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여보야!

(2011년 1월 20일)

마음가짐 

외로운 방랑선교사에게 큰 기쁨이요 희망이 된 그녀가 세 번째 아이를 그분의 품에 안겨 주었다. 우리가 갔을 때 그녀는 출산한지 겨우 2주되었을 때다. 한국의 산모 같은 경우 한창 몸조리를 해야 할 시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몸조리는커녕 얼굴이 부은 채로 가사를 모두 돌보고 있다. 아기 젖을 먹이다가도 남편이 ‘여보야!’ 부르면 아무 불평 없이 아이를 내려놓고 남편의 명령에 순종한다. 한국에서 간 우리 팀 중의 여자 분들이 산모에게 그렇게 일을 시키면 안 된다고 걱정스러워하면 그분은 겸연쩍은 듯 웃으며 아무 말도 안하고 있다가 잠시 후 무슨 일 할 것 있으면 또 ‘여보야!’를 불러댄다. 주방에 가서도, 외출할 때도, 손님이 왔을 때도 그런다. 관공서에 볼일이 있을 때면 삼치래도 안 된 산모를 심부름까지 시킨다. 부인이 당신보다 30세나 어리고 건강하다보니 산모라는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인가? 아니면 여자의 생리에 대해서 뭘 몰라서 그러는가? 아니면 부인이 산속 원주민 출신이라고 무시하여서인가? 저렇게 산모를 혹사시키다 요번 부인까지 놓쳐버리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이 절로 생긴다. 남편이 수시로 ‘여보야’를 불러대도 그녀는 싫은 내색도 없이, 마치 종처럼 아무 불평도 하지 않고 늘 하던 일을 멈추고 남편의 시중을 든다. 그런 모습을 보면 부인이 상당히 착한 사람이고 건강한 편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착한 것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너무 힘들게 괴롭히면 언젠가 크게 반발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산모가 혹사당하는 모습을 보다 못한 권사님이 이러다간 산모 큰일 나겠다며 산모를 도와 줄 가정부를 구해자고 제의 하였다. 열일을 제처 놓고 그분과 함께 가정부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 그분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산록케 지역을 지나 약 1시간 정도 시골길을 달려 망얀족 마을로 갔다. 가는 도중 그분의 낡은 승용차는 우리로 하여금 마치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 타는 것과 같은 위험한 체험을 하게 한다. 심한 파도에 밀려 작은 조각배가 좌우로 위험스럽게 흔들리듯이, 운행하는 도중 우리가 탄 승용차가 심하게 좌우로 흔들려 곧 사고가 날 것 같다. 이런 일은 35년 운전경력에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다. 안전벨트를 매고 손잡이를 힘차게 잡았다. 속력을 40키로 이하로 늦추어도 계속 차가 흔들거린다. 갑자기 차대가 부러져 옆으로 나 뒹굴 것 같은 느낌이다. 앞뒤로 출렁거리는 차는 경험해 보았지만 옆으로 출렁거리는 차는 처음이다. 놀이기구도 아닌 차가 이렇게 흔들리니 언제 변을 당할지 몰라 모두 불안해한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가슴을 조이며 바짝 긴장하였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도 뒷좌석에 앉은 초등생 글로리아는 신이 나서 좋다고 소리치며 야단이다. 너무 재미나단다. 어느 듯 긴장하는 가운데 목적지에 가까스로 도착하였다. 어른들은 긴장과 불안감으로 기운이 빠져 축 늘어졌다. 그리나 어린 글로리아는 재미있었다며 차를 더 오래 타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차는 매번 그렇게 흔들렸지만 한 번도 사고는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이 목적지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행 하였던 거였다. 

