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촌 이계선

그러나 나는 중국은 커녕 백두산 구경도 못한지라 삼국지를 들고 나왔다. “여러분들은 중국을 다녀와 견문이 풍부하지만 저는 중학교 때 삼국지를 열 번 읽은 게 중국 상식의 전부입니다. 소설은 어느 역사책보다도 민족성을 잘 알게 합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소설이 조조, 유비, 손권이 각축을 벌리는 ‘삼국지’라면, 일본판 삼국지는 풍신 수길, 노부 나가, 덕천 가강이 패권을 다투는 ‘대망’입니다.”

일본소설 ‘대망’은 교과서처럼 정확하고 과학적이다. 그리고 자질구레하지만 부풀리지 않는다. 천하대전인데도 겨우 수천 명 아니면 몇 만 명이 싸운다. 일본 국민성이 그렇다. 그런데 삼국지는 정반대이다. 관운장은 무게가 80근이나 되는 청룡도를 애들 볼펜 돌리듯 했다. 적벽대전에서 죽은 조조의 군사가 80만 명이다. 많아야 4만 명 정도 죽었을 게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중국인은 과장이 심한 엉터리로 봤다. 더구나 6.25때 인해전술로 쳐들어 온 중공군을 보고 중국을 야만족 오랑캐로 생각했다. 그래서 ‘무찌르자 오랑캐 몇 천만이냐’ 개미떼처럼 많아도 오합지졸로 무시 했다. 중국은 아직도 공산 오랑캐일까? 이날 내 발언의 요지를 적어본다.

중국산이 차고 넘치는 미국슈퍼마켓을 보고 난 중국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역사를 봐도 그렇다. 세계 4대문명발상지는   이집트 나일 강, 메소포타미아 유프라테스 강, 인도 인더스 강, 그리고 중국 황하의 4대 강변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인더스 강, 갠지스  강, 나일 강 유역은 낙후지역으로 남아 있는데  중국만이 양자강의 기적으로 경제대국을 일구어냈다. 알렉산더(BC3세기) ,징키스칸(AD12세기)이 세운 대제국은 단명으로 끝났다.

그러나 진시황(BC2세기)이 세운 대제국 중국은 진-한--당- 송 - 원-명-청-중공으로 이어지면서 세계최대의 대국을 유지하고 있다. 소련도 동구도 모두 망했는데 유일하게 망하지 않고 번영하고 있는 공산국가는 중국뿐이다. 티끌모아 태산을 만드는 중국인의 국민성 때문이다. 적토마를 타고 80근짜리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면서 대륙을 달리는 관운장의 기개가 허풍이 아니었다.

후러싱의 한인상가가 차이나타운에게 밀려나는 걸 봐라. 중국은 더 이상 오랑캐나라가 아니다. 대국이다. 그러면 중국은 우리한국에게 무엇인가? 나는 거대한 중국의 힘을 아전인수로 끌어들이고 싶다.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이루는 길은 어쩌면 중국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첫째, 무력통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6.25때 부산까지 밀려갔어도 압록강까지 쫓겨 갔어도 무력통일이 안됐다. 미국(남한)과 중국(북한)이 뒤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햇볕정책으로도 안 된다. 10년 동안 퍼줬지만 북한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이명박 정부는 햇볕정책을 취소해 버렸다. 변하지 않은 건 남한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뉴욕 라디오코리아의 토요토론 “6.25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를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이웃끼리 싸워도 며칠 지나면 지난일 잊어버리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게 인간이다. 우리는 동족끼리 싸운 지 60년이 지났다. 나는 토론에 참여한 분들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우리는 강대국의 농간으로 남북으로 갈라져 6.25라는 동족상잔의 피를 흘렸습니다. 60년이 흘렀으니 지난일 잊어버리고 서로 용서합시다. 60년 전에는 싸웠지만 앞으로는 서로 사랑 하고 서로 도우면서 사이좋게 지냅시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의견이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우리 모두 총궐기하여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찌르자!” 입에 거품을 물고 이를 갈고 있었다. 우리는 과거를 용서할 줄 모르는 민족이다. 원수사랑은 커녕 이웃사랑도 못하는 민족이다.

굶주린 동족 돕는 것을 좌익 빨갱이로 몰아붙이는데 어떻게 평화통일이 가능할까? 북한을 도와준 나라가 어디 우리뿐인가? 동족이 아닌 중국도 북한을 도왔다. 우리보다 더 많이 도왔다. 중국, 한국, 일본, 미국 순으로 도왔으니까. 과거를 용서 할 줄 모르고 이웃사랑을 못하는 한국인에게 평화통일은 어렵다. 그래도 평화통일의 길이 있다면 중국을 통한 길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김정일이 죽고 북한이 붕괴되면 북한은 중국에 흡수될 위험성이 많다. 체제가 다른 남한과는 합치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은 혈액형이 똑같이 빨갛기 때문에 합치기가 쉽다. 남북이 평화통일 되려면 북한이 민주화가 돼야 한다. 북한민주화는 오직 종주국 중국에 달렸다.

중국이 민주화되면 북한은 자동적으로 민주화가 될 것이다. 한국처럼 말이다. 한국이 민주화 된 건 4.19나 야당 때문도 있지만 미국의 도움 때문도 있다. 미국이 아니면 한국은 지금 군사독재아래 신음하고 있을 것이다.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처럼 독재자들은 반대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통치하기 때문이다. 경제대국이 된 중국의 민주화는 시간문제다. 중국이 민주화되면 곧이어 북한도 민주화가 될 가능성이 있기에 평화통일의 또 다른 길이 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날 나의 토론내용이다.

“우리는 중국민주화를 요구하는 정치적인 공격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정치외적인 면에서 경제 문화 종교로 중국을 공략해야 합니다. 무역, 투자, 산업기술, 한류, 선교로 중국대륙을 정복하는 거예요. 중국이 북한에게서 얻어내는 수익보다 몇 십 배의 이득을 남한과의 교역에서 얻게 하여 남한을 더 좋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토론을 끝내고 나니 삼국지 생각이 난다. 누구는 삼국지를 50번이나 읽었다는데, 아무래도 삼국지를 더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