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과부와 자녀들

(2011년 3월 19일)

금번 시골지역 아웃리치 프로그램으로 그분이 처음 선교하시던 깊은 산속 망얀족 마을을 가기로 하였었다. 각자 쌀 한말씩 배낭에 짊어지고 그리고 마른반찬 조금씩 준비하여 깊은 산속 원주민의 마을에서 잠도 자고 손수 밥을 해 먹으며 선교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지답사를 가던 날 우연히 그분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풍경이 있으니 구경하고 가자며 산록케 지역 불랄라카오 해변 마을에 잠시 들렸다. 산록케 방향으로 산허리에 난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산록케 읍내 좀 못 미쳐 왼편 바다 쪽으로 있는 마을에 들어서니 마을 뒤편에 광활한 바다가 멀리 눈 아래 펼쳐진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 “와!” 하며 감탄사가 절로 난다. 순간 움츠렸던 가슴이 탁 트이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는 심호흡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가슴속에 있던 혼탁한 기가 모두 빠져나가고 새 산소로 바뀌며 온 몸에 기운이 솟는다.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발밑에는 잔디보다 조금 큰 풀들로 이루어진 넓은 초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두고 어디로 가랴! 우린 마치 우리들의 땅이나 된 것처럼 바다전망이 가장 좋은 곳으로 가서 이곳에 현지 봉사처의 사무실과 진료실을 꾸미면 좋겠다며 좋아 하였다. 이만한 경치와 그리고 산을 오르내리며 조깅도 할 수 있는 적당한 장소는 마음과 몸이 지친 분들의 요양을 위하여 전인치유사역을 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라 여겨진다.

마침 이 마을의 주민들도 산속 부족민들 못지않게 가난하고 아픈 이들이 많다 하여, 산속마을 가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 마을을 금번 봉사 처로 정하고 매 주 월요일 방문하기로 하였다. 첫 번째 주가 되었다. 선교관에서 점심을 넉넉히 싸고 과일과 음료수도 준비하여 차 트렁크에 싣고 어린이가 소풍가듯이 설레는 마음으로 불랄라카오 마을을 향하여 갔다. 시내에서 봉사하다가 야외로 나가니 모두들 매우 좋아한다. 장성하여 어른이 되었어도 마음만은 어린아이 같이 늘 새로운 일에 가슴 부푼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승용차로 약 1시간 달려 마을에 도착하였다. 지난주에 답사 왔다가 마을 리더에게 다음 주에 봉사 올 테니 환자들을 불러 모아 주고, 봉사할 장소를 정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우리가 부탁한 대로 잘 이행하여 환자들이 봉사할 집에 와서 이른 아침부터 대기하고 있다.

환자들을 돌보면서도 마음은 산 아래 바닷가 해변에 가 있다. 봉사하다 짬이 나면 잠시 슬며시 혼자 나와서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쪽에 나와 한참 바다를 바라보고 초원도 걸어보았다. 멀리 눈앞에 펼쳐진 남지나해와 연결되는 넓은 바다를 바라볼 때마다 나의 자율신경은 스스로 심호흡을 하게하며 몸속의 산소를 새로운 것으로 교체한다. 바다에서 왼쪽으로는 바탕가스 가는 방향이고 오른쪽으로는 보라카이 가는 방향이다. 보라카이 방향으로 페리호가 가는 모습이 멀리 주먹만 하게 보인다. 여기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한 참 이야기 하다가 친해지면 보라카이를 가 봤느냐고 묻는다. 아직 못 가봤다고 하면 더욱 신이 나서 자랑을 한다. 밀가루처럼 하얗고 고운 모래사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스노우 쿨링을 하면 바다 속의 아름다운 산호도 볼 수 있고---! 보라카이에 대한 그들의 자랑은 그칠 줄 모른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었다. 일행이 그분의 승용차를 타고 서둘러 바닷가로 내려갔다. 바다가 없는 충청도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바닷소리만 들어도 항상 마음이 설렌다. 서너 채의 집이 야자수 숲속에 자리 잡고 있다. 윗마을에선 보이지 않던 숲이 아래 내려오니 제법 울창하다. 수종은 야자수 나무와 바나나 나무가 특히 많았고, 해변에는 알 수 없는 가시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해변 가까이 얕은 바다 속에도 일렁이는 파도 속에 수백 년이나 되었을 듯 한 고목들이 웅장하게 우뚝 서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며 늠름한 자태를 보여준다. 바다와 섬이 바라다 보이는 조그만 모래사장에 자리를 펴고 바다를 감상하며 점심을 먹었다.

