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생활 > 이일배의 삶 |
|
편지 한 통 - 오늘의 두 가지 기쁨(060102)새해에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단골 고서점 이야기 |
|
|
|
입력 : 2006년 01월 02일 (월) 00:00:00 [조회수 : 2544] |
|
호야~~
오늘 재밌는 일이 많았어.
왜 내겐 이렇게 행복하고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 자꾸 생길까?
부천 대학교에서 기초 영어 회화 강습이 3일부터 시작하는 줄 알고
집에서 느긋하게 번역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온 거야.
오늘 12시까지 등록하라고...
집사람에게 과거 큰집 조카가
간호대에 합격통지 받아 놓고도 등록일을 까 먹고 합격 취소가 된
내력까지 들먹이면서 약을 올렸지만 참아야 했어.
급히 가 보니 82년 캐나다 산, 회계학을 전공했다는
콩나루 비린내가 나는 듯한 스티브라는 어린 강사가
제법 재밌게 영어 회화를 가르치더라.
실은 스크린 강좌를 받으러 신청했었는데 지원자가 하나도 없다고
쪽팔리게 기초 회화를 듣게 됐거든.
그런데 점심 때 밥먹으러 나오다 보니
강의실 앞에서 아는 사람을 반갑게 만난 거야.
재작년 학구에서 외국인 원어민 회화 강습을 같이 받은
마치 원주민처럼 버터 발음을 굴리는
경인교대 영어과 대학원에서 공부 중인
임문영이란 후배 처녀 샘을 만난 거야.
오늘 그녀는 다른 영어과 지도법 클래스 강사로 나온 것이고
나는 강습 받으러 온 피교육자로 다시 만났지만...
매력적인 그 여 선생님을 이학원 은사님 아들에게
소개해 주려고 시도하다가 결혼을 생각하지 않아 그만뒀지만...
단둘이 싸고 맛있는 우거지 해장국을 사 먹었지.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난다는 즐거움 너도 알거야.
게다가 모임이 끝나고는 인천의 유명한 고서점인 배다리의
아벨 문고에 가는 일이 생겼단다.
오늘은 정말 뜻밖에 그리 가게 된 거야.
부천역에서 전철을 탔는데 그만 실수로 직행을 탔던 거야.
기차가 백운역에서 서야 하는데 지나가는 거 있지.
갑자기 다음 정거장인 동암역이라서 기왕 동인천역까지 더 내려가서
정말 좋은 책들이 항상 나를 기다리던 배다리 서점,
이따금 책의 향기가 그리우면 찾아가 보는 책방을 가 보기로 했어.
그 서점 주인인 곽현숙 여사는 거기서 버는 돈으로
인천 도서문화 박물관을 열 정도로 안목이 있는 분인데
새해 인사 겸 책도 만날 겸 찾아간 거야.
다른 인근 서점은 죽어도 그 집은 언제나 사람들이 바글바글해.
책 반 손님 반이라는 게 맞을 거야.
그런데 거기서는 주로 영서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
몇 점씩 사 오곤 했는데
오늘은 우리 딸보다 1년 먼저 출판된'영시 개론'과
너덜너덜한 문고판 '17세기 영시집'과 '사회주의'란 책을 골랐어.
게다가 '학교 운동회'란 표지조차 찟긴 자료집을 골라
카운터에 내미니 그 주인의 조카라고 하는 여점원이
나더러 이렇게 말하는 거야.
"어디서 이런 귀한 책을 골라 오셨어요?"
그 숙모처럼 말씨가 차분한 그녀의 말에 기분이 퍽 좋아지더라.
책을 고르는 안목이 있다는 과분한 창찬보다
얼마나 듣기 고상한 말인지...
책을 계산 할 때까지 그 주인은 안에 깊숙히 들어가 있어 못 봤는데
주인에게 새해 인사드리고 싶다 하니 한참만에
암굴 같은 책방 구석에 들어가 주인을 모시고 나오더라.
그분은 나와서 반가이 맞아주시더라.
몇 해 전부터 잘은 안 와도 단골이라고 고마워 하시는 거야.
"선생님, 참 오랜만에 나오셨네요."
"예, 오늘은 특별히 새해 인사 겸 나왔습니다."
그 주인은 내가 고른 좋은 책들 4권을
단돈 1만원에 계산해 주시더라. 참 싸지.
한 때는 내가 고르는 책마다 유명한 고서점의 책값을
올려 준 기록을 가진 나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 행복했어.
53세에 영시 개론을 공부한다는 게 늦었지만
학문에는 너무 늦은 게 없다고 봐.
몸은 아직 개운하지 않지만, 영시 만학도로 다시금 행복했어.
언제나 배워 가는 게 즐거움을 주니까..
난 얼마나 행복한 놈인지 몰라.
언제나 거기 배다리 서점가를 들르면 지나치는 중앙시장 길..
다른 재래 시장도 경기가 죽어 손님들이 적지만
저녁무렵 손님들이 거의 끊긴 썰렁한 배다리 너머의
포목점과 한복점들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왔어.
한가한 가게 주인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나홀로 흠흠 콧노래 부르며 동인천 역으로 돌아왔어.
우리 늘 건강하게 배우며 하루 하루 후회 없이 살자꾸나.
나도 막내지만 막내란 월래 철 없고 이기적이거든.
그래도 막내끼리 어리광부리며 생긴대로 지내자꾸나. 흥흥...
내일은 또 무슨 재미난 일이 나와 널 기다리고 있을까?
매일 주님을 의지하면서 허락해 주신 숨과 이생을 즐기게 하옵소서.
인 쥐저스 네임, 에이멘!
2006-01-02
화율편지 |
|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
|
 |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022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