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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의 참뜻은 무엇일까?우리 조상이 알려주는 참사랑의 의미를 찾아서
들꽃지기  |  morige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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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1월 15일 (일) 00:00:00 [조회수 : 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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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양반집 문에 그려있는 아리랑
‘아리랑’ 의 참뜻은 무엇일까?

'아리랑'이란 낱말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낱말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리랑의 기본 노래가락을 알고있고, 각 지역마다 ‘아리랑’을 붙인 흥겨운 노래 하나쯤 만들어 부른다. 헌데 이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아리랑에 대해서 정작 그 뜻을 물으면 고개를 갸웃거리기 일쑤다.
이는 일반 사람뿐만 아니다. 우리 문화에 제법 정통하다는 전문 지식인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국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아리랑에 대한 해석이 구구하고 짐작으로 일관한다. 이것들 중 우리 민족이 한(恨)이 많아서 그 ‘한’을 의미할 것이라는 주장이 그럴듯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연 아리랑이 민족의 ‘한’을 표현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 해석은 우리 민족이 주로 남의 나라의 침략과 지배만을 받아왔다는 이른바 식민사관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간과하고 있다. 물론 근현대사에서 우리는 외세의 힘에 의해 짓밟히고 깨지는 참담한 수모를 경험했다. 하지만 아리랑이 결코 최근에 만들어진 낱말이 아니고 오래전 그 기원을 알 수 없을 만큼 옛부터 있어온 낱말이란 점에서 그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않다.
이러던 중 최근 북한에서 ‘아리랑’의 ‘아리’란 마음이 아리다. 혹은 아름답다란 뜻이고 ‘랑’은 사람을 뜻하는 랑(郎)이므로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아리랑’이라고 해석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렇다면 ‘아리랑’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하지만 우리 옛말을 찾아 이를 해석해 보면 그 해답은 간단히 풀린다. 즉 아리랑의 ‘아’는 ‘밝다’ ‘빛난다’ 뜻의 태양을 뜻하거나 ‘하늘’‘을 의미하는 고어(古語)이다. ’리‘는 넓은 땅, 즉 대지(大地)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랑’은 사람을 뜻하는 낱말이었다. 따라서 ‘아리랑’의 각 낱말의 뜻은 천지인(天地人)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천지인’과 ‘아리랑’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하는 문제가 생긴다.
여기서 우리 선조들은 천지인(天地人)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는 기막힌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즉 천지인 세 가지가 함께 어울려 돌아가는 형상인 삼태극(三太極))을 만들어 이를 ’아리랑‘이라 불렀던 것이다. 다시말해 태극(太極)은 음양(陰陽)이 서로 맞물고 돌아가는 것이라면, 삼태극인 아리랑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맞물고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 아리랑 문양(紋樣)은 예전에는 고향 마을에 가면 흔히 발견할 수 있었다. 예컨대 지체 높은 양반이 살던 집 대문 한가운데에 아리랑이 크게 그려져 있었고, 무당집이나 오래된 사찰의 삼성(三聖)각이나 문설주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천지인 사상을 갖게 된 것은 실로 민족의 시원(始原)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즉, 우리 조상은 ‘하늘과 땅과 사람’, 즉 천지인(天地人)을 고대로부터 세계를 구성하는 만물의 축으로 생각했고 그 각자에 음양(陰陽)이 있다고 보았다. 천지인과 각각에 있는 음양 이론, 여기서 우리 민족의 철학과 사상이 시작되었다.

즉,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하늘과 땅과 사람’이 잘 어울려 살아가야 하고 그에 따른 음양 이치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철학을 대중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민족의 스승들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맞물고 돌아가는 도형(圖形)인 삼태극을 만들어 ‘아리랑’이라 칭하고 노래까지 만들어 대중들을 가르쳐왔던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한국 사람이라면 아마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헌데 정작 이 노래의 뜻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하지만 민족의 스승들이 가르친대로 해석해 보면 이 노래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천지인,천지인(아리랑, 아리랑) 천지인이 함께 돌아간다(아라리오:자연(自然)과 사람이 잘 어울려 돌아간다.) 아리랑 고개를 잘 넘어가는 구나. 나(아리랑)를 버리고 살아가면 얼마가지 못해서 넌 병(病)들고 말거야.”
얼마나 놀라운가! 요즘 기상 이변과 재해가 속출하고 그 원인이 인간의 자연(自然)파괴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 수천 년 전에 이미 우리 민족의 스승들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아리랑’ 도형을 통해 알려주고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재앙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를 노래까지 만들어 가르쳤다니 말이다.