멀리 야자수 숲속에서 남자 한분과 여자 두 분이 무언가 들고 우리를 향하여 온다. 가까이 보니 지난주 답사 왔을 때 잠시 치료받은 분들이다. 우리가 다시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렸던 거였다. 점심 먹을 때 목마르면 먹으라고 야자수 열매를 서너 개 따가지고 왔다. 그들 중에 남자가 허리에 찬 긴 칼을 빼어 단단한 야자수 열매 껍질을 힘차게 찍어 야자수를 마실 수 있도록 주둥이를 만들어 준다. 내추럴 음료수를 마시며 그리고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보통 야외봉사를 나오면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만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가게 되는 데,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즐거운 여유시간을 가지게 되니 모두들 너무나 행복해 한다. 원주민들은 우리가 점심 먹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고 앉아 있다가 목이 메일 것 같으면 마시라고 야자수를 권한다. 그러는 그들의 순수하고 친절한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남선녀 같다. 밥 먹다가 가끔 그들과 서로 눈이 마주치게 되면 보디랭귀지로 씽긋 웃으면 다 통한다. 그들은 도시와 멀리 떨어져 사는 바람에 학교도 다니지 못하여 영어를 전혀 모른다. 우리의 유일한 교제 방법은 보디랭귀지 이다. 서로의 언어가 달라 의사소통이 안 될 때 보디랭귀지는 매우 편리한 대화방법이다. 거기다 스킨십만 곁들이면 매우 퍼펙트한 결과가 나타난다. 보디랭귀지는 아무하고나 아니 동식물하고도 통할 수 있는, 탁월한 침묵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부부간에도 가장 친밀하고 사랑스러운 대화수단은 수많은 말보다는 다정하고 사랑스런 눈빛으로 이루어지는 보디랭귀지이다. 이를 게을리 하지 않는 한 부부싸움이나 이혼은 있을 수 없다.

점심을 마치고 해변을 좀 돌아 본 후 서둘러 다시 마을에 올라와 오후 봉사를 시작하였다. 윗마을 사람들만 해도 읍내가 가까워서인지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마을 리더(이장)는 영어를 매우 잘 이해한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점심때 만난 사람 중에 한 여인은 과부였고 두 사람은 부부였다. 부부는 과부의 언니와 형부였다. 41세 밖에 안 된 여인이 5년 전 남편과 사별을 하였다고. 그리고 그 남편과의 사이에 6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가장 큰 아이는 스무 살이고 가장 어린 아이는 이제 겨우 5살이라고. 그 말을 들으니 측은한 생각이 든다. 농토도 직업도 없는 산간지역에서 그 많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이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여운 마음이 든다. 

불쌍한 과부와 자녀들에 대하여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한참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데, 생각지도 않은 그녀가 방문 옆에 서서 우리들이 하는 일을 물끄러미 구경하고 서 있다. 그녀의 집은 바닷가가 아니고 이 마을이었던 거였다. 오전엔 해안가에 사는 그녀의 언니네 집에 다니러 갔었던 거였다. 마른 체구인 그녀가 오전보다 단정하게 반팔 티셔츠와 짧은치마로 갈아입고 왔다. 아마 그녀의 옷 중에 가장 깨끗하고 폼 나는 옷으로 갈아입은 듯 한 인상이 풍긴다. 그런데 그녀가 뒤로 돌아섰을 때 보니 그녀의 티셔츠가 헤어져 한 쪽 어깨 쪽에 구멍이 나있다. 낡고 헤어진 옷을 깨끗하게 손질하여 입은 모양이다. 구멍 난 그녀의 옷을 보고 우리 일행은 말은 못하면서도 서로 쳐다보며 안쓰러운 마음을 가졌다. 나 역시 코끝이 찡하며 더욱 측은한 마음이 든다. 얼마나 입을게 없으면 저렇게 구멍 난 낡은 옷을 외국인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입을까! 차라리 때 묻은 옷을 그냥 입고 왔으면, 일하다 온 줄로 알 텐데, 깨끗이 세탁하여 단정히 입은 모습이 더욱 안쓰러운 마음이 들게 한다. 

