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위를 걷은 다리들 

▲ 등촌 이계선

부르크린 다운타운으로 차를 몰기에 생일날 ‘고급 서양요리를 먹게 되는구나.’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4시간짜리 스트릿 파킹을 하더니 부르크린 브릿지를 걸어서 맨해튼으로 건너가자는 것이었다. “비오는 가을 날씨에 청승맞게 웬 도보 행렬이냐?”아내가 짜증을 냈다.

"아녜요 엄마, 부르크린 브릿지를 걷다 보면 다리가 아름다워 춥고 비오는 것도 금방 환상 속에 묻혀 버리게 되요. 부르크린 브릿지는 세계의 3대 아름다운 다리중에 하나라구요. 더구나 이 다리는 에밀레종처럼 전설 속에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다리 위를 걷고 있노라면 전설의 고향을 걷는 신비를 체험 한다구요."

"그게 정말이냐?"

나는 귀가 번쩍했다. 어려서부터 나는 역사보다는 신화나 전설이 담긴 야사를 더 좋아했다. 미국을 여행 하다가도 Legend(전설)란 푯말을 보면 어김없이 차를 세우곤 한다. 내가 사는 동네 옆에 있는 부르크린 브릿지에 견우직녀가 건너갔다는 오작교 같은 전설이 숨어있다니! 얘야 얼른 말해보려무나.

맨해튼과 퀸즈 부르크린을 연락선으로 건너다니던 뉴욕시는 로블링에게 부르크린 브릿지 공사를 맡겼다. 1825미터 다리 길이는 당시 세계에서 제일 긴 다리공사였다. 미관상 양쪽 가에만 다리탑기둥을 세우는 일과 수압을 뚫고 다리기둥을 박아야 하는 일이 여간 난공사가 아니었다. 천재 건축가 요한 로블링은 다리 양쪽을 굵은 철사로 당겨주는 Cable 공법과 다리 기둥을 붙잡아 주는 Stay 공법을 개발해 냈다. 긴 다리 공사의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그는 1866년 공사가 시작되자 요한은 건축가인 아들부부를 유럽으로 보내어 물속에 기둥 세우는 수압연구를 하게 한다. 자신은 물속에 들어가 탑 기둥 세울 연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쳐 그만 파상풍으로 죽는다. 비보를 듣고 유럽에서 달려온 아들 워싱톤은 아버지가 남긴 설계도를 들고 물속에 들어가 공사를 지휘한다. 그런데 잠수병에 걸려 하반신 마비 불구자가 된다. 이에 그 아내 에밀리가 치마를 걷어붙이고 물속에 뛰어들어 공사를 계속한다. 불구가 된 워싱톤은 부르크린 아파트 창가에 병든 몸을 기댄 채 망원경으로 아내가 하는 공사를 관찰하면서 피눈물 나는 원격조정감독을 한다.

공중에 매다는 Cable 공사도 쉬운게 아니었다. 프랭크라는 기술자가 도르래줄에 매달려 다리 양 끝을 왔다 갔다 하면서 거미가 거미줄 치듯 곡예를 벌리기를 무려 7년이나 했다.

후러싱 뉴욕 순복음교회 건너편에 있는 맥도널드에 가보면 낡은 흑백사진이 걸려있다. 공중에 높이 떠서 가로질러가는 철근 대들보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낄낄거리며 빵을 먹는 남자들. 폭이 다섯뼘도 안되는 철근대들보위에서 낮잠을 자는 얼간이들. 서커스사진이 아니다. 130년전 부르크린다리 공사때 휴식중의 순간을 찍어놓은 사진이다.

아버지는 파상풍으로 죽고 아들은 잠수병으로 쓰러지고 마지막으로 며느리가 달려들고… 로블링가의 건축사들이 한잎 두잎 낙엽처럼 떨어져 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리 공사에 매달려 있을 때, 부르크린 다리공사 아래로는 맨해튼 이스트리버의 푸른 물결이 세월유수를 노래하듯 무심히 흘러만 갔다. 그러기를 17년이 지난 후에 드디어 부르크린 브릿지는 오작교처럼 아름답게 세워졌다. 그게 1883년 5월 24일이다. 그렇게 해서 ‘세계 3대 아름다운 다리 부르크린브릿지’가 탄생했다.

