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광주사태’로 불렸다. 이 말은 불순분자들에 의해 벌어진 내란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부터인가 ‘광주사태’는 ‘민주화운동’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불순내란음모세력은 민주화운동 투사로 위상이 정정되었고 그동안 빨갱이 가족으로 숨죽이며 살아왔던 가족들은 늦었지만 명예회복의 기쁨을 누렸다.

그로부터 어언 30년이 흘렀다. 30년은 한 세대가 바뀐 시간을 의미한다. 젊은이들은 광주민중항쟁을 듣지 못하고 더 이상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을 올리지도 않는다. 단지 1980년대 어느 5월에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들었을 뿐이다. 1980년 5월은 새로운 세대는 물론 그 날을 경험했고 함께 울부짖었던 이들에게도 빛바랜 기억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성찬을 나누었고 이종희 선생의 진행으로 몸기도를 드렸다. 몸기도는 청색 천을 잡은 참가자들이 일렬로 묘역을 걸으며 추모의 마음을 담은 조약돌과 종이학 등을 묘비에 바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모두가 다 진지한 표정이었다. 두 시간 반 동안 진행된 예배가 끝나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기에 바빴다. 우리교회도 어른 열한 명과 어린이 두 명이 참가하였는데 전시관을 잠시 둘러본 후 광주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온 시각이 새벽 한 시였다. 결코 쉬운 예배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한 자리에 모여 마음을 나누며 예배를 하였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우리교회 참가가 중 한 분은 80학번으로 광주에 대한 감회가 새롭다고 하였다. 광주항쟁이 발발하자 친구가 광주로 내려가자고 하였는데 머뭇거리다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고 한다. 결국 자신은 서울에 남았고 그 친구는 그 이후로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분은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게 되었고 그날로 시간이 정지하였다고 한다. 영화에서나 들을만한 이야기이지만 당사자인 그분에게는 절실한 이야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청년은 광주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어 책을 좀 사서 봐야겠다고 했다. 이날의 예배와 광주민중항쟁은 60년대와 80년대가 공감하는 지점이 되었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과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모여서 예배 한 번 드렸다고 해서 새출발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8-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 5.18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세미나도 하고 학습도 하면서 80년 5월 18일 이후 광주에서 벌어진 ‘화려한 휴가’ 진압작전과 광주시민들의 저항을 외웠었다. 이제는 아니다. 내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새로운 세대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무엇이 새출발이고 과연 오늘 5.18의 의미는 무엇일까? 소위 386세대(이제는 586세대 혹은 486세대로 업그레이드 되었다)에게조차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는 숫자의 나열이 된 것 같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다.

그러나 오늘이라는 시점이 새출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는 다르지만 여전한, 아니 더욱 용의주도한 반민주주의의 도발이 한국사회에 횡행하고 있다. 국민의 권리는 빨갱이의 선동으로 간주되어 물대포로 진압되고 독재시대의 우민화 정책은 경쟁과 성공의 신화로 진화하였다. 민주주의의 원칙들은 이미지정치에 떠밀렸고 좋은 시절을 살던 시민단체들은 뒤늦은 후회와 각오를 시작했다. 공수부대의 총탄과 최루탄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때와 별반 나아진 것도 없다. 배는 부르지만 인간답게 되지는 못한 것 같다. 오히려 더 철저히 성공과 물질, 자본과 권력에 놀아나고 있다고나 할까.

이번 주일에는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설교를 오랜만에 해야겠다. 역사를 잊으면 그 역사를 반복한다는, 며칠 전에 들은 말이 많이 마음에 남는다. 민주주의 자체가 하나님 나라일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 나라 근처에는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끔직하면서도 부인할 수 없는 명제를 기억하며 이 시대 광주민중항쟁의 정신과 투쟁을 계승해야 할 기독인의 과제를 되새겨보면 좋겠다.

[참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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