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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은 적색」"환경위기는 더 큰 사회위기의 일부이다"환경위기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노동자의 눈
최덕효  |  vinov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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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2월 19일 (토) 14:25:39
최종편집 : 2011년 02월 19일 (토) 14:37:52 [조회수 : 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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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폴 먹가 (Paul McGarr) 著  ≪녹색은 적색이다≫

   
  위도 핵폐기물 처리장 선정, 새만금 간척사업, 청계천 복원 같은 환경문제가 계속해서 굵직한 사회현안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 기상이변, 유전자조작식품 같은 환경문제가 오늘날 전세계 무수한 대중에게 중대한 문제가 되어왔다.

환경재앙은 10년 전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날이 심각해져가고 있다. 진보적 운동세력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오래 전부터였지만, 과학적 관점에서 환경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책자는 거의 없었다.

많은 환경운동가들이 과학기술을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보고 과학기술을 부정하거나 그 발전을 억제해야 한다는 보수주의적 관점을 지니고 있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은 남성 지배를 반영한다”고 보면서 과학기술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남성 일반과 여성 일반을 대립시키는 생태주의적 페미니즘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보수적이거나 초점이 어긋난 관점들이 난립한 상황에서, 환경문제를 과학적이고 노동자다운 관점에서 명쾌하게 정리한 책을 찾을 수 있었다. 폴 먹가의 ≪녹색은 적색이다≫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지구온난화, 유전자변형농산물 그리고 맑스주의”다. 이 책은 맑스주의 과학자가 쓴 것인데, 복잡하고 어지러워 보이는 환경문제를 풍부한 자료를 곁들여 쉽고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선진노동자라면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는 훌륭한 환경문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끔찍한 환경재앙인 지구온난화

  한국에서도 해마다 대홍수가 나고, 이상가뭄이 생기며, “따뜻한 겨울”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엄청난 재산피해를 일으키는 태풍, 폭우, 산불, 가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것은 지구온난화로 날씨변화의 핵심동력인 물의 흐름이 빨라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기온이 높아지면 바닷물이 빠르게 증발해 하늘에서는 규모가 크고 강력한 폭우가 쏟아지며, 반대로 땅에서는 높은 온도 때문에 극심한 가뭄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가뭄 때문에 바람을 일으키는 기압의 변화가 심해져서 거친 강풍, 폭풍, 토네이도 같은 것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바다의 수면을 상승시켜 네덜란드에서 방글라데시까지 많은 나라와 도시들을 물에 잠기게 할 수 있다. 치명적인 열대성 질환을 또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 가뭄과 폭우로 농업을 붕괴시켜 식량난과 기근을 가중시키고, 사회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비참한 전쟁위협을 촉발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재난을 다 합친다면, 지구온난화는 인류를 야만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는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배출 증가 때문에 일어난다. 그리고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는 것은 화석연료의 연소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자동차, 도로건설, 발전산업, 석유, 석탄, 가스와 그 연관기업들의 이윤 즉, 자본가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한 생산방식과 연결된다. 발전소와 자동차 같은 교통수단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전체 배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이 각각 세계의 모든 이산화탄소의 25%와 20%를 배출하는 주범들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줄일 수 있는 간단하고 즉각적인 조치들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기존 기술을 이용하면 공장이나 발전소의 이산화탄소 배출도 대폭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을 사용하는 공장이나 발전소는 극히 드물다.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빠져나올 수 없도록 해양이나 해저에 저장하거나 격리할 수 있는 기존 기술도 마찬가지로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

그런 기술의 사용은 이윤을 떨어뜨리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데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대거 확대하면 교통수단의 이산화탄소 배출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만약 서울의 지하철, 철도 같은 대중교통을 대거 늘리고 가격을 무료로 하며, 자전거도로와 인도를 모든 곳으로 확대하면 자동차 사용을 과감하게 줄일 수 있다. 또, 주택과 빌딩에 더 나은 단열재를 사용하면 가정의 에너지사용과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다. 이런 조치들이 이루어지려면 정부가 자본가들로부터 많은 세금을 거둬들여 공공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수많은 끈으로 자본가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결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가들의 경쟁력 강화를 돕기 위해 자본가들의 환경파괴 비리마저도 눈감아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풍력, 조력(潮力), 태양력 같은 대체에너지 개발도 환경파괴를 막을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다. 이런 것들은 사회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없고, 기술적으로 너무 어려우며, 비용이 많이 들어 실제로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은 자동차공장, 발전소,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기업 자본가들이 로비를 통해 꾸며낸 얘기일 뿐이다.

예를 들어, 영국 상공부는 연구 결과 근해의 풍력터빈만으로도 현재 영국의 최대 전기사용량보다 적어도 두 배, 어쩌면 40배까지 많은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태양에너지의 경우도 잠재력은 무궁무진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이용되지 않는다.