요즈음 마침 로하스 시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축제를 하느라고 분주하다. 축제장이 펼쳐지는 시청 앞 광장 주변으로 각종 상인들이 천막을 치고 장사진을 이룬다. 우리네 민속시장 같은 장이 들어서는데, 우리나라 민속시장처럼 포장마차를 차려놓고 음식만 파는 것이 아니고, 이곳은 각종 장사꾼들이 몰려와서 천막을 치고 대형 마켓을 형성하여 옷이나 이불 신발 등 모든 생필품을 다 전시해 놓고 판다. 며칠 전부터 그곳을 지나가며 헌옷 파는데 많은 관심을 두었었다.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유럽등지에서 보내온 구제물품들인데 천이나 디자인이 필리핀에서 만든 새 옷들보다 훨씬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불랄라카오 봉사를 다녀온 그 다음 날 헌 옷 파는 곳을 다시 찾아갔다. 과부와 여섯 명의 자녀들이 생각나서였다. 쌓아 놓은 옷들을 여기저기 헤치며 열심히 그 부인과 자녀들이 입을 만한 옷을 골랐다. 옷을 고르다 보니 괜찮은 옷들도 많다. 개중에는 한 번도 입지 않은 새것도 있었고, 세탁하여 손질만 잘 하면 괜찮은 옷이 될 만한 것들도 있었다. 좋은 것들만 추려 11벌을 골랐다. 그리고 내가 바닷가에서 입으려고 컬러풀한 비치용 남방도 세 장 골랐다.  

그 때 나의 옆에서 지켜보던 일행 중 한 분이 “선물하시려면 새 옷을 사다 주셔야지요!”하는 바람에 옷을 고르다 잠시 주춤하였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기운이 쭉 빠진다. 이 옷을 받고 혹시 기분나빠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다. 내가 새 옷 보다 헌 옷을 택하게 된 이유는 다 떨어진 옷만 걸치고 다니던 아이들이나 부인이 새 옷을 사다주면 아끼느라고 금방 입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이 옷들은 천이 좋아 손질만 잘 하면 새 옷 못지않게 좋은 옷이 될 수 있고, 헌옷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아무 때나 입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참 망설이다 남들의 말에 동요하지 않고 그냥 사기로 결정하였다.  

토요일이 되면 선교사의 가족들이 모두 맛다라 농장에 가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월요일 오전 일찍 돌아온다. 기회는 왔다. 선교사 가족들이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그리고 선교대원들이 피곤하다고 2층에서 오침을 하는 사이, 사다 놓은 헌옷을 밖에 있는 세탁기에 넣고 열심히 세탁을 하였다. 세탁기가 반자동이고 물 호수가 연결되지 않아 헹굴 때마다 수동으로 물을 빼고, 다시 바가지로 물을 채워 넣어야 한다. 약 1시간 정도 세탁기 옆에서 물을 퍼 부으며 거품이 나오지 않도록 여섯 번 정도 헹구어 낸 후, 빨랫줄에 널어 말렸다. 날씨가 좋아 서너 시간 말리니 거의 다 말라간다. 채 마르지 않은 것을 걷어다 다림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마음이 급해서도 이지만, 바짝 마른 것 보다는 덜 마른 것이 물을 축일 필요도 없고 다리기도 좋을 것 같아서이다. 때가 빠진 옷들을 다림질하니 색상이 선명하게 나타나며 새 옷처럼 변한다. 다린 후 새 옷처럼 반듯하게 잘 개어서 구겨지지 않도록 한 벌 한 벌 비닐 주머니에 잘 넣어 두었다. 가끔 내 와이셔츠나 바지를 다려 본 경험이 있어 웬만한 다림질은 할 수 있다. 허지만 여성용 블라우스와 홈드레스 그리고 어린이옷을 다려 보기는 생전 처음이다. 다림질 하며 속으로 생각하길, 내가 평소에 집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잘 했더라면, 집사람이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내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다림질해서 원피스를 벽에 걸어 놓으니 매우 우아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것을 본 대원중 여자분 한 분이 그 옷을 자기 몸에다 대어보고, 입어보고 그러더니 그 옷은 자기가 입고 싶다고! 어림 반 푼도 없는 말씀이지. 내가 옷 고를 때는 헌옷이라고 처다 보지도 않고, 별 쓸모없는 옷처럼 바라보더니만, 언감생심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말을 듣고 흥분하여 매정하고 거세게 “안 된다”고 소리쳤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내가 너무 화를 낸 것 같아, 며칠동안 그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을에 두 번째로 봉사 가는 날이 되었다. 세탁하여 다려 논 옷들을 가져다주려고 잘 챙겨 가지고 불랄라카오 마을을 갔다. 오전 중 환자들을 돌보며 아무리 주위를 살펴보아도 과부도 안보이고 그녀의 큰 딸 나이스도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오다가 길옆에 있는 그녀의 집 앞을 지나칠 때 문이 닫혀 있어서 이곳에 왔는줄 알았는데! 혹시 바닷가 언니네 집에 갔는가 하여 점심시간에 일행과 함께 점심도 먹을 겸 바닷가로 내려갔다. 나이스의 이모와 이모부는 밭에서 참외 모를 심고 있고, 나이스는 그 일을 돕느라고 펌프질을 하여 물을 퍼 올려 밭으로 물을 대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엔 다섯살과 과 여섯 살 된 나이스의 동생 둘이서 언니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놀고 있다. 엄마는 멀리 일 나가고 16세 된 나이스가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이모네 밭일을 돕고 있는 거였다. 나이스가 하는 일이 재미있을 것 같아 나도 올라가 펌프질을 해 보았다. 힘이 들어 금방 허리가 아프다. 이렇게 힘든 일을 어린 아가씨가 하루 종일 하다니 !  

