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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6월 21일 (화) 00:00:00 [조회수 : 53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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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밤 10시면 새벽기도회를 위해 잠자리에 드는 철수전도사지만 이번 주에는 밤꽃을 찾아 헤매는 땅의 방랑자처럼 옥상에서 헤매는 것은 며칠 후면 라합교회의 창립 일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일년 전에 이 날은 큰 상처를 받은 후에 주어진 사명이라 정신없이 도전을 하였고 지금까지 성령의 지시대로 힘차게 달렸기에 뒤를 돌아볼 틈이 없었으나 첫 생일이 오기 전에 자신이 이 길로 오게 된 일을 차분히 생각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6년 전인 1969년 늦가을, 4형제 중에서 두 번째며 대학 2학년인 여동생 혜경의 문제로 집안이 어수선해진 것은, 사귀는 남자가 미국으로 유학을 결심하였기에 아예 결혼을 하여 같이 미국으로 가자는 제의가 남자 집안쪽에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머니로서는 딸이 결혼을 할 나이도 아니었고 좀 더 딸을 곁에 두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거절을 했으나, 혜경에게 구혼을 한 청년의 집안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은행 동료였고 지금도 형제같이 가깝게 지내오고 있는 사이였으며 게다가 딸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공부를 하러 가겠다고 떼를 쓰기에 난처한 입장이었다. 게다가 여동생이 오빠 먼저 결혼을 한다는 것은 보수적인 대구의 한씨 집안 어른들이 여자가 장손의 길을 막는다며 펄펄 뛰며 반대를 할 것이 뻔했기에 큰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딸이지만 미술을 전공하는 예술가답게 좀 튀는 성격이었기에 철수는 날로 짧아져 가는 여동생의 치마자락을 아침마다 자로 재어보았고, 남자에게서 전화라도 오는 날이면 혜경에게 귀가 따갑도록 잔소리를 한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기 위함이었는데, 혜경이 대학 2학년 봄의 초저녁에 남산 언덕 길을 군인과 팔짱을 끼고 오는 것을 목격한 철수는 바로 주먹이 여동생을 향해 날라갔기에 실신한 여동생을 업고 병원의 응급실로 간 적이 있었다.
응급실의 복도에서 혜경이 깨기를 초초하게 기다리던 철수는 누가 어깨를 툭 치기에 쳐다보니 여동생과 데이트를 하던 군인이었기에 또 주먹이 날아갈 뻔했으나 황급히 군모를 벗은 상대는 자신이 너무나 잘 아는 준배 형이었기에 철수는 자신이 성급함이 미안하였고, 준배는 철수가 여동생에게 엄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혜경의 집 근처에서 주의를 하지 않았기에 미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철수 어머니와 준배 부모들이 대구의 어른들을 여러 차례 찾아가서 간곡히 설득을 한 결과로 둘은 그 다음 해 신정 연휴에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한국의 결혼식은 신부 집에서는 아끼고 사랑하던 보물을 남에게 주는 심정이므로 슬픔의 날이나, 딸을 더 사랑해 주는 보호자가 나타났다는 기쁨이 약속된 일시적 슬픔이기에 잘 감수를 하여야 했으나 신랑 집에서는 평생 일군이 들어오기에 마냥 기뿐 날인 것이다.
어머니나 철수는 마냥 철부지 같은 여동생이 오랫동안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으나, 봄이 되면 눈도 녹고 싹이 오르는 자연의 순리를 인정해야 했으며 무서운 오빠에게 벗어나기 위해 빨리 결혼해야겠다는 여동생의 우스개 소리가 현실이 된 셈이었다.