때론 어린아이들을 통하여도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린 똑 같은 입장과 상황에 직면하였지만, 마음가짐에 따라 같은 사건도 이렇게 다르게 경험하였다. 인생의 길을 달려가면서도 마찬가지다. 염려와 걱정을 한다고 되지도 않을 일을 매일 염려와 걱정을 하다 스스로 좌절하고 실망하고 불안에 빠지고 우울증까지 걸리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걱정할 일이 태산 같아도 늘 평온한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다스리며 사는 사람도 있다.  

차를 길옆에 대 놓고 산속 망얀족 부족들이 사는 마을을 들어섰다. 집들이 나무와 나뭇잎을 엮어 원두막처럼 지어졌다. 짚을 엮어 만든 지붕과 벽이 비바람과 햇볕에 낡아 색이 부옇게 바래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외양간 같은 모습이다. 로이다 사모 친척 되는 원주민의 소개로 할머니 혼자서 손녀 한명을 데리고 사시는 집을 방문했다. 할머니가 앉아 있는 원두막 같은 허름한 집의 천장을 쳐다보니 하늘이 훤히 내다보인다. 비가 오면 어떻게 자느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으시며 그냥 맞으며 잔다고! 설마 그럴 리야 있겠나 하고 비 피할 곳이 있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피할 만한 곳이 없다. 이불이 없어 무얼 덮고 자는가 물으니, 그냥 옷 입은 채로 잔다고. 혹시 담요라도 있는가 살펴보아도 아무것도 없다. 옷장도 없다. 빨아 널은 옷 외에는 다른 옷은 없고 지금 입은 게 전부이다. 원두막 같은 곳의 방바닥에 몇 개의 그릇과 유리병이 있는데 그 중에 할머니가 피우는 담배통이 유난히 시선을 끈다. 배고프니 담배나 피우며 허기를 면하시는가보다. 이름 모를 나뭇잎에 하얀 가루를 섞어 씹으면 담배 맛이 난다고 그 잎을 씹는데, 그걸 씹으면 마치 입이 짐승의 생피를 빨아먹은 것처럼 빨개진다. 지금부터 7년 전 미얀마 갔다가 시뻘건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삐끼들에게 놀랐던 경험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간다. 그런 흉측한 입의 모습이 담배를 씹은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된 후부턴 놀라지 않게 되었다. 시뻘건 흉측한 입으로 우리를 맞이하시는 할머니가 이젠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부엌도 매우 간단하다. 부엌 바닥에 돌 세 개 주어다 돌 삼발이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시커멓게 그은 솥을 올려놓고 불을 때 밥을 해 먹었던 흔적이 보인다. 마치 야외에 놀러 갔다가 임시로 돌 받쳐 놓고 라면 하나 끓여 먹은 모습 같다. 

이제 겨우 열 살 된 아이를 가정부로 데려 가라고 할머니가 소개하신다. 할머니가 키우시던 손녀이다. 그렇게 어린아이를 데려가면 가정 일을 시키기는커녕 우리가 오히려 뒷바라지를 해 주어야 될 지경이다. 그 아이를 데려다 가정부를 시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지만, 그 아이의 가정 사정을 듣고 보니 안 데려갈 수가 없다. 아이의 엄마는 어릴 때 돌아가셨고, 아빠는 먼 루손 섬 마닐라에서 일용근로자로 일하신다고. 할머니 혼자 사시며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먹을 끼니가 없어, 귀여운 손녀이지만 밥이라도 잘 얻어먹게 하려고 보내려 한다고! 딱한 사정을 듣고 보니 아이를 데려가지 않을 수 없다. 혹 떼러 왔다가 혹을 하나 더 붙이고 가는 셈이 되었다.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 좀 나눈 후 아이를 데려 가려고 나서니 할머니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떠나는 아이를 따라 나오신다. 놀러왔던 아이들도 덩달아 어깨를 흐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우리의 행위가 마치 인당수에 제물로 바치기 위해 심청 이를 사가던 어부들처럼 잔인한 행위를 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이들은 비록 가난하게 살지언정 비천하게 느껴지거나 절망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 아이의 친구들이나 할머니 그리고 아기를 안고 놀러 온 이웃집 아낙도 그들의 눈빛에선 전혀 고달픈 인생에 시달린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아마 모든 가난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다. 도시의 생존경쟁 속에서 바쁘게 일상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이들이 오히려 더 밝고 평온한 분위기이다. 자연이 주는 힘이 역시 대단하다. ‘가난은 생활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몰라도 반드시 불행하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 맞는 말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활모습은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너무나 비참하여 가난하다는 표현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다. 우리가 너무 도시문명에 익숙해 진 탓일까? 이들의 사는 모습이 마치 아무도 돌보지 않는 저주의 땅에 버려진 자들처럼 보인다. 그들이 사는 실생활의 모습은 사실이 아니고 마치 연극을 위해 꾸며 놓은 허름한 무대처럼 기가 막힐 정도로 궁핍한 모습이다. 