나이스 엄마에게 일거리가 생겼다니 정말 다행한 일이다. 일터에서 조금씩이나마 벌어오면 그럭저럭 먹고 살 수는 있을 것 같아 안심이다. 그 말을 들으니 실직 당했던 내 딸이 다시 직장을 구한 것처럼 내 마음이 안심이 된다. 봉사를 모두 마치고 저녁때쯤, 귀가하던 길에 나이스네 집에 다시 들려도 나이스의 엄마는 그때까지 오지 않았다. 엄마는 일주일에 한번 주일에만 오시고 평소에는 오시지 않는다고 나이스가 일러준다. 어린 아이들을 나이스가 혼자 키우고 있었다. 자기도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16세 어린나이에 동생들을 돌보며 가정 일을 책임지고 있다니! 그나마 큰 딸을 두어 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일을 나갈 수 있으니 다행이다. 큰 딸은 살림 밑천이라더니 이 가정에 매우 적절한 표현이구나. 나이스에게 가져 온 옷을 지켜 주며 동생들에게 잘 입혀주라고 당부하였다.  

귀가하며 자동차 안에서 우리 일행은 나이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한두 번 이렇게 돕는 것은 별 효과가 없으니, 나이스를 어디 취직시켜주어 돈도 벌게 하고 공부도 계속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나이스가 아이들을 돌보아야 되기 때문에 지금은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결론을 맺지 못하는 가운데 한분이 다음번에 올적엔 쌀이나 좀 사다 주고 싶다는 말로 이야기를 마쳤다.

조선시대의 과부 이야기

조선시대 신분제의 질곡에서 신음한 계급은 노비들뿐만이 아니다. 서자(庶子)들도 같은 맥락에서 설움을 받고 살았다. 천재적인 문재(文才)를 소유하고도 어머니의 신분이 후처라는 이유로 자식은 출세 길이 막혀 벼슬에 오르지 못했다. 조선의 신분제는 근대로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얼마나 많은 인재가 여기에 묶여 이름도 없이 사라졌던가. 이런 신분제도에 의해 조선사회의 인재들은 사회진출이 균등하지 못했다.  

‘다시 시집간 여자의 자손에게는 벼슬을 주지 마라.’는 법이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을 위해서 만든 악법이었다. 그래서 서자는 아무리 두뇌가 영리해도 벼슬길에 오를 수가 없었다.  

이런 제도에서 살아온 여인들의 한을 어찌 다 헤아릴 수가 있으랴. 한국 여인들의 한이 독특한 양상을 띠게 된 원인이 여기에 기인했다. 자식의 출세를 위해서 과부로 살아야 했던 여인들의 괴로움은 천형과도 같았다.  

