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 한 벌
 
"나는 항상 어버지만 우러러 보며 자라 왔습니다.
또, 앞으로도 그럴 것 입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당신키가 나보다 10 피트가 더 커 보였습니다.
나는 당신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알고,
무엇이든 고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나이를 들어가면서 당신도
이세상을 모두 책임질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점점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당신은 좋은 아버지가 되기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당신은 늘 내 곁을 지켜 주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나는 당신보다 더 이상적인 아버지 모델을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
앞으로 수많은 시간이 흘러가도
나는 영원히 아버지를 우러러 보며
살아갈 것입니다. -Cheryl Hawkinson -
 
Happy Father's Day !
 - 아들 제임스
 
지난 아버지날 아들 제임스가 나에게 준 카드에
적혀 있는 글이다. 나는 카드의 마지막부분,
그의 서명을 확인하기도 전에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카드를 덮어 버렸다. 그리고 내 컴퓨터 앞에 두고
다시 한 번 읽어 보지 못했다. 아니 아들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다시 읽어 볼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가 생각해 온 아버지로
한 번도 살아 본 적이 없다. 아들은 나를 오해를 해도,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금요일에 일어났던 일이다.
아들로부터 헨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몇시에 집에 들어와 ?
 "왜, 무슨일 인데? "
 "아니, 집에 오면 이야기할게"하고 전화를 뚝 끊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또 돈이 필요하구나 하고 단정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동치는 미국경기 때문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판인데, 잔뜩 긴장이 됐다.
집에 돌아오니 아들은 침대위에서 자고 있었다. 지난밤
친구들과 어울려 밤을 샌 탓일 것이다.

흔들어 잠을 깨웠다. "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데..."
"오늘저녁에  3일간 교회 수양회를 떠나는데 돈이 필요해.
피곤해서 몇 시간 자야될 것 같아. " 하며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썼다.
역시, 내 예상은 적중했다. 마음이 씁쓸했다. 나는 침실 문을
살며시 닫고 수취인 난에 아들이름을 적은 백지수표
한 장을 눈에 잘 띌 수 있는 거실에 남겨 두었다.
아들과 나의 수표거래는 늘 백지수표 거래였다.
나는 적어도 돈에 대해서만큼은 아들을 신뢰하고 싶다.
 
두 시간 쯤 지났을까 ? 가방을 챙겨든
아들이 컴퓨터 앞에서 일에 열중하고 있는
내 곁으로 성급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아빠, 지금 출발해야 하는데
 수표의 수취인 이름을 내 이름이 아니라 교회이름으로 바꿔줘"

"조금만 기다려. " 하며 무관심한 표정으로
일에만 열중을 했다.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아들이 몇 분이 지나자,
"아빠 수표 북이 차에 있어?" 하고 묻더니
차에서 수표 북을 찾아와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미리미리 말하면 되잖아 ! 나는 짜증난 목소리로
힐난을 하며 수표를 다시 한 장 서명을 해서 그의 손에
던지듯 건네주었다. 수표를 받자마자 아들은 나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갔다 올께." 하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갑자기 "나는 너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야."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며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하던 일을 멈추고 차에 금방 시동을 걸고 있는 아들을 쫒아 나갔다.
"세상은 네 스케줄대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야, 필요한 사람이 기다려야 하는 거야, 성공한 인생을 살려면 미리 계획을 세우고, 중요한 일부터 하는 버릇을 기르라고 아빠가 몇 번이나 말했어.

오늘 일만 해도 그래, 너는 갑작스레 너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나를 강요하다 싶이 재촉했어. 필요한 사람은 바로 너야. 그러면  일이 끝낼 때까지 기다려야지! 아빠는 너를 기다라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야. 앞으로는 아빠도 노(No)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았어, 알았어."하며 급히 차를 몰고 집을 떠났다. 그를 보내고 나서 내가  좀 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주말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돌아오면 사과를 해야지......,

월요일 늦은 아침,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 아들방에 들어갔다. 아직 한밤중인듯 코까지 골며 잠을 자고 있었다. "이야기 좀 하자 "몸을 흔들어 깨웠다.
"아빠, 나 정말 피곤해 "짜증나는 목소리로 이불 속에서 대꾸했다.
 
