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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도시화의 대안, 생태적 삶에서 찾는다 !꾸미지 않은 생활, 자연과 함께 감동하는 삶으로
류기석  |  yoogise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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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6월 18일 (토) 20:09:54
최종편집 : 2011년 06월 19일 (일) 00:56:32 [조회수 : 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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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틈만나면 가평의 잣나무 숲으로 달려간다. 그만큼 도시적인 삶에 지쳐 있다고나 할까... 지난주 6월6일도 역시 아내와 함께 아무도 찾지 않는 숲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하늘이 농사지어 놓은 산나물을 채집하느라 열심인 반면 나는 빈둥빈둥 거리면서 울창한 숲 속을 탐험했다.

   
▲ 가평 대금산 잣나무 숲 속 캠핑풍경

 

   
▲ 텐트 속에서 바라본 또다른 세상풍경

깔끔하고 단정하고 세련되어 멋진 외형을 가진 정형화된 도시의 삶에 지쳐가는 사람들이 많다. 오염된 공기와 차량들의 소음, 소비하고 배출하는 쓰레기와의 전쟁, 경쟁과 시기와 질투로 인한 스트레스, 무엇보다도 도시의 무분별한 건축물과 간판, 자연생태계의 훼손으로 심미적 불안감이 커져 마음의 평화는 이미 깨졌다.

세상은 이미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는 물론 자연과 사람간의 관계가 너무 많이 벌어져 있다. 여기서 이자리에서 우리는 앞을 향해 계속 걸어 갈 것인지 아니면 뒤 돌아서서 갈 것인지를 한 번 쯤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동안 잊어버렸던 정의의 의미와 착함의 의미, 아름다움과 시적 정서적 철학적 종교적 의미들 까지도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찾아 감동적이고 창의적인 삶의 문화로 바꾸어 살아야 참 삶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화 도시화의 대안으로 꾸미지 않은 자연과 함께 감동하는 삶을 고민하고 천천히 행동해야 한다. 우선 자기의 본 모습을 찾아 정체성을 확립하고, 우리가 공동체로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는 무엇이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는지 가족을 넘어 이웃과도 진지하게 나누어야 한다.

   
▲ 사람은 자연의 일부처럼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워야...

우선 자연생태계는 생명현상의 근원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작은나무와 식물,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잘게 부수고 쪼개어 그들이 존재하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 씨앗이 식물체에서 분리되어 발아하기까지는 힘겨운 생의 여정이 있듯이 사람도 성공하려면 그 집단에서 25% 이내에 들어야 하고, 추려진 집단에서 성공하는 비율은 1%도 되지 않으니 실상은 인간이나 식물 공히 생태적 삶의 길은 험난한 것이다.

생태(生態)라는 뜻은 살 생(生), 모양 태(態)가 합쳐진 뜻 글자로서 생물들이 살아가는 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로는 에코(eco)로 쓰며 집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생물들이 살아가는 모양 그 자체로서 자연과 인간 모두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 온갖 생명현상의 근원인 생태계를 품고 키우는 자연은 위대한 풍경

모든 생명체들이 먹이사슬의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자연적 공간인 생태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계를 둘러싸고 있는 존재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다양한 동식물은 물론 미생물 조차도 서로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복된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서 지배와 복종이 아니라 서로간의 조화로운 질서가 아름답게 펼쳐지는 것을 뜻한다.

이제까지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함의하고 있는 말로 '환경'이란 단어를 썼는데 지구에 심각한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보려는 시각에서 ‘생태’라는 의미를 사용하게 된 듯 하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들도 일하고 잠자고 쉴 수 있는 집과 일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여기서 환경주의와 생태주의에 대한 말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면 좋겠다. 우선 환경주의(environmentalism)는 깊은 수준에서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 과학 기술과 산업의 발전 등과 함께 근대의 경영 방식을 활용하여 환경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인간 중심적인 성격을 띤다. 예로들면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말로 결국 인간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대신 생태주의(ecologism)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근본에서 다시 설정하고자 씨름한다.  생태주의는 `환경` 대신에 `녹색` 곧 `생태`의 낱말을 써 자체의 급진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자기 중심성과 탐욕에 대한 도전이다.