결혼식 준비로 대구에서 삼일 전에 미리 올라온 인척들로 새로 이사한 강남의 아파트에는 벌써 잔치가 시작되었고 철수 어머니와 여동생은 혼수준비로 바쁘게 뛰어다녔으며 이제는 딸과의 마지막 밤을 한 이불 속에서 지내는 시간만이 남은 것이다. 배 속에서부터 자신의 곁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착각을 할 정도의 자식이 이제는 자신의 배필을 만나 어머니의 체온을 떠나는 것이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에 대한 서러움은 흰 머리가 생기고 주름도 늘고 쇠약해지는 육체적 변화보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곁을 떠난다는 환경의 변화가 더 심한 슬픔을 주는 것 같았다. 경상도 남자라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담아보지도 않던 철수 아빠도 ‘내가 먼저 가서 당신을 기다릴 터이니 자식들 자리를 잡아주고 오소’하며 숨을 거둔 것은 저승에서도 마누라를 기다리겠다는 경상도 사나이들의 서툴지만 진솔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믿고 살아온 장여사였다.
시골에서 양조장을 하는 호탕한 성격의 시아버지의 7형제 맏며느리로써 절약과 희생이 몸에 배인 장여사였지만 딸의 잔치에는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 놓은 것은 일찍 아버지를 잃은 딸에게 보상을 해 주고 싶은 심리와 한국사회의 여자에 대한 푸대접 때문이기도 했다.
혜경의 친구들은 연애결혼으로 제일 먼저 면사포를 쓴 친구의 결혼식에 축가와 피아노 반주를 서로 맡고자 경쟁을 할 정도로 축복을 해 주었으며, 철수 아버님이 근무했던 은행에서도 동료들의 자식들이 하나가 되므로 동료의 죽음에 대한 공백을 채워주었으므로 진심으로 축복을 하였기에, 결혼식은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신랑에게 인도하지 못하고 작은 아버님이 대신한 것 외에는 남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호화롭고 성황리에 거행된 예식이었다.
많은 축하객들이 운집한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함께 서서 환하게 웃는 딸의 모습은 남편과 자신의 열매요, 훈장이었고 이 순간을 위해 자식을 키운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기쁨이었고, 자신이 면사포를 쓴 날이 며칠 전 같았는데 딸의 차례라는 사실은 세월이 너무나 빠름을 다시 한번 실감을 하였다.
결혼식의 마지막 절차로 신혼부부가 하객들을 향하여 인사를 하기 위해 돌아서자 카메라의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질 때마다 장여사의 눈에는 불현듯 딸의 곁에 청순하면서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또 하나의 얼굴이 보이다가 사라지는 이상한 현상이 되풀이 되기에, 신부 어머니가 결혼식장에서 눈물을 닦는 것이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흐르는 눈물과 고인 눈물까지 손수건으로 훔쳐내어야만 했다.
대구에서 올라온 친척까지 다 돌아 가시고 내일이면 제주도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처갓집에서 신혼부부가 하룻밤을 자는 날인데, 긴장이 풀려서인지 다시 이 처녀의 얼굴이 떠 오르기에 장여사는 이 처녀귀신을 기억을 하기 위해 긴 밤을 뒤적이며 뜬 눈으로 세우다 새벽 5시에 인근의 교회 차임벨 소리에 문득 이 슬픈 표정의 처녀가 어렴풋이 기억 나는 것이었다.
“병춘인가? 날세. 너무 일찍 전화를 걸어 미안하네.”
- 괜찮습니다. 누님.
“사무실로 출근을 하기 전에 잠간 우리집에 들러 주게나. 물어볼 것이 좀 있어서…”
- 지금 당장 갈까요?
“아닐세. 급한 일은 아니네.”
두 시간 전부터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처녀에 대한 답은 아무래도 병춘이 알고 있었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장여사는 오전 7시를 알리는 벽시계의 소리를 들으며 전화기를 든 것이었다.
장남 철수가 고3인 1965년 여름, 남편이 은행의 중간결산문제로 야근을 하다 갑자기 돌아가신 것은 예고 없는 일이었으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인 은행에서 퇴직금과 후한 위로금이 주어졌기에 은행에 넣어두어도 살아가는 데에는 경제적으로 별 지장이 없을 듯 하였다. 49재를 지나고 한 달 정도 지난 어느날, 할머니의 친척 중에 평소에 시아버지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솔직하고 의리가 강한 철수 아버지보다 나이가 15년이나 차이가 나는 임병춘이라는 분이 시아버지의 편지를 들고 철수 어머니를 찾아온 것이다.
