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10주년

“세 가지 보물 프로젝트” 첫 번째, 공정여행-아름다운 순례 다녀와.

2010년, 올해는 개발원이 열 돌을 맞는 해이다. 이를 기념해 개발원은 ‘세 가지 보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세 가지 보물 프로젝트’란 “하늘나라는 마치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마 13:44)”는 성서의 뜻을 찾아나서는 여정이다. 첫 번째가 아름다운 순례, 공정여행, 두 번째 10주년 기념 책 발간(9월 발간 예정), 마지막으로 10주년 기념 예배(10월)가 그것이다.

지난 5월 17일부터 19일, 2박 3일 동안 첫 번째 보물 보따리를 지난 5월 지리산 자락에 풀어 놓았다. “공정여행, 아름다운 순례-지리산 둘레길”이라는 타이틀로 아이들 2명과 어른들 15명이 지리산의 넉넉한 품 안에서 그야말로 잘 먹고, 잘 쉬고 각자의 삶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보니 어느새 벌써 한 달 전의 일이 되어 있다. 그새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에 쫓겨 사느라 순례에서 느끼고 깨달았던 귀한 느낌들이 많이 퇴색된 듯 하지만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지리산 순례여행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다시금 순례의 깊은 감동과 기쁨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5월 17일. 순례 첫째 날. 지리산으로 간다.

열일 곱 명의 순례자들이 저마다 서울에서, 천안에서 길을 떠나 지리산으로 모였다. 날씨는 참 맑고 밝았다. 지리산. 5시간이 조금 못되어 도착한 약속장소에는 앞으로의 일정을 함께하고 안내해 줄 노재화 목사(산들교회)가 이미 와서 환한 미소로 우리들을 맞아주었다. 허기진 배를 구수한 뼈 해장국 한 그릇으로 든든히 채우고 낯익은 얼굴, 낯설은 얼굴들이 먼저 자신을 소개하는 것으로 우리들의 순례여정이 시작되었다.

제 영혼의 보호자시여/오늘 하루 길 가는 저를 인도하소서/해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 주소서
주님과, 주님의 땅과, 주님의 온 가족과/관계가 더욱 깊어지게 하소서
제 안에 주님의 사랑이 강건하여져서/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제가
주님의 평화의 임재가 되게 하소서. 아멘.(순례자의 기도_조이스 럽, 톰 페퍼)

매동마을 출발에 앞서 '순례자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

첫 오르막길. 예쁜 꽃과 들풀에 감동하시고....

자연스러운 산길에 감동해주시고... 

산은 참 좋다.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내어주면 딱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크고 깊게 자신의 모습을 선물로 안겨준다. 그래서 걷는 순례의 길은 회복의 길이다. 채움의 길이다.

논둑길도 따라 걷기도 하고

다랭이 논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기도 하고... 


매동마을에서 시작한 지리산 둘레길 걷기순례는 공동체와 함께, 때론 홀로 침묵 속에서 진행되었다.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더니 이내 빗방울을 떨군다. 짧은 순례의 첫째 날이 저물었다.

5월 18일. 순례 둘째 날. 하루 종일 비님이 오신다.

순례기간동안 우리 일행이 머물렀던 민박집은 감동 그 자체였다. 군불로 뜨끈하게 데워진 황토방은 노곤한 육체의 피로를 말끔히 씻겨주었고, 민박집 안주인의 정성으로 차려진 밥상은 여행길에 지친 순례자들의 입맛을 살려주는 귀한 성찬들이었다.

비로 인해 예정되었던 일정을 변경하여 오전에는 5·18을 기억하며 잠시 침묵기도를 드리고 다음 일정까지 개인 침묵의 시간으로 보냈으며, 오후에는 함양 양민학살기념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순례 둘째 날의 일정을 대신하였다. 덕분에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아 각자의 성찰나눔 시간을 갖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아, 가마솥 뚜껑에 구워먹은 흑돼지 삼겹살의 맛은 두고두고 기억날 잊지 못할 환상적인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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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저녁.
성찰나눔 시간으로 순례의 깊이는 더해가고...

너무 아름다웠던(?) 양민학살기념관 뒤뜰에서





5월 19일. 순례 마지막 날. 다시 시작이다.

어제 하루종일 비가 내리더니 새벽녘까지 하늘이 무겁다. 동이 틀 무렵, 가늘어진 빗발을 헤치고 댐 예정지 근처인 임천강을 따라 걷는 숲길 산책에 다들 동참하였다.

가벼운 강 길로 착각하고 따라나선 아침산책길이 땀을 비오듯 쏟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게 했던 고행(?)의 순간이었으나 생전 처음 산속에서 뱀을 만나는 경험도 하고 거친 강줄기에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듯 정신까지 맑아지는 축복의 순간이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이 댐건설로 사라지게 될 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안타까움이야 말로 다할 수 없고 까닭모를 죄책감까지 밀려왔다.

이제 짧은 순례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아쉬움보다 새롭게 펼쳐질 날들에 대한 기대로 또 다른 설레임으로 시작하는 하루다. 순례자들은 다시 짐을 꾸려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이번 순례의 마지막은 상림 숲(최치원이 인공적으로 만들었다는 너무나 자연적인 숲)에서의 “순례자를 위한 성찬식”이다. ‘온 배움터’에서 만든 유기농 빵과 지역에서 생산된 포도주가 순례객들의 성찬에 올려졌다. 숲 근처에 떨어져있던 나뭇가지와 꽃송이들, 이름모를 열매들로 꾸며진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성찬식이 순례객들의 마음을 하나로 엮어주었다.

이제 이 마음 그대로 각자 삶의 터전에서 새로운 기운으로 펼쳐보일 일이다. 개발원이 계획한 이번 ‘공정여행, 아름다운 순례’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그곳에서 꽃피울 것이다.

댐이 건설되면 인근지역과 함께 수몰위기에 놓인 임천강.

상림 숲 정자위에서의 성찬나눔.  조화순 목사님의 성찬으로의 초대사.

민박집을 떠나기 전.

글 이귀옥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연구원) 사진 한현실 남궁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