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고발 그리고 염려


결혼 이민자들의 현실


내가 필리핀에서 만난 대부분의 필리핀 여인들은 얼굴이 울퉁불퉁하고, 코가 뭉툭하고, 몸이 뚱뚱하고, 피부가 햇볕에 그을리고 검게 타서 한국 여인들보다 못생겼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잘 생긴 편이다. 필리핀에도 스페인 혈통을 받은 사람들은 상당히 잘 생겼는데 아마 이들은 스페인계 인가보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 물으니 필리핀 가서 직접 골랐다고. 열대여섯 명 서 있는 곳에서 잘생긴 여자로 한명 골랐으니 미인이 아닐 수 없다. 부부지간이라는데 나이차이가 너무 나는 것 같다. 실례가 됨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나 혼자뿐이므로 살짝 나이를 물어 보았다. 남자는 61세이고 여자는 34세라고. 27세나 차이가 나는 부부다. 남자는 말투와 행동이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고 몸이 마르고 쇠약한 것이 건강이 좋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여자는 젊고 인물만 잘 생긴 것이 아니라 필리핀에서 대학도 나왔고 한국에 온지 10년이나 되어 한국말도 제법 잘 하며 매우 똑똑해 보인다. 그 옆에 있는 남자는 나이가 54세이고 부인은 32세이다. 그 부인은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태어나 자랐고, 간호대학까지 나온 것에 비해 그녀의 남편 역시 한국말도 어눌하게 말하는 모습이 약간 무언가 부족한 점을 금방 알게 된다. 그리고 요즈음은 직장도 없는 상태라고.

필리핀에서 결혼이민 온 이 여자 분들은 하나같이 한국에서 바쁜 일상을 보낸다. 두 번째 여인의 경우, 오전 6시 30분에 모회사로 출근하여 사장님과 직원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겨울에는 이른 아침 출근하다가 얼음판에 미끄러져 많은 고생도 하였다고! 아침 수업을 마친 후 곧 집으로 달려와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편과 두 자녀에게 아침을 해주고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낸다. 그러고 난 후 오전엔 자기가 운영하는 필리핀 편의점에 출근하여, 물건을 팔며 가게에서 남편과 유치원 다녀 온 아이들의 점심을 해 먹인다. 오후 2시에 다시 학원에 나가 영어를 가르치고 오후 5시에 끝나고 가게로 돌아와 가게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 저녁을 해 준다. 그리고 밤 10시까지 가게에서 손님을 받다가 퇴근한다. 이들의 집은 물론 시내지역을 벗어난 농촌지역이다.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밤 11시는 된다고! 필리핀 여자들의 생활력은 한국 아줌마들 못지않게 강하다. 그녀가 이렇게 바쁘게 하루를 사는 동안 그녀의 남편은 별로 할 일 없이 가게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가끔 아이들이 좀 실수하면 아이들에게 신경질이나 내고 야단치는 게 일과이다.

어느 날 내가 그들의 가게를 방문하여 잠시 머무는 동안, 한 번은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다섯 살 된 딸아이가 실수하여 상 모서리에 얼굴을 부딪쳐 아프다고 울어대었다. 그러자 아빠라는 사람이 어린아이를 달래지는 않고, 시끄럽다고 화를 내며 내가 보고 있는데도 울고 있는 어린 딸의 등 뒤에서 구둣발로 등허리와 엉덩이를 차며 아이를 마구 야단친다. 아이가 아버지의 발길질에 쓰러져 울어도 무관하고 더 세게 막 발로 찬다. 어린아이가 놀래서 주저앉아 오줌을 싼다. 어떻게 아비가 되어 울고 있는 어린 딸을 구둣발로 찰 수 있단 말인가! 그의 난폭한 행동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 필리핀 엄마가 참다못해 아이를 떠안고 달아나며 아이를 달랜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고 그곳에 갈 때마다 여러 번 그러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그와 같은 한국인으로서 외국인 부인에게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못들 정도이다.

남편이 아이를 때리다 스스로 화를 참지 못해 밖으로 나간 사이, 부인이 남편에 대해 내게 막 불만을 퍼붓는다. 언제부터인지 난 자연스럽게 그들의 상담자가 되었다. 그리고 난 그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시간나면 결혼이민자들이 자주 드나드는 그곳을 방문한다. 부인은 상당히 믿음이 좋은 자매였다. 필리핀에 계신 친정 부모님이 모두 신실한 기독교인들이고 그녀는 모태신앙이다. 시집오기 전엔 교회에서 찬양대원과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였다. 남편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남편이 변화되길 매일 기도한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다. 지금 다니는 한국교회 목사님의 권면에 의하여 요즈음은 장로교 모 군소신학교에 입학했는데, 아무 할 일없이 노는 남편이 목사님이 되어 필리핀으로 선교가게 되길 소망하며 기도한다고. 그런데 남편은 교회 다니면서도 기도한번 안하고 성경도 전혀 읽지 않는다고. 필리핀 선교사로 가려면 영어나 따갈로그를 배워야 하는데 가르쳐 준다고 해도 배우질 않는다고 안타까

