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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목회세미나⑥] 특강 2 / 김정희 선생 "일본 신도의 영성"일본 신도神道의 핵심적인 기능과 가치
방현섭  |  racer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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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2월 15일 (화) 15:59:30
최종편집 : 2011년 02월 15일 (화) 23:20:56 [조회수 : 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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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도의 영성'이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 특강이 이어졌다. 김정희 선생은 이화여대를 졸업했고 대만에서도 공부를 하였으며 미국 갈릴리신학대학원에서 학위 과정 중에 있다. 신도를 우리가 잘 알 필요는 없지만 신도의 영성을 들여다보면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로 삼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홍정수 교수가 소개하였다. 김정희 선생의 강의 요약이다.

 

   

 

JMS에 잠시 발을 들였다가 실망하여 나오고 통일교까지 접했었다. 통일교를 통해서 일본인과 결혼을 하여 일본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갈릴리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 자리까지 나와 강연을 하게 되었다. 일본선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일본인의 심성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인들은 신도를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도를 하지 않고 목례만 한다. 일본 신화를 보면 천지창조 등이 우연적이다. 신들은 전지전능하다기보다는 인간적이고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도 않는다. 신도의 시작이 강한 종교의 입장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는 메이지 시대인 15세기경에 전래되었는데 이 당시에 서구종교에 대응하기 위하여 자국의 신도를 연구하면서 강화되었다.

일본인들은 신을 거룩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신들이 나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삶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또 어던 사람, 특히 억울하게 죽었던 사람이 살아 생전에 잘 했던 것을 자기도 잘 하게 되기 바라면서 신도를 찾기도 한다.

남신과 여신이 성교를 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세 살이 되도록 걷지를 못하자 바다에 쌓아서 버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처럼 일본의 신은 억울하게 죽고 버려지고 나약하고 위로할만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저 생활 속에서 감사하면서 몸을 깨끗하게 하는 정도이다.

어린이들이 게임기를 통해서도 신화를 접하게 되고 신화적 내용, 즉 몸을 깨끗이 씻고 청결하게 하는 생활방식을 접하게 할 정도로 생활과 밀접하다. 원령신앙은 원한을 품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 신이 된다는 의식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오늘날 사회복지제도의 추진력이 되기도 하였다.

신사를 찾는 일본인은 잘 죽을 수 있게, 죽으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들에게 내세에 대한 개념은 희박하고 삶에 집중돼 있다. 신사를 찾아가면서 기도하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생활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국토와 역사가 처한 상황에서 신도는 상항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경전이 있지도 않다. 일본 신도는 일본인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각종 신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신의 필요가 아니라 일본인의 필요가 우선인 것처럼 보인다. 야스쿠니로 대변되는 일본신도는 극히 일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신도에 대한 오해를 줄일 필요가 있으며 이웃나라의 종교로 관심을 갖는 것도 좋겠다. 신도는 인간의 이성과 본성에 의지하고 있는 개방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강연 후 질문은 과연 강연자가 이야기하듯이 일본신도가 개방적인가, 아니면 해마다 문제가 되듯이 야스쿠니 신사처럼 제국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인 요소가 있는가 하는 것으로 집중되었다. 그러나 일본인의 영성, 일본인의 종교성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홍정수 교수가 정리하였다.

 

 

일본 신도의 영성

김 정 희 선생
갈릴리신학대학원


1. 연구동기와 주제

일본인들의 생활모습을 보면, 막 태어나서 한 달쯤 지나면 신사神社를 찾아가 신도식神道式의 의례의식을 치르는가 하면, 결혼식을 올릴 때는 교회를 찾기도 한다. 또 그런가 하면, 장례식은 불교식으로 치른다. 그런 일본인들의 종교 내지는 “신”에 대한 의식은, 한국인들과 너무나 다른 것으로 보였다. 그 “다르다”라고 하는 인식에는, 있는 그대로를 보고 알려고 하는 자세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반감을 가진, 배척하는 자세가 강했다.

