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에서 이성과 관련한 마르틴 루터의 말을 인용한다. “이성은 신앙의 가장 큰 적이다. 그것은 영적인 것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모든 것을 경멸함으로써 신의 말씀에 맞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기독교인이 되고자 하는 인간은 누구든 이성으로부터 시선을 돌려야 한다.” “모든 기독교인은 마음속에서 이성을 파괴해야 한다.” 루터는 이성이 종교의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하고 그 위험을 경고하였다.

도킨스는 종교 지도자들이 종교의 생존을 돕는 비법들을 말로 전파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종교의 비지성적 측면들이 종교의 생존을 돕도록 지적으로 설계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마르틴 루터의 주장들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이성은 신앙의 가장 큰 적이 아니다. 마음속에서 이성을 파괴하여야 신앙이 가능하거나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몰 이성, 반 지성이 신앙의 적이다. 기독교 신앙은 지성을 거부하지 않는다. 반지성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 지성을 초월하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성경은 신앙과 관련하여 “과연 그러한가?”라는 사유를 강조한다. 맹목적 신앙이 아니라 이성의 바르고 깊이 있는 활용을 요구하고 있다.

삼위일체를 1+1+1=3=1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몰이성이며 반 지성이다. 이 부분은 여러 차례 밝혔다. 1,700여 년 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성의 한계로 인해 가능했던 주장이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그런 설명이 아무렇지도 않게 수용되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1*1*1=1이라는 설명은 어떤가? 수식 자체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렇다면 옳은가? 성부*성자*성령=1이라는 말인데, 그 1이 무엇인지 설명하여야 한다. 성부, 성자, 성령, 각각이 합쳐진 어떤 존재? 마지막 1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이 그냥 수용하라는 식이다.

함께 공부하는 목사님 몇 분에게 말하니 “진짜 기발하네요”라며 웃는다. 기발하다는 말에 담겨있는 바와 같이 그런 설명은 교회 역사적으로 지속되거나 통용되었던 것이 아니다. 1을 맞추기만 하면 삼위일체가 설명된다고 생각하여 나타난 별종이다. 역시나 몰이성이며 반 지성이다.

그런 설명을 듣고 수용하는 성도들을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까? 그냥 목사가 하는 말이니 옳겠거니 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루터의 주장과 같이 마음속에서 이성이 파괴되어 “과연 그러한가”라는 사유에서 멀어진 것은 아닐까? 그렇게 만든 목사, 그렇게 만들어 그것을 이용하며 몰 이성, 반 지성을 획책하는 목사의 결국이 무엇일까 심히 염려가 된다.

예수님 당대나 사도들의 시대에 노예 제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교회에 수용되었던 것이다. 역사가 진행되고 노예 제도는 폐지되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여기에는 성경의 진술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원리가 담겨있다. 성경의 진술이 그 당대의 사람들의 사고 세계 안에서 주어진 것이어서 그것을 지금도 그대로 답습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원리이다.

앞의 글에서 사람의 구조와 관련하여 삼분설, 이분설, 일원설에 대해 언급했다. 과학과 인간 이성의 발달을 통해 이전과는 달리 영, 혼, 몸을 인간의 구조로 보지 않게 되었다. 전존재의 각기 다른 측면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신학의 발전이다.

이처럼 성경의 진술에 대한 이해인 신학의 어떤 내용은 변한다. 성경은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게 불변인 요소와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하는 요소가 함께 있다. 신학은 그러한 구분을 바르게 하고 정립되어야 한다. 성경의 진술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따르는 것이나 과거의 신학 진술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옳지 않다.

칼뱅은 500여 년 전의 종교개혁(정확하게 말하자면 교회 개혁)을 이론적으로 완성한 탁월한 신학자이다. 그의 신학 작업의 완성판인 기독교강요는 그 내용에 있어서 정말 탁월하다. 그 당대의 로마가톨릭에서 주장하는 바와 연관하여서 성경의 가르침을 잘 설명하였다. 현재에도 그 내용은 매우 유익하다.

신학이라고 하면 알르레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을 대할 때마다 애처롭다. 성경의 가르침에 대하여 자신들이 이해하고 주장하는 것이나 칼뱅이 기독교강요에서 진술한 것이나 동등한 성격인데도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칼뱅의 이해가 그런 이들의 이해보다 훨씬 더 낫다. 그 내용을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모습을 보면 기가 막힌다.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바뀌기를 기대한다.