"아빠가 그날 너에게 너무 심했던 같다. 정말 미안하다. "
"알았어, 아빠 ! 나 좀 자게 내버려둬. " 
나는 오늘만큼은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 솔직히,  하나님은
나의 속셈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 내가
그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미안하다"는 사과가
아니라 그날 다하지 못했던 잔소리를 마저 끝내려 한다는 것을 ...

나는 요즈음 시끄러운  세계경제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설교를 일사불란하게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나의 어려운 경제사정, 그의 학교성적문제, 생활습관,
졸업 후 취직과 진로문제, 그리고 여자문제 등...
 
아들은 몇 주 전 인디안보호구역에 다녀와서,
대학을 졸업한 후 장교로 군에 입대하겠다는
계획을 변경해서 선교사로 몇 년 봉사할 지도 모른다는 말을
나에게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내 생각을 충분히 밝힐 수가 없었다. 오늘 내 생각으로
그를 철저하게 세뇌시켜 두고 싶었다.

겁을 잔뜩 주면서.
"나는 네가 선교사가 되겠다면 굳이 반대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선교사의 삶이라는 것이 네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너뿐 아니라 가족들의 절대적인 희생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다.
옛말에 위대한 남자 뒤에는 위대한 여자가 숨어있다 는 말이 있다.
너는 그렇게 기댈 수 있는 여자가 네 주위에 아직 한 명도 없다. 너의 엄마는
너를 이미 떠나갔고, 아빠는 너를 써포트해 줄 신앙심이나 신념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남은 여생을 나를 위해서 살아보고 싶다.

나는 경제적인 문제를 떠나서라도 선교사직업에 대해서 아주 회의적인 사람이다.
네가 영웅시하는 슈바이쪄 박사만 해도 그렇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슈바이쪄 박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줄 아니?
대부분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한 서구위선자로 기억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예수처럼 하나님의 본질까지 포기하며
인간으로 태어났던 사람이 아니었거든. 그는 예수의 옷만 걸친 사람이었지.

네가 선교사가 되려면 우선 네 생각, 생활습관부터
철저하게 그들과 같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들이 굶주리면 너도 굶주리고, 그들이 헐벗으면 너도 같이
헐벗어야 한다. 너처럼 미국에서 명품문화에 발부터 머리끝까지 젖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선교사가 된단 말이냐 ? "
 
그가 갑자기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우리들은 수차례 고성을 지르면서 전쟁을 시작했다.
결국 그가 눈물을 흘리면 전쟁은 끝났다. 우리들
은 늘 그러했다. 눈물로 전쟁의 승패가 결정됐고,
패자는 어김없이 아들이었다. 내 마지막 무기인 권위에
그가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는 이렇게 패자의 변을 남겼다.
 
"아빠, 아빠와 나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아 ?
아빠는 오늘도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어. 나는 이미 내가 잘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이는 아빠가 내가 아빠를 신뢰하는 것만큼
나를 아직도 신뢰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야.

나는 아빠를 100 % 신뢰하고 있어. "  
커다란 유성이 내 머리를 사정없이 강타했다.
두 눈에 번갯불이 번쩍거렸다.  그래, 나는 아들을 진정으로
신뢰도 사랑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진정한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 ", 대학시절에
영화관에서 보았던 영화 "러브스토리"에서 올리버와 제니가 주고
받았던 말이다. 나는 그 동안 그 알쏭달쏭한 말의 의미를 단 한번도
이해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아들이 오늘 나에게
일깨워 준 것이다.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의 신뢰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날 오후, 아들은 밀린 세탁물들 빠느라
지하실을 몇 차례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아빠 ! '하고 계단에서 풀죽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왜? 무슨 할 말이 있어" ,"아니야, 다음에 이야기할께 "  
또 무슨 부탁을 하려고 하지?  돈이 필요하던지 학점에
문제가 있던지 둘 중 하나다. 자꾸 조바심이 생겨서
아들을 불러서 다시 물었다. "너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잖아 ? "
"아니야, 다음에 이야기할께"하고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이 벼처럼 고개를 숙일 때는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성숙해지고 겸손해 질 경우고, 하나는 잘못을 했거나
실망했을 때다. 이들 중 어는 것일까 ?
나는 몇 년 전 가정이 어려움을 겪은 후부터 아들이
내눈 치를 자꾸 보고, 고개 숙인 모습이 잦아져 마음이 아프다.
저러다가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버리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됐다.