흔히 일본 신도라고 하면, 안팎에서 두려움 혹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천황 중심의 국가신도를 연상하는데, 여기서 필자는 일본의 “패권주의적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새 이해가 가능한가를 묻고자 한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오히려 정신적 공황기를 겪고 있는 일본의 전후戰後 세대들과, 한국의 지인들에게도 삶의 작은 지혜가 전해지길 바라면서, 일본 신도神道의 핵심적인 기능과 가치는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 가치들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살아있는지에 대해서 중점을 두고 연구하고자 한다. 필자는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신도神道라고 하는 종교는, 계급이나 신분의 고하를 막론한 현세에 살아있는 이들의 삶에 질서를 가져다 주는 방편으로, 인간의 이성과 본성에 의지하는 열린 개방적인 종교임을 밝히고자 한다.

2. 연구방법

현대 일본사람들의 신도신앙을 크게 셋으로 나누는 학자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전국 11만의 신사神社(-진자)를 중심으로 한,“국가신도”로 불리었던 신사신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쟁 전戰前에는 신도13파, 전후戰後 오늘날에는 81파로 증대된, 교단 창시자의 종교체험이 중시되는, 교파신도 및 신교파(48단체)이다. 그 마지막으로, 종파宗派를 막론하고 일본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함께 하는 민간신앙을 든다. 그런가 하면, 헤이안(平安시대, 794-1192) 후기(12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지식층에 의한 이론신도理論神道와 신사신도 및 교파신도를 보이는 신도로 보고, 민간신앙은 보이지 않는 신도로 나눈 학자도 있다.

필자는 신도가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는가를 고찰하기 위해, 시대적 상황의 변화와 함께 신도에서 중요시하는 가치는 어떻게 변모해 가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또, 기득권자인 관官과 신도의 중심세력자들인 신직자神職者들, 그리고 일반 서민들은 각각 어떠한 동기와 입장에서 그 가치들에 참여하고 동조해 갔는지에 중점을 두고 알아보고자 한다. 이로써, 신도신앙에 계층을 넘어선 공통점은 없는지를 찾아볼 것이다. 그렇게 신도 전반에 흐르는 가치와 기능이 무엇인지를 살핌으로써, 하나의 신도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연구범위와 대상으로는, 고대 야마토정권이 일본 전국을 통일하기까지의 사실과 맞물리는 최고最古의 역사서歷史書인 <고사기古事記>에 실린 신들 이야기와, 전국의 신사에서 모시고 있는 주요 제신祭神들, 그리고, 신도에서 행하는 의식 등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3. 신도神道의 영성靈性

원시신도의 형성에서부터, “신”들의 탄생과, 원령신앙을 통해, 사람이 새롭게 신으로 중생重生하는 인신人神사상을 보면서, 일본인들의 신들에 대한 개념이 실제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폈다. 그리고, 신화 속에서 신들의 죽음의 세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폈다.

3-1 신들의 탄생과 중생重生

3-1-1 공동체 제사

일본 원시시대에는 막연하게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고 감사의 대상이기도 했던 하늘을 향했던 작은 공동체 제사가, 차츰 시대의 변화와 함께, 부족단위로, 국가단위로 커져 갔다. 통일국가를 이루고 난 뒤, 정부는 각 지방의 社에 재정적 지원을 해주면서, 관원을 배치하였고, 그들을 통해 율령_법을 하달하면서 지방을 지배했다. 이때부터 이미 국가신도_신사신도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황실에서 모시는 제신_아마테라스를 각 지방의 신사에 강요하거나, 모시는 다른 제신들을 간섭하지 않았다. 아마테라스는 황실의 조상신일 뿐이었다. 또, 작은 공동체인 촌락은 촌락대로 여전히 그대로 존속하였고, 작은 규모의 제사의 제신들도 여전히 존속하였다. 그 제신들은 그 지역 공동체를 위해 모시는 신이었고, 아마테라스는 실생활과는 거리를 둔 존재였기 때문이다.

3-1-2 일본 고유의 종교라는 자의식

일본인들에게는, 신에게 드리는 제사란 살기 위한 의식儀式이었고, “신”은 그 의식의 대상이었다. 그런 신도가, 일본 역사상, 일본 고유의 종교라는 자의식을 가진 적이 두 번 있었다.