시골에서 양조장을 하셨기에 제법 많은 재산을 소유한 시아버지는 이미 장남인 철수 아버지와 장손인 철수에게 재산의 절반을 상속하였으며 나머지 6자식과 손주에게까지 고르게 분배를 한 공정한 분이셨는데, 맏며느리에게 전하는 편지에 이 사람의 말을 따라 남은 돈을 투자를 하여 자식들이 공부도 마치고 결혼을 할 때까지 알뜰한 생활을 하라는 충고를 하신 것이다. 할아버지가 추천한 병춘은 이론보다 실전을 중요시 하며 이윤보다 인간관계를 중요시 하기에 하이칼라 집단에는 끼이지 못하였으나 폭 넓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젊을 때부터 청량리 바닥에서 리어카로 미제물건 장사, 수박장사와 포장마차를 하여 대학 졸업장과 조그만 논밭을 부모에게 선물을 한 기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복덕방을 하던 병춘이 부동산에 대한 엄밀한 시장조사를 6개월 정도 하는 동안에 장 여사가 투자한 돈은 청량리 상가에 일수 돈으로 변해 많은 새끼를 낳게 되었는데, 장 여사는 일주일에 한번 청량리 사무실에 들러 병춘의 설명을 듣고 장부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6개월이 다 되어 갈 무렵, 점심을 먹은 후에 바람도 쇨 겸 사무실에 들러 보았더니 한 처녀가 사무실의 소파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 청년들로부터 심한 꾸중을 듣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여 병춘에게 사연을 물어 보았더니 별일이 아니라며 자신의 방으로 안내를 하였다. 장 여사는 남편이 힘들게 일하며 모은 돈이며 대학도 가고 결혼을 해야 할 자식이 넷이나 달려 있기에 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돈을 불리는 병춘의 사업에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서류를 대강 본 후에 사무실을 나오는데 이 처녀가 철수 어머니에게 애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는데…. 바로 딸의 결혼식장에서부터 자신에게 나타난 얼굴인 듯 싶었다.
병춘은 약속을 한 6개월이 되자 어디서 부동산 정보를 가져오는지 청사진을 펼쳐 보였으며 그가 예상하는 부동산은 그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듯 하였기에, 돈을 벌고자 하면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게 되나 한편으로는 돈 벌기가 이렇게 쉬운가 하는 생각이 들 경우가 있다는 정반대의 사실도 알게 될 정도로 눈덩이처럼 돈이 불어나고 있었다. 이는 좁은 땅 덩어리를 가진 나라는 땅이 금이라는 병춘의 철학이 맞아감을 증명하였다.
“누님! 큰 일을 치르신다고 수고 했습니다. 오늘 혜경이가 제주도에서 오는 날이군요.”
“이른 아침부터 전화를 해서 미안하네. 잠간 앉게나, 내가 잠깐 물어볼 것이 있어서…, 혹시 5년 전에 우리가 처음 사무실을 내고 6개월 정도 되던 날, 사무실에서 심하게 꾸중을 듣던 처녀를 기억을 하겠나?”
장 여사 입에서 생각도 못한 5년 전의 일을 묻자 병춘은 상당히 당황한 표정이었으나 의외로 침착하게 대답을 한다.
“저의 사무실에서 처음 생긴 불상사라 기억을 합니다.”
“불상사라? 무슨 일이 일어 났는데…”
장 여사는 병춘이 생각도 않고 즉시 대답을 하며 평소에 낙천적인 표정이 어두워지며 불상사라는 표현을 하자 자신도 모르게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그 처녀 어머니가 폐결핵 말기 환자로 병원에서도 포기를 하여 집에서 죽기를 기다렸는데 이 처녀가 생활비를 전하려 잠시 집에 들렸다가 간호를 하기 위해 주저 앉은 모양입니다. 동생들이 수소문하여 집을 찾아가 통사정을 하는 처녀를 일을 시키기 위해 데려 왔나 봅니다.”
기대보다 상세한 내용을 기억을 하고 침착하게 말하던 병춘도 이 부분에서는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도대체 처녀가 무슨 일을 맡았기에 부모의 마지막 병 간호를 하는 처녀를 기다리지 못하고 돈 때문에 꼭 데리고 왔어야 했나?”
