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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수 - 해방촌 해방가해방촌에 살던 유소년기의 추억을 헤아려 보다
이일배  |  6_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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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2월 30일 (금) 00:00:00 [조회수 : 3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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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행정동이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인 해방촌에는
아직 해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살아 있음을 안 게
내가 한 때 거기에 살던 먼 과거의 일만 아니더라.
사람 사는 어디든 참 자유와 해방이 존재할까마는
내가 등지고 광주대단지로 떠난지 사십 년 남짓 흐른 그 곳 남산 언덕배기
이름만 해방이지 해방촌이지, 여전히 가난과 죄와 슬픔, 흑백황인종
혼혈 뒤섞여 사는 해방촌이 진정 해방될 날 언젤까?
이태원에서 해방촌 고개 숨가쁘게 비집고 택시로 오르면서
자꾸 내 고향 해방촌이 생각나더라.

혹독한 21일간의 혹한이 꼬리 내렸건만 강화 외포리 바닷바람을 한껏 쐬고
방학 맞아 방심하여 독감에 딱 걸리고 말았지 뭐야, 그런 지친 몸으로 찾은 옛 마을
어느 부잣집 담을 살짝 넘어 온 백목련 등걸에 쌓인 눈이 녹아 떨어지는 물을 보며
설겅하되 따뜻한 콩밥 한 그릇과 된장찌개로 해방촌 인심을 느끼고 싶었어.
정녕. 그 손에서 따순 밥을 먹어 봐야 사람 대접 제대로 받는다는 개념 못 버리고.

혼자 의자에 앉아 긴 소설 읽다 스르륵 졸릴 쯤이면 긴있는 그 사람은
삼월의 창가로 비스듬히 내려와 보란듯 하늘을 향해 합장한 손을 벌려 보인다는 
눈부신 하얀 꽃의 환영들을 님인 듯 꿈인 듯 하염없이 바라보며
삶의 희열 맛본다는 행복에 겨운 자랑을 귀담아 들으며 난 염치도 없이...
차가운 거실 마루에 팔베게 한 채 올초에 이비인후과에서 자른지 오랜 못젖에
휘감겨 들어가는 쉰 목소리를 억지로 짜 내어 랩인지 판소리 가락인지 흉내내어 봤지.
저 향기 없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고 지다가 그늘진 베란다를 하얗게 덮을 날도 오겠지.
저 날을 향해 이 요상한 해방가를 부르는 것이다.

새가 누르고 간 가지의 흔들림을 흘낏 훔쳐 보고, 그 새의 지저귐도 슬긋 기분 좋았어.
더는 느긋한 여유와 자유 못 누리고 이윽고 문 열고 나가야 하다니...
운 좋게 날은 화창도 하여 좁고 긴 계단을 등지고 사행 오르막길 올라가는 대로에서는
인사나 손흔듬은 사양하기로 해 "안녕, 잘 가요."라는 이런 말은 듣지 못 했을 거야.

내가 새파란 머리 하고 그 징한 골짜기 타고 오르내릴 적엔
돌팔매질하는 손버릇 있던 까까 머리의 학생들이 공부하기 싫어
해방촌 골목길 싸돌아다니다가 심심하면
시커먼 때 쩔은 숭실고 유리창에다 마구 돌질 해 대서
깨지지 않거나 우그러들지 않은 창틀이 거의 없었는데 말야.
발치엔 유리창 파편들 눈처럼 하얗게 딍굴고 걸거적거리던 그 길을 돌고돌아 올라가는데,
예처럼 모자원으로 급하게 내려가는 길만큼은 녹쓴 철조망도 잡풀도 안 보이지 뭐야. 
후암동 종점108 계단까지 내려가는 그 길은 아직도 두렵도록 가파르더라.

해방촌 언덕 오거리엔 30여 년 전에도 그랬듯이
급히 걸어다니는 사람이나 골목길 질주하는 좁은 마을버스에
정신 바짝 차리고 마음은 바빠야 했지.
어릴 적엔 유난히 그 사통오달길이 추웠어.
북서풍이 사정 없이 귀를 후비는 바람길 머리에 서성이곤 하다
호주머니에 터진 손을 찔러놓고 종종걸음질치던 겨울철인데
작심하고 신촌 동교동 때 살던 신혼집과 주례자 댁으로 가 보려고
시청앞행 남산순환도로 정류장 향해 성큼성큼 걸어 올라갔어.

