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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하신 왕 예수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후 26 주(20101121)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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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11월 18일 (목) 10:40:10
최종편집 : 2010년 11월 18일 (목) 15:05:40 [조회수 : 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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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후 제 25 주(20101121)
성서일과/ 시 46; 렘 23:1-6; 골 1:11-20; 눅 23:33-43
본문/ 예레미야 23:1-6
영원하신 왕 예수

          (렘 23:1-6) 『[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2]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양무리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3] 내가 내 양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4]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번 주 성서일과를 관통하는 주제어는 왕입니다.
왕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는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을 주는 말입니다.
왕이라는 말만 들어가면 무엇이 되었든, 그것은 가장 높고, 가장 귀하고,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 됩니다.
땅의 사람이 바라고, 차지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가 그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왕들이 있다가 사라졌습니다.
그 중에는 알렉산더나 진시황 같이 천하를 정복한 큰 왕들도 있었고, 시골의 작은 성 하나를 차지하고 왕이라 자처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비록 왕이라 불리지는 않아도 왕과 같은 권세를 지니고 살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왕의 권세를 가지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왕과 같은 권세를 탐하는 자들은 거짓을 말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배신을 하고서도 당당하기만 합니다.
마치 그만한 배짱도 없이는 왕이 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옛말에도 작은 것을 훔치면 도둑이 되지만, 천하를 훔치면 제왕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큰 것을 목표로 삼는 자들은 작은 죄에 연연해서는 안 되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왕이 되려는 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왕을 원하는 자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왕은 우리와 다르니 그를 우리와 같은 잣대로 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왕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나라의 왕은 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본시 악한 곳이요 어두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무지와 욕심이 신과 같은 사람, 왕을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구리들이 사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연못을 향해 돌을 던지는 개구쟁이들이 있긴 했지만 연못 안에는 개구리를 해칠만한 것들이 없어서 아주 평화로웠습니다.
개구리들의 나라라고 할 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개구리 나라가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평화스럽기만 하던 그 나라에서 왕을 세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개구리들은 자기들을 다스리는 왕이 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이든 개구리 한 마리가 신을 찾아가 그들의 의견을 전했습니다.
"신이시여. 우리에게도 왕을 보내주소서."
신은 개구리들의 기도를 듣고, 쓴웃음을 짓더니 알았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일찍 개구리 나라의 연못 속에 나무 막대기 하나를 던져 주었습니다.
"왕이 오셨다!"
개구리들은 크게 외치며, 신이 나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숨을 죽이고 연못에 떠 있는 왕의 분부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물결에 떠밀리기만 할 뿐 움직일 줄을 몰랐습니다.
이상히 생각한 개구리들은 나무 막대를 건드려 보기도 하고, 그 위에 올라타기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개구리들은 실망했습니다.
다음날, 나이든 개구리가 다시 신을 찾아갔습니다.
"신이시여, 우리에게 멋진 지배자가 될 살아있는 왕을 보내주소서."
그러자 신은 혀를 끌끌 차면서 그들에게 물뱀을 보내 주었습니다.
연못에 도착한 물뱀은 미끄러지듯 연못 속을 헤엄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개구리들은 그 모습을 보며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개구리들은 물뱀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자기들을 잡아먹는 포악한 동물이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되고 영원한 우리의 임금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땅의 왕에게 소망을 거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직 여호와만을 왕으로 섬겨 그에게 충성하고, 그로부터 받는 은혜로 영광을 누리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스라엘의 왕과 예언자

이스라엘에 왕이 생긴 사정도 개구리 나라의 사정과 비슷했습니다.
성경은 그 사정을 이렇게 전합니다.
          (삼상 8:4-9) 『[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한 그것을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계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게 하라』

열방의 왕들은 하나같이 자기를 신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의 임금은 天子/ 하늘의 아들이라고 했고, 애굽의 왕 바로는 태양신이라고 했습니다.
이름만의 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 나라에 속한 모든 것들의 주인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의 재산이었고, 모든 사람이 그의 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오직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요, 주인인 나라입니다.
그를 떠나 다른 주인을 섬기면 필연코 멸망하는 나라입니다.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이 둘이 되는 일이요, 두 주인을 섬기는 일입니다.

사무엘은 왕이 생기면, 그가 이스라엘의 주인이 되고, 너희들은 다 그의 종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개구리들에게 물뱀과 같은 것이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고집스럽게 왕을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할 수 없이 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을 신이라 부르지는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종이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신이요, 주인이 되는 제도를 만드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양을 치는 목자로 불렸습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양을 돌볼 목자를 직접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말의 본래 뜻입니다.
제 힘으로 왕이 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셔서, 당신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을 돌볼 종이 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들은 그 본분을 잊어버렸습니다.
양떼를 돌보는 일을 잊어버리고 자기 살을 찌우기에 바빴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양떼를 잡아먹는 자도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왕처럼 스스로 신이 되고, 주인이 되어 갔습니다.