연암 박지원이 쓴 ‘열녀전’의 줄거리는 이렇다. 열녀가 된 어머니가 어느 날 동전 한 닢을 꺼내 아들에게 보인다. 차마 꺼내기 어려운 말을 아들 앞에서 호소한다. “이 돈에 윤곽이 있느냐?” “없습니다.”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네 어미의 죽음을 참게 한 부적이다. 내가 이 동전을 십년이나 문질러서 글자가 다 닳아진 것이란다. 어찌 과부라 해서 정욕이 없겠느냐.”  

결국, 어머니는 십년 동안을 동전을 문지르며 정욕을 견디어 냈다는 이야기다. 너무도 감동적이고 슬픈 이야기다. 아들의 출세를 위해 재혼하지 않고 동전만 굴린 십년의 세월을 상상해 보자. 어머니는 그런 희생으로 오직 아들만을 생각했다. 비록 과부로 살더라도 아들이 출세해서 벼슬에 오르기를 갈망했다.  

“가물가물한 등잔불이 내 그림자를 조롱하는 것처럼 고독한 밤에는 새벽도 더디 오더구나. 창가에 비치는 달이 흰빛을 흘리는 밤, 나뭇잎 떨어지는 때나 외기러기 하늘을 울며 갈 때나, 닭 우는 소리도 없고 어린 종년이 코를 골 때, 내가 누구에게 고충을 호소하겠느냐. 그때마다 이 동전을 꺼내 매만지고 방바닥에 굴렸다.” 이 기막힌 말을 듣고 아들과 어머니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없이 울었다.  

며칠 전 50세도 안 된 젊은 동역자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급성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뜨는 바람에 주위 사람들이 모두 놀래고 안타까워하였다. 신학대학 동기동창생들이 모여 애도 속에 장례식을 잘 치렀다. 수원에서 화장을 하여 일죽에 있는 추모공원에 모셨다.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한 친구가 “지금 나이에 재혼해도 될까” 하고 갑자기 엉뚱한 말을 하였다. 젊은 미망인이 너무 고생할 것을 혼자 상상하다 한 말이리라. 옆에 있던 사람이 “그 나이에 재혼은 뭔 재혼이야 아들 키우며 혼자 살아야지!” “아이고! 어떻게 살지 걱정이네!” 모두가 걱정을 하며 귀가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걱정으로 미망인의 괴로움을 얼마나 달래 줄 수 있으랴! 

필리핀 사정은 물론 우리네 조선시대의 상황과 다르다. 그러나 아무리 청상과부라 할지라도 아직도 한 참 더 키워야 할 여섯 명의 아이들이, 배고파하며 엄마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어찌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있으리오. 남의 집에 가서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하며 모든 것을 잊어보려고 애쓸 그 여인을 불쌍타 아니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칼뱅의 성서적 경제 이해 

칼뱅은 중세후기의 사회, 정치, 경제 질서의 급격한 변화와 프로테스탄티즘의 발흥과 확산의 중심지로서의 제네바의 다양한 사회,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 성서적 사회 · 경제 이해와 디아코니아의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응답해 나갔으며, 그의 이러한 사회, 정치, 경제적 문제들에 대한 응답의 중심에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놓여 있음을 살펴보았다.  

칼뱅은 부스마(W. J. Bouwsma)가 적절히 표현한대로 “사회를 공동체적 차원에서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았으며,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 사회의 토대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 공동체에 대한 부단한 의식”이라는 것이 칼뱅의 사회, 정치, 경제사상을 통해 확인된다. 그의 이러한 공동체 사상은 성서이해에서 나온 유기체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칼뱅은 이러한 관점을 토대로 성서가 말하는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나그네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마치 병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통치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이해했으며, 이를 위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러한 점은 칼뱅의 경제윤리 가운데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칼뱅의 경제윤리는 개인의 경제적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사회공동체 전체를 염두에 두는 관점을 지녔다. 그는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상업과 부의 유익과 가능성에 대해 말하면서도 동시에 부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부의 축적을 경계하고 청지기직과 재화의 상호교류를 통한 인간 공동체안의 경제적 균등함(equality)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두었다.  

