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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조카의 눈물설날 무정한 오초당숙 등에 기대 운 살가운 조카를 생각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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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2월 05일 (일) 00:00:00 [조회수 : 17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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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추석 때 찍은 조카
김희의 얼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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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큰집에 들러 간단히 점심 요기를 하고 일어서려는 참에 작은방에서 고스톱 치던 조카들 일행 중 작은이모 큰아들 영옥이형의 장남인 희란 녀석이 취기 도는 얼굴, 꼬부라진 혀로, 안방에 들어와, 덥석 내 손을 잡는 거다.
그 집은 외가인 초도에서 기밀도 기밀면(금일도 금일면)까지, 거기서 다시 아부지 고향 장흥으로, 거기서 서울 해방촌으로, 광주 대단지로 평생 그림자처럼 울엄니를 따라다녔다. 두 분이 평생 살면서 웃고 때론 싸우고, 돌아가실 땐 원수처럼 등 돌리고 사셨는데, 희라는 놈은 한쪽 눈이 헬끔한 작은이모의 첫 남편 장손자다.
칠순을 바라보는 영옥이형 3남1녀 중 유일하게 장가 들어 토끼 같은 아들딸 하나씩 데리고 큰집에 세배하러 왔다는데, 자기 집처럼 일어설 줄 모른다. 그는 오촌간인데도 날더러는 멋쩍게 삼촌, 삼촌하고 살갑게 부른다.
술상 앞에서 영옥 형은 한 때 강원도 양구에 내려가 살던 이야기꽃을 피웠다, 거기서 그 곳 사람 오가란 작자에게 친동생 추자 누님을 시집보냈는데, 결국은 만취한 매형 오토바이 뒤에 타고 오다가 그 누님은 머리가 여러 번 바닥에 찧여 절명하고 말았다. 나도 신혼초에 그 집에 가서 정 많은 누님 신세를 졌는데, 내 인생에 가장 가장 달고 시원한 수박도 거기서 맛 보고, 입에서 불붙던 양구고추와 밥상에 국 대신 한 바가지 퍼 주던 냉수를 잊지 못하겠는데, 그 누님이 종종 그립다.
거기서 큰이모 작은아들 김판남 형이 살모사에 물려 퉁퉁 다리가 부었던 일, 영옥이형이 우연히 나무하러 가다 너구리 굴을 발견하고, 동네청년들 다섯을 데려가 굴을 막고는 솔가지 분질러 태워 켕켕거리며 나오는 놈들 일곱 마리를 몽둥이로 때려서 일망타진한 이야기는 또다시 들어도 새롭다. 아, 제보자인 형은 두 마리나 챙기고, 기름진 뒷다리 하나만 해방촌에 가져와, 우리 이종들 간에 구워 먹었다는데, 나도 그 맛보았는지 기억엔 없지만, 형은 질졸은 최상품 그 모피를 팔러 돈 좀 벌겠다고 남대문시장에 가서 지게 위에 받쳐 놓고 잠간 화장실에 들른 사이, 와 보니 누군가 엿보다가 훔쳐가고 말았다는 허탈하던 옛 이야기 맞장구치며 들어 준다.
그렇게 순박하고 때 안 묻은 영옥이형은 시골서부터 부지런한 소처럼 뛰어다니며 일만 해 온 사람이라, 이제도 힘은 넘치지만, 이놈의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세상에선 70세 노인은 어디도 받아 주지 않는다고, 하소연이다. 그래서 소안도 맹선리 길도 없어진 밀림 같은 임야를 빌려 주면 개간해서 움집도 짓고 타조, 염소, 닭이나 키우고 살겠다고 애소하는데, 나는 제발 그렇게 그러십쇼, 할 수밖에.
술이 발갛게 올라온 형은 백혈병 든 씨따른 동생 정능의 만옥이형 집에 식솔들 한 차에 태우고 문안하러 나가는 길에, 희란 그 녀석은 이미 가 봤다고 빠지는 게 섭한지 형은 "그래도, 가 봐야지"하시곤 헝하게 나가셨다.
희는 마흔 두엇, 나는 무심해서 나이도 모른다. 깨벗고 놀던 시절부터 그 녀석을 보아 왔지만, 내 친조카도 열넷이라서 놀아 준 적도 이름도 불러 준 적 없는 사이다. 그런데 술김인지 나를 붙잡다니, 봄비엄마도 우리 애들도 다 빤히 쳐다보는데, 집에 가고 싶어서 딸내미는 벌써 입이 나오고 마음바빠 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상처받을까 봐 밀어 내거나 거부하지도 못하고, 놈도 부끄러워 그 놈 말만 "그래, 그래" 하며 들어 준다.
