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랑 선교사 망얀 킴

         2010년 12월 14일

     맛다라 망고 나무 과수원에서 일하다 잠시 틈을 내 자동차를 세차 하던 그는 갑자기 힘이 빠지고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어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갑자기 풍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의식은 멀쩡하였다. 풍을 맞으면 정신은 멀쩡하고 몸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지만 밥은 잘 먹고 쉽게 죽지도 않아 죽을 때 까지 온 집안 식구를 모두 괴롭힌다하여 중의학에서 풍을 만병의 왕이라 칭한다. 50대 이후의 연약한 사람이 일을 너무 많이하여 과로하거나 과도하게 방사를 하면 풍이 오는 경우가 있다. 50대 후반에 늦게 새장가를 든 그가 갑자기 풍을 만난 것은 이 두가지 경우가 모두 해당되는 듯하다.   

     몸이 불구가 되어 정신적인 고통을 겪으며  사는 이보단 차라리 정신도 나가 제 몸이 병신인 줄도 모르고 사는 게 환자의 입장에서는 더 나을 것이다. 그의 살아있는 정신은 자신의 육신이 갑자기 무너져 불구자로 전락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쓰러져 있는 그에게 불안과 좌절과 실망이 엄습하였다. 반편만 간신히 움직이는 쪽의 팔과 다리로 땅바닥을 뒹굴며 갑자기 당한 일이 너무 억울하고 분하여 어린아이처럼 막 통곡을 하며 울었다. 이대로 병신이 될 수 없으니 날 좀 살려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하나님께 간청하였다. 이제 곧 젊은 부인에게서 아기도 태어날 텐데 이대로 주저앉아 병신이 되면 어떻게 사느냐고 목 놓아 울었다.

      살이 타들어 가도록 뜨거운 아열대의 햇볕을 등지고 자동차 옆에 쓰러져 뜨거운 줄도 모르고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정신없이 울부짖기를 몇 시간 하였을까! 어데 선가 음성이 들려왔다. 

     “한국 성도들이 너를 위해 기도해 주지 않느냐!” 

     그 음성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맞아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있지 않은가! 나는 외롭지 않다. 그분들의 기도로 나는 다시 회복되고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음성을 듣고 나서부터 펴지지 않던 손가락이 조금씩 펴지고 발가락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힘을 내어 한쪽 팔과 다리로 간신히 바나나 나무 밑으로 기어가 버려진 바나나를 주워 허기진 배를 채웠다. 어제만 해도 먹기 싫다고 버린 시든 바나나가 오늘은 귀중한 양식이 될 줄이야. 때에 따라 풍요로운 자의 쓸모없는 것이 가난한 자의 귀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혼자 쓰러져 하루 해가 저물어 갈 저녁 즈음에 인적이 드문 망고 농장에 멀리 마을에 사는 사람이 잠시 들렸다. 살려고 하는 자에게 항상 생명의 문은 열려 있는가보다. 그의 도움에 의해 방에 들어가 침대에서 쉬게 되고 식사도 하게 되었다. 부인이 하윌리 처가에 아기 낳으러 간 사실을 안 그는 그 후 가끔 들려 그의 식사를 챙겨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혼자 약 한 달을 들어앉아 기도만하고 쉬며 몸조리를 하였다. 부인에겐 연락을 못했다. 못했다기 보단 안했다. 전화연락도 안될 뿐만아니라,  자동차와 도보로 약 두 시간이나 걸리는 먼 산속마을에 위치한 처가에 연락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혹 연락을 한다 해도 별 대책이 없는 처가에서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을 것이고, 아기 낳으러 간 부인에게 불편한 사정을 알려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 K선교사가 건강한 모습으로 포터들과 짐을 운반하고 있다

     20년 동안 필리핀에서 선교사 활동을 했어도 남들처럼 번듯한 선교센터 하나 없이 그저 낡은 배낭 하나만 짊어 메고 이 산 저산 산속 부족마을 망얀족 마을을 돌며 선교하던 방랑선교사 ‘망얀 킴’을 하나님은 그냥 버리지 않으셨다.  풍을 맞은 후 혼자 농장에서 요양하며 한 달 정도 되고부터 기적적으로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팔도 굳지 않았고, 다리도 굳지 않았다. 보통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간신히 절뚝거리며 부인이 있는 하윌리 마을을 찾아 한 달 만에 부인과 상봉하였다. 오랜만에 나타난 남편의 사정을 듣고 부인과 처가 식구들이 깜짝 놀란다. 왜 연락을 진작하지 않았느냐고 야단이다. 처가 식구들의 간절한 보살핌으로 굳었던 혀도 좀 풀리고 어눌하게 말하던 것이 좀 좋아졌다. 절뚝거리던 다리도 한 결 부드러워 졌다. 

