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봄이요, 여름은 여름이다

벌써 5월이 초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늘어가는 말이 ‘벌써’라는 단어입니다. 꽃과 신록으로 뒤덮인 북 버지니아 5월은 눈부시게 화사하기만 합니다. 아니 화사하다라기 보다는 차라리 ‘찬란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합니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유년시절에는 사계절 중에 겨울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남들처럼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장난감이 없었던 가난한 시골에서 자라난 나에게 겨울철 눈만큼 좋은 장난감은 없었습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면 이른 새벽부터 잠을 설치고 일어나 집 앞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친구들과 신바람 나게 눈싸움을 하며 썰매도 탔습니다. 그 놀이는 하늘이 주는 최고의 놀잇감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평한 놀이였습니다.

나이가 조금 들어 개 수영을 배운 후부터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긴 여름방학을 동네 개울가 저수지에서 벌거벗은 알몸으로 텀벙대며 개헤험을 치면서 여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좋아하는 계절이 또 여름에서 가을로 다시 바뀌었습니다. 가을이 되면 낙엽 떨어지는 숲속 길을 시몬처럼 쏘다녔습니다. 누군가를 우연히 마주칠 지도 모른다는 설렘으로 숲을 거닐었습니다. 빨간 단풍잎이 담긴 첫사랑의 편지를 받았던 때도 어느 가을날 오후 숲속 이였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난 후에는 좋아하는 계절이 봄, 화사한 오월로 바뀌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유난히 오월을 좋아하는 그녀를 따라서 봄은 연인처럼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순이 지난 요즈음에는 특별히 좋아하는 계절이 없습니다. 굳이 누가 좋아하는 계절을 물어오면 모든 계절이 다 좋다고 대답합니다. 며칠 전 골프를 같이 치던 선배가 은퇴시기를 두고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나는 군복무를 서해 백령도에서 보냈다. 한번은 모범사병으로 특별 휴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시기가 적당치 않다는 이유로 휴가를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그러나 다음 기회는 오지 않았다.  결국 휴가를 찾아먹지 못하고 제대를 해야만 했다. 그 후부터 나는 무슨 일이든 기회가 오면 우선 움켜쥐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 이유로 62세가 되자마자 은퇴를 하게 됐다. 나는 조기은퇴를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이 여태껏 즐기고 있다. 남이 뭐라 하든 내가 조기은퇴를 한 것은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라 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라는 옛 말이 있듯이 ‘생각에 걸면 생각걸이다.’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一切有心造’라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