장 여사는 흘러간 일이라 쉽게 말이 나왔지만 그 당시로서는 돈 한푼이라도 새는 것을 막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병춘임을 알기에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저는 채무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이들이 알아서 하기 때문에 저는 간섭을 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부모의 병간호를 했다기에 기특한 생각이 들어 잘 타이르라고 했을 뿐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네. 처음부터 찬찬히 설명을 해 주게나. 이 처녀가 어떤 업을 하였기에 대출이 되었나?”
“….”
항상 시원하게 대답을 하는 병춘이 왠일인지 입을 다물고 침만 삼키고 있는 것이다.
“괜찮네, 나는 지금까지 나의 전 재산을 동생에게 맡겨 왔고 동생은 열심히 하여 큰 재산을 이루어 주었는데 일에 대해 서로 말을 못하고 숨겨야 할 부분이 아직도 남아 있는가? 섭섭하네.”
장 여사의 말대로 전 재산을 자신에게 다 맡겼고 추억의 보금자리마저 강남의 고층아파트로 옮기자는 제의에 선뜻 응한 분이었다. 단지 양조장 어른이 며느리는 착하게 세상을 살아왔으니 험한 꼴은 병춘이 방패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험한 일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나름대로 덮어두었으나 섭섭하다는 말에는 피할 도리가 없었다.
“청량리 창녀입니다.”
창녀라는 단어는 주부인 장 여사에게는 익숙한 말은 아니었으나 처음 듣는 소리는 아닌 것이다. 철수가 대학 1학년 때의 늦은 여름, 아들의 방을 청소를 하다 구석에 쑤셔 박아 둔 고름이 묻은 팬츠를 발견하고는 단짝인 용준과 철수를 다그쳐 물은 끝에 청량리 창녀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란 사실이 한번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창녀와도 돈 거래를 해야 했었나? 나는 시장 상인들과 돈 거래를 하는 줄 알았는데…”
“돈은 굴러야 불어나고 부동산은 구입을 하고 때를 기다려야 하는데 제가 사창가에 돈을 일부 굴린 것은 정보를 얻기 위함입니다. 월급쟁이들은 눈 먼 돈이 들어오면 술을 마시고 사창가를 찾죠. 그리고 신문에 나오지 않는 사실을 아가씨에게 자랑을 하려는 남자들의 심리가 있기에 이것을 이용한 것이고 평소 동생같이 생각을 한 건달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함도 있었습니다.”
부동산 전문가의 예견은 예매이고 신문기자는 암표상이기에 부동산 구매는 자신의 독특한 정보로 판단을 하여야 보수적인 극장으로부터 좋은 좌석을 받을 수 있다는 병춘의 유별난 지론이었다.
“돈 장사는 사고 시에 회수 방법이 제일 문제인데 시장 상인들은 서로 보증을 하기에 안심은 되나 인심을 잃지 말아야 하는 애로가 있는 반면 사창가는 포주들에게 돈을 빌려주나 관리는 돈을 대는 사람이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창녀들에게 이 돈을 떼어 먹을 생각은 꿈도 꾸지 않게 만들어야 하죠. 그래서 자연적으로 주먹들이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처녀는 효성도 있기에 충고만 하고 일터로 보냈는데 일주일 후에 어머니의 사망전보를 받고는 그날 저녁 쥐약을 먹고 자살을 했죠.”
병춘은 아침부터 자신이 뿌린 돈 때문에 자살한 여자를 기억하는 것이 상당히 괴로운 듯한 표정이었다. 사창가에서 창녀가 자살을 하는 것은 길에서 자동차에 치인 개와 같기에 신문기자도 관심이 없으며 관할 파출소에서는 유서도 있기에 빨리 장례나 치르면 되는 것이다. 모진 세상에 병이 들어 죽은 부모의 뒤를 따르는 처녀는 무식하게 보이지만 그녀 나름대로 부모에 대한 사랑의 표현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은행에서 돈을 대부하여 사업을 한 사람이 사업에 실패를 하여 자살을 하였다고 은행장이 책임을 질 필요는 없으나 너무 원칙대로 일을 진행하였기에 저도 가슴이 아프더군요. 그래서 장례식도 치루어 주었고 고향의 공동묘지에 묻어 주었습니다. 이 후로 저는 사창가 일수놀이는 손을 떼고 동생들에게 물러 주었으며 그 동안 수집한 부동산으로 돌격을 했죠.”