이미 이런 일이 생길 것을 아셨던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 선지자 곧 예언자입니다.
이스라엘에 왕과 함께 뿌리를 내린 것이 예언자입니다.
          (삼상 9:9)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이스라엘의 첫 왕이 생기는 그때에 선견자가 선지자 곧 예언자로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하는 일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잃어버린 나귀를 찾게 하는 것이 선견자의 일이라면,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예언자의 일입니다.
예언자들은 왕에게 말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습니다.
특히 목자로서의 본분을 잃고, 스스로 신처럼 되고자 하는 왕들의 죄를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그 일을 했습니다.
그 신분에 있어 하늘과 땅 같은 차이를 지니고 있었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택함을 받았다는 점에서 왕과 같은 권위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악한 왕들에게 예언자들은 눈에 가시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자들이었고, 백성들을 선동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은 미움을 받고, 살해의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실제로 많은 예언자들이 악한 왕이 휘두르는 권세 앞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눅 11: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저희를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그런 까닭이었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의 주인공인 예레미야도 평생 미움을 받았고, 죽음의 위협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예언자들은 참되고, 영원한 한 왕이 오시리라는 약속을 전합니다.
땅의 왕에게는 반역의 소리요, 신음하는 백성들에게는 소망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왕을 통 털어 유일하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였던 다윗의 집에 주신 약속입니다.
          (삼하 7:11-12) ...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오늘 예레미야가 말하는 것은 그 약속이 곧 이루어지리라는 것입니다.
          [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땅에 속한 왕,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말고,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약속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은 왕의 왕 곧 왕들의 주인이 되시는 분입니다.

왕들이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골 1:16)[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세상의 왕들이 스스로를 일러 신이라 하며, 세상의 주인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아니시면 그 중에 아무도 왕이 될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목장에서 양을 치던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이 되어서도 하나님을 불러 왕이라 했습니다.
          (시 24:8)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오,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다윗이 죄인이면서도 위대한 왕이라 칭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 되게 하신 하나님만이 참되고, 영원한 왕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예언자가 그의 죄를 고발하면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심판을 말하면 달게 받았습니다.
그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여긴 까닭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모든 왕들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선한 왕은 다윗의 길로 갔다 하고, 악한 왕은 다윗의 길에서 벗어났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길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아는 길입니다.
왕이어도 종의 일을 하는 길입니다.
그것이 땅에 속한 왕이 가야 할 길입니다.

위대한 왕 다윗이 그랬거늘 하물며 우리이겠습니까?
땅에 속한 왕, 스스로 왕이 되었노라고 자랑하는 인간을 의지하지 말고, 땅에 오셔서 우리의 영원하신 왕이 되신 우리 주 예수를 의지하여 사기기를 기원합니다.

영원하신 왕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왕 된 자들이 모두가 다윗 같지 않았습니다.
악한 왕들은 하나님으로 인해 자기가 왕 되었다는 것으로 인해 겸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세워 주셨다는 핑계로 하나님과 같은 권세를 가지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자를 사람이 어찌하랴? 말하며 그 권세를 휘둘렀습니다.

왕들의 권세를 흔히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세라고 합니다.
어디서든 못할 일이 없는 권세라는 뜻입니다.
무소부재(無所不在)- 어디에나 계시고, 전지전능(全知全能)- 모든 것을 아시며, 못하실 일이 없는 하나님의 권세에 뿌리를 둔 말입니다.
그러나 왕의 권세와 하나님의 권세는 같지 않습니다.

세상의 왕들은 무소불위의 권세로 악을 행합니다.
99 마리 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난한 자가 가진 한 마리 양을 빼앗아 100 마리를 채우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셨던 다윗조차도 우리야를 죽음으로 내몰고, 그 아내 밧세바를 자기의 처로 삼았습니다.
양의 목숨을 노리는 사자나 곰보다 더 간악할 수 있는 것이 악한 목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환난당한 양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시 45:11) [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리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무소부재- 어디서나 지켜 주십니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전지전능- 못 하실 일이 없는 능력으로 흑암의 깊은 권세를 꺾으시고 양들을 구하여 주십니다.
          (욥 5:19-20) 『[19] 여섯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20] 기근 때에 죽음에서,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너를 구속하실 터인즉』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땅에 오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임금이 되신 주 예수의 음성을 쫓아, 그의 인도하시고, 지키시며, 구원하시는 은혜 가운데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영원하신 왕은 공평과 정의 그리고 사랑으로 다스리십니다.