가난을 물리치고 모든 인류가 평등하게 살 수는 없을까!  

왜 똑 같은 목숨 가지고 태어나 누군 잘 살고 누군 못살아야 하는가!  

왜 하나님은 이렇게 힘들게 사는 이들에게 침묵하시는가!  

생존경쟁의 법칙에 의하여 능력 있는 자들은 잘 살고 무능한 자들은 못사는 게, 하나님 나라의 입장에서 과연 공평하고 정의로운 일인가!  

능력을 테스트 받을 균등한 기회도 없이 태어날 때부터 가난한 환경에 태어나 가난을 대물림 받은 사람들에게 누가 과연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고, 그분의 전권을 위임받았다고 자부하는 성도들의 의무와 책임은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어떻게 실행되어져야 하는가!  

형용할 수 없는 가난과 질병과 고통의 현장을 바라보고도 늘 남의 일처럼 침묵만 지키는 성도들을 과연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라고 자랑하실 수 있을까!

맑은 가난

법정스님이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서울 성북동 길상사(주지 덕조스님)에서 열린 ‘길상사 창건 7주년 기념법회’에서 ‘맑은 가난’과 ‘나눔의 실천’이라는 화두(話頭)를 던졌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경제 불황을 이야기 하지만 내수가 살아나 소비가 활성화되고 고도성장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과연 행복하겠느냐”고 반문하고 “마음이 갖고자 하는 욕망을 스스로 억제하는 맑은 가난과 나눔을 실천하자”고 당부했다. 

스님은 “20~30년 전 그때는 지금에 비해서 훨씬 적고 빈약했지만 지금처럼 삭막하거나 살벌하지는 않았다”며 “하나가 필요할 때 그 하나만을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원래 갖고자 했던 그 하나마저 잃게 된다”고 말했다. 또 스님은 “아쉬움과 궁핍을 모르는 생활은 궁핍하다”고 전제한 뒤 “오늘과 같은 경제적인 불황 앞에서 우리 스님들이 남긴 ‘맑은 가난’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날의 법회에서 스님은 ‘맑은 가난’이라는 화두를 제시하며 “맑은 가난은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거나 시새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에 만족할 줄 알며, 어려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덕(德)을 익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오늘날 도처에서 미국이 도전을 받고 있는 것도 이웃의 어려움을 모르고 강함을 나누어 갖지 않기 때문”이라며 “남을 도우면 도움을 준 쪽이나 받는 쪽이나 다 같이 충만해지는 나눔의 비밀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스님은 “미래는 현재의 연속으로 지금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사느냐에 따라서 더욱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며 “각자의 선택에 따라 어떤 여건 속에도 잠들지 않고 깨어있다면 삶의 질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생전에 맑은 글로 많은 가르침을 전해준 법정 스님이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 역시 많은 이들의 영혼을 일깨우고 있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동안 펴낸 주옥같은 책 속의 구절도 정작 법정 스님 자신에게는 부담스러운 빚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또한 스님은 번거롭고 부질없는 장례 의식을 행하지 말고, 사리를 찾지도 말며,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고,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여 달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스님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셨다. 