그 첫 번 째는, 8세기에 편찬된 최고最古의 역사서歷史書인 <고사기>,<일본서기>에 처음으로 “신도神道”라는 말이 등장했을 때이다. 그때는 야마토정권이 통일을 이루어가면서, 호국불교정책을 썼을 때이다. 당시의 일본 정황을 살펴보면, 백제 고구려의 멸망으로 인해, 많은 유민流民_도래인渡來人들이 일본으로 이동해 갔는데, 이들로 인해 일본은 갑작스럽게 선진문물들과 함께 불교문화도 받아들였다.

불교는 특히 쇼토쿠태자를 비롯한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그 세력이 커져 갔는데, 이에, 그 이전부터 존재해 온, 왕실 제사를 담당해 온 신직神職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제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내세운 것이 “신도神道”였다. 이때 언급된 “신도”는, 어느 한 종교를 가리킨다기보다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만물의 본체이면서도 남겨지는 바가 아닌, 귀신의 덕(영묘함)”이라고 한 <中庸>16장의 구절로써 그 성격을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신도는, 중세(12세기말-16세기말)까지 한국이나 중국을 통해 불교나 도교, 음양사상과 유학사상 등을 습합習合하여, 여러 이론신도로 변모하면서 발전해 갔다.

그 두 번 째로는, 메이지시대(1868-1913)이다. 일본 지식인들은, 서구 열강들로부터의 문호개방에 대한 압력과 함께 들어온 기독교문화에 자극을 받았다. 이에, 지식인들은 <고사기>의 신화연구를 비롯하여 더욱 자국自國의 신도사상을 연구하였다. 정치계政治界에서는 그러한 국내외의 정세 속에서 지식인들로부터 힘을 입어, 당시 정계의 무대에서 물러나 있었던 천황을 현인신現人神으로 옹립하면서 구심력을 만들어 세계 역사무대에 등장하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그때부터 일본의 국가신도가 다른 나라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시대에, 약간의 신사 통폐합이 있었기는 했지만, 여전히 일본의 신들 수가 팔백만신이라 할 정도로, 전국 각 신사에서 모시는 제신은 가지각색이었고 복잡했다.

3-1-3 신화 속 신들의 탄생

<고사기> 속 신화에 그려진 “신”들의 탄생을 보면, 하늘과 땅이 아직 혼돈상태에 있을 때에 세 기둥의 신이 차례로 나타났다. 이 신들에 대해서는 역할만 언급되어 있다. 이어서 국토가 형성될 수 있는 기초를 만든 신과 국토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신이 나타나고, 이들 다음으로 남녀 쌍의 신들이 등장하지만, 일본과 관계를 맺는 최초의 신은, 그로부터 7대째에 탄생한 이자나키(남신)과 이자나미(여신)이다.

이 남녀신의 성교性交로 인해 일본의 국토가 만들어지고 여러 문화의 신들도 생겨났다. 그런데, 불의 신을 만들다가 여신인 이자나미가 황천국으로 가고 만다. 이자나미가 죽고 난 얼마 후, 이자나키(남신)는 이자나미를 만나러 황천국에 갔다 왔지만, 현세로 돌아온 이자나키는 황천국에서 더러워진 몸을 강물에서 씻어낸다.(이는 지금껏 신도 淨靈의식의 기초가 되었다.) 이때의 이자나키의 작은 몸짓, 행동으로부터 많은 신들이 생겨났다. 그중 대표적인 세 신이, 아마테라스(태양신), 스사노오(海神), 츠쿠요미(月神)이다.

이렇듯, 신화 속에서 신들의 탄생은 결코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일본의 태양신은 여신인데, 타국에서 볼 수 있는 태양신이 강력한 힘의 남신으로 그려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것이다.

3-1-4 신들의 중생

3-1-4-1 에비스신

<고사기古事記>,<일본서기日本書紀>의 신화 속에서, 이자나미와 이자나키의 성교性交로 인해 생겨난 첫아이 히루코는, 태어난 지 삼년이 되어도 걷지 못하자 부모에 의해 바다에 버려졌다. 그런데 이 버려졌던 존재 히루코는, 16세기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1338-1573년)에 7복신 중의 에비스라는 한 신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연초에 7복신 순례를 위해, 절이나 신사를 방문하여 복된 한 해를 기원하면서, 에비스라는 신을 기억한다.