옛날 어느 나라의 왕이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밤사이에 그의 머리카락이 죄다 빠져버렸던 것입니다.
그의 머리는 돌을 다듬어 놓은 듯 매끄럽게 빛이 났습니다.
왕은 이 모습을 신하들이 보면 뭐라고들 할까 걱정스러웠습니다.
왕의 머리를 두고 쑥덕거리게 놔두면 왕으로서의 체통이 서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그 생각에 골머리를 앓다가 한 가지 방도를 강구해 냈습니다.
모든 사람을 대머리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대머리가 대머리 보고 무어라 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왕은 그날로 그 나라의 모든 남자들에게 머리를 밀어 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검은 머리가 보이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겠다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그 나라의 남자는 모두 대머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세상의 왕은 자기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두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대머리가 됐으니 공평하다.
내가 먼저 대머리가 된 후, 모두에게 대머리가 되라고 했으니 정의롭다.
대머리만 되면 죽이지 않았으니 사랑이다.
이것이 세상의 왕이 말하는 공평과 정의 그리고 사랑입니다.

만왕의 왕, 참되고 영원하신 왕,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그는 지극히 높은 보좌에서 스스로 내려와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양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가 죽음으로, 죽어야 할 죄인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왕은 당신이 낮아지심으로 공평을 이루셨습니다.
죄인을 대신하여 죽음으로 율법의 의 곧 정의를 이루셨습니다.
죄 없이 죽음으로서 사랑을 이루셨습니다.

영원하신 왕 예수는 겸손과 섬김, 사랑으로 다스리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영원한 임금이 되신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빌 2:9-11)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우리의 참된 임금입니까?
우리와 같이 되셔서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섬김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 살과 피를 내어주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만이 우리의 참되고 영원하신 왕이심을 믿고,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그 왕이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왕을 청한 이스라엘은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들이 잘못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인의 것을 도둑질하여 제 것으로 삼는 악한 목자였습니다.
예레미야가 말합니다.
          [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2]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양무리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의 멸망은 결코 양 무리의 멸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목자, 왕에게 내리신 보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주셨던 약속을 잊으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예레미야를 통해 주시는 약속은 오래 전 다윗에게 주신 그 약속입니다.
          [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땅의 왕을 잃은 이스라엘은 그날 이후 하나님이 보내주실 한 왕, 다윗의 가지로부터 뻗어날 의로운 왕을 기다리는 소망 때문에 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고 남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이 사로잡히고, 성전이 무너지며.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졌어도 이스라엘은 오로지 하나님의 복된 약속에 소망을 걸고 살았습니다.
          [3] 내가 내 양 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4]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이 왕을 세우셔서 흩어진 백성들을 모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 왕은 전능하여서 다시는 놀랄 일이 없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 왕은 선하고 자비로우셔서 양떼들을 늑탈함이 없이 배불리 먹이시리라고 믿었습니다.
오로지 그 믿음으로, 그 소망으로 왕도, 나라도, 땅도 없는 나그네로 세상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선한 목자가 되셔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 왕은 죽음에서 부활하여 하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하늘에 오르실 때, 세상에 남은 당신의 양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의 영, 성령을 보내시어 늘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셔서,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그의 왕국, 천국으로 그의 양들을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왕으로 믿고, 섬기는 자들이 새 이스라엘입니다.
옛 이스라엘이 그 왕의 오심을 기다리는 소망으로 살았다면, 새 이스라엘은 땅에 계시지 않는 그러나 영원히 왕이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을 소망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예수에게는 그의 왕국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어 했지만, 극히 소수만이 끝까지 남아서 그의 쓴잔을 마셨을 뿐이다."

옛 이스라엘이 하나님 약속하신 한 왕을 기다리며 나라 없는 백성이 되어 세상을 살았듯이 새 이스라엘은 땅에서는 고난을 받습니다.
          (롬 8:17-18) 『...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그러나 어떠한 환난이나 고난도 그의 백성들을 해할 수가 없습니다.
주와 함께 영광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늘로 오르실 때에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이 교회력으로는 일 년의 끝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까지 주님 곁에 있었으니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세상의 마지막 날까지 그의 곁에 함께 있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의 보좌 앞에서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길입니다.
그의 품에서 위로를 받고, 깨지지 않는 평안을 누리는 길입니다.
고난이 닥쳐도, 영원한 왕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겠노라는 각오와 결단으로 마지막 때를 사는 자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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