자기는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신호등에 걸리는 시간이면 잠시 성경을 읽고, 성경을 핸드백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틈만 나면 회사에서도 읽는데, 전혀 성경을 안 읽는 남편이 어떻게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될지 걱정이라고.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남편의 성격이 변화되고 거듭나서 훌륭한 목사님이 되길 기도한다고 희망을 잃지 않는다. 남편이 자기나 아이들에게 구타를 하든가 거친 행동을 자주 하는 바람에 몇 번이나 이혼하려고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리고 시누이와 시집식구들의 시집살이가 힘들어 몇 번이고 헤어질 것을 생각해 보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그리고 아이들이 불쌍해서 이혼하지 못한다고. 눈물을 흘리며 내게 맘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모두 쏟아낸다. 물론 개중엔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러한 모습이 바로 한국에 시집와서 사는 결혼이민자들이 겪는 고통의 한 면이다.

내가 아는 또 다른 결혼이민자 중에 나의 지역 가까이 시골 농가에 시집온 이도 있다. 그녀는 필리핀에서 고등학교 생물선생님이었다. 남편은 중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고 시아버지가 농사짓는 과수원집에 함께 살면서 영업용 택시 운전을 하였다. 결혼 후 얼마 안 돼, 운명의 어두운 그림자가 그에게 가까이 왔다.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를 하나 절단하고 아무 일도 못하게 된 것이다. 가끔 쉬는 날 과수원 일을 돕던 남편의 일을 이제 부인이 대신 하게 되었다. 시골에 일꾼 구하기가 힘들어 부인이 남편 대신 시아버지를 도와 과수원 일을 하는 데, 농촌일이라는 게 끝이 없어 하루 온종일 시아버지 옆에서 쉴틈도 없이 시중들어야 되는 판이다. 키가 조그맣고 일하느라 바짝 마른 30대 젊은 부인이 하루 종일 땡볕에서 과수원 일을 하면서도 불평하지 않는 이유는 그나마 착한 시아버지가 용돈을 매월 꼬박꼬박 주시어 고향 친부모님께 부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얼굴 표정은 생기와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고, 신경 없는 마네킹처럼 무덤덤하게 변하였다. 옛날 시집오기 전 필리핀에서 고등학교 선생으로써 아이들을 가르치던 열정과 생동감은 모두 사라지고 그녀는 지금 운명의 무거운 짐을 지고 지쳐 신음하고 있다.

또 한 여인은 이미 이혼을 앞두고 별거하는 중이다. 그녀도 물론 남편과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난다.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 않아 부인이 공장에 다니는데, 매일 아침 오전 7시에 출근하여 잔업까지 하고 밤늦게 귀가하여 집안일을 돌보느라 피곤해 죽을 지경이다. 그런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병들어 몸저 누워있는 시모님이 시집살이를 호되게 시키고, 남편은 생활비도 안주고 매일 부인을 괴롭혀 견디다 못해 요즈음 별거 중에 있다. 이혼을 하려고 해도 남편이 승낙을 해주지 않아 이혼도 못하고 혼자 방을 얻어 공장에 다니며 아이와 떨어져 외롭게 지내고 있다. 위 네 가정의 이야기는 조그만 중소도시인 내 고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상황이다. 전형적 보수지역인 충정도의 조그마한 우리 관내에만도 약 500가정 이상이나 되는 많은 결혼이민자들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이 가정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이 시집오기 전 가졌던 코리안 드림은 이미 벌써 물 건너 간지가 오래다. 이들은 이제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노력할 뿐이다.

서로 문화가 다르고, 나이 차이로 인하여 세대차이도 나고, 게다가 학력 차이까지 심하여 겪게 되는 이주민들의 문화충격(Culture Shock)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러한 고충으로 인하여 한국 전체에 결혼 이민자들 중 약 7.1%가 이미 별거중이거나 이혼한 상태이고(문화일보 2011.4.11.), 약 30%의 분들이 이혼을 하려고 망설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건 통계일 뿐, 내가 직접 만난 결혼이민자들은 거의 90%가 갈등을 겪고 있다. 그리고 이들 이혼가정의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친척집이나 고아원에서 불행한 삶을 사는 아이들도 상당히 많다. 앞으로 이들의 문제가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필리핀 현지인교회 순방예배


매 주일마다 필리핀 현지인들의 교회를 순회방문하며 설교하였다. 민도로 전체에 크라이스트 어브 갓(Christ of God) 교단의 교회가 20개 있는데, 그 중에 일곱 개 교회가 로하스 시 근처에 있다. 금번에 매 주일 한 교회씩 택하여 그 일곱 개 교회를 모두 순방하였다. 그분의 필리핀 관공서 일을 도와주는 현지인 마담 뿌빠가 마침 신실한 믿음의 자매여서 그 자매님이 매주 우리를 위하여 교회를 안내하였다. 구불구불한 산길에 버스를 타고 약 2시간 정도 달려가 다시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물어물어 찾아 간 적도 있고, 그 분의 차를 타고 논길을 굽이굽이 돌아 바닷가 마을에 있는 교회를 찾아간 적도 있다.


