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小人)과 군자(君子)

     2006년 4월 9일 주일

     오늘 밤 나의 안전요원으로 봉사하기 위하여 오피스에 찾아온 청년은 쁘리얀따이다. 키가 140 센티미터 정도 밖에 안 되는 새카맣고 조그마한 이 청년은 24살인데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 이렇게 영어가 안 통하는 사람은 이곳에 와서 처음 봤다. 더운데 샤워 하고 숙직할 방에 가서 자라고 불을 켜 주고 수화를 한 후 내 방에 들어와 있는 데, 청년이 내 방 앞에 오더니 들어오고 싶어 하는 눈치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아 대화하는 것을 피하고 잠이나 일찍 잘 줄 알았는데, 내 방에 들어와서 의자에 앉더니 갈 생각은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 무엇이든지 시키면 하겠다는 모습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비스킷을 하나 뜯어 반씩 나눠 먹으며,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꾸 말을 걸면 불편해 할까봐 아무 말도 않고 서로 침묵만 지키고 있는 데, 비스킷을 다 먹고 나서도 가질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 내가 안 보내 줘서 못가나 하고, 밖으로 유인하여 거실에 나와 책을 보는 데 또 거실까지 따라와 내가 앉은 테이블 옆에 가만히 앉아있다. 샤워를 하지 않아 하루 종일 몸에 밴 고약한 땀 냄새가 나를 괴롭게 만드는 데도.

     하도 가질 않아 이 청년과 좀 놀아 주어야겠다 생각하고 노트북 컴퓨터를 가져다가 지난주일 교회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함께 보내 주다가 이젠 내 일이나 한다고 책을 보고 있는 데도 계속 자기 방으로 가지 않고 내 옆에 붙어 앉아 있다. 가끔 쳐다보면 서로 눈인사나 하며.

     이제 정말로 이 친구에게 신경을 그만 쓰고 내 할일이나 해야겠다고 컴퓨터로 이런 저런 작업을 하고 있는 데 가만히 앉아 있던 청년이 자기 방에 다녀오더니 뭔지 신문지에 싼 것을 땀과 때가 꼬질꼬질한 손으로 두개 꺼내어 하나 주면서 먹으라고 준다. ‘마쓰로티’라는 조그만 만두 빵이다. 아마 제 딴엔 목사한테 가는 데 뭘 가져가야 되지 않겠느냐는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다가 이 빵을 선물로 사왔나 보다. 그리고 이 빵을 주기 위하여 말은 못하고 계속 나의 눈치만 살피고 기다렸나보다. 하루 종일 일하고 씻지도 않은 더러운 손으로 집어서 주었더라도 성의가 고마워 감사표시를 하고 먹으며 계속 컴퓨터를 하였다. 내 위장에게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런데 쁘리얀따는 빵을 다 먹고도 가질 않고 내가 일하는 책상에 아예 팔을 걸치고 앉아 읽지도 못하는 한글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어느 듯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난 이 친구가 내 옆에서 일찍 나가 줬으면 하는 마음이 없어졌다. 내 옆에서 가만히 앉아 지켜보아 주고 있는 쁘리얀따가 어느 시점에서 부터인지 나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고 있음을 느꼈다. 우린 오래 전부터 사귀어 온 자별한 사이처럼 다정히 앉아 한 사람은 컴퓨터 작업을 하고 한 사람은 가만히 내가 하는 일을 물끄러미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지켜보고 있다. 서로 언어는 통하지 않더라도 마음으론 아주 가깝게 교감하며. 어느새 부담 없는 편한 사이가 되었다. 마치 부자지간처럼.