"삼촌, 삼촌, 일배 삼촌, 난 어려서부터 삼촌이 좋았어요. 말 한번 못 해 봤지만 전 삼촌을 잘 알아요. 삼촌이 얼마나 똑똑하신지도, ... 저희 조카들도 모이면 늘 삼촌이야기를 해요... " 그러고는 내 오른손을 끌어 입을 맞추는 게 아닌가? 이크, 이 녀석이 혹시 호모 아냐? 뜨끔해져서 안절부절 못하는데, 뭐시라고 주절주절 하다가 등뒤로 나를 감싸안고는 목덜미에 얼굴을 박고 기대는 거다. '여보, 날 좀 도외줘.' 청하고 싶었지만 말도 못 꺼내는 판인데, .. 어라? 내 목덜미에 뜨거운 물이 젖어들다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저런, 뭔가 말할 수없는 슬픔에 넘쳤는지 자기 설움에 겨웠는지 그 녀석은 내 등에 몸과 얼굴을 파묻고는 흐느끼는 거였다. 난생처음이다. 사나이가 언제 내 등에 기대 운 적 있었던가? 그런데 자꾸 등이 뜨거워져 오는 것이다. 뜨거운 눈물이 와이서츠와 런닝셔치를 적시고 속살에 닿았다. 눈물이젖은ㅅ갈마다 무슨 파스를부친듯이 후끈거리기시작하는 것이다. "그래, 알았어,. 알아. 울지 말고.. 그만 울게." 그리고 양손을 두 손으로 잡고 어루만져도 주고.. 볼에도 뽀뽀까지도 해 주는 거다. 소주 냄새가 코를 지른다. 그 와중에도 이성적인 나는 쾌감과 불쾌감의 조합을 분석하면서, 안절부절한한다. 인생 50여 년에 하고 많은 주당들 주정을 다 받아 봤지만, 이렇게 진땀나게 한 적은 없었다.
한동안 그 혼에 들러붙은 괴로움을 달래 주며 들어 주고 있다가, 조금은 진정이 되는지 작은방으로 쏙 돌아갔다. 그 때 뜨악한 모습으로 지나치던 큰집 장조카가 하는 말이, 그 집 사람들은 영옥이 형님부터 술만 취하면 사람 붙잡고 우는 게 내림이라고 들려 준다. 얼마나 무안한지, 그러고 보니 전에 영옥이 형님도 만취하면 인정사정 안 가리고 엉겨붙고 울던 모습이 환히 떠오른다. 씨도둑질은 못 한다던데 정말 재밌다. 내가 일년에두 번만 큰집에 내려와 얼굴 보기도 어렵고, 게다가 자녀들도 어른만큼 다 컸는데, 이젠 형제지간에도 얼굴도 몰라 보겠으니 정말 아쉽다는 거였다.
차로 집에 오는 길에 계속 눈물이 젖은 그 등짝이 드끈뜨근했다. 오래 살다 보니 별일도 다 보겠지만, 진종일 그 녀석의 붉은 눈시울이 어른거리고, 그 녀석 얇은 입술이 닿은 목덜미가 후끈거렸다. 내가 가족이든 친족이든 누구에게든 정을 못 고 무심하게 산 사람인데, 이번 설 이후 내내 가슴이 찔렸다. 생전에 엄니도, 단 한분 남으신 큰고모님도 '일배, 넌 참 무정한 놈이구나.' 하시던 질책이 떠오른다. 친조카들에게도 살갑게 손이라도 잡아 준 적 없이 황급하게 집으로 내빼던 내가 얼마나 야속했길래, 모일 적마다 내 이야길 한다고 했을까?
어릴 적에 내가 인사성이 없다고 "열번 보면 열번 인사해라."라고 귀에 못박히도록 타이르신 아부지의 음성이 다시 들리는 듯했다, 설 쇠고 강릉 권형제 가족이 밤늦게 집에 찾아왔을 적에도 난 책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무심한 내가 정말 부끄럽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잘난척 하고, 목이 곧고 교만하고, 정 줄줄도 모르고, 타산적인 나 같은 사람은 정말이지 한심하다. 그런데 희라는 먼 조카놈이 나를 위해 눈물을 비오듯 뿌려 주다니, 내게는 퍽 고맙고도 민망했다. 나의 도도함이 부끄러운 설날,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할꼬?
내 친구들에게도 내가 얼마나 못되게 군 사람인가..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ㅠ,ㅠ
2006-0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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