스님이 말한 맑은 가난이란 말은 모든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하여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잘 살자는 말이며 너무 큰 욕심을 갖지 말라는 말씀이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이런 삶은 현실 속에서 이루기 어려운 일이며 어쩌면 사치스런 구호로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삶을 실제로 사는 곳이 있다. 우리가 요즈음 늘 만나고 있는 산속 원주민들이다. 이들은 사냥 나가서 큰 산짐승을 사냥하면 잡은 사람 혼자 먹지 않는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나눠 먹는다. 아이가 하나 태어나도 온 마을의 축제요, 한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루면 온 마을의 슬픔이다. 이들은 이미 범사에 맑은 가난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 뿐만 아니라 내가 자주 방문하는 아시아 후진국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도시에 살지라도 대단한 형제우애가 있다. 그들은 가족 중 어느 누구 하나가 외국에 나가 돈을 벌면, 번사람 혼자 쓰지 않고 온 가족이 모두 함께 쓴다. 보통 가족 수가 부모님까지 합하여 10명 이상은 되는 데 한 사람이 벌어 온 것으로 모두 함께 나누어 쓴다. 물론 저축할 여유도 없다. 그래도 죽도록 벌어서 보내는 사람은 자기 나라의 경제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는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그런 네팔인 근로자가 있다.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와서 열심히 일하여 번 돈을 고국에 보내면 부모님과 가족들이 모두 쓰던가 동생들 학비 대는데 모두 써버리고 저축해 놓은 돈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맏이이기 때문에 동생들을 가르쳐야 한단다. 부모님들이 버젓이 생존해 계시지만 벌이가 없어 집에서 놀고 계시니 자기가 모두 생활비를 대어야 한단다. 한국에 와서 피땀 흘려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이런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런 형제애의 모습이야말로 스님이 말한 맑은 가난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들은 비록 가난하게 살지만, 삶이란 무엇인지, 인생이란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는 건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후진국 사람들이라고, 우리식대로 살라고 가르쳐야 할 분들이 아니고, 우리가 존경하고 배워야 할 맑은 가난을 사는 사람들이다.  

자발적 가난  

생태 환경 전문 출판사 그물코에서 E.F.슈마허 외 여러 명이 공저한 새 책 ‘자발적 가난’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가난한 삶의 가치를 찬양하는 수많은 에세이와 인용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오늘날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질과 욕망에 얽매인 삶에서 벗어나 '가난으로 충만한 삶' 을 살아야 한다고 권한다. 고대 중국과 그리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행복한 삶의 조건을 찾으려 했던 수많은 사람들(소크라테스, 셰익스피어, 홉스, 성 프란체스코, 파스칼, 아담 스미스, 벤저민 프랭클린, 소로, 간디, 마호메트 등)과 인류 지혜의 정수가 담긴 경전들(성서, 바가바드기타, 법구경, 도덕경 등)은 궁극적으로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하고 그를 통해 행복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왜 자발적 가난이 필요한가?

오늘날 개인이나 국가나 할 것 없이 자신들의 행위가 인간이나 자연의 고결함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부를 축적하는 데에만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부는 소유의 유일한 수단이 되었으며, 인간의 능력은 창조성을 발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산의 증가를 위해서만 쓰도록 강요받고 있다.  

