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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님, 고난주간입니다
김영동  |  deom-past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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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4월 21일 (목) 21:37:24
최종편집 : 2011년 04월 21일 (목) 22:06:32 [조회수 :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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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2011.   4.   18

   고난주간에 나는 내 나이 들어가며 그나마 얻은 일천한 경험과 지혜로 사람살이 대충 다 아는 듯 두루뭉수리 하게 살아온 내 생활과 주장을 내려놓고 다시 질문하는 한 마디에 집중합니다.

 

왜?

 

   그 시절, 젊음이 뜨겁게 몰입하는 열정과 젊음이 지닌 모든 가능성으로 오히려 불확실한 오늘과 내일이 되던 그 긴장감과 혼란스러움과 공허함이 가득하던 질문의 바다에 과감히 다시 몸을 던집니다.

 

왜?

 

   그렇게 고난의 십자가와 직면하고 온 몸으로 그 십자가의 기를 걷고 계신 우리 주님 곁에 서서 당신은 왜? 그래야 하시는지 다시 묻습니다. 이제까지 알고 있는 모든 앎을 발아래 두고 처음처럼, 그 처음처럼 두렵고 떨리는 가슴으로 다시 묻습니다.

 

왜?

 

   주님, 이렇게 올해는 그 뜨겁던 질문의 고뇌 속에서 나로‘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고백한 그 진한 만남의 첫사랑의 자리로 나는 이끌어주소서!

 

 

 

꽃들은 왜 ?

 

문 태 성

 

똑같은 흙속에 뿌리를 두고

똑같은 물을 먹고

봄마다 왜

다른 색의 꽃들을 피우는지?

 

겨우내 참았던 꽃망울 울음

터뜨리고 싶은 충동질을

왜 앞 다투어 나서는지?

 

백목련, 홍목련 그늘과

담장 가득 개나리 꽃밭,

진달래 뿌려댄 산 허리춤,

마중 나와 늘어선 벚꽃들이

왜 흐드러지게 모여 광란하는지?

 

사연을 알 때쯤엔

꽃들은 웃으며 떨어지고

봄은 떠나는지?

*

*

*

 

 

   주님, 여전히 먼 하늘 바라보시며 침묵하시고 문득, 문득 한 장면마다 굳이 마디마디를 만드시려는지 침묵을 깨고 던지시던 세 마디, 사랑하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며 가롯사람 유다에게, 잡히신 후에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그리고 새벽에 끌려가 선 법이라는 자리에서 빌라도 총독에게 문득 마디를 만드시려는 듯 침묵을 깨시고 그들의 질문에 던지신 한 마디!

 

‘네 말이다’

 

   이 말씀은 평소에도 읽으면서 외면하고 싶고 못들은 것으로 하고 싶었던 말씀이었는데…… 오늘은 주님께서 나를 향해 던지시는 한 말씀처럼 선 날이 예리하고 날카롭기만 합니다. 아아, 주님! 주님이 서 계신 곳과 그걸 바라보고 있는 내가 서 있는 이곳을 그렇게 선명하게 갈라놓으시고, 주님과 나를 마디마디로 구별하고 나누시듯 이렇게 냉정하게 갈라 놓으셔야만 합니까? 섭섭하고 서운하고 서럽기 조차합니다.

 

‘So you say'

 

   굳이 침묵을 깨고 주님이 나에게 던지신 한마디인‘네 말이다’때문에 나는 긴 침묵의 시간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서러운 시간에도 놓지 않는 한 마디는…!

 

왜?

 

   침묵은 온전히 익어가는 시간입니다.

   말없이 성숙해가는 시간이고 마침내 손끝에 밀려오는 알아차림의 시간입니다.

   그 알아차림의 순간에 나는 낚싯대를 힘차게 채듯 그 알아차림을 낚아 올렸습니다.

   그렇게 알아차린 앎은 말이면서도 말이 아니라 온 몸에 밀려드는 실존이며 나를 살리는 생명력입니다. 천개의 진리 중에 999개를… 아니, 아니야! 천개의 진리 중에 그 천개를 다 안다하나 그 천개의 진리와 내 생활이 하나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구나! 천개의 진리 중에 단 하나를 알아 그 하나를 먹어‘나’이거나 그 하나에 내 온 몸과 생활을 던져 넣는 그 하나여서 다 이거나 였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거기 오직 하나로 서 계시며 마디마디를 만들듯 나를 밀어 내셨고 나를 나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더 이상 나에게 고난도 부활도‘너’에게 알려주고 가르쳐야 할 숱한 앎과 지식이 아니라 내 손으로 만져지는‘내’ 삶과 생활이어야만 했습니다.

 

   아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지금여기 내가 이렇게 살고 있듯 너무 익숙한 저기 저 먼 이야기인 십자가 고난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성령강림! 주님은 그렇게 본이 되어 고통 속에서 깊은 숨을 쉬시며 사랑의 눈으로 나를 지켜보시며 올해도 거기 그렇게 살고 계십니다. 아아, 주님 나로 주님께 온 몸으로 뛰어드는 침묵이며, 오히려 짙은 어둠이게 하소서! 주님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주님과 하나 되는 이 고난주간을 살게 하소서. 고통으로 떨리고 찢겨 피 흘리시는 주님의 몸을 외면하지 않고, 등 돌리지 않고, 치 떨리는 온 몸의 아픔으로 끝까지 함께 있게 하소서. 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이것마저 여전한 말에 그치지 않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나만의 내 고난과 부활이어야 하는 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하소서. 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

 

 

성 금요일의 기도

 

이 해 인

 

오늘은 가장 깊고 낮은 목소리로

당신을 부르게 해 주소서

더 많은 이들을 위해

당신을 떠나보내야 했던

마리아의 비통한 가슴에 꽂힌

한 자루의 어둠으로 흐느끼게 하소서

배신의 죄를 슬피 울던

베드로의 절절한 통곡처럼

나도 당신 앞에

겸허한 어둠으로 엎드리게 하소서

죽음의 쓴잔을 마셔

죽음보다 강해진 사랑의 주인이여

당신을 닮지 않고는

내가 감히 사랑한다고

뽐내지 말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했기에

더 깊이 절망했던 이들과 함께

오늘은 돌무덤에 갇힌

한 점 칙칙한 어둠이게 하소서

빛이신 당신과 함께 잠들어

당신과 함께 태어날

한 점 눈부신 어둠이게 하소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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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암 (72.205.29.125)
2011-04-21 22:22:47
아름다운 시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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