오거리 골목 한켠 밤에 백열등 켜놓고 희고 붉고 푸르고 검은띠 두른
어린 것들이 얍얍 기합소리 요란하게 울리던 태권도장이 있었지.
난 돈 없어 언덕길에서 그 동작만 부럽게 하염없이 내다 보곤 했는데
다시 불쑥 터져 나올 것 같은 그 함성이 또 들리는 듯.

해방교회를 향한 시장 골목 앞에 저 시계집 좀 보아, 아직도 있네.
Kidergarten 이라던 독어식 영문의 유치원 간판 걸려 있던 초입
대여섯 개 남짓한 돌계단이 서 있던 그 자리는 안 보이고
그 뒷골목으로 올라서 보면
펑퍼짐한 언덕 공터에 웃통 벗은 채
"자, 자.. 얘들은 가, 얘들은 가."
하얀 두건 머리에 두르고 알몸에 땀이 밴질거리던 가짜 약장수들이
차력술로 돌 까부수고 불 삼키고 뿜어 내던 곳인데
아직도 공터로 있는지 몰라.
썰렁한 연립주택들이 빼곡 들어차 있는지도 몰라.
가 보고 싶었지만, 추억의 자리로 남겨 놓자고 외면했지 뭐.

거기서 조금 위가 이젠 순환도로가 되어버린 우리가 살던 하꼬방 터.
이태원초등학교 2학년 때 구로동으로 철거된 집자리인데
그 때 한 지붕 네칸 자리 그 진흙벽집 생각만해도 서러워.

해방촌 파출소 뒤켠 공터에 뻥 뚫린 녹쓴 탱크 한 대가 유물처럼
그 전쟁의 잔해 속으로 우리 동무들을 매일 불러들였지.
미국 팝송 한 소절씩 외쳐 대던 그 꼬마 동지들
얼굴에 구름처럼 버짐이 가득 피어 오르고
기계충에 머리 배어 힐건 콩나물 대가리들이
탱크 머리에서 두더지처럼 튀어올라오던 곳이었는데 말야.

드디어 순환도로 가로자르자 마자 이름도 거룩한 덕이란 뜻을 갖춘
숭덕교회당이 남산 숲속에 덜렁 남아 있어 그나마 반갑던 곳이야.
또다시 그 교회당 뒤 겨우 구한 우리 집이 헐리고 나서도
그 교회당은 무슨 빽으로 그 자리에 오래 남았을까 궁금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 교회당도 오래 전에 헐리고 말아 낯선 이름의 공원이 되었더군.
머리 빠진 노인들 몇 사람이 벤치애 앉았거나 운동을 하며 지키는
썰렁한 그 터를 흘낏흘깃 쳐다 봤어.
'타향인 되어 그들에게 잊혀졌지만, 본디 나도 이 곳 사람이요.'
해방촌 여자들과 아낙네들과 결혼식에 참석하려는지
제법 환한 옷을 입고 얼굴에 화장을 곱게 한 노인네들이
양지의 정거정에서 버스를 막연히 기다리는 걸 보며 말해 주고 싶었어.
전혀 낯설지 않은 저 얼굴들.. 한두 다리만 건너면
나도 누구 아들입네 하거나 용암초등학교 2회라고만 해도,
"아하! 누가 2회 맞지!" 하며 아는체하고 반겨 줄 사람들도 혹 나오련만
꾸욱 벙거지 머리에 깊게 눌러 쓰고 모른척하고 서 있었어.
사라진 숭덕교회 입구만 한동안 넋일 듯 쳐다보고 서 있었어.
담처럼 둘러서 있던 젊은 밤나무 수십 그루가 도대체 몇 그루나
살아 남았을지, 그 등걸들이 울창한 숲 어디에 뒤섞여있는지...
허나 몇 그루 밖에는 안 보였어. 정말이지 너무너무 허무하더라. 
세월이 산을 세 번이나 바꿀만큼 내 집터마저 흙속에 묻혀 버린 걸 뭐.
그 교회 녹색 철대문의 작은 문 숙여 들어가 비탈길로 오를 적마다
사찰 집사가 집에서 흘겨보던 눈이 몹시 두려웠던 기분 알어?
바로 그 모서리 철조망 너머 빨간 기와집네 막내아들이 바로 나였거든.
가을마다 교회당 흔들리는 철조망 타고 훌쩍훌적 뛰어넘어가
다람쥐처럼 알밤 따 가고, 철조망 딛고 그 밤나무 가지 타고 오르다
찍찍 가지를 찢어내리거나, 밤송이 달린 가지 뚝뚝 분질러뜨리거나
돌 마구 던져 그 집지붕을 댈그럭거린 장본인이라서
멀찌감치 우뚝 선 해방교회는 몰라도 우리 집 바로 아래 교회였지만
얼씬거리기가 정말 싫었단 말이야.
허긴 혹간 크리스마스 땐 공짜 연극 구경 좀 해 보려고
창가에서 서서 까치발 하다 눈 부릅뜨는 그 교인들 굳은 얼굴을 보면
죄 없어도 냅다 토끼던 그 교회라 이름만 숭덕이지
어쩌면 덕이란 하나도 없는 곳이었는지 몰라.
적어도 그 밤서리 하던 어린 날엔 말야.