재산의 증가를 향해 늘어선 강요된 가치 시스템 속에서 안간힘을 쓰도록 하는 것, 삶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경제적 신분 상승의 좁은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사투를 벌이도록 하는 것, 이것들이 현재 유일한 삶의 원리로 칭송 받고 있다. 돈이 모든 것을 말하는 한(현재 거의 모든 대중들의 마음에 이런 굴레가 씌워져 있다.) 우리의 능력은 그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남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히 소유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재산이 뜻하는 바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 재정립의 시기가 무르익은 것은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신선한 공기, 맑은 물, 침묵과 마음의 평화, 건강, 그리고 무엇보다도 좀 더 깊은 차원의 자유)이 점점 더 귀해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부는 시장과 화폐의 흥망성쇠, 인간의 조절 범위 너머에 있는 요인들 ,손실에 관한 불안들 따위에 선점 되어있다. 부란 물질과 재산, 그리고 돈의 소유를 말하지만 행복이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불확실한 삶의 선물이다. 복 받은 사람이 반드시 부자일 필요가 없으며, 부자들이 불행한 삶을 영위하는 것 또한 드문 일은 아니다.  

부가 가져오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단순히 소유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추구하게끔 하는 가치관의 재정립이 중요하다. 이것은 부유함에 양심을 불어넣고자 하는 노력을 뜻한다. 또한 그것은 부를 얻기 위한 미치광이들의 아수라장 속에서 잊혀진 전통적 가치를 복원하려는, 그리고 본능에 지배당한 무리들에게 개인적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우려는 노력과 닿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부를 최상으로 여기는 이사회의 주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그 안에서 살아남을까 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생존 경쟁은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기존의 가치 체계를 굳히는 데 일조 한다. 따라서 독점화 되어 가는 부에 고통 받지 않으려면 그것을 쫓아낼 수밖에 없다.  

이 탐욕스러운 이기주의를 소멸시키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자발적 가난’이다. 그것은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물질주의적인 부의 가치에 맞서서 부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립한다. 자발적 가난은 타인을 지배하려는 열망에 사로잡히지 않는 개인주의적인 결단이며, 부의 권력을 누리려는 열망, 그러니까 부를 향해 발버둥치는 무리들로부터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다. 자발적 가난은 탐욕과 갈망, 그리고 사적인 이익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확장 욕망 들 너머에 존재한다.  

자발적 가난은 부의 폐지를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부의 폐지를 위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 자발적 가난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부가 필요하다. 따라서 자발적 가난은 사람들 사이에서 진정한 부의 의미를 확산시키고 결국 사람들에게 부의 실체를 이해하도록 만든다. 부가 자신의 오만함으로 인해 위험 수위에 이르고, 그 결과 살아남기 위해 다시 이 세상을 지나친 압박으로 위험에 처하게 하는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이 바로 자발적 가난이다.

자발적 가난은 빈곤이 아니라 소박한 삶을 뜻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자발적 가난은 인간다운 삶의 박탈 또는 결핍을 뜻하는 빈곤과는 완전히 구별된다. 이 말은 사람들에게 낯설게 여겨질 것이다. 발로는 영양가가 넘치는 나물들을 밟은 채 게으른 손을 내밀어 구걸하는 굶주린 여인처럼, ‘빈민’들도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물질관에 사로잡혀 있는 지식과 지혜의 무지렁이일 뿐이다. 몸을 굽혀 필요한 열매와 뿌리를 채취하는 대신에 음식물을 구입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이것은 어떤 자발성도 완화시킬 수 없는 가난이다. 이는 오직 비참하고 불행한 결과만을 초래하고 있는 비양심적인 문명의 부유한 탓이다.  

어쨌든 소유 스펙트럼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생존을 위한 기본 욕구가 충족된 사람들의 반대편에 있는, 선택할 여지도 없이 생존을 위한 기본 욕구를 채우기에도 급급한, 하루하루의 생존만이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인 절망적인 빈자들에게는 자발적 가난도 그 빛을 잃고 만다.  

