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행동하는 영성

본회퍼는 지난 20세기 동안에 활동한 기독교 신학자 중에서 가장 복음적이며 동시에 가장 지적인 사상가며 그리고 또한 당면한 현실문제에서 도피하지 않고 이 시대의 예수의 제자 곧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양심에 따라서 올바르게 반응한 "행동하는 영성가"(spiritual activist)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는 1923부터 1927년까지 튜빙겐 대학과 베를린 대학에서 신학을 연구했으며, 1927년 그의 나이 21세 때에 박사학위 논문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 를 썼고 1930년에 교수 자격논문으로 "행위와 존재"(Akt und Sein)를 썼다. 그후 좀 더 넓게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유니온 신학대학에서 수학했다. 1931년 미국으로부터 귀국한 그는 그해 가을부터 1933년 여름까지 베를린 대학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했다. 1933년부터는 영국 런던에 있는 독일인 교회에서 목회했으며, 1936년에 독일로 돌아와 독일 고백교회가 운영하는 핀켈발데(Finkelwalde) 신학교의 책임을 맡아 1939년까지 목회자의 영성훈련을 담당하였다.

그후 그는 1939년에 미국 유니온신학교의 초청을 받아 잠시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독일의 정치적 상황이 불안해 지자 주위 동료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유니온 신학교의 교수직 제안도 거절하고, 위기에 처한 독일국민들 특히 교회들과 고통을 같이하기 위해서 1939년에 독일로 다시 귀국하여, 쾨슬린(Koeslin)과 슈바케(Schwache) 지방의 목회자 영성훈련 책임을 맡아 일하는 한편 고백교회의 순회 목사로 활동하였다.

그러는 한편 본회퍼는 자신의 생명의 위험도 개의치 않고 히틀러의 강압에 정면으로 저항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교회를 탄압하며, 유능한 목회자와 교수들을 추방하고, 특정한 사람들 특히 유대인들을 무고하게 핍박 및 학살하며, 나치당을 만들어서 젊은이들을 앞세워 공포정치로 국민을 억압할 뿐 아니라 전 유럽과 세계를 전쟁의 공포로 몰고 가는 히틀러 정권에 대해 실란하고도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그는 자신의 그러한 행위들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앙 양심상 침묵할 수 없었다. 그 결과로 그는 게슈타포(독일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2년간의 옥살이 후, 1945년 4월 9일 히틀러 암살계획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교수형을 당하게 되었다.

본회퍼는 생전에 많은 책을 남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저서들은 대부분 신학적 이론 보다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삶(예수의 제자의 도리)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남긴 주요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그의 학위논문을 위한 것들로서 1933년에 쓴 <성도의 교제>, <행위와 존재>, <창조와 타락>이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계된 것들로서 <제자의 길>(1937), <성도의 공동생활>(1939), 그리고 그의 사후에 출간된 것으로서 <윤리>(1949), <옥중서신>(1951) 등이 있다.

본회퍼의 신학사상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오늘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은혜"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키는 데에 대한 비판이다. 즉 오늘의 기독교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생명의 희생의 대가인 십자가의 도를 철저한 회개와 실천이 없이도 그저 예수의 이름만 부르고 믿기만 하면 모든 죄가 용서받고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일은 더없이 값비싼 은혜를 싸구려 은혜로 절락시키는 일이라고 보았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용감한 자기희생적 행동하는 영성의 표상인 십자가의 진리를 대속적 은혜의 표상으로만 강조하는 일은 바로 값비싼 은혜를 값싼 은혜로 떨어트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곧 칭의의 교리의 지나친/일방적 강조에 대한 경고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그러한 행위를 기독교를 병들게 하는 가장 경계해야할 적그리스도적 행위라고 보았다. 즉 그에 따르면 십자가의 도(진리)란 대속적 의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일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순교적 행위 즉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철저한 행동하는 영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형제들을 위해서 자기 생명까지 바친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십자가의 도 곧 더없이 "값비싼 은혜"(costly grace)을 "값싼 은혜"(cheap grace)로 전락시키는 일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근본을 왜곡시키는 일이 리 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회퍼의 사상에서 또 하나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그가 예견하는 극도의 세속화 사회 곧 우리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21세기와 같은 극도의 기술문명의 결과로 나타나는 세속화 시대와 무종교시대 곧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신대의 도래에 대한 예견이다. 그는 인간의 과학기술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추상적이고 내세 지향작인 종교관이나 혹은 현실생활과 동떨어진 신화적이거나 아니면 문자적/형식적인 교리중심의 신앙형태 혹은 감정에 호소하는 종교행위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게 될 것을 예견했다. 본회퍼는 그러한 고도의 세속화 사회, 무종교 시대를 그는 모든 것을 신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알아서 행동하는 시대, 다시 말하면 어른이 된 시대 곧 "성년의 시대"(come of age)라고 명명했다. 그러한 성년이 된 인간의 삶의 태도 혹은 종교적 신앙의 태도를 그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ohne Gott vor Gott/without God before God)란 역설적인 말로 표현했다.

