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는 죄인 중에 자기가 괴수라고 고백하였습니다(딤전 1:15). 바울 사도의 글을 읽으면 그가 매우 논리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에 대한 진술도 논리적입니다. 초자연적인 내용이 있지만 비논리적이지는 않습니다. 이 고백은 문맥에 따르면 과거형이어야 적절하다고 생각되는데, 현재형입니다. 논리적이어서 과거형을 써야 할 때와 현재형을 써야 할 때를 충분히 구분할 수 있는 그가 현재형으로 글을 적었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일반적인 이해는 의인이면서 죄인이고 죄인이면서 의인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거듭나고 회개하여 믿으면 죄에 대한 용서를 받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가 용서받습니다. 의인이 되었습니다. 의인입니다. 그가 생활 중에 죄를 지으면 여전히 의인일까요? 아니면 죄인일까요? 의인이 아니라 죄인입니다. 비록 십자가에서 그 죄가 이미 용서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범죄한 그 상태에서는 죄인입니다. 그는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의인이면 의인이고 죄인이면 죄인입니다. 죄를 범하면 죄인이고 용서를 받았으면 의인입니다. 의인이면서 죄인, 죄인이면서 의인이란 없습니다.

다른 관점도 있습니다. 그는 로마서에서 복음 전파를 위하여 서바나로 갈 마음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롬 15:23). 서바나는 오늘날의 스페인 지역을 가리킵니다. 로마에 가서 로마교회를 복음으로 굳건하게 세우는 사역을 하고 난 후에 서바나로 가겠다고 하였습니다(롬 15:28). 여기에는 확증되지는 않았지만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리라는 암시가 없습니다. 로마서를 쓸 당시에 다른 지역을 방문하던 것과 같이 자유로이 가서 사역을 하려고 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로마서를 쓸 때와는 달리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갔다고 유대인들에게 붙잡혔고 로마 황제가 주관하는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호송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찾아오는 이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지만 로마서에서 의도하였던 바와는 차이가 많습니다. 그리고 서바나에는 가지도 못하였습니다. 비록 그가 서바나에 갔다는 전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전설일 뿐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바울 사도의 진술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바울 사도를 통하여 서바나까지 복음을 전할 뜻을 가지고 계셨다고 보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에 갔다고 유대인들에게 붙잡혀서 미결수의 신분이지만 결박되어 로마에 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령 하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고 그에게 알렸습니다. 선지자를 통하여 주어진 계시는 단순히 그런 일이 있으리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런 일이 있더라도 가라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기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바나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한 너무나도 절실하고 강한 열망으로 인해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만류하는 형제들을 책망하면서 그곳으로 갔습니다. 미결수로 호송되어 로마에 가게 되었습니다. 동족의 구원에 어떤 유익도 주지 못하고 서바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지도 못하였습니다. 동족 구원에 대한 열정이 하나님보다도 더 강하여 하나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예루살렘으로 갔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죄인 중에 내가 괴수이다”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동족 구원을 위한 열정이 선하였지만 하나님보다도 더 앞서 나감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하고 엉뚱한 결과가 생겨났던 것입니다.

저는 대학생 때에 가족 중에서 저만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공과대학 산업공학과였는데 그 당시는 취업이 가장 잘되던 학과였습니다. 3학년 후반기에 목회에 대한 부르심을 느끼고 갈등과 번민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정 경제가 힘들었는데, 부모님들은 졸업과 취직만을 학수고대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저를”이라는 생각으로 방황하였습니다. 그 기간에 아주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이 당구장이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의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신학대학원을 입학했습니다. 성경에 대한 바르고 깊은 이해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바른 목회에 가장 중요한 것이 성경에 대한 바르고 깊은 이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그를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지속적으로 채워주셨습니다. 교수님들과 학우들 그리고 그에 관한 좋은 책들. 몇 교회에서 전도사 사역을 하면서 말씀으로 학생들을 세워가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에도 당구는 여전히 제 생활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신대원생들이 당구를 치지 않고 탁구를 쳤기에 저는 제가 사는 곳의 당구장에서 동네 사람들과 당구를 쳤습니다. 돈을 걸고 하는 내기 당구를 즐겼습니다. 세 개의 공으로 게임을 하는 쓰리 쿠션이 있는데, 성공할 때마다 정해진 액수의 돈을 받는 방식입니다.

경남 밀양의 미자립 교회에서 사역을 하게 되면서 당구와는 인연을 끊었습니다. 울산에서 부교역자로 사역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에는 인터넷 바둑에 깊이 빠졌다가 특별한 경험을 하고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공부를 목적으로 사역을 쉬면서 김포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개척 사역을 하기로 하고 부교역자로 있었던 울산의 교회의 후원을 받아 인천에서 개척을 하였습니다. 아내와 자녀들만으로 시작된 사역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발마사지도 배워 시도했습니다. 나눔과기쁨의 나누미가 되어 그 지역의 차상위계층을 경제적으로 도우며 복음을 전파하고자 했습니다. 전도의 열매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기간을 지내면서 당구를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사람들과 친해지고 복음을 전하겠다고 마음을 가지고서 당구장을 출입하였습니다. 점점 당구 치는 재미가 커져갔습니다. 한 달에 한번에서, 격주에 한번, 한주에 한번에서 한주에 두 번으로 회수가 점점 늘어갔습니다.