하지만 자발적 가난은 소유를 통해 빈곤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서구적 물질주의의 논리는 우리에게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자발적 가난은 그러한 삶을 버리고 소박함과 겸손함을 통해 진정한 만족에 이르는 길을 찾으려고 애썼던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그것은 중용과 절제의 삶을 찬양하는 고대의 전통에서 연원하여 수천 년 동안 인류 사회와 경제를 지배했던 삶의 원리를 물질주의에 찌들어 고통 받는 삶의 대안으로 복원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이러한 노력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욕망이란 완전히 만족시키려고 할수록 점점 더 커져서 결국에는 더 큰 결핍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절제를 통해 최소한으로 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종의 불교 경제학이라고 불릴 만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소모적이고 낭비로 가득한 현대적 삶의 속도에 제동 장치를 달아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고요한 순간을 우리에게 되돌려 준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부가 진정으로 싸워서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지구는 과연 우리의 과도한 탐욕을 견뎌낼 만한 여유가 있는지를 물어보도록 만들어 준다.  

부를 끌어당기는 절대 법칙

자발적 가난과 반대되는 주제로 월러스 D. 와틀즈는 ‘부를 끌어당기는 절대 법칙’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자본주의가 한참 팽창하기 시작한 20세기 초에 이미 자본주의를 통해 부를 이룰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을 발견하고 이를 널리 전파했다.  

“누구나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  

이 이론을 가장 최근에 널리 펼친 책이 바로 [시크릿]이다. 시크릿에서 저자 론다 번이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은 이미 [부를 끌어당기는 절대법칙]에서 강조했던 사항이다.  

월러스 D. 와틀즈는, “모든 사물의 근원이 되는, 생각하는 근원 물질이 존재한다. 이 물질은 원형의 상태에서 우주의 모든 공간으로 파고들어 침투하여 그 공간을 채운다. 이 근원 물질 속에 있는 생각은 그것이 떠올리는 이미지를 가진 사물을 만들어낸다.  

사람은 사물들의 형체를 생각해낼 수 있으며 그 생각을 무형의 근원 물질에게 각인시킴으로써 그가 생각하는 사물이 창조되도록 유발할 수 있다.” 고 역설한다. 즉, 마음속에 간절하게 원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  

부유하지 않다면 진실로 성공적이거나 완전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많은 돈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영적인 능력이나 지적인 능력을 최대한 계발하고 발전시킬 수 없다. 영적으로 깊이를 더해가고 지적인 능력과 재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사람은 많은 것을 사용해야 하는데, 돈이 없으면 그런 것들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부(富)를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비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산이 있어야 이를 바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부를 이루기 위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과학적인 법칙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 원하는 것의 이미지를 마음속에 선명하고 명확하게 그려라. 

2.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명확하게 표현하라.  

3. 당신이 원하는 것들이 이미 당신 주위에 실제로 있다고 여겨라. 그것들을 이미 소유하고 있으며, 사용하고 있다고 여겨라.  

4. 실제로 새 집이 생길 때까지 마음속으로는 이미 새 집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라. 마음속으로는 원하는 것들을 맘껏 즐기기 시작하라.  

5. 원하는 것을 실제로 얻었을 때 느끼게 될 감사의 마음과 똑같이 항상 감사하라.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생각만으로 이루려고 하면 안 된다. 생각에 의해 내게로 오는 것들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즉, 실행하라는 것이다. 실행을 통해 준비된 사람만이 다가오는 부(富)를 맞이하여 부자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인 월러스 D. 와틀즈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이 이론을 연구, 완성하고 그대로 실행한 후에야 비로소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저자가 원하는 것은 우리들이 한정된 부를 이전투구하며 나눠 갖고, 좀 더 많이 갖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부의 양은 무한하니, 자신만의 부를 창조하여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운명적 가난

위 책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쓴 책이지만 둘 다 인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써진 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슈마허의 ‘자발적 가난’은 가난을 미화시킨 것이 아니다. 좀 더 질적인 삶을 살려면 너무 지나치게 물질주의 적으로 살지 말고 서로 나누며 살아야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발적 가난은 저자가 말한 대로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직업도 없고 당장 먹을 것도 없이 비가 새는 집에서 비를 맞으며 잠을 자야만하는 가난한 망얀족 할머니가 무엇으로 어떻게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겠는가. 그런 운명적 가난에 허덕이는 자들에겐 부를 축적하는 가르침을 알려주는 것이 더 낳은 교훈이 되지 않겠는가. 