중세(1185-1600) 일본인들은 민족의 시원始原에 대한 탐구 열망이 뜨거워서, 신화 속의 신들을 자주 거론하였는데, <일본기日本紀>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신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는, 고대신화에서 얘기되는 ‘기원’에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 복잡해져가는 중세사회의 요구에 응답하는 형태이기도 했다.

<일본서기>의 전문연구가(우라베카네카즈卜部兼員)가 궁정인宮廷人들 앞에서 자신이 아는 <일본서기>의 신화를 이야기하면서, “히루코蛭子는 지금의 西宮의 大明神이 되었습니다”고 덧붙여 말하였는데, ‘서궁의 대명신’의 다른 이름이 ‘에비스사부로夷三郞’라고 한다. 이는, 바다에 버려진 불구의 신 히루코를, 에비스(夷,戎)가 먼 바다 저 편, 이향異鄕으로부터 표류해 오는 신이라는 정보와 연결하여, 에비스로서 정중히 모신 것이다. 또, 혹설或說에는, 버려진 히루코는 용신龍神-바다신이 거두어 잘 성장시켜, 나중에는 아마테라스와 함께 모셔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용신으로부터 바다의 세계 지배권을 받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신화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이어져 있는 것도, 일본문화의 독특한 특징이지만, 신들 중에서도 강력하고 힘센 신보다는 오히려 버려진 신을 주목하고, 그 신을 지워 없애버리기보다 다시 복을 주는 신으로 살려내는 일본인들의 정서가 독특하다 하겠다.

3-1-4-2 천신天神

10세기 초에 충신 스가와라 미치자네(관원도진菅原道真)는 억울하게 죽은 지 40년만에 천둥신으로 받들어진다. 스가와라가 죽을 때 천둥이 울리면서 천재天災가 발생하였고, 그가 죽은 해에는 유난히 일식日蝕과 월식月蝕, 홍수와 역병 등이 뒤를 이었다. 또, 스가와라를 죽음으로 몰고 간 조정 사람들을 비롯해, 다이고 천황에게까지도 이변과 불행,죽음 등이 잇달았다. 스가와라가 죽은 지(903년) 40년이 지난 942년에 무녀巫女에게 신탁神託이 내려진 이후, 스가와라의 영을 천둥천신火雷天神 으로 받들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를 제신으로 모시고 있는 신사에서, 생전의 스가와라의 탁월했던 학문을 기리고, 그의 힘을 빌려 학업을 이루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그를 학문의 신으로 모시고 있다. 명절 때는 물론이고, 시험철 때마다 수험생과 그 부모들이 스가와라를 제신으로 모시고 있는 텐만궁天滿宮을 즐겨 찾는다.

10세기 초의 스가와라의 원령怨靈신앙은, 고대부터 내려온 천신신앙과, 영혼의 존재를 믿어왔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원령신앙은 그 성립기는 물론이고 중세에 조정의 권위를 상대화 시켰다. 16세기, 무신武臣에 의한 통일정권시기에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신격화를 낳았고, “풍국대명신豊國大明神_토요쿠니다이메이진”의 성립, “동조대권현東照大權現”의 성립이라고 하는 권력 중추를 장악한 사람을 신으로 삼아 신앙하는, 근세적인 인신신앙人神信仰의 성립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근세적 인신신앙을 전제로 하여, 근대의 국가신도에 있어서의 헤이안신궁, 메이지신궁 등, 천황을 신으로 모시는 현상이 확대되었고, 같은 선상에서, 대외침략전쟁에 참가하다가 전사한 사람들을 신으로 모시는 야스쿠니신자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원령신앙은 생활 속에도 면면이 스며들어 있어서, 약하고 억눌린 자들에게도 원한을 사지 않으려는 의식문화를 낳게 했다. 그 문화는 오늘날의 사회복지제도에 보이지 않은 힘이 되었고, 생명이 있는 모든 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고 하겠다.