  끔찍한 환경파괴를 막을 수 있는 이 모든 좋은 대안들은 오직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살벌한 무한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윤보다 환경을 먼저 고려할 수 있는, 여유있는 자본가나 정부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런 자본가나 정부가 있다면 다른 자본가나 정부로부터 “미친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인류를 야만으로 떨어뜨릴 만큼 환경을 파괴하면서 이윤증식에 미쳐 날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인정받고, 그에 반하는 모든 것은 정신나간 짓으로 매도당하는 사회가 바로 자본주의 사회다. 이 사회 전체가 거대한 정신병원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전세계 식량생산을 통제하려는 유전자조작식품 개발

  유전물질인 DNA의 기본구조는 1954년에 발견했고, 식물의 유전자변형은 1983년에 처음 성공했지만 유전자조작식품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1996년 이후부터였다. 유전자조작식품은 실험실 밖으로 나와서 거대한 사업이 되었다. 벌써 세계시장은 30억 달러(약 4조)의 가치 이상이며, 2010년까지는 약 250억 달러(약 32조)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미 미국에서 재배하는 콩의 1/2, 옥수수의 1/3이 유전자조작식품이다. “유전자 거인들”이라고 불리는 5대 다국적기업이 유전자조작 종자 시장을 100% 장악하고 있다. 그 기업들은 바로 몬산토, 뒤퐁, 노바티스, 아벤티스, 아스트라제네카이다. 이 기업들은 세계 살충제 시장의 2/3를 장악하고 있고, 화학약품을 생산하고 있다. 예컨대 몬산토는 베트남전쟁 때 사용됐던 고엽제를 생산한 회사였다.

  이 기업들이 유전자를 조작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바로 돈에 있다. 이 기업들은 먹이사슬 전체를 통제하려 하는데 그 첫번째로 종자를 통제하려 한다. 이를 위해 이들은 종자, 그리고 개별유전자에 대해 특허를 내어, 농부들이 수천 년 동안 해왔던 종자의 저장과 공유를 법으로 금지하려 한다.

예를 들어, 텍사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라이스텍 사가 바스타미 쌀에 특허를 냈는데, 수백년 동안 이 쌀을 키워온 인도의 농부들은 이제 농사를 계속 짓기 위해서는 그 미국회사에 돈을 내고 종자를 사야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유전자조작 기업들은 가만히 앉아서 떼돈을 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기업들은 한발 더 나아가 세계의 모든 농작물에서 생식능력이 없는 종자를 만들려고 한다. 이것을 “터미네이터 기술”이라고 부른다. 기업은 이 기술을 통해 모든 생명체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인 재생산능력을 제거하고, 세상과 만물을 자신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상품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 기술이 널리 사용되면, 농부들은 기업으로부터 종자를 사서 한 해 농사를 짓고 그 다음 해에는 또다시 똑같은 종자를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생명의 재생산능력까지 없애가면서 이윤을 증식하려는 자본의 저의는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1998년에 개발된 이 터미네이터 기술은 특허를 받아 지금 몬산토에 매각되어 있다. 이 기술의 위험성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격렬한 반발이 일어났다.

  유전자조작 기업들과 그들을 후원하는 정부는 유전자조작식품이 인간과 환경에 안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위험한 거짓말이다. 유전자조작식품은 새로운 음식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유전자가 조작된 농산물로부터 다른 식물로 유전자가 쉽게 옮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제초제에 내성을 지닌 슈퍼잡초가 나올 수도 있고, 살충제에 내성을 지닌 슈퍼곤충이 생겨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많은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치명적인 새로운 바이러스성 질병이 등장할 수도 있다.

이런 위험이 현실화된다면, 심각한 생태계혼란과 파괴가 일어날 수 있으며 인간에게 끼치는 해악도 어마어마할 수 있다. 과거에 기업은 수익성과 주가만을 고려해 수십 년 동안 석면을 생산하고, 휘발유에 납을 넣었다. 그렇듯이 지금도 기업은 거액의 이윤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이라도 무릅쓰고 유전자조작식품 개발을 강행할 것이며, 또 상품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과학기술이 우리의 적인가?

  지구온난화, 유전자조작식품 같은 거대한 환경위기의 원인으로 과학기술을 꼽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대표적인데, 그는 모든 과학을 반대하면서 비합리주의, 신비주의로 후퇴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유전자조작식품을 만드는 것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자연을 멋대로 변형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적지않은 환경운동가들이 이런 비합리주의, 신비주의에 동조하고 있다.

  이들은 산업화된 농업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소농과 소작농을 파산, 빈곤, 자살로 내몰았으며 환경을 파괴했다고 비판한다. 이들의 이런 비판은 타당하다. 하지만 이들은 동전의 다른 면을 보려 하지 않는다. 즉, 농업에 과학기술을 이용함으로써 생산력이 향상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자본가들이 동전의 긍정적인 앞면만 보고 부정적인 뒷면을 보려 하지 않는 것처럼, 이들은 그와 정반대로 부정적인 면만 보려 하는 것이다. 1950년부터 1984년까지 제3세계의 농업을 변화시킨 “녹색혁명”은 숱한 문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을 통한 산출량 증가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전세계 인구가 먹을 식량이 없었을 것이다.

