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원 목사(21사단 백두산교회)

동부전선 최전방의 육군 21사단 군종참모(소령)로 근무중인 정재원 목사의 글을 연재합니다. 이 글들은 정재원 목사가 군종사역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소식지로 묶어 발간한 <만선을 꿈꾸며>에 실렸던 글입니다.

 

 

 이미 발표된 적이 있는 글들을 굳이 다시 소개하는 이유는 그동안 당당뉴스에서 다룬적이 없는 영역인 군선교와 관련한 글이라는 것이 가장 큽니다.   물론 최근 글도 함께 소개할 것입니다.

동부전선에서 군종병으로 제대한 편집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군대라고 하는 곳은 말그대로 '물반 고기반'의 황금어장이 아닐수 없습니다.  통제되고 힘든 환경의 병사들은 복음을 스폰지처럼 빨아 들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병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군종사역이야 말로 해외선교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며 열매도 크며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한 사역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정재원 목사의 연재를 통해 군선교에 힘쓰고 있는 이들의 애환과 군선교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나아가 실질적인 동참으로 까지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이 글 들은 군대가 요구하는 보안상의 문제가 없음을 밝힙니다. (편집자 주) 

 

충격(?)으로 시작한 군대생활

군종목사로서 첫 임지로 배치 받은 8사단.

오전 09시 사단장님께 전입 신고가 있었습니다. 10여년을 같이 생활 했던 절친한 동기 목사님과 함께 배치 받았기 때문에 한결 여유가 있었습니다. 함께 사단장 비서실에 앉아 대기하며 군번이 빠른 내가 해야 하는 신고 구령을 마음속으로 연습했습니다.

연습 안해도 되겠냐는 비서실장의 말에 “No problem!"이라고 교만을 떨었습니다. 전날 306보충대와 사단 목사님 방에서 연습을 좀 했었거든요. 09시로 예정되어 있던 신고는 급한 일이 발생했는지 헌병대장과 법무참모가 번갈아 여러 차례 들락거리며 계속 미뤄졌습니다. 신고식에 배석하기 위해 함께 대기하던 인사참모가 시간이 있으니 연습 한 번 해보자는 말에 그러자며 일어나 힘차게 구령을 넣었습니다.

“신 고”
“사단장님께 대하여 경례!”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힘차게 나와야 할 8사단의 경례구호 “돌격!” 의 “돌”자 대신에 둘이 약속이나 한 듯이 “충” 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고는 서로 놀라 눈을 마주보고 이어서 했던 말이 “~격”이었습니다. 졸지에 경례구호가 “충격!”이 된 것이지요. 임관 군사 훈련에 OBC 교육까지 받으며 4개월여 동안 입에 달고 살던 “충성!”구호 때문에 헷갈렸던 겁니다. 사람의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연습 안했으면 큰일날 뻔 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던 놀란 인사 참모님의 표정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제 군대생활은 그렇게 충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들과 손톱깎이

며칠 전 이웃교회의 행사 기념품으로 제작된 미용세트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크고 작은 손톱깎이들과 작은 가위등 10가지의 작은 미용 소도구들이 들어있는 작은 가죽 가방이었습니다. 깔끔한 기념품을 받고 좋았던 기분은 바로 이어 떠오르는 한 생각에 묻혀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가슴 한 구석이 저려왔습니다. 내 머릿속 시간은 1999년 10월로 맞춰졌습니다.

9주간의 군사훈련과 6주간의 OBC(기초군사반) 교육을 마치고 군목으로 임관하여 초임지에 부임하였을 때 아들 용현이가 네 살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불편했습니다. 부대의 업무들과 교회의 형편들을 파악하고 익히는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부대 APT에 빈곳이 없어 이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동안 아내와 용현이와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나는 군종병과 함께 교회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둘째를 가졌던 임신 7개월의 아내는 금요일이 되면 아들 용현이를 데리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버스를 이용해 교회에 오곤 했습니다. 훈련으로 인해 넉 달을 떨어져 지냈었는데 그 이별이 두 달이나 더 지속된 것입니다. 불편한 일들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이사를 했고 가족들과 함께 지내게 되어 얼마나 좋았던지. 여러모로 안정되고 편안했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새벽기도회 때문에 새벽마다 곤히 자는 용현이를 깨워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교회에 가자는 말에 용현이가 벌떡벌떡 일어나 주기는 했지만 여간 안쓰럽지 않았습니다. 대개의 민간 교회는 교회와 목사 사택이 붙어있지만 대부분의 군 교회는 목사 사택과 교회가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 교회는 부대에서 떨어진 영외에 위치해 있었고 APT와 는 차량으로 10분 정도 떨어진 가깝지 않은 거리였기 때문에 용현이를 두고 우리 내외만 가기에는 왠지 불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곤히 잠들어 있는 용현이의 모습을 보고 ‘설마,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용현이를 두고 우리 내외만 교회에 갔습니다. 조용히 문을 잘 닫고 불을 다 끄고 교회에 갔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서둘러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밖에서 보니 분명히 끄고 갔던 방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뛰어 올라가 보니 이불은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용현이 얼굴은 눈물로 불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반쯤 열려진 화장대 서랍에서 꺼낸 손톱깎이가 방문 앞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아침에 만난 옆집 아주머니의 말이 한 20분을 울었답니다. ‘어린 것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혼자 두고 사라진 엄마, 아빠를 얼마나 원망하고 찾았을까?’ 하는 생각에 울컥했습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난 용현이의 말 한마디가 우리 내외의 마음을 더욱 아리게 했습니다.

“용현아!, 그런데 손톱깎이는 왜 꺼냈어?”

“으응, 문이 잘 안 열려서 문 열려구….”

방문 손잡이에는 내 마음의 고통처럼 많은 상처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 이 글은 제 군선교 소식지 “만선을 꿈꾸며…” 제 1호에 실렸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