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천항 갈매기


2011년 8월 2일 화요일
인천항 - 중국 대련항
오후 1시 인천항 제1국제 여객선 터미널 도착
2시 : 1층에서 티케팅 및 수화물 탁송
3시 : 3층에서 체크인
4시 : 탑승시작
6시 : 선상 저녁식사


지난겨울, 필리핀 민도로 섬 깔라판으로 향하는 바탕가스 항구에는 한 마리의 갈매기도 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 보트피플의 텃세로 갈매기들이 터전을 잃었는가 봅니다. 보트피플이 갈매기 떼들을 대신하여 여행객들이 물에 던져 주는 동전을 재빠르게 물속으로 다이빙하여 건져내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탄 대련행 대인훼리 갑판 위엔 보트피플이 없는 대신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달려듭니다. 여행객들이 던져 주는 과자가 바닷물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먹으려고 공중에서 가진 애를 쓰며 달려듭니다.

보트피플이나 갈매기나 모두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먼저 동전을 줍던가, 과자를 가로챈 자만이 생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보트피플은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아 그들과 함께 힘을 합쳐 동전 줍기 다이빙을 계속합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갈매기들도 짝짓기를 하고 알을 까고 새끼를 길러 바다에 데리고 나와 함께 먹이를 구하며 살아갑니다.

보트피플과 갈매기의 일상을 보며 생명과 삶과 욕망에 관한 생각을 해 봅니다. 살아있는 존재는 모두 살기 위하여 먹어야 되고, 먹기 위하여 벌어야 되고, 벌기 위하여 발버둥 처야 합니다. 능력이 있어 좀 잘 사는 사람도 삶의 내용은 마찬가지입니다. 먹고 자고 배설하고 늙어 아프다가 죽는 것이 모든 생물의 삶의 과정입니다. 히말라야 산하의 싯다르타는 왕자로 태어난 귀공자였지만 이러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문제로 고민하다가 의미 없는 인생을 떠나 스스로 고행을 택하여 수행을 하며 깨달은 자(석가모니 부처)가 되었습니다. 그의 깨달음은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중해 연안 팔레스타인지역의 가난한 시골마을에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태어날 자리도 없어 말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신전에서 자라며 제자장의 무리들과 경전을 연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종교적인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열심히 경전을 연구하던 그는 철이 들자 그들의 가르침과 삶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전을 박차고 나와 거리의 나그네로 살며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불쌍한 사람들의 동무가 되어 살았습니다. 그가 더욱 크게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살다 십자가에 죽고 난 후부터입니다. 선하게 산 자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의 최종 가르침은 십자가상의 죽음이었습니다. 살기 위해선 내가 먼저 죽어야 된다는 진리였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져 죽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실에서 갈매기가 집착을 버리고 공중에서 떨어지는 과자를 잽싸게 채어 먹을 수 있을까요? 죽어서 지낸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인가요? 석가와 예수는 너무 어려운 걸 가르쳤습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헤매다가 자기들 생각과 판단대로 해석하고 수많은 종교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성서해석은 자본주의적 경제만능주의와 야합하여 ‘집착을 버림’과 ‘죽어야 산다’는 가르침은 사라지고, 출세와 복을 위한 수단으로 둔갑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대인호 카훼리는 1만 5천톤이나 되며, 항해 속도는 20노트이고, 여객정원은 555명이나 되는 비교적 근사하고 큰 여객선입니다. 대인훼리의 좌석을 꽉 메운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행복해 하고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그들의 모습에선 시기와 질투 같은 더러운 세상의 것들은 보이지 않고, 그저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는 너그러움만이 환하게 드러납니다. 넉넉한 행복과 여유로움이 그들을 더욱 푸근한 모습으로 보이게 합니다. 여행은 모든 집착으로부터 잠시 우리를 떠나게 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며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서로 사랑하고 돕는 마음을 갖게 만듭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여행가기 위하여 직장을 택하고 돈을 벌어 저축한다고 합니다. 인생을 여행하는 재미로 산답니다.

요즈음은 경제가 좋아져 한국 사람들도 인생에 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40여 년 전만 해도 놀기 보단 벌기에 바빴던 사람들이 요즈음은 여행에도 많이 투자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인간이 동물이 아닌 이상 먹이만 구하고 집 짓고 사는 데만 매여서는 안 되겠지요. 그렇다고 아무 목적도 없이 그냥 놀기 위하여 여행만 다녀서도 안 됩니다. 진정한 여행은 남을 배려하고 남을 위한 여행이어야 합니다. 여행도 하며 나보다 못한 이들을 돌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여행의 프로정신은 세계인이 서로 함께 더불어 잘살기 위함입니다. 여행을 통하여 물자와 화폐가 유통되고, 정신과 문화가 소통되고,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가 원만히 이루어집니다. 여행은 소통의 통로입니다. 소통되지 않으면 탈이 납니다. 물이 소통되지 않으면 썩어지고, 몸 속의 피가 소통되지 않으면 죽습니다. 국가 간에 소통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납니다. 복음이 소통되지 않으면 스스로 소멸됩니다. 바울을 비롯하여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소통의 장을 열기 위하여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늘 전도여행을 다녔습니다.

백두산을 가는 분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점은 북한을 통하여 가지 못하고 중국을 통하여 간다는 점입니다. 1년에 60만 명 이상이나 되는 백두산 관광객이 중국을 통하지 않고 직접 북한을 통하여 간다면, 요즈음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북한이 많은 외화를 벌어들여 형편이 피이게 될 텐데, 그 많은 돈을 중국에 주어야 하니 배가 아픕니다. 언젠가는 북한에도 소통의 문이 열려 북한 주민들과 더불어 잘살기 위한 행복한 여행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나눔과 베풂이 없는 여행은 피곤하기만 하고 남는 것이 없습니다. 단순히 유희만을 위한 여행은 여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든가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괴롭히는 또 다른 집착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