본회퍼가 말하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란 신의 존재를 믿지 않거나 또한 신의 은총을 거부하거는 불신앙적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뜻을 미리 알아차리고 묵묵히 행동으로 옮겨 나가는 철저한 실천적 영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사도 바울이 자신의 영적 성장의 과정을 어린아이의 믿음에서 장성한 어른의 믿음으로 설명한 것에 대비시킬 수 있다. 어린아이의 신앙의 단계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구하고 달라고 졸라대는 신앙이라고 한다면 어른의 신앙의 단계는 자신의 영적인 안목으로 무엇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며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알아서 행동으로 옮기는 신앙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아이의 믿음의 단계와 어른/성인의 신앙의 단계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다가오는(오늘의) "성인의 시대"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한층 더 예리한 영적 판단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본회퍼는 기독교(교회)가 나날이 세속화 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하지 못하고, 기복신앙이나 값싼 은혜만을 강조함으로써 기독교의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을 크게 우려했다. 따라서 그는 기독교가 과학기술문명의 극대화로 세속화 되어감에 따라서 종교와 신앙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 즉 무종교 시대가 도래 할 것을 예견하고, 앞으로의 교회가 그러한 무종교 시대에 대처할 방도를 강구해야 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미국을 거처 전 세계로 확대되어가고 있으며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에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그에 따르면 그러한 무종교 시대 및 세속화 시대에 대처하는 최상의 방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태도에 전적으로 충실하는 일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적 삶인 "제자의 도"를 올바로 실천하는 일이다. 따라서 그는 기독교(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도인 철저한 "영성적 삶의 길"을 온전히 따르지 않을 때, 기독교 및 교회는 사회로부터(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될 것을 크게 염려했다. 그는 이러한 예측과 깨달음을 그가 옥중에 있는 동안에 체득하였다. 그런 점에서 본회퍼는 철저한 행동하는 영성가인 동시에 이 시대의 예언자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다음의 시는 그가 처형당하기 수개월 전에 감옥에서 쓴 것으로서 그의 친구 에버할트 베트게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가끔 나더러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온화하고 명랑하며 확고한지
마치 자기 성곽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또 나에게 말하기를
감시원과 말하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칠절하고 분명한지
마치 내가 그들의 상전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또 나에게 말하기를
불우한 날들을 참고 지내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평온하게 웃으며 당당한지
마치 승리만을 아는 투사와 같다는데

남의 말의 내가 참 나인가?
아니면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새장에 가친 새처럼 불안하고 그리워하며 약한 나,
목에 졸린 사람처럼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나.

빛과 꽃과 새소리에 주리고
친절한 말 따뜻한 말동무에 목말라 하고
석방의 날을 안타깝게 기다리다 지친 나,
친구의 신변을 염려하다 지쳤다.

이제는 기도에도 생각과 일에도 지쳐 공허하게 된 나,
지쳐 이 모든 것에 안녕이라고 말할 준비가 된 나,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나인가?
오늘은 이 사람이고 내일은 저 사람인가?
아니면 이 둘이 동시에 나인가?

남 앞에선 위선자,
자신 앞에선 비열하게 슬픔에 찬 약한 나인가?
아니면, 이미 성취된 승리 앞에서 혼란하여
퇴각하는 패잔병과 같은 것이 내안에 이직도 있단 말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이 적막한 질문이 나를 희롱한다.
하지만 내가 누구이든, 오 하나님!, 당신은 아십니다.
나는 당신의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