그 처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병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과의 거의 상관도 없는 일이나 한가지 양심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는데 ‘내 딸을 사랑하는 마음의 만분의 일이라도 남의 딸을 사랑해 본적이 했는가? 도움을 청하는 남의 딸에게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았는가?’하는 당연하면서도 이상한 소리였다.
“자네 요새 마누라 덕에 교회집사가 되었다며? 믿을 만 하던가?”
갑자기 대화를 바꾸는 장 여사를 병춘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면서도 빙긋이 웃으며 대답을 한다.
“일년 전부터 새벽에 살며시 일어나서 집 근처의 교회를 가는 거예요. 처음에는 모른 척 했지만 매일 출근이기에 성이 나더군요. 한번은 골탕을 먹이려고 외박을 하고 새벽 4시 반 경에 집에 와서 안방을 살짝 훔쳐보니 밥쟁이가 무릎을 꿇고 ‘남편이 와야 새벽기도회에 나갈 수가 있으니 빨리 보내주세요.’하며 기도를 하고 있기에 내가 항복을 하고 한 이불을 덮기로 했어요. 이제 겨우 저의 밥쟁이가 올바른 길을 택했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장 여사는 자신이 기억한 처녀가 병춘의 증언대로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안 시점에서 병춘의 간증으로 쓸쓸한 미소나마 지을 수 있었으나, 며칠 후에 신혼부부를 미국으로 보낸 이후부터 장 여사는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을 하면서 허공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머니의 건강은 어떠신가?”
돼지갈비 3인분을 시킨 후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병춘아저씨는 원래 엉뚱한 면이 많기는 한 분이나 철수에게는 의리와 신의를 아는 멋쟁이 아저씨인지라 많은 삼촌들이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촌수도 아주 먼 아저씨와 의논을 한 철수였다.
“일반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 수가 없다고 하여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는데도 차도가 없었는데 요즘 조금 생기가 도시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병은 몸이 아픈 것보다 하루에 3~4번 정도 몽유병자처럼 멍해지는 현상을 보이기에 이웃에서도 귀신이 들었으니 용한 점쟁이에게 가보라고 충고를 할 정도였지만 엄한 집안에서 날벼락이 날 일이라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사람이나 국가는 어려운 시기가 있기 마련이야. 역경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국가는 존재가치를 잃게 되는 것 같아.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사람은 어떠한 신앙으로, 국가는 어떠한 이념을 통해 일어서는가 하는 문제인데 선택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돼지갈비를 뒤적이며 천천히 이야기를 하는 아저씨는 평소의 모습과는 딴 판이었다.
“한달 전부터 누님이 우리 가족과 교회에 다니고 있어. 우리집 밥쟁이가 전도를 했나 봐. 철수는 알고 있었어?”
. “전연 몰랐습니다.”
자신은 졸업시험, 건축설계사 시험 등으로 항상 바쁘기에 같이 한 집에 같이 살면서도 어머니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는데, 어머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텔레비전 연속극 시간인데도 응접실에 나오지 않고 방에 계신다는 사실만 기억 날 뿐이었다.
“모든 일에 첫 경험은 기억에 오래 남듯이 처음 교회에 나오는 날은 꿈을 꾸는 분위기에 젖게 되어 감동적이야. 분위기에 조금 익숙해지면 같이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죄가 보이게 됨으로 흔들리기 시작을 하지. 결혼도 이와 마찬가지일거야. 결혼은 이때쯤 애기가 태어나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듯이 초신자는 성령의 인도로 성경을 붙들고 몰두를 하지.”
한번씩 철수를 만나 돼지갈비집에 앉아서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재미있던 이야기로 폭소를 자아내게 했던 아저씨가 오늘은 정말로 유별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 것은 하나님과 예수는 철수도 알고 있으나 성령이란 말은 철수에게는 낯설기만 했기 때문이다.