아리랑 속의 색(色)들이 알려주는 의미에 대해서

그렇다면 ‘아리랑’의 천지인을 왜 ‘청(靑),황(黃),적(赤)의 색(色)으로 표현했을까?단순히 ’하늘과 땅 사람‘을 나누기 위한 구분이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거기에는 각자 그 색을 써야할 깊은 뜻과 이유가 있었다. 왜냐 하면 그런 고민이 없었다면 살아움직이는 불꽃 형상으로 그것들이 서로 맞물고 돌아가게 하는 기하학적 형상을 창조해 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랑에서 하늘은 청색, 땅은 황색, 사람은 붉은 색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이 서로 맞물고 돌아가는 형상을 만듦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지혜로운 삶을 살도록 안내하는 화두(話頭)를 던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 색(色)들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것이엇을까? 난 그 의미를 찾기 위해 꽤나 많은 서적을 뒤적여야 했고, 자료를 정리하면서 많은 시간 명상도 해야 했다. 그리하여 결국 스승들이 전하고자 하는 뜻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랬다. 하늘의 색(靑色)은 생명(生命)을 상징하고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이 각자 존재값을 갖고 있어 귀중하지 않은 생명체는 없다는 것을 하늘 색을 통해 가르치려 했다.
땅의 색은 황색(黃色)으로 표현하여 하늘과 사람사이에 존재하는 땅의 색인 황색을 쓰고 그 땅에서 생산되는 소득물을 함께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의미의 평화(平和)의 의미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려 했다. 따져보면 평화의 구현이란 생명이 살아나기 위한 조건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사람의 색’을 붉은 핏빛(赤色)으로 표현했다. 이것은 살아있는 생명은 내부에 피가 흐르고 그 색이 붉은 색이란 점에서 이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스승들은 이 붉은 색을 통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가져야 할 근본적인 생각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생각이 바로 ‘사랑(애(愛)이며, 그 근본은 피(血)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사실 모든 생명체의 ‘사랑’의 시작과 근본은 새끼를 낳으면서 시작되며 그 출산 때 피를 흘린다.
이처럼 세 가지 색들은 각자의 의미의 뜻을 달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이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 맞물고 돌아가는 아리랑 도형을 만들어 내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여기서 스승들이 전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뜻을 되새기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

‘아리랑’의 뜻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헌데 이 사람의 생명이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즉 하늘과 땅이 곧 사람이며, 하늘은 사람과 땅이며, 땅 역시 하늘과 사람이다.
생명(生命)이 살아나려면 평화(平和)와 사랑(愛)이 함께 있을 때이며,
평화(平和)의 상태 역시 나와 이웃의 생명을 함께 살아나게 하고 ‘사랑’이 있을 때 얻어지는 것이며,
누구를 사랑(愛)함이란 나와 상대의 생명을 살리고 함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때를 일컷는 말이다.

요즘 사랑이란 낱말이 홍수처럼 떠돌아 다닌다. 헌데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상대를 소유하려 하고 집착하거나 구속한다. 이것은 아리랑의 관점으로 보면 웃기는 이야기가 된다. 왜냐 하면 ‘너는 내꺼야’라며 상대를 구속하거나 집착하는 것은 결국 생명을 해치고 평화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사랑은 아리랑의 가르침을 깨는 것이어서 노래말처럼 십리도 못가서 병(病)들고 말게 되는 것이다.

생명과 평화와 사랑이 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아리랑형상과 색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조상들의 가르침이며, 이런 이치를 몸으로 실천하고 사는 사람을 이른바 깨달은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옛부터 깨달음을 향한 공부에 열중했던 수행자들의 목표도 어쩌면 바로 아리랑의 이치를 몸으로 깨달아 ‘자유인(自由人)’이 되려함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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