물론 칼뱅의 기독교강요가 완전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 내용의 어떤 부분에 대해 성경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비판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 적극적으로 그렇게 하여야 한다. 그 또한 500여 년 전의 사람으로서 그 시대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대한 그의 이해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의 머리에 심어주신 것이 아니다. 그 자신의 학문적 작업이다. 자신의 신앙 틀 안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이다. 당연히 옳은 부분도 있고 잘못된 부분도 있다.

옳고 그름을 가려내어 옳은 부분은 수용하면서 더 온전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른 부분은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평가하고 바르게 잡는 것이 필요하다. 더 발전된 지성을 소유하게 되었고 과학과 철학도 더 발전된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는 칼뱅에 대한 무시가 아니라 존중이다. 그도 자신 이전의 신학에 대해 비판하였고 나름대로 신학을 정립하였다. 그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여야 한다.

그런데 칼뱅주의자들은 그것이 무슨 큰 잘못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칼뱅이 그랬다고 하면 옳은 것이고 칼뱅과 다르게 말하면 틀린 것이 된다는 식이다. 거의 교주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참으로 갑갑한 태도이다.

아는 한 목사님이 기독교강요에 대해 성경의 진술과 다른 내용이 두세 개 있다고 말하였다. 그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가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과 다른 부분에서 그렇다고 말하면 길길이 뛰는 것이다. 자신은 괜찮고 다른 이는 안된다는 식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삼위일체를 3=1로 이해한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작정론도 마찬가지이다. 신약의 교회에도 이중선택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성경적인 정의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이중선택이 있을 여지가 없다. 모두 성경의 진술을 잘못 이해한 결과일 뿐이다. 그런데도 칼뱅주의자들은 칼뱅의 주장을 절대적으로 신봉한다.

견인론은 그러한 신학적 토대 위에 형성되었다. 칼뱅주의 견인론은 칼뱅의 작정론과 이중선택사상의 토대 위에 형성되어 있다. 그 토대가 성경적이라면 견인론도 당연히 성경적일 수밖에 없다. 그 토대가 성경적이지 않다면 견인론도 당연히 성경적일 수가 없다. 칼뱅의 작정론은 성경이 진술하는 바를 넘어섰고 이중선택사상은 성경의 진술을 오해한 결과이다. 그러니 견인론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곧 죽어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칼뱅이 틀릴 리가 없다는 굳건한 신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견인론이 인간적으로도 훨씬 좋기 때문이다. 내게도 그러한 견인론이 인간적으로 더 좋다. 하나님께서 거듭하게 하신 사람을 끝까지 지키시고 이끄셔서 반드시 영원한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다는 주장, 너무나도 듣기 좋은 말이다. 인간적으로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기만 하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에 거짓 선지자들과 이스라엘이 그랬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하나님이시기에 자신들에게 멸망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참 선지자들은 달랐다. 멸망당한다고 말했고 핍박을 당하고 죽기까지 했다.

칼뱅, 그가 탁월한 신학자임은 분명하지만 그는 그 시대의 아들이다. 신학적 작업의 결과물이 참으로 귀하지만 그 내용에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지성을 바르게 사용하면 충분히 분별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한다. 칼뱅의 말이라면 그냥 수용하는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도 않은 교주와 같이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알미니우스도 알미니안주의자들에게 거의 동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알미니안주의자들과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교리를 논할 기회를 거의 가지지 못했기에 뭐라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신학을 바르게 정립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교회의 뼈대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교회답게 세워지는 데에 절대적으로 바른 신학이 필요하다. 이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교회 개혁은 제대로 힘을 얻기 힘들거나 아니면 요원할 것이다.

추신. 나는 논쟁을 즐기는 쪽이다. 논쟁은 어떤 주장에 대해 각자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미흡한 생각을 보충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논쟁에서 누군가의 주장을 반대하는 것은 그의 인격에 대한 거부는 아니다. 나는 그 주장을 거부하는 것이지 그의 인격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인격 거부라면 지체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정립하기 위해 논쟁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즐기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가 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 그 정도가 지나치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지만 나름대로 노력한다. 인격이 아닌 주장 자체를 평하면서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확립해가는 바른 논쟁 문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