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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콤플렉스와 김국도목사-나 죽고 너 죽자의 이상심리에서 벗어나야-
김성복  |  ksboc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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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7월 13일 (화) 18:14:47
최종편집 : 2010년 07월 14일 (수) 01:56:49 [조회수 : 4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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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복목사(샘터교회)

얼마 전 한겨레신문에 배태영 경희대 명예교수가 ‘삼손 콤플렉스’라는 용어가 사용된 적이 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삼손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기원전 11세기 초 이스라엘 왕정이 시작되기 전에 백성을 적들로부터 구출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영웅들을 사사(士師)라고 하는데, 삼손은 그 마지막 사사이다. 그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맨손으로 사자를 염소 새끼 찢듯이 찢고, 나귀의 턱뼈로 1000명의 적을 죽이는 등 그의 힘 앞에 블레셋 사람들이 꼼짝을 못했다.

그러나 미모의 블레셋 여인 델릴라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잠자고 있는 삼손의 머리카락을 잘라 그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게 만들어 그의 두 눈을 뽑아 버리고, 블레셋 가사로 끌고 가 두 줄의 놋 사슬에 매어 옥에서 연자매를 돌리는 체형을 가했다.

삼손은 다시 한 번 힘을 달라고 기도해서 이전의 힘을 회복하고 신전을 버티고 있는 두 기둥에 양손을 대어 있는 힘을 다해서 밀었다. 그리하여 그 거대한 신전이 무너져 비록 삼손 자신도 죽었지만 그가 생전에 죽였던 것보다 더 많은 블레셋 사람을 이 신전에서 죽였다. 이와 같이 “나 죽고 너 죽자” 하는 이상심리를 ‘삼손 콤플렉스’라고 한다.>>

이 삼손 콤플렉스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연상 작용으로 머리에 떠오른 사람이 있다. 김국도목사가 바로 그 이다. 삼손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나 죽고 너 죽자’ 그렇게 결행하였다. 그런데 과연 김국도 목사도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그렇게 행동하는 것일까? 안산총회, 임마누엘총회, 그리고 천안총회에 이르기 까지 세 차례나 감독회장에 오르는 것을 보면서 죄악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으로 보인다. 특히 오늘 재선거의 진행을 지켜보면서, 그의 지지자들이 서울남연회와 충청연회 투표 방해하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아니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한 일이라면 목숨까지도 내놓고 해야 하겠지만 교권수호를 위하여-진실로 일개인의 명예를 위하여-하는 일로 비쳐지기에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많은 교회 관계자들은 김국도 목사 측이 계속 물리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지지기반이 약화되고 고립되어 몰락을 자초하게 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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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감리교랑 (58.140.166.62)
2010-07-14 10:42:44
'단발마'라는 말이 있죠. 죽기전에 한번 힘을 다해 지르는 비명같은 거...일종의 최후의 발악이라고 할까요... 파멸을 향해 치닫는 그사람과 그의 충견들... 측은지심만 생깁니다.

주)단말마란 본래 불교말이다. 말마(末摩, 이때는 魔가 아님)는 범어 marman의 음역으로서 이 곳이 닿으면 즉사하는 급소(死穴,死節)라는 뜻이다. 옛 인도 의학에서는 사람의 전신에는 이 마르만이 10곳 있다고 하며, 이 곳을 자르면(斷) 격심한 고통을 일으키고 즉사한다고 했다. 이때의 비명이 바로 [단말마의 비명]인 것이다. 그래서 마르만(末摩)을 끊는(斷) 고통을 <단말마>라고 하며 격심한 신체적 고통, 임종 등을 표현하는 말로 쓰게 된 것이다. 이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또 <단말마의 비명>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숨이 끊어지도록 고통스러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의 임종이나 죽음과 직결된 처절함을 표현할 때 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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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119.205.116.50)
2010-07-15 11:36:35
죄송한데 한가지만 김성복 목사님께 질문있습니다.
현직에서 그만두신 전 감독님을 감독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아니면 목사라고 불러야 합니까?
어떤 분은 감독이라고 하고, 어떤분은 목사라고 하고 어떤것이 맞습니까?? 가능하면 교리와 장정의 부분을 통하여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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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119.205.116.50)
2010-07-15 11:34:03
이정도 상황이 되었으면 감리교회 모든 정회원 목사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어떠한 조직체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한쪽에 서게되는 경지에 오게되는 것 같은데.
우리 감리교회가 정치에 몰두하시는 몇몇 분들에게만 감리교회가 아닌데.
현 감독님들, 감리사님들 책임감을 느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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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감 (112.167.139.6)
2010-07-15 11:11:19
어느집에 개들이 띠처 나와 짖었다는 비유는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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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감리교랑 (211.106.111.75)
2010-07-14 17:33:29
걱정마슈--- 한번 죽을힘 써보지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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