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능가하는 결실"
마태 13:1-9, 18-23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교회는 현세에서 잘 돼야 한다는 성공주의가 신앙의 모범이 돼 버렸습니다. 시험을 보면 무조건 합격해야 합니다. 장사를 했다하면 무조건 잘 돼야 합니다. 사업을 벌였다 하면 무조건 번창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웠다하면 무조건 부흥해야 합니다. 의도적으로 '무조건' 이라는 부사를 붙였습니다. 그만큼 신앙의 지상과제가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간증을 해도 결과가 잘 된 이야기를 해야 청중이 호응하지, 실패를 통해 성찰하자는 이야기를 하면 별로 환영받지 못합니다. 간단무식하게 말하면, "무얼 하든지 하여간 잘 돼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람들에게 신앙의 덕이 된다고 선전합니다. 거기다가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고, 교회에만 전적으로 종사하면 금상첨화입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풍토는 예수님의 복음말씀에 비추어 보면, 전혀 근거없는 주장인데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는 맹렬한 위력을 떨치고 있습니다. 그만큼 교회가 복음에서 멀어졌다는 뜻도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현세의 성공에만 집중하고 세상사에는 이기적으로 무관한 이런 현상은 주기도문의 내용,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는 기도와 완전 모순입니다. 구체적으로 세상이 정의, 평화, 생명의 땅이 돼야 한다는 바램과는 완전 무관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을 구원하기는커녕, 이제 세상은 교회에 어떤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정의평화생명세상에 대한 개신교회태도를 보면 정말 너무하다는 한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8일날 왜관역 광장에서는 고엽제매립범죄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주민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이날 베네딕도수도원에서 오신 수녀님, 신부님, 수사님들은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제 옆에 앉은 수도원원장 신부님은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서 구호도 하고, 함성도 지르고, 박수도 열성적으로 치더군요. 그분이 그럴 필요가 하나도 없는 분이지만, 솔선수범을 한 거죠. 그런데 왜관에 있는 무수한 교회에서 참석했다는 말은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자기 지역에서 일어난, 심각한 반생명적인 일이지만 무심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금요기도회 때나마 고엽제매립 진상규명 제목으로 기도했으면 다행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하늘 뜻을 세상에 구현하는 일에는 무심한 체 개인의 성공을 간절히 목말라 하고, 교회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끝없이 나팔을 불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같은 소원을 품고 살기 때문에, 결과가 자기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적성이 맞느냐 운때가 맞느냐, 마케팅요소에 잘 부합하느냐 하는 조건도 좌우하고, 그리고 뿌린 대로 거둔다는 보편적인 원칙도 있기 때문에 누가 더 성실히 일했느냐 하는 것도 성공을 좌우하고, 여기에는 교회다니는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자나 교회가 세상과 분리돼서 공중에 떠 있는 게 아니라, 세상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교회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교회의 신자이건 간에,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청년실업, 비정규직 확산, 양극화, 생태환경의 악화, 살인적인 대학등록금문제, 고엽제피해 등, 정치, 경제, 노동, 사회복지, 환경 등 제반 현실과 상관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현실을 초월하여 성공한다는 것은 유아독존으로 사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과대망상자나 자폐증 환자만 유아독존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유아독존이라도 성공처럼 보이는 증거들이 많이 있으므로 개개인들은 로또당첨을 붙잡는 심정으로 계속 유아독존의 신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증권가의 개미투자자 성공사례집처럼) 이렇게 주변이야 어떻든 나만 성공하면 된다는 점에서는 교회나 다단계회사나 비슷합니다.

이처럼 조금만 생각하면 수없이 떠드는 '현세에서 나만의 성공'이 뜬구름 잡는 허황된 이야기며 전혀 건강하지 않은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만 여전히 교회는 '잘 돼야 복'이라는 공식을 여러 마케팅으로 유포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은 인생들의 시시콜콜한 세속사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뜻밖일 정도로. 그냥 염려하지 말고 맡기라 이게 전부입니다. 반드시 성공해야 나를 제대로 따른 것이라는 논조는 한 번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물질을 적대한 면이 더 많습니다. "네 소유를 다 팔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비유에 부자도 등장하는데, 대개는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의 반면교사로 잘 등장합니다.

그럼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 건가요? 현대인의 갈망을 애써 외면하시는 예수님인가요? 아니면 예수님과 전혀 무관한 현세의 성공을 복이라고 선전하는 오늘의 교회기술자들인가요?

