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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시방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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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1월 07일 (금) 22:42:08
최종편집 : 2011년 01월 08일 (토) 01:55:01 [조회수 : 2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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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주는 자유함
나는 숲 속에 살면서 일 년 내내 바다를 그리워하며 가슴앓이를 하는 바다남자다. 그래서 바다 소리를 담은 CD를 구입해서 운전을 하면서 차안에서 듣곤 한다.
그러나 연말이 되면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서 열병으로 변해 버리고 만다. 신년 소원은 새해 첫날에 바다에 가서 파도에게 빌어야 이루어진다는, 나름대로 미신을 만들어 믿고 산지도 몇 십 년째 된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버지니아 비치나 메릴렌드 오션시티는 차로 오고가는 시간이 8시간정도 걸린다. 60이 넘은 나이에 혼자서 자동차를 몰고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는 다소 먼 거리다.
그래서 올해는 집에서 2-3 시간 운전 거리에 있는 노스체스픽비치에서 신년기운을 맞기로 했다. 비록 바다는 아니지만 바다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만이다. 마음을 결정하고 나니 동행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벗 생각이 났다.
몇 달 전에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지역으로 이사 온 T 선배에게 당장 구원을 요청하는 전화를 했다. 예상대로 주저함이 없이 한 마디로 OK 이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바다"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흥분하는 버릇이 있다. 그만큼 바다에 굶주린 고독한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공자는 樂山樂水라고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처럼 動적이고 막힘이 없으므로 지혜롭다고 했다. T 선배도 그런 사람이다.
케롤이 두 사람이 해변에서 먹을 음식을 준비를 해주었다. 소주 한 병, 2인용 김밥, 미소스프, 부침개, 멸치와 북어무침, 깍두기, 김치, 배, 사과, 호두 등 한 집 살림이다. 해변에 둘이서 깔고 앉을 담요 한 장까지 챙겨주니 비닐 백이 제법 무겁다.
이럴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여인들의 잔소리다. "한눈팔지 말고 운전을 조심스럽게 해라, 옷을 따뜻하게 입고 장갑과 털모자를 챙겨라, 음식은 체하지 않게 천천히 먹어라, 술은 딱 한 잔만 마셔라......."
매번 거의 같은 내용이다. 그러나 나는 여인들의 잔소리와 사랑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의 가슴은 가지고 있는 제법 성숙한 남자다.
날씨가 이른 봄처럼 따사하다. 모처럼 개인 겨울하늘에 태양이 반가운 듯 번쩍거리고, 하얀 새털구름들이 아름다운 선율처럼 흐르고 있다. 시간이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관념이고 구속일 뿐, 해가 바뀐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고 변화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순간순간이 곧 시작이고 끝이다.
그러나 한 해가 바뀔 때마다 지난해 여행길에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마음이 아쉽고 허전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차 옆자리 가까이서 보니 T 선배 얼굴에 잘고 굵은 주름살들이 선명하다. 그 동안 서로가 많이 늙었다.
33년 전 처음으로 만났을 때 우리들은 모두 다 청춘(?)들이었는데, T 선배와 나도 언젠가 영원히 헤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가며 마음속에 조용한 슬픔의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인간은 평생 동안 끊임없이 상실과 헤어짐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들은 조병화 시인이 ‘헤어지는 연습’ 이라는 시에서 읊었던 것처럼 새 깃털처럼 가벼운 것들이 아니다. 죽음보다 무겁고 심각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상실에 대한 고통과 아픔은 슬픔으로 밖에 위로받을 수 없다. 그렇다고 남기고 간 빈자리들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20년 전에 차에 치여서 죽은 사랑했던 개 ‘조이’를 생각하면 슬픔에 잠기곤 한다.
상실은 슬픔의 씨앗을 마음속에 뿌리고 가고, 그 씨앗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싹이 터서 점점 자라나는 것 같다. 자신의 죽음만이 상실에 대한 슬픔을 종식시킬 수 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시오니 이 죽음의 잔을 내게서 옮겨 주소서"하며 피눈물을 흘렸던 예수님 기도의 의미도 바로 그런 것일 것이다. 예수가 피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제자들과 이별이요, 이별이 남기고 갈 슬픔이었을 것이다.
이별의 아픔을 이야기 하면서 분위기는 갑자기 무거워지고 우리들은 잠시 말을 잃고 침묵이 흘렀다. 우리 둘은 모두가 지난날 이별의 아픔과 슬픔을 견디어 내고 이렇게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실로 기적이고 은총이었다.
그러나 그 슬픔에 대한 기억들로 우리들을 아직도 이렇게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이 어렸을 때, 주말이면 식빵을 사들고 와서 갈매기들을 먹였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곳에 우리는 짐을 풀었다. 바다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 동안 숱한 폭풍과 태풍이 때리고 할퀴며 지나갔으나 오고가는 파도소리도 여전하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끊임없이 흐른다. 선가에서는 물 한 방울 속에 우주의 신비가 숨어 있다고 한다. 그 물방울들이 모여서 바다를 이루고 물결을 만든다.