“황금 같은 젊음의 3년 세월을 벌었으니 어디에다 투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한국사회에서는 완연히 드러난 육체적 병신이 아니고는 군대를 면제를 받는다는 사실은 생각도 못했는데 고도근시로 막상 면제를 받고 보니 재수를 해서라도 한국대학의 공대에 들어갔었으면 KS 마크를 찍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과 미팅에서 만난 한 살 어린 여대생을 군대문제로 포기를 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잡았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 투성이었지만, 굴러온 3년의 세월을 다른 뜻 있는 일에 투자를 해 보자는 생각을 해 본일이 없었던 철수라 할 말이 없었다.
“친구들보다 3년 앞서 사회에 나오면 더 빨리 성공을 할 것 같지만 도리어 거북이에게 지는 토끼님이 되는 수가 많아. 내가 철수라면 배낭을 메고 세계일주 여행을 하겠어.”
불합격의 판정으로 신검생들의 박수와 부러운 시선을 받고 나오던 철수의 가슴 속에는 평소 공정하게 만사를 대해야 한다는 교훈보다 동료보다 먼저 사회가 나가서 한참이나 앞서 있자는 교만이 차 있었기에 3년의 배낭여행은커녕 3주간의 국내배낭여행도 꿈을 꾸지 못했던 것이다.
“부끄럽게도 저는 3년의 세월에 대해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철수의 대답에 아저씨는 잘 익은 돼지갈비 한 조각을 양념파전 위에 얹어주면서 소주도 한잔을 부어 주신다.
“아저씨, 급행집사님이 되셨지만 전처럼 술을 자셔도 괜찮아요?”
철수는 분위기도 바꿀 겸 술고래 아저씨를 걱정을 해 드렸다.
“예수님도 포도주를 마셨으니 나도 먹어도 된다는 논리가 아니라 이 물은 너와 나의 가슴을 활짝 열어주는 청량수 일세. 한잔 들자.”
12년 정도 나이 차이는 있으나 너무나 종종 술자리를 같이 하였기에 부담 없이 잔을 부디 치며 건배를 하였고, 주고 받기를 여러 차례 하면서 할아버지 양조장에서 훔쳐먹은 막걸리에 취해 생겼던 둘의 추억을 더듬으며 전처럼 웃음꽃을 피웠다.
“사람은 누구나 잊지 못하는 자신만의 사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나 혼자만 본 광경이 아니라 남들도 같이 보았는데 유독 자신에게만 박히는 사진이지. 내가 청량리 시장바닥의 어느 상점 앞에서 주인의 양해아래 리어카 수박장사를 할 때 상점 주인이 갑자기 죽었어. 상주는 11살 난 아들과 9살 난 딸이었는데, 어린 딸의 아버지 죽음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는 눈동자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어.”
자신만의 사진이라는 아저씨의 표현이 철수의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과 사진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수는 성경 속에 나오는 천사와 귀신을 믿는가?”
철수가 아는 천사는 새처럼 흰 날개를 달고 있으며 산 사람이 아니라는 표시로 머리 위에 둥근 형광등을 달고 있는 모습이며, 귀신은 어릴 때 할머니에게 너무 많이 들어 밤에 화장실도 못 갈 정도였으나 지금은 둘 다 이 땅에는 존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생각이 아저씨의 심각한 질문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침묵을 지켰다.
“공학도에게 내가 미련한 질문을 했나 보지. 문명이 발달할수록 이들의 존재가 잊혀져 가지만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을 해. 단 떠도는 영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 이 역할을 대신 하는 것 같아. 만약에 며칠 굶은 자에게 자네가 점심 값을 주었다면 자네는 사람이지만 그에게는 천사가 되는 것이고, 그에게 점심 값을 빙자로 나쁜 일을 시킨다면 자네는 귀신이 되는 것일세.”
낮에는 대학 철학도이고 밤에는 현장에서 진리를 찾는다며 청량리 창녀촌에서 포장마차를 하며 오입쟁이와 건달 그리고 창녀들과 인생을 논하던 아저씨다운 발상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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