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 > 박성규 설교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대림절 제 4 주(20101219)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0년 12월 16일 (목) 14:18:45
최종편집 : 2010년 12월 16일 (목) 21:11:02 [조회수 : 4034]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대림절 제 4 주(20101219)
성서일과/ 시 24:1-6; 사 7:1-14; 롬 1:1-7; 마 1:18-25.
본문/ 마 1:18-25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 1:18-25)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함이라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당신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여 당신의 이름을 부르게 하셨고, 예루살렘을 택하여 그곳에 그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대상 22:10)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지라 저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저의 아비가 되어 그 나라 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 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눈과 마음도 머물러 있습니다.
          (왕상 9:3) 『...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하나님이 인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궁극의 목적도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하시는 일입니다.
          (겔 39:25)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긍휼을 베풀지라』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을 가장 큰 죄로 여기십니다.
          (레 24:16)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그래서 택함을 받고, 사하심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입니다.
          (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녀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일이라면 어떠한 능욕과 수치라도 받을 수 있는 자입니다.
사도들의 삶이 그랬습니다.
          (행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예수님은 하늘에 계실 때에는 하나님으로 불리신 분입니다.
그가 곧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가 땅에 오셔서, 그 부모에게 받은 이름이요, 사람들에게 불린 이름입니다.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그러나 그 이름조차도 사람이 지은 이름은 아닙니다.
나시기 전에 하나님이 지으신 이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땅에 임하시는 뜻, 하나님의 크신 뜻이 그 이름에 들어가 있습니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런데 그에게 또 다른 이름이 있었습니다.
오래전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이 지으신 이름입니다.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함이라

예수라는 이름이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 곧 구원하심을 뜻하는 것이라면,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그 구원이 이루어지는 방법을 나타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시오, 그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곧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 예수는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같은 은혜, 함께 하심으로 구원하시는 복이 성도들에게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 이름으로 받는 복

하나님이 이름을 걸고 약속하신 복 중에 가장 놀라운 것이 무엇입니까?
          (신 6:10-13)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12]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집을 짓는 수고가 없었는데, 큰 성읍의 주인이 됩니다.
아무 것도 들여놓은 적이 없는데, 방마다 물건이 가득 차 있는 집을 갖습니다.
심은 적이 없는데, 과실이 풍성한 나무들로 넘치는 밭을 차지하게 됩니다.
크고, 놀라운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애굽의 종이었던 자들이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될 때 받은 복입니다.
이런 복을 줄 터이니 내 이름을 위하여 살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복을 받는다면 오죽 좋겠습니까?
한 마디로 심지 않고 거두는 복입니다.
땀 흘리는 수고 없이 얻는 복입니다.
인생이 꿈에서나 그릴 수 있던 복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 복은 다른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요, 복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복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구원하신다 함은 죄인이 의롭다함을 얻고,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거두며, 마땅히 죽어야 할 자가 영원히 사는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죄의 종으로 세상에 속해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초청 받은 자들에게 약속된 복입니다.
애굽의 종이었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받은 복과 같은 것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크고, 놀라운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받을 수 없는 자에게 주신 복입니다.
받을 수 없는 것을 받게 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땅의 사람과 함께 하시는 일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말씀에 들어있는 뜻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처녀가 아이를 낳는 일과 같은 일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나 멀고, 그 사이에 깊은 구럭이 있어 오가지도 못할 정도로 큰 구별이 있는데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습니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땅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나타남으로 바랄 수 없는 일들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위하여 하신 일입니다.
          (시 106:8) 『...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저희를 구원하셨으니 그 큰 권능을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 우리 주 예수로 말미암는 임마누엘의 은혜와 복이 지금 우리에게 임하고 있음을 믿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 예수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까?

첫째는,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육을 입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영어로는 Incarnation 이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화육이라고 합니다.
복음의 시작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바울의 고백을 능가하는 것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말합니까?
          (빌 2:6-8)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어느 한 순간 기적처럼 모습을 드러내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모습을 입고 오셨는데, 모양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철저히 사람으로 사셨다는 뜻입니다.
우리와 같은 삶을 사신 것입니다.

사람으로 사시니 사람과 같은 일을 겪으셨습니다.
히브리서는 그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한결같이 시험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겪는 시험을 다 겪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심입니다.

죽는 것까지 겪어 보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모양이 되셨고, 같은 시험을 겪으셨으나 죄는 없으셨으니 죽어야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죽으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되시고, 우리와 함께 사시고, 우리처럼 죽으셨습니다.
임마누엘입니다.