3-1-4-3 바늘공양

에도시대(1603-1868)부터 바늘공양이 행해졌다고 한다. 재봉할 때 부러졌거나 굽어진, 혹은 녹슬고 오래 된 바늘을 곤약구나 두부에 꽂아, 바늘의 수고를 위로하고 재봉을 잘할 수 있게 되기를 빌면서 절을 올리는데, 바늘에게 감사의 맘을 전하는 마츠리(일종의 제사)라고 한다. 농사일의 시작(2/8)과 농사일의 마감일(12/8)에 신사에서 공양을 올린다고 한다.

이 바늘공양의 유래에 대해서, 일본에서는 중국에 이 바늘공양과 비슷한 것이 있었던 것이, 언제부턴가 일본에 전해졌다고만 알고 있는데, 중국에서는 그 자취도 없고, 오히려 바늘공양은 일본의 민속문화로 알고 있다. 또, 일설에는, 동북지방의 일부에서의, 옛날, 시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하던 며느리가, 바늘산에서 바늘을 훔쳤다고 하는 근거도 없는 죄를 뒤집어 쓴 채,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며느리가 죽은 전날부터 바다가 거칠어져, 며느리가 있는 집에서는 바느질일을 쉬고, 그 공양을 한다고 하는 설도 있다.

이 바늘공양은, 와카야마시和歌市의, 여자의 수호신이 있다고 하는 아와시마淡島신사가 유명하다. 제신은 스쿠나히코나_소언명명少彦名라고 하는데, 『고사기』에서는 이자나키와 이자나미의 두 번째 아이인데 모습이 이상해서 바다에 버려졌다고 쓰여 있다. 『일본서기』에서는 하타카미무수이의 손가락 사이로 떨어진 작은 신으로, 거의 항상 오호나무치(오호쿠니누시)와 함께 협력하여 농경과 의료를 시작했다고 쓰여 있다. 모습이 이상해서 바다에 버려졌건, 손가락 사이로 떨어진 작은 신이건 간에, 바늘공양으로 유명한 아와시마신사의 제신은, 바다 저편으로부터 와서, 아이를 유산한 여성들의 슬픔을 떠맡아 주는 신이다.

에도시대 약 260년간은, 서구열강들의 개항 요구로 인한 개항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와 산업이 발달한 때였는데 여자와 남자의 인구 구성비가 1:5였다고 한다. 에도(지금의 동경)를 비롯한 도시에서는 여성의 성적 자유가 암암리에 허용되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 시대에 바늘공양을 올린 것은, 여성들의 봉재 수고에 감사하고 위로하며 여성을 쉬게 함으로써, 사전에 여성들의 반란을 막는 예방책으로 보인다.

기독교에서의 언어화된 기도를 받는 전지전능한 신과는 달리, 신사神社에서 절을 받는 신들 중에는, 인간을 초월한 강한 자가 아닌, 버려졌거나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자들도 있다. 그들로부터의 재앙을 면하기 위하여 그들을‘신’으로 삼아, 위로와 감사의 맘을 담아 절이라는 예禮를 올리는 것은, 지극히 소극적 행위라 할 것이다. 절을 올리는 그 마음이 언어화되기 어려워서, 절이라는 행위에 담긴 의식마저도 표면화되지 못하지만, 언어화 이전에 이미 그 행위에는, 죽음 등으로 인한‘유한성’에 대한 인식이 잠재되어 있으면서도,‘삶의 경건성’이 담겨 있는 것이다.

3-2 죽음의 세계, 황천국

집단무의식을 말하는 융 심리학자의 일본신화 읽어내기에 의하면, <성性>과 <죽음>과 <문화>는 동시에 생겨났다고 본다. 그러나 희랍문화 영향을 크게 받은 중세의 기독교와는 달리, 이들은 결코 부정적으로 그려져 있지 않다. 성은 생산 즉 생명과 풍요를 가져오는 것이었고, 죽음의 세계_무의식의 세계인 황천국도, 산 신이 갈 곳은 아니지만, 신도 죽음을 경험하면 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신화 속에서 다른 신들(아마테라스(태양신)의 동생인 스사노오(바다신)은 죽지 않고 황천국에 가, 그곳을 지배하는 신이 되었고, 그의 딸은 나중에 지상의 신_오호쿠니누시를 도와, 그와 결혼한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신화 속에서 삶과 죽음의 세계는,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닌, 동일선상의 공간 이동이었다.