앨리스야, 또는 일리저배쓰야!
해방촌 골목길 한 번 눈감고 우리 집집이 찾아다녀 볼까?
그 땐 눈 감아도 훤하던 수천 개의 골목길 들이
어수선한 난립주택으로 길마다 뭉치고 갈라져 변하고 말았잖니.
이젠 지도책을 손에 들고 대낮에 두 눈 부릅뜨고
아직도 거기 해방촌 둥지를 못 벗어난 날개 없는 키위 같은
옛 동무들하고 어깨동무하고 그들을 대동하고 다닌들
영자네나 후배 복실네, 순영이네, 호범네, 영분이네 집 등등
알아볼 수 있을까?

2005년 올해 막 내리려는 아침에 싸락눈이 길에 쌓여 있더라.
해방촌에도 남산 소나무에도 허옇게 저 눈이 쌓여
마치 우리네처럼 늙은 머리 하고 있을 듯해.
아~ 을씨년스러울 해방촌.
언제 시간 날 때 방해 받지 않고 쉬엄쉬엄 그 골목 찾아가
혹 어귀에 누군가 서서 늙어가는 날 반가이 알아 봐 줄 친구 있을까?
그 따뜻한 손 만져 보고 싶어 다시금 해방가 하나 불러 보는 거야.
이렇게 수다스럽게.

2005-12-30
화율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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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배 (210.103.56.65)
2005-12-31 09:29:05
남산 보득솔아래 누런 솔잎에 누워
겨울 솔바람 소릴 들으셨다면 남산이 더 좋은지 아셨을텐데...
오리나무 삭정이 꺾으로 오르다 물오르는 가지와 함께 땅에 쏟아져 보셨다면...
바람에 쓰러진 아카시 등걸을 타고 골짜기를 건너가 보셨다면...
낙엽을 덮고 자 보심만 했을까요?
그 산에 묻혀 살이 내려도 행복할 것 같은 포근한 모태같은 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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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칠 (87.251.97.64)
2005-12-31 02:36:57
역시 회장님 이셔~
외마담이 풍선을 띄우니 젊은 회장이 랩과 판소리를 번갈라 부르는 솜씨. 젊은 실버여, 생수는 마셨으니 쌍화차나 한 잔 추가 합시다. 초등학교 당직은 너무 넓어 고생이 많다고 합니다.

내 오늘은 마감을 지었으니 계속 시작을 계속 하이소~, 내 계속 “좋다!”를 복창할께요.

나도 아직 내가 살아왔던 광복동 거리와 용두산 공원을 가 본지 너무나 오래 된 것은 일부러 피했기 때문이며 혼자 가보며 아우님처럼 돌림감기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식들이 다 자랐으니 가족과 같이 한번 가 보려고 합니다.

“젊은 누님! 지금 어릴 적 고향으로 가지 마시고 따뜻한 쌍화차 마시고 가이소이~, 또 벽에 글씨가 나타날 것이구먼유.”

대학시절, 남산에 사는 철수집에서 친구들과 인생토론이 벌어졌는데 내가 삐져서 남산의 숲에서 낙엽을 덮고 자 본적이 있습니다. 되게 춥데요~, 도로 항복을 하고 일어 나려는데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부르네요. “나 너거들 보다 낙엽이 더 좋데이! 덜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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