칼뱅은 물질적 재화를 하나님의 도구로 보면서, 특히 부의 상호적 유통이 사회 속에서 이루어져야함을 중시한다. 여기서는 특히 공동체 내에서의 재화의 상호교류라는 개념이 중시되고 집사직분도 결국 이것의 실현을 위한 것으로 파악했다. 물질에 대한 청지기 정신과 평등과 분배의 개념에 대해 그는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게 된다. 특히 칼뱅은 가난한 자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존재로 파악하고 그들의 필요를 돌보는 것을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차원으로까지 연결시켜 바라보았고, 가난한 자들을 볼보지 않는 것을 심지어 신성모독으로까지 보기도 했다.  

노동과 임금에 있어서도 가난한 자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의 잔인성에 대해 경고하면서 임금을 하나님의 선물로 파악했다. 그는 상업 활동에 따라 필연적으로 파생하는 이자대부 문제와 관련 경제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인간의 죄성에 대한 끊임없는 인식이라는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이러한 그의 경제이해, 즉 개인의 권리와 재화를 보장하면서 전체 사회의 필요를 존중하는 균형을 항상 추구하는 경제이해는 비엘레가 칼뱅의 경제이해를 표현한대로 ‘개인적 사회주의’ 또는 ‘사회적 개인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에 관심을 중심으로 한 칼뱅의 사회, 정치, 경제사상은 교회의 구체적인 디아코니아 사역을 통해 실현되었다. 칼뱅은 교회가 세속화된 사회복지의 영역을 통치권의 영역에만 맡기지 않고, 시 정부와의 조화로운 긴장관계 속에서 거룩한 영역 즉, 디아코니아 사역으로 회복시켜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갔다. 특히 칼뱅은 당시의 사회복지의 영역의 ‘평신도화’와 ‘합리화’라는 흐름 속에서 교회의 이중집사 제도의 실천을 통한 집사직의 회복을 통해 디아코니아 사역을 감당해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의 디아코니아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지녔지만 중세 가톨릭에 의해 제 모습을 상실한 집사직의 성서적 본질을 회복하고, 그 사역의 차원을 교회 안에서 밖으로 넓혀 제 모습을 찾게 해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것은 종합구빈원과 프랑스 기금, 그리고 이 두 사역을 가능하게 했던 이중집사 제도에서 잘 드러난다. 프리차드(Rebecca B. Prichard)의 표현대로 그의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과 행동은 ‘성스러움과 세속성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녹아들어가는 방식’이었다. -한국교육학술 정보원- 

마을에 세 번째 봉사 가는 날이었다. 함께 가던 권사님이 지난 주 우리에게 약속한 말을 잊지 않고, 가던 길에 만살레이 시내의 한 쌀가게에 들려 쌀 20킬로를 샀다. 그 날도 역시 하루 종일 아침부터 치유봉사를 하고 저녁 즈음에 마치도록 나이스 모친은 보이지 않았고, 나이스는 이모네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밭에서 펌프질을 하였다. 나이스네 문 앞에 두고 온 쌀 20킬로가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마는, 나이스가 희망을 잃지 말고 아이들을 돌보며 힘차게 살아가길 우리 일행은 나이스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하였다.

과부에 대한 성서의 진술

성서에 보면 하나님은 과부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셨다. 칼뱅의 경제관도 물론 성서를 기본으로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애굽의 고통으로부터 탈출을 성공하였을 때,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백성들의 기강을 바로잡고자하신다. 그 때 사회적 책임에 관한 말씀을 하시며, 과부를 특별히 도울 것을 거듭 강조하여 말씀하신다.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출22:22-24)  

신명기서는 과부에 대한 사회복지 규범을 선포한다.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14:28-2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신24:19-21)  

십일조를 과부를 위해 쓰라고 선언한다.

“제 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신26:12)  

과부를 억울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신27:19)  

과부에 대한 성서의 언급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다. 신약성서의 것들에서 두 가지만 더 언급하면, 야고보서 기자는 경건함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는 일’(약1:27)이라 하였다.

누가복음서 기자는 예수께서 죽은 과부의 외아들을 특별히 살려 주시며 위로하는 장면을 보도하였다.(눅 7:11-17)

객이나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덕목 중에 하나가 아니고, 반드시 해야 할 책임과 의무사항으로 성서는 보도한다.

                                                           자료제공 : 아시아미션(http://www.amccm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