20세기에 들어와 크고 아름다운 다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세인트 로랜스강을 건너가는 퀴즈백 브릿지(1917-13년공사)는 카나다의 자랑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1937-4년)은 매년 900만명의 광광객이 몰려온다. 너무 아름다워 그동안 2천명의 자살자들이 삼천궁녀처럼 뛰어내리기도 했다니 대단하다.

13키로미터를 달려가는 일본의 세토대교(1988-9년)는 5개의 섬을 연결하면서 건너 환상에 빠지게 한다. 후발주자로 등장한 인천대교(2009-4년)는 인천공항을 떠나 송도를 거쳐 바다위로 18킬로미터를 달린다. 바다 밑 2만 리를 달리는 기분. 무려 36키로나 되는 중국의 항주대교(2010-7년)는 긴 다리의 천하통일. 다리의 만리장성이다.

그러나 세계인들은 시인이 노래한 다리를 가당 아름다운 다리로 알고 있다. 바로 아폴리네르가 노래한 파리의 미라보다리다.

"미라보 다리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만 간다…"
티에스 엘리옷이 노래한 "런던교". 런던교밑으로 흐르는 테임스강변에 젊은 로망들이 떼지어 무리지어 건너가는걸 보고 엘리롯은 "황무지"에서 이렇게 읊었다.
"아, 나는 런던교 밑으로/ 저렇게 많은 죽음들이 흘러가는 것을 본적이 없다" 

그리고 뉴욕의 자랑 부르크린브릿지.
해질녁 저녁노을에 물든 부르크린브릿지를 건너 맨해탄에 이르면 뉴욕의 야경에 도취하여 누구나 시인이 되고 가수가 된다. 부르크린브릿지를 걸어보았는가? 그러면 당신은 금방 시인이 되고 낭만주의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새로 생긴 부르크린 브리지를 건너려 하지 않았다. 다리가 너무 길어 휘청거릴 듯 하는 게 아주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가다가 중간쯤 해서 다리가 갑자기 무너져 버리면 꼼짝없이 물귀신 될게 아닌가?)

동양이나 서양이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것이 인간 심리이기 때문이다. 묘책을 찾아 고심하던 당국은 1년 후인 1884년에 21마리의 코끼리를 브르크린 다리위로 몰아봤다. 집터미만한 21마리의 코끼리떼가 한꺼번에 부르크린다리를 건너는데도 다리는 끄덕을 안했다.
"와! 코끼리떼가 쿵쾅거리며 건너가도 끄덕도 않는구나! 백 퍼센트 안전, 백 퍼센트안전!" 그때부터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부르크린 브릿지를 건너기 시작했다.
(아하! 그래서 부르크린 다리 위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구나!)

멀리 캘리포니아에서 관광 왔다는 은퇴한 판사 부부가 걷고 있었다. 신혼여행으로 뉴욕에 들렀다는 애리조나의 젊은 목사 부부도 로블링가의 전설을 이야기 하면서 비내리는 부르크린 브릿지를 걷고 있었다.

부르크린 구청에서 출발하여 맨해튼 시청 앞마당 까지 걷게 되는 부르크린 브릿지는 주위 경관이 아름다움의 극치다. 동쪽으로는 맨해튼 브릿지가 무지개처럼 떠있고 서쪽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비너스처럼 서있다. 30분을 걸어 맨해튼에 도착하니 고급식당들이 즐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따듯한 레스토랑에서 비에 젖은 옷을 말리면서 양식을 먹는 기분이란 여간 매력적인 생일파티가 아니다.

식당을 나와 길거리 좌판에서 20달러짜리 브르크린 사진 액자를 사 들고 브르크린 쪽을 향하여 다시 다리를 걸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다리는 더욱 아름다워진다. 맨해튼의 불빛은 억 만 개의 진주가 반짝이는 산호섬처럼 환상으로 흐르고 우리가 걷고 있는 부르크린 브릿지는 하늘로 올라가는 천상의 다리처럼 황홀해 보였다.

함께 걷고 있는 아내의 손을 살며시 잡아 보는데 둘째 딸이 속삭였다. "아름다워요. 엄마 아빠가 꼭 천상의 다리 오작교를 걷고 있는 견우와 직녀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