필리핀 현지인들의 예배 분위기는 어디를 가나 언제 보아도 매우 역동적이다. 미국교회의 영향을 받은 그들은 매 주일 예배가 마치 잔칫집 축제처럼 신나는 분위기다. 예배시간에 찬송을 부를 때 마다 모든 교인들이 일어나 손을 들고 춤을 추며 신이 나서 찬송을 부르는데, 약 10곡이나 되는 노래를 복음송가집도 없이 모두 암기하여 부른다. 상당한 암기력인가? 아니면 은혜가 넘쳐나 모든 가사를 저절로 암기하게 된 것일까! 그럴 때마다 우리 일행도 흥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따라 부른다. 찬송 부르다가 통성기도 시간이 되면, 모두 손을 들고 간절히 기도하며 온 교회가 회개와 감사하는 마음으로 눈물바다가 된다. 그리고 교인들과의 교제 시간이 되면 온 교인이 돌아가며 서로 끌안고 손을 맞잡고 반가워한다. 정말 축제의 한 마당이다.


1년에 태풍이 300번이나 지나가고, 환경과 기후가 열악하여 늘 위기상황에 직면하여 있는 바람에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것일까? 어딜 가든지 그들의 예배는 확고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렇게 열정적이며 뜨거운 믿음을 가진 자매가 한국에 시집와서 인격적으로 심한 수모를 당하던가, 생활비를 버느라고 고통 받는 모습을 보면 같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시골문화의 변화


지금 한국의 시골 마을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잔잔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시골 총각들이 한국여자와 결혼할 수 없어 외국에서 여자들을 데려오는 바람에 시골에는 요즈음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 사는 다민족 마을을 이루어가는 곳이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다. 베트남, 중국, 필리핀, 몽고, 라오스, 캄보디아, 심지어는 먼 스리랑카에서 시집온 까만 여자들도 있다. 이들은 물론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함께 가지고 시집왔다. 이들은 고부간의 갈등, 남편과의 갈등보다도 그들과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 때문에 더 큰 갈등을 겪는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종교를 우상시하거나 멸시하는 바람에 그들의 속마음은 더욱 큰 상처를 입고 있다. 이제 세상은 인터넷 망과 전자혁명을 통하여 전 세계가 하나로 묶여지고, 지구촌이 한 운명공동체로 변하여 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린 더 이상 단일 민족, 단일 언어, 단일 문화만을 고집할 때가 아니다. 변화하는 지구촌의 다원문화 속에서 모두가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사는 계획을 세워야 할 때이다. 불과 몇 년 전부터 빠른 속도로 우리 농어촌은 다원문화사회로 자연스럽게 변하여 가고 있다. 외국에서 시집 온 여인들이 비록 이방여인일지언정 그들이 낳은 자녀는 엄연히 한국국적을 가진 한국인이다. 앞으로 그들이 성장하면 다원문화와 다원종교로 인하여 배타적인 기독교인들과 상당한 문화 충돌이 예상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미 30여 년 전에 내가 다니던 신학대학에서는 ‘다원주의사회에서의 기독교’란 제목으로 강의를 하며, 미래에 전개될 다원문화사회에서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이런 문제를 극복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가르쳤다. 그 때 그런 가르침을 할 때, 교회현장에서는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였고, 알아들을 필요도 없는 허공에 울리는 꽹과리 같은 시끄러운 소리였다. 미래에 전개될 위기상황에는 관심 없고, 오직 교인 숫자 늘리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교육을 시키는 선생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사회에서 매장시켜 버렸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근본주의자들이 고인이 된 그런 분들의 신학사상은 금기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한국교회를 위한다면 미래에 전개될 다원문화사회에서의 한국기독교의 위기에 대하여 염려하고 걱정하며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따듯한 봄날 겨울에 얼었던 축대가 갑자기 무너져 내리듯이, 정신없이 뼈대만 자란 어른 아이와 같은 한국기독교가 조만간 밀고 닥쳐 올 제3의 물결을 어떻게 막아낼지 걱정이다. 일본에 밀어닥친 쓰나미가 육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였다면, 이 제3의 물결은 우리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강력한 쓰나미로 작용할 터인데 이를 어쩌면 좋으랴! 눈에 보이는 쓰나미보다, 보이지 않는 쓰나미가 더 위험하리라 생각된다.


선교는 무작정 복음을 전하여 서로 다른 이웃종교인들과 배타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어 위기를 조장하는 게 아니고, 온 인류가 서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생명운동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의 이 말씀은 당시 유대교의 편협한 종교사상을 지적하였을 뿐, 배타적인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 아니다. 예수의 메시지는 어느 한 종교를 위한 말씀이 아니고,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구세주의 사랑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일서 4장 8절)

자료제공 : 아시아미션(http://www.amccm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