우리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관심을 기울이고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길을 찾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두 군데입니다. 가운데 10-17절까지를 건너뛰었습니다. 건너 뛴 부분은 오늘 본문과 직접 연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앞부분은 예수님의 말씀이고 뒷 부분-씨 부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한 본문은 초대교회와 마가의 해설입니다. 예수님의 입을 빌어서 말했을 뿐입니다. 즉 예수님의 씨부리는 비유를 놓고 보니까, 복음전도 할 때나 교회신도들의 미흡한 생활을 볼 때, 씨가 뿌려진 각각의 상황이 "꼭 이런 경우야" 라고 할 만한 경우여서 해설로 정형화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이해하자면 이스라엘의 농사법을 우선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농부의 농사법과 다릅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씨를 뿌릴 때에 땅을 갈아엎기 전에 그냥 맨땅에다가 먼저 씨를 뿌리고서 그 다음에 갈아 엎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토양이 얇은 조건에서 씨는 길이 나 있는 자리에도, 가시덤불이 자라는 자리에도, 바닥에 돌이 묻혀 있는 자리에도 뿌려집니다. 그리고서 쟁기로 땅을 갈아서 씨를 덮습니다. 그러므로 씨는 아무 곳에서나 다 열매를 내지는 않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 비유'에 나오는 특징이 무엇인가요?

실패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입니다.

3/4이 실패입니다. 씨가 네 군데 뿌려졌는데, 그 중 세 군데는 하나도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4절부터 8절까지 다섯 절 중에 네 절이 실패에 대한 상세한 서술입니다.

예수님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농사짓는 한 농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 소재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이 인용한 씨 뿌리는 농부의 모습은 청중도 익히 공감하는 매우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들도 자기네 땅이 많이 척박한 것을 알기 때문에 3/4의 땅에서 열매맺지 못하는 것에 대해 조금도 애석해 하지 않습니다. 원래 그런 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무수한 서민대중이 실패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 지금 세상이 원래 그렇게 지독히 편파적입니다.(일감몰아주기) 승자독식의 세상입니다. 서민대중은 일등을 위한 들러리일 뿐입니다. 대중은 지식이나 이론으로는 몰라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의 품성이나 노력여하와 무관하게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세상인 줄 알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복음은 무엇인가요?

참으로 감사하게도 아무리 척박한 땅이지만, 열매 못맺는 부실한 땅만 있는게 아닙니다.

좋은 땅도 있습니다.

농부는 자신이 씨 뿌리는 땅의 토양조건이 어떤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길가, 돌짝밭, 가시덤불 투성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이라면 농사를 당장에 걷어 치웠을텐데, 그 중에서도 좋은 땅이 있고, 그 좋은 땅에 뿌린 씨앗이 다른 데서 얻지 못한 열매까지 다 채워준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실망이나 좌절하지 않고 매년 씨를 뿌립니다. 좋은 땅에서 추수할 거리가 충분한 것을 알기 때문에.

세상일이 꼭 이렇습니다. 일상사를 비율로 측정해 보자면, 세상에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의 비율이 2:8 이나 3:7 정도 됩니다. 나쁜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사는 이유는 2나 3의 힘이 8이나 7의 요소를 능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한 이유는 주님이 말씀하신 씨가 보통 씨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 씨앗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나라를 말하는 마태의 고유표현입니다.

하늘나라 씨앗은 어떤 열매를 맺나요?

생명, 구원, 평화, 하나님자녀가 되는 열매를 줍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말하는 고작 현세의 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중한 복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열매의 풍성함을 누립니다. 열매 맺지 못한 세 땅의 공통점은 듣기는 듣지만, 깨닫지 못하고 다른 데에 마음을 뺏긴 경우입니다. 우리 마음을 뺏는 가장 큰 적은 세상염려와 재물유혹입니다. 악한 자가 빼앗아 가는 것도, 환난이나 박해도 세상염려와 재물관련 유혹으로 옵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신앙의 모범이라고 말하는 세속사의 성공이나 재물성공은 오히려 하나님나라 진로를 막는 훼방꾼입니다.

좋은 땅에서는 어째서 나머지 척박한 땅을 능가하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인가요?

모릅니다.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인간의 영역이 아니고 하늘과 자연의 영역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한 겁니다.

그리고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이 대단한 이적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다 아는 평범한 결실입니다. 벼이삭 한 줄기에서 이만큼의 결실이 나옵니다. 다른 작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에서 하늘을 모시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성실히 사는 사람에게 따라오는 복입니다. 듣고 깨닫는 것도 이처럼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섭리 속에 있습니다.

이 신비의 섭리가 어디에 나타나는지 눈여겨 보십시오.

1절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오셔서, 바닷가에 앉으셨다.

많은 무리가 모여드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바로 앞에 가족과 연관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적인연을 털고 공중 장소에서 하나님나라 말씀을 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희망을 말씀했습니다. 듣고 깨닫는 일은 자신의 일을 공공성으로 승화시킬 때, 더욱 빛을 발합니다. 공공성에 충실하여 하늘나라 씨앗을 널리 퍼뜨리십시오.

이 은총이 여러분께.


기도 : 하나님,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불모의 환경들에 얽매이지 않게 하소서. 우리 마음을 빼앗는 조건들에 정신이 팔리지 않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세상염려와 재물유혹에 하늘나라 말씀이 막히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열어주소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선물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욕심에 매여서 사장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이 함께 누리도록 우리에게 있는 것을 공적가치로 바꿀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아멘.

새민족교회   백 창 욱   목사 (대구 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