   
▲ 자연생태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야생 남과 녀(숨은그림 찾기) 풍경

인간을 뺀 생태계는 쓰레기가 없다. 즉, 폐기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전 우리네 삶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4천년의 농부'(프랭크 히람 킹, 곽민영, 들녘, 2006)란 선조들의 삶을 그린 책을 보면 불과 100년 전 한국, 중국, 일본을 답사한 미국 농림부 토양관리국장의 시선이다.

그는 1900년대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인분을 바다로 그냥 버리는데 익숙해진 반면 자신이 돌아본 3국은 사람과 가축의 인분을 재이용(거름으로 자원순환) 한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뿐만아니라 상하수도 필요없는 친환경생활과 옷가지도 거름으로 재활용하는 것을 보고 그는 이것이야말로 유기농업의 원류라고 감탄했단다.

과거 자연과의 조화를 통한 순환적 삶이 어느 한 부분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사회속에 자연스럽게 체득된 생활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된 것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될 양분이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 알수록 생태계 내에 존재하는 작은 미물이라도 끔찍히 사랑해야 되겠다는 깨달음이 온다.

그동안 우리들이 누렸던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은 공생 공존하려는 생태계를 외면한 결과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미명하에 자연생태계를 마구 훼손하고 파괴하는 개발과 발전만을 생각해 왔던 것이다. 무엇을 위한 개발이고 발전인지를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재 우주에서 지구라는 별은 50억 인구를 확실하게 먹여 살리면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계획되어진 행성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동ㆍ식물이 생존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의 힘에 의존하게 되면서 오로지 경제성장만을 가속화시켰다.

   
▲ 숲에는 붓꽃만이 아니라 다양한 풀들과 공존, 보라빛과 녹색의 조화

그것은 인류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무절제한 자원이용을 유발하고, 과다한 공해물질 배출로 급기야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렀다.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원을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을 위해 거의 다 쓰다시피 한 것이다.

그 결과 지구의 자정(自淨)능력(carrying capacity)이 현저하게 저하되어 범지구적 차원의 대응을 요하는 긴급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지구의 온난화, 오존층 파괴, 산성비, 열대림 감소, 생물다양성 감소 등 심각한 환경파괴에 더해져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태와 같은 재앙적 수준의 핵 위협까지 낳은 것이다.

인류가 끝가지 자연을 억압하고 희생시킨다면 자연생태계 뿐 만 아니라 인류도 언젠가는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는 사실은 왜 모르는지...

   
▲ 가끔 하늘을 보면 온통 연두빛으로 장관

이에 앞으로의 삶은 너와 나가 따로가 아닌 함께라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생활을 겸손하게 낮은 자세로 에너지 뿐만이 아닌 의식주 전반에 걸쳐 지혜롭게 사용하기 위한 적정한 삶의 기술을 발휘할 때다.

최근 먹는 문제를 연구한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암 연구소가 쥐에 종양 세포를 투입한 뒤 고탄수화물과 저단백 먹이를 주어 실험했는데 그 결과는 저탄수화물과 고단백 군이 고탄수화물과 저단백 군에 비해 종양의 진행이 현저히 느린 것을 발견했다.

결론은 저탄수화물과 고단백 식사가 암 발생위험을 줄인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에너지 과소비적 먹거리를 멀리할 뿐만 아니라 의식주 전반에 걸쳐 자기 중심성과 탐욕을 줄여 나가야 한다. 한마디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의 생명은 서로 끊을 수 없는 고리로 이어져 있어 인간중심적 사고를 탈피하고 환경문제에 접근하고자 해야 한다는 것이다.

   
▲ 깊은 숲 속에 자리한 뭇 짐승의 생태화장실(?) 풍경

자연환경 파괴에 대해 한 네티즌(bcd028님)은 "요즘 자연파괴가 심하기는 한데 과연 사람들이 그것을 인식할까요? 원래 사람들은 자기가 겪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에 내가 안 해도 괜찮겠지 라는 마음을 갖고 있어서 그러는 것 같아요. 자연이라는 자체가 바로 옆에 있는 친구처럼 대해주면 될 것 같아요."라며 이야기 했다.

그렇다 어려운 이웃사랑뿐만 아니라 자연사랑까지도 쉽고 단순한 것을 생활로 실천했으면 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꾸미지 않은 자연과 함께 감동하는 삶으로 생태적 생활을 넘어 공동체적인 생활 그리고 영적인 생활을 이루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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