     어딘가 연고지가 있고 피난처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육의 인생이 모두 끝나고 죽음이 찾아올지라도 우리의 영혼이 거할 영원한 연고지(안식처)가 있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 영생의 기쁨에 뜻을 둔 자는 잠시 왔다가는 이생(이승)에 큰 미련을 두지 않는다. 예수를 믿고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느끼는 점은 가는 곳마다 나의 연고지가 있다는 점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만나자 마자 예수안에서 즉시 한 형제가 되어 서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함께 찬송하고 예배드리고 식사도하고 잠도 같이 잔다. 멀리 사는 친척을 오랜만에 만난 것 처럼 금방 친한 친척처럼 지내게 된다. 이러한 친절한 인생의 연고지는 천국까지 연결될 것이다. 

     그는 처가에서 몇 달 쉰 후 몸이 많이 회복되어 다시 맛다라 집으로 돌아와 일꾼들을 부려 망고농사와 선교사역에 매진하게 되었다. 풍을 맞은 지 약 2년이 지난 어느 날 한국에서 침뜸의료선교단이 온다는 소식이 그에게 전해 왔다. 풍을 맞은 후 한 번도 병원치료를 받아 본 적이 없는지라 기대가 되고 호기심이 갔다. 그러나 단기 선교로 왔다가 금방 돌아가는 분들에 의해 한두 번 치료 받는 것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반신반의 하였다. 그런데 예상보다 효과가 너무 좋았다. 단 한번 치료받고 났는데 그 이튿날 아침에 변화가 왔다. 풍을 맞은 후 늘 요양을 하여 몸이 처음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혀가 약간 굳어 말할 때마다 항상 불편하였었다. 그런데 침뜸 치료를 받고 그 다음날 바로 굳었던 혀가 풀려 말하기가 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그리고 전에는 걸을 때 다리에 힘이 없어 그냥 공중에 헛디디는 기분이었는데 걷기가 매우 편해졌고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 바탕가스에서 민도로 가는 배

     의료선교단이 4박 5일간의 민도로 섬 단기사역을 마치고 루손섬 엥겔레스로 떠난 다음날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더 침뜸을 받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선교단이 도착한 엥겔레스 선교사댁으로 전화를 하여 언제까지 거기 머물 것인지 물어보았다. 4일 정도 더 머물 예정이란다. 시간은 충분하다. 그러나 거리는 만만치 않은 거리다. 맛다라에서 엥겔레스까지는 약 하루가 걸리는 길이다. 맛다라 농장에서 로하스시까지 농장 트럭으로 약 40분 걸린다. 로하스시에서 깔라판 항구까지 버스로 약 4시간 걸린다. 그리고 깔라판항구에서 바탕가스항구까지 배를 타고 약 3시간 걸린다. 바탕가스에서 버스를 타고 마닐라까지 약 3시간 걸린다. 다시 마닐라에서 엥겔레스까지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린다. 지체없이 달려도 총 12시간 40분 정도 소요된다. 교통체증이 걸리거나 도중에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하면 거의 하루가 걸리는 거리다. 그러나 그는 그 먼 거리를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침뜸을 받기 위해 먼 여행을 결단하고 엥겔레스를 찾았다.  

     엥겔레스에서 치료를 받고 난 후 집에 돌아와 부인에게 부탁하여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뜸을 떴다. 그리고 그해 4월 한국에서 총회가 있어 왔다가 한 번 더 치료받고 갔다. 그 후 그는 부인과 매일 집에서 뜸을 뜨며 로하스에 침뜸선교병원이 생겨나길 기도하였다. 그리고 한국에서 침뜸의료선교단이 다시 방문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 간절히 간구하는 자의 기도를 사람이 막을 수 없고,  하나님이 거절하시지 않으셨다. 마침내 그의 기도가 응답되어 한국에서 그를 다시 방문하기로 결정하였고, 1년 만에 두 번째 민도로 침뜸선교사역을 이루게 되었다. 하루도 걸르지 않고 매일 뜸을 뜬 그는 1년 전보다 훨씬 건강한 모습으로 밤 11시 30분에 도착하는 우리를 픽업하기 위해 12시간 이상 차와 배를 번갈아 갈아타고 공항까지 나왔다. 그의 모습엔 60세가 넘어 풍을 맞은 연약한 환자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