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누구든지 오세요 

▲ 등촌 이계선

“유붕자원방래 하니 불역열호(有朋自遠訪來 不亦悅乎)-벗이 멀리서 찾아와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돌섬을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나는 최고의 환영사로 이 말을 쓴다. 요즘 이 말을 쓰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여름철이라서 돌섬을 찾아오는 친구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유붕자원방래 하니 불역열호!”(有朋自遠訪來 不亦悅乎)

영어의 “웰컴!” 이나 우리말의 “어서 오십시오” 보다 얼마나 품위가 있고 멋진가! 만나서 바닷가 바위위에 앉아있으면 절로 高談峻論(고담준론)이 나올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방문객들은 만나자 마자 내 얼굴에 놀란다.

“아니, 목사님 얼굴이 왜 그렇게 새까맣게 됐습니까?”
“흑인선교를 했기 때문 이지요”
“아! 배목사님처럼 이목사님도 아프리카선교를 다녀오셨군요?”
“아니오. 흑인들이 아프리카에만 있나요?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90%가 흑인인걸요”
“아! 목사님이 흑인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봉사선교를 하고 계시군요”

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흑인들과 어울려 해변을 걸으면 여름날 검둥이가 된다. 설명을 들은 방문객들은 구리빛 내 얼굴이 건강의 심벌이라고 찬양일색이다.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첫 손님으로 김문기목사가 찾아왔다. 한국에서 환경공학을 연구하는 50대초의 엘리트목사다. 교단도 다르다. 한번 내차를 타 본게 전부다. 코스타리카에서 모인 WCC부산대회 예비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차 왔다가 들렸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일부러 찾아왔는데 겨우 하루 밤을 자고 귀국했다. 그런데도 만리장성을 관광 한 것처럼 즐거워했다. 보스턴의 유경열목사 가족이 다녀갔다. 내가 형님으로 부르는 유동형목사님의 둘째아들이다. 나사렛후배인데 윤동주스타일의 글을 쓰는 철학과 출신이다. 바닷가를 좋아하여 좀 묵고 갈 줄 알았더니 그날로 보스턴으로 올라갔다.

“목사님의 조각농장에서 수확한 야채로 사모님이 요리하신 점심을 맛있게 먹었어요. 목사님이 매일 걸으시는 돌섬 바닷가를 목사님과 함께 걸어봤으니 됐습니다”

버지니아숲속에서 명상록을 쓰는 해암 박평일은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버렸다.
“목사님 해암입니다. 아내 몰래 잠깐 오션바닷가로 바람 쏘이러 가는데 갑자기 뉴욕의 등촌선생 생각이 나는 거요” 해암역시 돌섬 비치를 걷고 나더니 캠핑을 끝낸 소년처럼 철수를 선언했다.
“목사님 얼굴 뵙고 목사님 걸으시는 돌섬 바닷가 걸어 봤으니 이제 마누라 곁으로 가렵니다”

뉴욕 뉴저지에 사는 친구들도 다녀갔다. 뉴저지 에디슨의 삼총사인 김동욱 하원조 양경환, 후러싱에 사는 의사 김성훈 한의사 홀리강. 모두 US아멘넷 식구들이다. 바비큐로 포식하고 돌섬의 단골코스인 비치를 걸었다. 꽃게를 잡아 꽃게탕을 먹으면서 조영남의 CD를 들었다. 조영남이 30대 전성기 때 목소리로 부른 “꿈은 사라지고”가 대단했다.

“나무 잎이 푸르던 날에/ 뭉게구름 피어나고 사랑이 울고/ 끝없이 퍼져나간 /젊은 꿈이 아름다워// 귀뚜라미 지새 울고/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 아 꿈은 사라지고 아 꿈은 사라지고/ 그 옛날 아쉬움에 한없이 웁니다”

“와! 저건 나가수에 나가도 임재범을 제치고 단연 일등할거야. 우리 다같이 따라 부릅시다”

하원조씨가 앵콜을 신청했다. 우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면서 신나게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런데 이민 20년을 지내고 나니 꿈은 사라지고 청춘만 늙어버렸다. 꿈은 사라지고는 우리들의 노래다.

지난 금요일에는 아내의 수영친구들 여섯명이 부부쌍쌍으로 돌섬을 찾아왔다. 처음 보는 얼굴들인데도 내 환영사는 어김없다.

“유붕자원방래 하니 불역열호(有朋自遠訪來 不亦悅乎)-

고향시절의 죽마고우를 만나듯 반가웠기 때문이다. 그날따라 97도의 불더위가 여름을 녹이고 있었다. 우리는 나무숲이 우거진 바닷가공원에 진을 치고 꽃게잡이를 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꽃게바비큐와 갈비바비큐를 즐기다 보니 이보다 더 좋은 피서도 없을것 같다.

사람들은 고승의 심오한 철학담론을 들으려고 심심산골에 칩거하고 있는 성철을 찾는다. 나를 돌섬의 자유인으로 알고 찾아오는 이들을 만나면 두렵다. 나는 성철처럼 고담준론을 나눌만한 실력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은 겨우 두가지 관광안내다. 첫째는 우리부부가 소꿉장난으로 가꾸고 있는 조각농장견학. 다음은 돌섬바닷가 걷기다.

그런데 사람들은 조각농장에서 따온 오이 호박 가지 고추 상추 시금치 미나리로 아내가 요리한 점심을 먹으면서 고향의 맛을 느끼는 모양이다. 파랗게 밀려오던 파도가 백사장을 만나면 하얗게 부서지면서 거품을 만든다. 하얗게 깔려있는 거품을 밟으면서 해변을 걷고 있으면 세속에서 벗어난 행복에 젖는다.

“우리는 고담준론을 들으러 온게 아닙니다. 철학과 이론이 가득한 다운타운에서 잠깐이라도 해방해보려고 돌섬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버지니아 숲속으로부터 걸려온 해암부인의 전화.

“남편이 저 몰래 목사님을 만나보고 오더니 아주 기분 좋아해요. 무슨 대접을 받았느냐고 물으면 싱글벙글 웃기만 하구요. 굉장한 대접을 해주신 모양이지요? 제가 남편과 함께 돌섬을 찾아가도 환영해 주실 건가요?”

“그럼요. 돌섬은 언제나 유붕자원방래 하니 불역열호(有朋自遠訪來 不亦悅乎)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