바다가 가르치고 있는 지혜의 의미는 공자가 말하는 물의 지혜와는 사뭇 다르다. 바다의 유일한 동작은 오고 감, 곧 밀물과 썰물이다. 철저한 단순함이다. 이 단순함이 바다를 지켜주고 바다 속 생물을 양육하는 질서이고, 지혜이다.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관계 속에서 서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말씀처럼 단순한 어린이 마음이 되어야 한다. 관계 속에서 오고가는 파도와 같은 단순함, 그것이 바로 사랑과 평화의 지혜다. 그래서 아픔이 느껴질 때까지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마더 테레사 수녀는 단순한 길속에 인생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고백했는지도 모른다.
싸온 김밥과 음식들을 반주삼고 갈매기들을 벗 삼아 우리들은 소주잔을 비웠다. 서서히 온몸에 취기가 오르기 시작한다. 우리들을 이토록 취하게 하는 것은 술이 아니라 파도소리인지 모른다.
얼마쯤 취해 있었을까? 저녁 바닷바람에 한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케롤의 사랑의 손길이 담겨있는 음식들이 아직도 많이 백 속에 남아 있다. 매사에 부족한 것이 넘치는 것보다 낫다는 옛말이 있으나 사랑만은 예외일지 모르겠다.
올해 나의 화두는 "우리 생애의 저녁에 이르면 우리는 얼마나 이웃을 사랑했느냐를 놓고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 했던 불란서 저항 작가 카뮈의 말이다. 거대한 바위를 걸머지고 가파른 산을 끊임없이 오르내려야 하는 시지프 신화로 인간운명의 부조리와 모순을 지적했던 그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나로서는 쉽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
만약 이 세상에 사랑이 없다면 신화 속 시지프의 운명처럼 인간들의 삶이란 무의미한 육체적 노동과 고통일 뿐이다. 모든 것들이 부조리고 모순이며, 그런 운명을 부여한 신에게 저항하는 유일한 수단은 죽음밖에 없는 것이 신화 속 인간이다. 인간의 운명은 말 그대로 절망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카뮈는 죽음의 절망 속에서 사랑이라는 희망의 돌파구를 찾아 낸 사람이다. 그는 사랑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의 존재의미와 값어치를 부여한다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다. 인간의 운명은 사랑으로 창조해 가는 자신들의 예술작품이다.
어느덧 바다에 뉘엿뉘엿 어둠이 내리고 거리 가로등에는 전기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어둠은 헤어질 때를 의미한다. 아쉽지만 이제 바다와도 헤어져야 할 때가 됐다. 해변 가까운 곳에 있는 맥도랄 레스토랑에 들려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간단히 한기를 풀었다. 식당 안에 붐비는 사람들이 오늘따라 따뜻하게 느껴진다.
익숙한 길이라서 지피에스를 작동하지 않고 운전을 하기로 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거리는 수많은 차들로 붐빈다. 케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언제쯤 집에 오느냐”고 물었다. “1시간 후에 도착할 것 같다”라고 답했다.
T선배와 이런저런 대화에 몰두하다가 차창 밖을 내다보니 거리풍경이 아주 생소하다. 길을 잘못 가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오래전에 미공군 파이럿트들이 추락 사고를 가장 많이 내는 시기가 자기 비행실력을 자신하는 소령, 중령 계급시절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교만하고 방심할 때에 벗어날 수 없는 큰 실수와 오류를 범하게 될 때가 많다. 게스스테이션에 들려서 게스를 가득 채우며 지피에스를 작동시켰다. ‘벨트웨이’를 들어서니 헤드라이트를 켠 수많은 자동차들이 어둠속을 질주하여 정신이 없다. 나는 밤 운전이 서투른 사람이다.
옆에서 긴장하고 있던 T 선배가 참지 못하고 운전을 조심하라는 훈수를 늘어놓는다. 그래서 내가 한 때 교회주일학교 선생으로 봉사하던 시절에 입버릇처럼 청소년들에 자주 들려주었던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선배에게 털어 놓았다.
"신앙이란 선장인 아버지 배를 타고 항해하고 있는 어린이 마음과 같다. 아버지를 믿는 어린이는 항해 중 어떠한 폭풍이나 태풍을 몰아쳐도 자기 아버지가 안전하게 운항 할 것 이라고 굳게 믿고 잠들 수 있다. " 운전하고 있는 나를 그 어린이처럼 굳게 믿는 것이 믿음의 첫걸음이다. 그가 웃으며 훈수를 멈추었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집에서 애타게 도착시간을 기다리다 걱정이 되어서 케롤이 다시 전화를 한 것 같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마치 하나님 음성처럼 내 귀에 들려온다. 그렇다, 하나님도 지금 나에게 묻고 있을 것이다. "너, 시방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海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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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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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흐름이 피아니시시모같은 참 평안을 주며 갑자기 바다가 보고싶습니다.
바다에서 소주 한 잔 ~~운치 ~ ~ 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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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제자
(121.73.192.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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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애의 저녁에 이르면 우리는 얼마나 이웃을 사랑했느냐를 놓고 심판을 받을 것이다"
아주 좋은 말을 인용해주셨습니다. 잔잔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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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평일
(72.205.29.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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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를 들어가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상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삶에서 가장 소중 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도....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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