3-3 구원의 방법

3-3-1 칠복

일본의 신들은, 팔백만신이라 할 만큼 그 수가 아주 많은데, 그중에 일본사람들의 칠복을 관장하는 신들이 있다. 이 7복신은, 일본 전국의 신사에서 모시는 여러 제신들처럼, 지역에서 모시는 지역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아니다. 국가와 종교, 성별도 다를 뿐만 아니라, 신들마다 각각 하나의 복만을 전담하지 않고 여러 복을 관장하고 있다.

칠복신들의 출처를 알아보면, 고대 인도의 신화에 등장한 이, 중국의 불교와 도교에서 회자되었던 이, 그리고 일본신화에서 등장했던 이 등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이 일곱신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과거에 사람들 사이에 회자된 적이 있었던 이들이고,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신으로서의 지위도 그리 높지 않고, 약하고 버려진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보물선을 타고“바다 저편에서 이곳으로” 온다고 하는 점이다.

이 칠복신 신앙에 중세시대 때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원령신앙과 유사한 생각들이 깔려 있다고 하겠지만, 불교경전의 「 칠난즉멸, 칠복즉생 七難卽滅, 七福卽生 」라는 구절을 들어, 칠복신 신앙을 논하기도 한다. 재난이나 복에 관한 관념들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일곱 재난이 소멸되면, 칠복이 생긴다고 하는 구절은, 일상에서 일본사람들의 복을 구하는 마음을 단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3-3-2 청결

신도에는 죄의 개념이 없다. 신화에서 보듯이, 죽음의 세계에 대한 특별한 거부감 없이, 죽음을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대신, “불결”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신화 속의 이자나키가 강물에서 몸을 씻은 이유도, 이자나미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의식이 아니고, 단지 황천국에 다녀온 몸이 불결하다고 여겨서였다. 이로 인해, 신들은 불결한 것을 싫어한다는 의식이 생겼는지, 신사에 들어서면 먼저, 물로 양손과 입을 씻는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몸을 정결하게 하여 신 앞에 서는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런 의식은 생활 속에서도 널리 보편화되어, 청결과 위생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또 집에도 부엌 벽 한쪽 ‘가미타나'라고 하는 곳에 신을 모셔 두고 날마다 가정의 평화를 기원하고 감사를 올린다. 공동체 생활에서는 말과 행동을 하는 데에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한다. 좋지 않은 신이 생겨날 것을 꺼리는 것이다. 이렇듯이 부지불식간의 생활관습과 의식意識 속에 종교성이 상징화되어 있는데, 신들이 싫어한다고 믿는 것은 꺼리고 행하지 않음으로써, 일상에서 구원을 이루어간다.

4. 맺음말

신화에서나 역사 속에서 일본인들이 섬겨온 제신들을 보니, ‘신들의 탄생’이나 ‘중생重生’은, 신 만들기였다. 즉, 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역사 속에서 전적으로 인간의 책무였음이 드러났다. 신도에서 모시는 제신들 중에는, 역사상의 인물도 있지만, 자연물이나 정령, 그리고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 등이 존재한다. 일본인들은 삶 속에서 자연재해나 역사적 위기에 처했을 때, 혹은 필요에 의해, 이들을 신으로 모시면서 자신들을 위로하고 다스리며 수행해 나갔다.

신사참배와 패권주의의 연결은, 일본 전통적인 신도의 자연스런 발전이 아니라, 제국주의적이고 폐쇄적인 근대 기독교에 대한 반동反動적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역사 속에서 아마테라스_태양신은 천황가의 조상신일 뿐이다. 천황을 그 태양신의 현현으로서의 신이라 여겼다 해도, 일본인들에게는 여러 신들 가운데의 한 신이었다. 기독교에서와 같은 초월적 내지는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한 신의 위치는 일본인들에게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황실이나 귀족, 혹은 대중 등 계급이나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일본신들은 현세에서의 삶에 질서를 주는 인간적인 하나의 표현이었을 뿐이다.

