사가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림은 북한에서는 전혀 볼 수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환경인 중국에서 살아본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만 끙끙 앓다가 다시 중국에 돌아오곤 하였답니다. 북한엔 림을 사랑해 주고 귀여워 해주는 부모와 오빠가 있지만, 고향에 가면 잠시 머무는 동안에도 다시 중국에 오고 싶어 죽을 것 같았답니다. 차츰 문명사회에 길들여지면서 북한이 싫어졌던 것입니다.

림이 중국에 와서 제일 놀란 일은 첫째, 먹을 것이 많은 것이었습니다. 북한에는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프면 허리를 졸라매던가, 가죽을 끓여 먹는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 동네의 어린 아이를 몰래 데리고 가서 잡아먹는 경우도 있답니다. 힘없고 연약하여 보호해야 할 아이를 잡아먹다니! 사람이 어찌 인육을 먹을 수 있단 말입니까! 세상에 이런 식인종이 어디 있습니까. 식인종도 자기 종족은 잡아먹지 않는다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요! 림은 입에 담기도 힘든 그런 망측한 말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말하는지 우리 일행은 너무도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듣기만 하였습니다. 얼마나 굶주리고 배고팠으면 사람을 잡아먹을 생각을 했을까요. 정말 소름이 끼치고 믿어지지 않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설마 그럴 리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사실이 그렇다면 어쩌면 림도 알게 혹은 모르게 인육(人肉)을 한 점 얻어먹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차마 물어볼 수 없어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날 북한에 갔던 림이 중국에서 사 신고 간 새 신발을 빨아 널려고 하다가 옆을 잠시 돌아보는 사이에 한 아주머니가 신발을 들고 달아났답니다. 그는 옆 동네 사는 사람이고 안면이 있지만 증거가 없어 달라고 못한답니다. 벌건 대낮에 자기물건을 빼앗기고도 찾지 못하게 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또한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공부하기 싫으면 공부하지 않고 대신 선생님에게 원주필(연필?) 하나 주면 선생님은 그냥 눈감아 준답니다. 선생님은 그 연필을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팔아먹는답니다. 아마 돈이 궁하여 그런 일을 벌이는가 봅니다. 선생은 월급으로 보름에 한 번씩 강냉이나 입쌀을 조금씩 배급받는데 그것으로 살기가 어려워 아이들에게서 받은 학용품을 팔아 용돈을 마련하는가 봅니다. 담임선생은 아이들이 성적이 올라가건 떨어지건 상관을 하지 않는답니다. 숙제를 안 해도 학교에서 야단을 치지 않는답니다. 학생들 역시 공부해도 별 신통한 일이 없으므로 공부를 하지 않는답니다.

봄철이 되어 모내기 할 때면 학교에서는 공부를 가르치지 않고 초등학생부터 모두 논에 데리고 나가 모내기를 시킨답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하루 종일 밥도 안주고 일만 시킨답니다. 그 이야기를 하다가 림은 우리와 함께 간 초등학교 4학년 광이의 통통한 몸매를 보고 부러워하면서 마치 동화책에서 본 왕자의 모습 같답니다. 북한 아이들은 그만한 나이면 산에 가서 칡뿌리를 캔답니다. 배고프면 옥수수 대 씹어 빨아먹기를 하던가, 재수 좋으면 빠깡지(누룽지)를 먹는 경우도 있답니다. 물론 누룽지는 한국 같은 쌀 누룽지가 아니고 옥수수밥이나 잡곡밥 남은 것으로 만든 것으로 한국 사람은 먹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방과 후 어린이들은 놀 것이 없어 진흙장난을 하든지 뜀줄(고무줄) 놀이를 한답니다. 이런 이야기는 누구나 많이 들어 본 적이 있지만 요즈음은 좀 나아졌겠지 하였는데 오히려 더 악한 상황인가 봅니다.

두 번째로 놀란 일은 희한한 옷이 많은 것입니다. 북한에는 짧은 치마나 반바지를 입을 수 없고 색깔 있는 옷은 입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들어갈 때는 중국에서 입던 옷들을 벗고 북한에서 입던 단순한 색, 검정색이나 흰색으로 된 셔츠나 긴 바지 옷만 입고 간답니다. 우리 팀 중 권사님들이 입은 아름다운 옷을 보고 날라리 옷차림이라고 합니다. 북한에선 그런 날라리 옷을 전혀 입을 수 없답니다.

세 번째로 놀란 일은 집이 많은 것입니다. 높은 고층빌딩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밤에는 휘황찬란한 조명등을 켜는 것은 그녀에게 정말 놀랍고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북한의 시골에는 전등불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집도 없어 땅굴을 파고 굴속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연료가 없으니 동물처럼 땅굴에 들어가 사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탈을 썼을 뿐, 배고프면 동족도 잡아먹는 동물만도 못한 짓을 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하루 목숨만을 연명하며 살고 있답니다. 물론 평양 같은 대도시는 그렇지 않겠지만 가난한 시골마을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이상의 이야기는 그녀가 조리 있게 정리하여 한 말이 아니고 이것저것 이야기 하다 한 말들을 정리해 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