대학을 입학하면서 몇천 불짜리 컴퓨터를 구입하고,
값비싼 스포츠카를 사겠다고 했을 때 몇 날을 두고
서로 소리를 지르면서 싸웠었다.
내가 지금 그리워하는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아들이 그때 나에게 보여 주었던 그 당당하게 반항하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날은 서로 눈치만 보며 하루를 넘겼다.
 
수요일, 아들이 친구들과 밖에서 어울리지 않고
종일 자기 방을 지키고 있었다. 모처럼 함께하는  
가족식사에 신이 난 케롤이 아들이 좋아하는
갈비, 새우, 연어, 빈대떡으로 잔뜩 저녁상을 준비했다.
밥상에서 젓가락을 들자마자 아들이 "아빠, 나 양복 한 벌 사도 돼? "하고 말을 꺼냈다. "너 양복 있잖아? "나는 퉁명하게 대답했다. '아니야 고등학교 때부터 입었던 양복인데 이제 작아서 맞지가 않아.
이번 토요일이 친구 결혼식에 가야돼."

'여보, 내일 시간을 내서 제임스를 데리고 가서 좋은 걸로 몇 벌 사주 세요. " 하며 케롤이 옆에서 제임스 말을 거들었다. "그래, 내일 샤핑센터에 같이 가자 "하며 대화를 끝넀다.
 
사실 나는 아직껏 아들에게 옷이나 신발을 사준 적이 거의 없었다. 그의 엄마가 있을 때는 철마다 부렌네임 명품으로 구입해 주었고, 엄마가 떠난 후부터는 자신의 용돈으로 인테넷을 통해서 필요한 옷가지들을 구입해서, 으례 그러려니 하고 살아 왔다. 생각해 보면 아주 무심한 아버지였다.
 
목요일 아침,
하늘은 청명하고,
기승을 부리던 폭염도 시들어 제법 서늘한 날씨였다.  
언제였을까, 내가 아들과 단둘이서 샤핑을 했던 적이 전혀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이 약간 설렌다. 아들이 깨어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 혼자서 산책을 하며 두 가지를 결심했다.

첫째, 오늘은  아들이 싫어하는 일방적인 설교(?)를 하지  않겠다.
둘째, 오늘만큼은 이유를 불문하고 아들에게 져주자.
 
나는 아들과 대화를 나누자면서 내 책상 옆으로
그를 불러들이거나, 그의 방을 찾아가 곤 했었다.
그리고 아무런 주저함이 없이 그의 가슴에 무수하게
말의 못을 박아 왔다. 아들에게 만큼은 돈처럼 말을 아껴본
적이 없었다. 대화(?) 가 끝나면 아들은  "아빠,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연설이야"라고 하던지, "그 말은 이미 수백 번도 더 들었어"하고 코멘트를 했었다.
 
아들과 승부 문제만 해도 그렇다. 나는 아들이 세살 때부터 골프를 가르치고, 그와 축구, 농구, 미식축구, 테니스, 베드민트, 볼링, 달리기 등 여러 가지 운동을 같이 했었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게임에서 아들에게 져준 적이 없었다. 아들은 게임이 끝나면 나에게 진 것이 분해서 찔끔찔끔 눈물을 짜곤 했었다.

그가 중학교 이학년 때의 생일날이었다. 그가 한참 농구에 열을 올리고
있을 시기였다. 나는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10번 드로샸에서 한 점차이로
그의 콧대를 납작하게 꺾고 말았다. 그것 뿐 아니었다.

대학 일 학년 때 그가 친구들과 어울려 살고 있는 자취방을 찾아가서 친구들 몇 명과 함께 당구 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역시 당구 게임은 나의 승리로 끝났다. 그래서 가끔 그는 "이 세상에서 어린 아들에게 이기려고 하는 아버지는 아빠밖에 없을 거야" 하고 나에게 불평을 늘어놓곤 한다. 나도, 그도,  서로에게 승부욕이 강하기는 마찬가지다. 경기에서 우리는 영원한 적수다.
 