일본 신도는 시대적 상황의 변화와 더불어, 흐르는 강물처럼 방향을 가지고 흘러간다고 하겠다. 그 흘러가는 방향이란, 일본인들이 신도에 참여하면서 얻는 참여자들의 ‘가치’이고, 그 가치란 사후 세계의 천국이나 극락왕생이 아닌, ‘이곳’의 실생활에 적극적인 질서를 스스로 설정하는, 집합적이고 자연발생적인 지혜이다. 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또는 신에게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철저히 현세적이고 인간중심적이다. 이는, 대중 기독교의, 천국을 갈구하고 신의 통치를 희망하며 신 만나기를 열망하는 신 중심적 사유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겠다.

물론 택정언 씨가 지적한 바처럼, 일본신도에서는 절대적인 신과 나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으므로, 신 앞에 있어서의 개인의 책임 그리고 신과 사람 앞에서의 죄의식이 결여되어 있다고도 하겠다. 하지만, 일본사람들은 절하는 행위를 통해서 ‘이곳’과 신의 세계를 잇고 있었다. 그 행위 속에는 늘 신을 모시고 삼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또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폐_죄를 끼치지 않는다는 의식이 강하다. 절을 통해, 자연이 주는 풍성한 혜택을 감사하고, 자연이 주는 공포에 지지 않고 극복해 가는 마음이 길러진다. 또 죽은 이의 영혼을 기리고 위로하는 마음들은, 생활 속에서 살아있는 모든 생명과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대하는 마음으로 이어져 있다. 살아가는 모든 곳에 신성함이 깃들어 있기에, 자연은 물론이고, 물건 하나를 쓰는 데도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삶에 대한 경건한 태도를 몸으로도 익힌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인들 의식 속에서의 신은, 사람도 제사의 대상이 되고, 절을 받는 대상으로서 신과 대등한 입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천이나 바위, 거목, 강과 바다, 대지, 억울하게 죽은 이와 전사한 군인들, 하물며 부러진 바늘에게까지 절한다. 키에르케고르나 칼 바르트 등은 신과 인간,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지만, 일본문화 속에서는 그것과는 대조적인 차이를 살아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신도神道의 제신들 중에, 바다 건너편에서 온 신들이 있다는 것은, 신도神道가 외부 문물이나 문명을 적극적으로 습합習合하여, 자신들의 것으로 삼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한 일이었다. 이 점을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면, 습합하고 수용하는 주체는 누구이며, 그 기준이 무엇인지가 분명하지 않기에, 일본신도를 불안한 종교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상황의 변화와 함께 기득권자와 서민들의 입장이 달라져 가도, 그때마다 일본 신도의 변하지 않는 가치의 중점은 “이곳”이고, 공동체이다. 때로 그것은 ‘국가’이기도 할 테고, ‘지역’또는 보이지 않는 ‘개인’이기도 할 것이다. 이 때문에, 대중을 몽매한 죄인이라 여기는 기독교 입장에서 신도神道를 보면, 신도는 위험한 종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보는 신도神道는 인간의 이성과 본성에 의지하고 있기에, 보다 열려 있는 개방적인 종교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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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121.134.176.179)
2011-02-16 11:23:27
일본에 가서 전도하는것 참으로 쉽지 않겠네요...
일단 회폐단위가 우리보다 10배 많으므로 선교자금도 엄청 준비해야하고
그로인한 기반을 꾸려갈수있다는 이론도 희박하고~

음...정말 엄청 기도하고 돈 지원받고 어떤형태로든 그들의 생각을 원점으로 돌리고 그리고다시 기독교를 주입시켜야 된다는 ...
힘든과정 이겠네요.

아는동생도 일본선교사로 갔는데...
기도 이외에 참으로 줄수있는게 없네요.

어쩌면 회교국가보다도 더 힘든지역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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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4
암하렛츠 (222.237.199.137)
2011-02-15 23:27:29
"이러한 원령신앙은 생활 속에도 면면이 스며들어 있어서, 약하고 억눌린 자들에게도 원한을 사지 않으려는 의식문화를 낳게 했다. 그 문화는 오늘날의 사회복지제도에 보이지 않은 힘이 되었고, 생명이 있는 모든 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고 하겠다."

일본이 정말 이런 의식문화를 갖고 있다고요? 자국인들에 한한 의식인가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잦았던 조선침략이나 2차대전 참전을 어찌 설명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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