‘부를 끌어당기는 절대 법칙’을 말한 월러스 D. 와틀즈 역시 인간의 삶을 좀 더 나은 삶으로 이끌기 위하여 부를 축적하는 방법을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을 뿐이지, 인류 평등과 평화를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 보자는 말이다. 슈마허가 인류의 공동체적 삶에 관심을 두고 ‘자발적 가난’을 말했다면, 윌러스는 개인의 성장 발달을 통한 인류 공동체의 발전에 초점을 두고 ‘부를 끌어당기는 절대 법칙’말했다.  

남을 도우려면 윌러스의 말대로 잘 살아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나 살기도 힘들게 가난하면 어떻게 남을 도울 수가 있겠는가! 선교현장에서 가난하고 불쌍하게 사는 이들을 만날 때 마다 느끼는 점은 내가 잘 살아 재산이 많았더라면 저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다. 불쌍한 사람들을 만나고 넉넉히 돕지 못하고 돌아설 때마다 늘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럴 때마다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잘 사는 것만이 다는 아니다. 잘 살아서 나보다 못한 이들도 잘 살도록 돕고자 하는 행함이 중요하다. 누구나 쉽게 하는 말이 있다. “잘 살게 되면, 돈을 많이 벌면 자기도 남을 좀 도우며 살겠다. 다음에 돈 많이 벌면 선교헌금도 내겠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돈 많이 버는 것 보지 못했고, 기부행위 하는 것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의 생각으론 항상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자발적 가난을 사는 사람이 아니고, 상대적 가난에 늘 허덕이는 사람이다. 

나 잘사는 데만 분주하게 사느라고 나보다 못한 이들을 돌보지 못하고 떠나는 인생은 아무리 부를 많이 축적했다 하여도 잘 산 모습은 아니다. 그는 결국엔 음부에 떨어져 고통 중에 눈을 들어 거지 나사로에게 조차 한 모금의 물을 구걸해야 하는 것과 같은 불쌍한 인생을 살다 가는 잘못 산 부자(눅16:20-27)이다. 우리의 인생은 이승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승은 영원한 세상에 들어가기 위한 학습의 장일뿐이다. 새 하늘과 새 땅(계21장)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성경은 교훈한다. 이승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영원한 세상에서 면류관(딤후4:6-8)의 상급이 있다고. 성도의 삶의 희망은 현재가 아니고 미래(전9:1)이다. 

갈아입을 옷이 없어, 다 헤어지고 때가 묻고 냄새가 나는 옷 그대로 입고, 우리를 따라 나선 아이를 차에 태우고 로하스 시내까지 와서 옷가게를 먼저 들렸다. 생전 처음으로 새 옷이 많이 걸려있는 모습을 보는 모양이다. 맘에 드는 옷 고르라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녀도 눈만 휘둥그레질 뿐 무엇을 고를지 모른다. 아이들을 키워 본 젊은 부인의 손을 빌어 아래 위 옷 두벌씩을 사서 손에 지켜 주었다. 아이가 너무 고마워 흐느끼며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는다. 엄마도 없이 산속에서만 자란 아이가 이런 새 옷을 언제 입어 보았겠는가. 선교관에 도착하니 인정 많은 K권사가 샤워 실에 데리고 가 깨끗이 몸을 씻겨주고 새 옷을 입혀 준다.  

오늘 우린 여보야를 좀 편하게 해 주려고 가정부를 구하러 갔다가, 먹이고 키워줘야 할 식구 한 명을 더 데리고 왔다. 그래도 마음착한 여보야는 웃음으로 그 아이를 받아들인다. 이제 시장에 나가 어린이용 그릇과 숟가락도 한 벌 더 준비해야겠다.

자료제공 : 아시아미션(http://www.amccm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