둘째는, 우리를 대신하셨습니다.

누군가를 대신한다는 것은 누군가와 같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셨습니다.
영광의 자리에 우리를 대신하여 서신 것이 아닙니다.
그가 영광을 받으신 것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신 것이지 누구를 대신하여 간 것이 아닙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는 것은 고난의 자리, 죽음의 자리였습니다.
여기 대해서는 선지자 이사야가 가장 뛰어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핵심이 이렇습니다.
          (사 53:3-6)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주님이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았어도, 심지어 연약한 것까지 같았어도 한 가지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히 4:15) 『..... 죄는 없으시니라』

죽음은 죄의 결과이지, 처음부터 인생에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죄가 없으면 죽음도 없어야 하는 것이 법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 없이 죽기까지 함께 하셨습니다.
나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저주 받은 죽음입니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가 죄 없이 저주 아래 죽은 것은 우리를 위하심이요, 우리를 대신하심입니다.
          ...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대신하여 담당하신 죽음입니다.
임마누엘의 은혜입니다.

셋째는, 우리 안에 거하심입니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은 죽기까지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는 무덤에 묻혔습니다.
죄로 말미암은 죽음이었다면 흙으로 돌아가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죄 없이 죽이셨고, 본시 하나님이시니 무서운 사망의 권세도 그를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부활하셨고, 본시 그의 자리인 하늘로 올라가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음으로 구원하신 자들은 여전히 땅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가 함께 있었어도 위태했던 자들입니다.
미련하고 약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날까지 자기 곁에 계신 주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요 14:9-10) 『[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그들은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잡히시는 그 순간 모두 뿔뿔이 흩어져 종적을 찾을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면 그들이 어찌 될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약함을 탄식하셨으나 그들을 나무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주님은 또 다른 일을 예비하셨습니다.
그 일에 관하여는 주님이 직접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6-17)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와 우리 속에 머무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당신의 집으로 삼아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함께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함께 하심입니다.

주님의 약속대로 성령은 임했습니다.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문을 걸고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날 이후 제자들은 더 이상 미련하고 약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는 인생이 아니셔서 식언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약속하신 성령을 모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사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믿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입니다.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시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같이 되시고, 대신하여 죽으심을 믿는 자들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갈릴리 호숫가를 거닐던 주를 볼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인자하신 그 모습, 온유하신 그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십자가에 달리실 때의 그 아픔을 느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채찍을 맞으며 토해내는 비명도 듣지 못하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 받은 자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침 뱉음을 당하며, 조롱당하는 그 마음도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설령 그를 보고, 그의 음성을 듣는다 한들 우리라고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과 가들 바 없을 것입니다.

그를 보아도 알지 못하고, 그와 함께 살아도 깨닫지 못합니다.
십자가 밑에는 가까이 할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의 동무가 되어 십자가에 매달릴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사도됨을 더 없는 영광으로 알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능력 있게 전하며, 그를 위해 당하는 환란조차도 기쁨으로 여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성령이십니다.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일, 하나님이 사람과 같이 되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기까지 함께 하신 일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 우리를 대신하여 죽이신 하나님이신 예수를 믿는 자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를 믿지 못 하는 자에게 구원의 은혜는 남의 일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그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들이 누리는 은혜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은혜, 성령의 능력으로 도우시는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신 예수를 믿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의 은혜가 임하게 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죄의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만이 성령으로 함께 하셔서 도우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성령의 오심을 약속하시던 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1-14)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주님이 땅에서 하신 일 곧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구할 때에 그렇게 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는 영광이 곧 하나님 이름에 영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예수 이름으로 구하는 대로 시행하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로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하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 하기를 사모하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성령께서 도우셔서 다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은혜입니다.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사람이 되신 예수님은 죽기까지 함께 하셨습니다.
성령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을 모시고, 그 도우심으로 세상을 이겨, 세상 끝날에 하늘로 들림 받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박성규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241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3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김원호 (175.212.167.19)
2014-12-02 05:48:25
고린도전서제13장1절13절 사랑 찬양노래 찿아 주세요
사랑
리플달기
0 2
김원호 (175.212.167.19)
2014-12-02 05:44:02
빛이어라
예수님
리플달기
1 2
김원호 (175.212.167.19)
2014-12-02 05:41:10
예수님 고린도전서13장 사랑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리플달기
1 2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