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간 여행에 대한 단상들

며칠 전에 인터넷신문에 오른 한 수필을 통해서 休息의 의미를 뒤늦게 배웠습니다. 휴식은 한문으로 사람 人변에 나무 木의 쉴 休와 스스로 自와 마음 心의 숨쉴 息, 두 글자가 만나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숲(FOREST)이라는 영어단어는 FOR 와 REST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그래서 숲은 인간들의 영원한 휴식처 입니다.

성경 창세기 창조신화에는 "보시기에 좋다"는 신의 감탄사가 여섯 차례씩이나 나옵니다. 신은 숲을 끼고 하늘, 바다, 구름, 바람, 그리고 태양과 달, 별들을 하나하나 그려나가면서 아름다움에 취해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섯째 날 석양 무렵, 신은 자신이 창조한 숲 속을 혼자서 거닐고 있었습니다. 원인모르는 외로움이 황혼에 묻혀 갑자기 가슴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신은 그날 밤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으로 잠을 설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 일어난 신은 자기 자신의 형상을 본 뜬 인간들을 숲속 진흙으로 빚어서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역시 인간들의 숨결이 없는 숲은 한 폭의 풍경화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6일간의 아름다움은 창조의 완성이기에는 아직 부족했습니다. 7곱 째 날 신은 그가 그린 그림에 한 개의 마지막 점을 찍어 넣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휴식이었습니다.

며칠 전, 미국 서부 로스앤젤러스에서 4일간의 여행을 즐겼습니다. 나는 노자처럼 집을 떠나지 않고도 세계를 파악하며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도인이 아닙니다. 이세상은 자연과 인간들이 함께 어울려 숨 쉬는 하나의 거대한 숲이요, 나는 이 숲 속을 휴식을 찾아 헤매는 영원한 여행자입니다. 명목상 여행목적은 매년마다 개최되는 S 대 미주총동창회 참석이었지만 참 여행의 목적은 휴식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나는 잔뜩 흥분해 있었습니다. 그런 나의 휴식에 대한 꿈은 공항 대합실과 비행기 속에서부터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1980년대에 인도태생 영국작가 조지 오웰의 "1984년"이라는 공상소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현대기술과 과학의 발달로 인해서 인간들을 24시간 감시하고 통제하는 정치권력, 빅 부러더의 출현을 예언했던 소설이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빅 부러더 괴물은 그의 예언처럼 정치권력이 아니라 컴퓨터, 인터넷, 그리고 무선전화기들로 판명이 났습니다. 어디를 가나 인간들은 이들 빅 브러더 괴물들을 손에 들고 쉴 새 없이 지껄이며 두들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인간들이 조용히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장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작년 모임에서 만났던 벗들 중에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도 있었고, 그 동안 질병으로 인해 몸이 몰라보도록 여윈 벗들도 간혹 눈에 띄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치의 앞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들 인생입니다.

우리들은 얼굴을 서로 맞대고 몇 시간 동안 다름으로 격론을 벌이면서 다투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이것 또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은 시체들은 의견이 있을 수가 없는 법이기에 말입니다.

한국에서 방문한 J 전경제부총리, 그리고 P 전재경부장관으로부터 몇 시간에 걸친 "한국경제의 어제와 오늘, 미래"에 대한 특별강연을 들었습니다. 60년대의 100불 이하 국민소득에서 오늘날 2만 불의 소득으로 성장한 조국 대한민국은 한국인들 모두의 자랑이며 긍지입니다. 한국인들이기에 일구어 낼 수 있었던 세계사에 흔치 않는 기적임에 분명합니다.

그분들은 한국의 선진화를 위해서 극복해야 할 과제로 창조정신과 협동정신의 결여를 지적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맹목적 양적 성장을 위해서 능률과 획일주의가 뿌려놓은 씨앗들의 당연한 결실들입니다. 강연 중에 현재 한국에는 학점을 따기 위한 사회봉사활동과 체육할동의 사설학원들이 우후주순처럼 생겨나고 있다는 소식에
우리들은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날 일요일 오후에 미국 LPGA 골프대회가 개최됐던 아이젠하워 골프장에서 동문골프대회를 했습니다. 빈손으로 이민 온 우리 이민일세들이 이런 유명골프장에서 골프대회를 치룰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부심을 가질만한 기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런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능력과 노력 탓만은 아닙니다. 그 뒤에는 미국사회의 위대하고 통 큰 관용정신이 살아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한 조가 되어서 골프를 치는 한 선배분이 자기를 소개하면서 S대에서 입학시험 커트라인이 가장 높은 문리학과 출신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분은 그 당시 의대를 비롯한, 공대, 그리고 내가 졸업했던 농대의 입학시험 커트라인들을 아직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미국 땅에서도 역시 일류병을 앓고 있는 한국인들의 모습입니다.

일류병은 늙지도 죽지도 않나 봅니다. 평생을 영어, 수학, 국어시험 점수로 한 일류병의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우리 일류병환자들이 애처롭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골프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로 칠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은 출신학교나 학교성적으로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또 인생은 출신학교나 학교성적으로 평가되는 것도 아닙니다. 신은 "이 세상에서 누구를 얼마만큼 사랑했느냐"로 인간을 평가한다는 캬뮤의 설파가 생각납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그 지역에 사는 후배 J가 몇 벗들을 노래방에 초대해 주었습니다. 우리들은 전형적인 한국인들이 되어서 서로 순서를 다투며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흘러간 옛 유행가들을 목이 터지도록 불러댔습니다.

나는 애창곡 엘비스 프레슬리의 "CAN' T HELP FALLING IN LOVE 와 우리 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불렀습니다.

"Wise men say only fools rush in But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Take my hand, take my whole life too......"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그렇습니다. 사랑이란 서로의 손만을 잡는 것이 아니라, 온몸과 영혼으로 서로를 포옹하는 것이며, 삶이란 해와 달이 뜨는 것을 바라보면서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나는 이 여행에서 만났던 모든 것을 하나하나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따뜻한 미소들, 친절한 손길들, 그리고 관용과 소통으로 흘러 넘쳤던 맥주잔, 골프장에 피어 있었던 이름 모르는 아름다운 야생화들, 골프장 숲 속으로 사라져버린 한 개의 골프공, 그대신 덤으로 러프에서 주워 온 골프공 한 개도......,

그리고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다”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휴식도 찾고 구하는 자들의 특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