  비합리주의, 반(反)과학주의자들은 “문제는 과학 그 자체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작동하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맥락에서 발생한다. 과학이 우리에게 이롭게 사용되는가 아니면 해롭게 사용되는가는 그 권한을 누가 통제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점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과학을 거부하고, 전통적 방법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방법의 장점을 활용하면서 동시에 이윤의 명령을 거부하고 인간을 위해 과학을 활용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이 책은 이런 관점에 일관되게 충실하며,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해서도 이 책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아마 전통농작법과 유기농법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태도를 신념으로까지 추켜세우는 신비주의적 방식이어서는 안된다. 반드시 실제 지식에 기반을 둔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농작법은 또한 ”산업화한“ 농작법을 포함한 다른 경작법들의 장점도 배울 것이다. … 일부 유전자조작 농산물이 어떤 면에서는 유용한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자본주의 기업들이 이용하고 있는 유전학 기술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은 유전자의 작용방식을 훨씬 더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하고, 그것을 과학적 생태학 속으로 훨씬 더 통합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대중적인 토론과 논쟁,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위험에 대한 장기적이며 철저한 실험이 필요하다. 그 전제조건, 그리고 어떤 종류이건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의 전제조건은 이윤이 세상의 모든 리듬을 좌우하는 추진력이 되는 사회와 결별하는 것이다.”


환경위기는 더 큰 사회위기의 일부다

  일부 생태주의자들의 사고와는 달리, 인류는 처음부터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환경을 변화시키면서 생존해왔다. 아니, 모든 형태의 생물이 환경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면서 살아왔다. 계급사회 이전부터 오랫동안 인류는 자연계의 작용에 무지했기 때문에, 환경과 미래를 고려하지 않은 채 생존을 위한 자연파괴를 계속해왔다.

예를 들어 1만 1천년 전, 아메리카대륙에서 인간은 대형포유동물을 마구 사냥해 거의 멸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특정지역에서 식량이 고갈되면 새로운 지역으로 옮겨가는 식으로 대처했다.

  계급사회에서 환경파괴는 사회위기와 긴밀하게 맞물려 이루어졌다. 생산력 발전으로 등장한 지배계급은 이제 더이상의 생산력 발전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발전이 없으면 지배자들의 탐욕(호화 사치생활, 종교의식, 전쟁 등) 때문에 사회자원은 바닥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탕진하는 사회자원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생산방식을 지탱하는 자연환경능력이다. 이 때문에 흔히 환경위기는 더 광범한 사회적 위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 예로 마야문명의 붕괴 등 몇 가지 사례를 들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사회위기와 환경위기의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처참한 경우일지라도 사회붕괴와 환경파괴의 영향은 그 사회의 규모에 맞게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생산을 혁신하고 확장하면서 세계를 자기 모습대로 재창조하고 긴밀하게 연결시킨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사회붕괴와 환경파괴의 영향은 그야말로 세계적이며, 과거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파괴적이다. 1, 2차 세계대전과 파시즘의 유대인 대학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 풍요 속의 대기근, 세계적인 기후재앙 등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은 현재 환경위기의 근본원인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생산방식은, 생산요소를 통제하는 지배계급의 이익만을 위해, 장기적인 사회적 환경적 결과와 무관하게 발전하고 지속된다.”

“자본주의에서 세계와 사람, 환경은 ‘상품’이다. 그리고 지배계급은 자기 지위, 권력, 특권을 포기할 바에는 차라리 멋대로 파괴할 것이다.”

  이것은 지금 현실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환경적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경제논리로만 밀어붙였다가 결국 유보된 상태다. 청계천 복원은 “친생태도시”라는 그럴듯한 이름 아래 강행하고 있지만 사실 금융산업, IT 산업, 유통산업의 새로운 거점을 마련하여 돈벌이를 확대하기 위한 것일 뿐이므로 서울의 환경개선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위도의 핵폐기물 처리장 선정과 그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 그리고 정부의 폭력탄압은 지배세력이 얼마나 민주적 토론 없이 강압적으로 정책을 관철하려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지배세력에게는 오직 이윤, 권력의 안정성이 최우선이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 서슴지 않을 태세가 되어 있다.

  이 책은 실천적 결론 또한 분명하게 내리고 있다. 환경위기가 더 큰 사회위기의 일부이므로, 환경위기에 대한 비판은 더 큰 사회위기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대안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집단적이고 민주적인 통제가 사회의 주춧돌이 되는 세상”을 제기하며, 그 세상은 “도시와 시골의 분리 또는 인간과 자연의 분리가 무의미한 세계”라고 얘기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이 체제의 토대가 되는 노동을 하는 계급이 다양한 사회집단과 운동세력들의 저항을 이끌어야 하며, 그 저항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이 책은 결국 노동자의 눈으로 환경위기를 보고, 노동자가 주도하는 실천으로 환경위기와 사회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노해연 22호>


[저자] 폴 먹가(Paul McGarr)

영국의 좌파 저널리스트다. 런던대학교 퀸메리 칼리지에서 카오스 이론을 전공했으며, 응용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4~1985년 광부 파업 때 잉글랜드 북부에서 파업 연대 활동을 조직했다. 1988년 이래로 영국 좌파 저널에 다양한 주제의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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