제임스가 운전대를 잡았다. 나는 소설 한 권을 손에 쥐고 운전석 옆에 앉았다.
그렇다. 대체원리(PRINCIPAL OF  SUBSITUTION) !
오늘은 대학시절경제교과서에서 배운 경제 원리를 적용해서 입 대신 눈만 사용하는 것이다. " 아빠, 어디로 가?"아들이 목적지를 물었다. 
" 응, 우선 리스버그 아웃렛 샤핑센터(OUTLET SHOPPING CENTER)로 가자."

나는 양복 두 벌의 가격을 머리를 굴려 재빠를 게 계산하면서 대답했다.
"너무 머잖아. 나는 이미 내가 살 옷들을 인터넷을 통해서 결정해 두었어."
"내가 그곳에서 내 양복을 싸게 산 적이 있는데 내 등산화도 하나 살 겸 그곳에 들려보자. "하며 처음부터 내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20마일, 집에서 제법 먼 거리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돈을 절약할 수 있다면"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들고 간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왔어" , 차를 파킹장에  주차한 아들이 말했다. 나는 한참 재미있어가는 소설책을 접지 못하고 계속 읽으면서 샤핑센터를 향해서 걷고 있었다.

사실 산책을 하면서 책을 읽는 버릇 때문에, 나는 "걸으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동양기인"으로 동네 미국인들 이웃에게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아빠 ! 차 조심해"소리치면서 아들이 여러 차례 나를 불러 세웠다. 옛날에 자주 들어 본 말이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내가 오십이 넘도록 나만 보면 입버릇처럼 하셨던 말씀이다.

" 차 조심해라.", "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어라." ,어머님이 남기고 간 유일한 유언이다. 아들로 부터 어머님 유언을 듣게 되다니..., 마음이 찡해졌다.   그래, 그것이 바로 사랑하는 마음이야. 사랑은 항상 따뜻했었지.
 
몇 가게를 들렸으나 아들은 이미 마음을 작정한 듯 건성건성,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내 절약작전이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아빠, 요즈음에는 아웃렛스토어나 일반 가게들이 가격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나 하는 것처럼 아들이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면 이 지역에서 가장 큰 타시슨코너 샤핑센터로 가자 " 타이슨스코너는 가게들이 수백 개 모여 있는 이 지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가장 큰 샤핑센터 중 하나다. 경기 탓인지 한산해서 종업원들의 수가 샤핑객들 수보다 많아 보였다. 아들은 다른 가게에 눈을 돌리지 않고 메이시 백화점으로 직행을 했다. 남자양복 쎅션을 획획 돌아 본 후 " 마음에 든 것이 없어, 가자."하며 그가 인테넷으로 점찍어 논 "X PRESS"스토어로 발길을 돌렸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가게인 모양이다.

 단방에 옷 두벌을 골라 손에 들더니,
 "내가 좋아하는 색깔은 아니지만 내 사이즈야."하고 말했다. 내 포켓사정을 걱정해서 그런지 가격표를 뒤적이며 힐끔힐끔 내려다보았다. "가격은 걱정하지 마라, 이왕에 사는 것인데 마음에 드는 것을 사야지. 그리고 유행하는 것도 아니니 갈아입을 수 있도록 두 벌 다 사거라 "
"아니야, 한 벌이면 돼 ",  "두 벌을 사라니까 " 여러 차례 말을 주고받다가 결국 그의 의견에 따라서 한 벌로 낙착을 보았다. 그에게 승리를 안겨 준 것이다.
그도 기분이 썩 좋아 보였다.
 
벌써 오후 3시였다, 뱃속이 출출해 왔다. "배고프니?  좋은 식당에서 밥이나 먹자. 네가 좋아하는 음식점으로 가자 ", "푸트코트가 일층 이층에 있는데 아빠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자 " 제법 자주 드나들었던 말솜씨다.  

"네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자니까 ", "아니야, 아빠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자"여러 차례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눈에 띄는 한 중국 페스트푸드 음심점에서
자리를 잡았다. 아들이 "이것이 맛있어, 저것이 맛있어 "하면서 내 접시를 챙겨 주었다. 어머니 대신 내 먹을 것을 챙겨주는 아들과의 점심식사, 흐뭇하고 뿌듯했다. 
 
그런대로 내가 아침에 세웠던 결심을 지킨 셈이다. 양복 두 벌에서 한 벌로 아들에게 져주기도 하고, 행복한 하루였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아들에게 자주자주 져줄 것이다. 
 

▲ 박평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