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와 애국가

▲ 정재원 목사

공군 K-16기지인 성남 비행장 활주로에 쓸쓸하게 서 있는 대한항공 전세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320명을 태울 수 있는 대형 비행기였지만 큰 활주로에 홀로 서있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습니다. 이른 새벽 우리를 환송하기 위해 나온 특전사령부 소속 간부들과 군악대가 우리를 진심으로 격려해 주었습니다. 군악대의 연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큰 활주로를 가로질러 태극기를 앞세우고 비행기를 향해 걸어가는 순간 군악대의 연주가 군가에서 애국가로 바뀌었습니다.

앞장 선 대형 태극기와 애국가! 그리고 적은 수였지만 환송간부들의 손에 들려 있던 작은 태극기들…. 울컥 했습니다. 그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애써 눈물을 삼키며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 이라크를 향하였습니다.

거꾸로 돌아간 국방부 시계

성남 비행장을 이륙한 비행기는 서울 상공을 날았습니다. 한눈에 보이는 서울 시내가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김포공항이나 인천공항을 이용할 때는 볼 수 없는 장면이라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창밖을 내려다보며 엄청난 규모의 서울 시내를 감상했습니다. 50년 전 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나라가 이 정도로 발전해서 이제는 세계평화를 위해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 편이 뿌듯했습니다.

성남비행장을 이륙한 비행기는 11시간을 날아 쿠웨이트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국군 장병 여러분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합니다”라는 스튜어디스의 인사말을 들으며 비행기에서 내리려고 준비하는데 순간 뒤쪽의 병사들 사이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야, 이거 뭐야? 지금 몇 시야! 미치겠구만! 국방부시계가 거꾸로 돌아갔잖아!”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6시간의 시차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걱정말게, 무사히 임수를 완수하고 복귀하는 날에 앞으로 날아가는 국방부 시계를 볼 수 있을테니까!’

핸드폰의 망령

한국을 떠나 쿠웨이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아르빌에 도착한 이후에도 한동안 깜짝 놀라 주머니를 뒤지곤 했습니다. 바로 핸드폰 때문입니다. 잘 있다가도 갑자기 뭘 잃어버린 사람처럼 주머니를 뒤지며 핸드폰을 찾거나 핸드폰 진동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나면 허둥대며 주머니를 뒤지다가 이내 웃음을 짓곤 했습니다. 게다가 시간을 알고 싶을 때에도 순간순간 핸드폰을 찾으니 그 동안 얼마나 핸드폰에 의존하며 살았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한 달 반 동안 파병 준비를 하며 핸드폰 전화요금만 삼십만원이 넘게 나왔으니 거의 핸드폰을 붙들고 산 셈이지요. 요즘은 핸드폰이 시계와 전화기 역할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화상통화를 하기도 하고 문서를 주고받으며 회의도 한다니 참 놀랍기만 합니다. 핸드폰이 우리에게 참 편리한 삶을 가져다 준 것은 확실한데 우리의 예배와 신앙생활에는 결코 도움만 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예배를 드리다가도 급한 문자들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고개를 숙이고 통화를 하는 사람들까지, 더구나 미처 진동모드로 전환하지 못해 이상 야릇한 벨소리로 예배 분위기를 방해하는 사람들까지 있으니 말입니다.

어쨌든 이 곳 자이툰 교회는 이런 핸드폰의 공해로부터 자유로우니 참 다행입니다. 한동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좋은 기회도 될 것 같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1시간 30분을 이동해 도착한 캠프 버지니아는 미군이 건설한 캠프로 다국적군의 이라크 전개를 위해 모든 것을 지원하는 베이스 캠프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대가 있는 이라크 아르빌로 가기 위해 이 곳에서 대기하며 우리나라 공군 다이만 부대의 C-130기 탑승 명령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한 가운데 세워진 천막과 컨테이너 건물들로 구성된 캠프 버지니아는 대낮에도 캠프 곳곳에 가로등을 켜 놓고 차들은 헤드라이트를 켜야 했습니다. 엄청난 모래바람으로 인해 앞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동할 때마다 입을 틀어막고 몸을 돌려보아도 입에서 모래가 서걱거릴 정도였으니...

그러나 그 캠프에서 다시 한 번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을 경험했습니다. 그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캠프에서도 곳곳에 수없이 많은 샤워장들을 세워 놓고 언제든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가 있었고(찬물 꼭지를 틀어도 더운물이 나오지만 샤워장마다 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비데까지 설치된 화장실들이 곳곳에 있었으니 말입니다. 더구나 식사를 했던 DFAC(Dinning Facility)의 풍성함은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마음대로 먹고 가져갈 수도 있게 만들어 놓은 수많은 과일들과 20여가지에 이르는 각종 음료수와 우유들, 심지어 배스킨 라빈스 아이스크림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있었으니.... 이라크 가지 말고 여기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병사들의 농담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 이 글은 제 군선교 소식지 “만선을 꿈꾸며…” 제 11호(이라크에서 보냈던 소식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