     쁘리얀따와 이렇게 잠시 함께 있으며 친교와 대인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친교와 원만한 인간관계에는 반드시 언어가 필요한 것만도 아니었다. 교양 있는 옷차림도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진실하기만 하면 통할 수 있었다. 깨끗하지 않은 신문에 돌돌 말아 와서 꼬질꼬질한 손으로 집어 준 빵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먹어 보는 빵이다. 맛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리고 청결하지 못한 점을 떠나 그의 진실 되고 정성된 마음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진실한 마음과 사랑은 언어를 초월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이 하게 만들었다. 진실하게 산다면 구태여 자신을 자랑할 많은 말이 필요 없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상대편이 마음을 읽어내기 때문이다.

     진실함은 사랑과 통한다. 진실하지 못하면 사랑도 할 수 없다. 예수님은 일상 속에서 늘 진실함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진실하게 살 것을 강조하셨다. 진실과 사랑을 한마디의 한자로 표현한다면 의(義)가 된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고 말씀하셨다. 산상수훈 맨 처음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마5:6-12) 하셨다. 예수께서 친히 하신 몇 편 안되는 설교 말씀 중에 의(義)를 여러 번 강조하셨다는 점은, 사람들에게 있어 의(義)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강조하는 하는 말씀이다. 

     공자 또한 논어 이인편(里仁篇)에서, “군자는 의(義)를 표준으로 이해하고, 소인은 이(利)를 표준으로 이해한다” 하였다. 군자는 의(義)를 위해 살고, 소인은 이(利)를 위해 산다는 말이다. 두 분의 가르침으로 미루어 볼 때, 신앙의 실천적 덕목은 의(진실)의 훈련이며 수행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이 기본이 되어 있지 않으면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하거나 목회를 하였어도 의(義)를 위하여 살지 못하고 이(利)를 위하여 산다. 이런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종교지도자란 거창한 칭호를 받았더라도 엄밀히 말하면 군자가 못되는 소인(배)들이다.  

     이런 소인(배)들은 간혹 탁월한 리더십으로 이(利)를 이루어 기업(교회)을 성장시키고 그로인해 많은 졸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利)를 대물림하기 위하여 각종 편법으로 자기 기업(교회)을 물려주기도 한다. 이는 소인(배)들이 걷는 정도(正道)이다. 이를 나무라거나 배 아파할 필요는 없다. 자기가 죽도록 고생하여 이룬 기업을 자기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바보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이들의 행위는 의(義)(=하늘나라)와는 관계없다는 점이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자는 순간의 삶이 아닌 영원한 삶을 선택하는 지혜를 갖게 된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정녕 한줄기 바람이요 가면의 허상일 뿐이다. 욕심이 과하면 불행을 초래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의 도를 모르고 끝끝내 불행히도 오직 돈과 명예와 권력에 집착하여 헤어나지 못하는 소인(배)의 모습은 가을바람의 희롱에 허우적거리는 허수아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성경은 이를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눅16:19-31)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뿌리얀따는 비록 영어도 모르고 가난하고 못생긴 어린 청년이지만, 결코 소인배가 아니었다. 그의 마음엔 그리스도의 도를 사모하는 진실과 사랑이 있었다. 영생을 바라보는 선한 안목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도로 수련되어 가는 그의 사랑의 힘은, 두려움을 물리치고 감히 언어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 목사와 교제를 시도했으며 결국 친밀한 관계를 이루어 냈다.  

     밤마다 무섭게 내리치는 소나기가 오늘밤도 함석지붕을 요란하게 두들기며 혼자 자는 이방인의 심장이 벌름거리도록 으름장을 놀 모양이다. 그러나 의로운 진실한 청년이 내 옆에 밤새도록 지키고 하나님이 함께 하실 터이니 캄캄한 깊은 밤의 천둥번개와 폭우도 두려울 것이 없다. 잠시 동안이지만 쁘리얀따와 정이 들어 사진 한 장을 찍고 싶다고 수화를 하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옆으로 설래설래 흔든다. 이 제스처는 싫다는 표현이 아니고 오케이라는 스리랑카 식 표현이다.

     그래, 한 장 찍자!

     받침대를 받쳐 놓고, 자동으로!! 찰칵!

                                                             자료제공 : 아시아미션(http://amccm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