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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 -2사랑이 아닙니다 서로사랑입니다!
김영동  |  deom-past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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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2월 25일 (금) 10:04:30
최종편집 : 2011년 02월 25일 (금) 13:13:47 [조회수 :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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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진수는 서로사랑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계명(誡命)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한복음 13 : 34∼35)

 

   는 실천의 단계요 구체적인 생활의 자리에 펼쳐지는 유기적인 현실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좀 다르게 말씀이 인식됩니다.  정말 알아보아야 할 것들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봅니다. 예수님은 대단한 집중력을 가지신 분으로 정말 요점 정리가 잘 되는 분입니다. 미묘한 세금 문제에 대해 동전을 가지고 오라 하시고 그 동전에 새겨진 얼굴이 누구의 것이냐 물으시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온 여인을 앞에 두고 험악한 군중들의 일촉즉발의 분노를 향해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준엄하게 명하십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그 방대한 구약성경을 딱 두 마디로 요점 정리를 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7∼40)

 

   그런 예수님이 처음으로 예수살기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예수살기의 원조요 본가입니다.

   그 예수님이 예수살기를 끝내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유언처럼 남기신 새 계명이 있는데 이 말씀이 또한 기막히게 요점 정리가 잘된 한 말씀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구약성서를 요점 정리한 두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를 다시 요점 정리해서 한 계명으로 선언하셨는데 신약성서는 그 한 가지 계명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당부하신 새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 새 계명은 서로사랑하라(Love one another) 입니다. 우리가 언 듯 생각할 때 그러면 다시한번 요점정리를 하면 사랑이겠구나 생각하고 사랑이야말로 기독교의 진수요 말씀의 핵심이라고 믿고 가르칠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 우리들 주변의 대다수 교회가 서로라는 말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무시하고 내다버린 체 오직 사랑만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서로를 떼어버린 것은 잘못입니다. 예수알기나 예수믿기의 자리에서 보면 예수님의 새 계명을 요약하면 분명히 사랑입니다. 그러나 예수살기의 자리에서 보면 예수님의 새 계명을 요약하면 사랑이 아니라 서로(one another)입니다. 변하지 않는 본질은 알기나 믿기에서는 핵심 요점입니다만 살기에서는 변하지 않는 본질은 그냥 그곳에 있으니 접어 두고 변화하는 서로(one another)가  핵심 요점이 된다는 말입니다. 인류의 성인과 스승중에 유일하게 서로사랑을 온 몸으로 살아 보이시고 가르치시고 새계명이라고 명시해서 마지막 유언으로 남기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시길 바랍니다. 서로 입니다. 서로사랑입니다. 

   힘은 움직이지 않는 맨 땅에서 힘을 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흐르는 물에서 힘은 힘을 가하는 방향과 물의 흐름이라는 힘의 방향에 영행을 받은 제 3의 방향인 벡타로 나타나 움직인다는 상식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알기나 예수믿기는 정지된 곳이 존재의 자리입니다만 예수살기는 흐름 위가 존재의 자리입니다. 그러니 그 흐름을 감안하고 가 닿아야 할 곳으로 가야한다면 좀 더 위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듯 예수살기에서 사랑서로(one another)라는 생활과 말의 자리로 방향을 잡아야 비로소 사랑이 나타나고 실현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예수살기에서 기독교의 진수는 서로사랑이고 서로(one another)입니다.

   그러니 말씀의 진수는 서로 사랑이고 서로(one another)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서로(one another)라는 신앙생활과 서로라는 기독교문화와 서로라는 그리스도 도의 경지에 대해 얼마나 일천한 무식쟁이일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 숱한 사랑이 모두 어디에 있습니까? 기독교는 계약의 종교요 계약의 주체이신 주님의 그 사랑은 오직 서로(one another)에서 나타나고 실현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마치 합창의 화음이 분명히 있지만 서로이지 않으면 절대 나타나지 않고 실현되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치겠습니다. 

 

 

   혹자들은 서구 교회가 문을 닫고, 문을 닫을 지경이 되었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예수살기의 단계를 알아본 내 눈에는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청교도 정신이 득세한 북유럽이나 네델란드, 중세 가톨릭교회에 저항한 개신교회가 주류를 이룬 스위스 같은 곳은 서로사랑하라는 최상의 예수 정신이 사회 전반에 꽃을 피운 곳으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건강하고 깨끗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오늘날 서구교회처럼 문을 닫을 지경이 되더라도 서구교회처럼 생활에서 예수살기가 이루어져 온 사회에 서로사랑하라는 예수 정신과 삶이 구석구석 뿌리를 내려 부정과 부패가 사라지고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다면 정말, 정말 좋겠습니다. 예수알고, 예수믿고, 그리고 온 맘과 온 몸 다해 예수살기를 이루려는 한 평생의 삶이 결코 후회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이 아닙니다. 서로사랑입니다! 사랑과 서로사랑이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은 마치 원숭이를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살육을 부르는 고집스러운 일방적인 사랑과 집요한 스토커를 만들기도하는 사랑은 서로사랑과 그렇게 전혀 다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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