당구가 취미 생활로서 절제 가운데 즐기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당구가 탁구 또는 테니스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아내는 목사가 당구를 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입장입니다. “기도와 말씀 연구 그리고 전도에 전념해도 모자랄 판에 당구를 치다니.” 그로 인해 자주 말다툼을 하였습니다.

이전의 습관이 살아났습니다. 돈내기 당구도 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사역자로서 정말 잘못된 모습이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마음으로 그만두리라는 결심을 하고서는 또 다시 당구장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돈내기 당구에 대해서는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부천으로 예배당을 옮기고 정말 열심히 사역에만 전념하기로 했는데,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결국 사역을 접게 되었습니다. 안성의 노인요양시설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곳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다가 나중에는 가족들이 이사를 하였습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하여야 하기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하여야 하는 것을 수긍하면서도 부르심과는 무관한 생활이라는 사실로 인해 너무 힘들었습니다. 요양보호사 생활이 육체적으로는 힘들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당구는 제게 하나의 탈출구였습니다. 저의 형편을 앞세워 아내에게 이렇게 일을 하는 기간 동안은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둘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월급에서 월 10만원을 저의 용돈으로 사용하기로 하고서는 본격적으로 당구를 쳤습니다. 밤새워 쳤습니다. 근 10개월 동안을 상황만 되면 당구장을 출입하였습니다.

내기 당구를 치게 되었는데, 저보다 잘 치는 이들과 계속해서 치다보니 돈이 모자랐습니다. 카드로 대출을 받아서 돈을 충당하면서 쳤습니다.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하여 계속 쳤습니다. 그렇게 10개월을 지내니 대출받은 돈이 사백만원이 되었습니다. 돈을 걸고 하는 놀이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경우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내려오기 전에는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고 했지만 내려오게 되자 제게 주어진 은사를 사용하여 사역하면서 생활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이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던 부분을 정리하고 출판하고자 했습니다. 출판이 되기만 하면 대출금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몇 곳에 출판을 의뢰했습니다. 그렇지만 출판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 중에 현재 지체로서 생활하고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부터 병원목사로서의 사역을 요청받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파송하는 것으로 하고 급여도 교회에서 지급하는 방식이라고 하십니다. 일반 개교회의 목회가 힘든 저의 상황에서 너무나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서는 기도하고 답변을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니 너무 좋아합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신경이 날카로워 있던 차라 더욱 그랬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에 급여를 들으니 월 60만원이라고 하십니다. 들을 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생활을 어떻게 하라고? 급여가 개인의 가치에 대한 평가이기도 한데 나의 가치가 그렇게 밖에 안되는가?” 아내와 함께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런지 고민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에 기뻐하였던 것을 따라 받아들이고 사역을 열심히 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환우들을 심방하여 위로하고 위하여 기도하기, 비신자인 경우에는 상황에 맞추어 복음을 나누기, 직원들을 만나고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으로 일하도록 격려하기, 비신자인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 복음을 나누기. 이를 위하여 병원의 정신과 연관하여 전도지를 만들었습니다. 직원들 점심 식사 시간에 맞추어 전도지를 나누며 인사하였습니다. 그리고 환우들을 방문하고 위로하며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과연 지금 상태로 기도한다고 하나님께서 들으실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일 예배 때의 설교가 메아리칩니다. “야웨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야웨의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다. 오직 너희 죄악과 죄 때문이다.”

고향으로 내려와서 지난 삶에 대해 자백하고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서에는 병이 들어 어려운 상황에서 장로들을 청하여 죄를 고백하고 치유의 기도 받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의 가족들은 딸을 제외하고는 가려움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아들은 특히 심하여서 안쓰러워 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기도해도 소용이 없고 병원의 처방을 따라 치료를 해도 낫지를 않습니다. 이 모두가 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생각하였던 책 출판의 길이 열리지 않음도 하나님께서 막으셨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말하여야 한다는 마음의 압박이 강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족의 생계에 대한 자신의 역할 문제로 고민하고 분주하게 길을 찾고 있는 아내입니다. 어떤 반응을 할 지 눈에 선하니 입을 열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렇지만 어떤 말을 듣든지 간에 말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내에게 말한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내의 입을 통하여 나오는 말이 제가 받아야 할 심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는 너무 황당해 합니다. 그리고 할 말을 합니다. 마땅히 들어야 할 말입니다. 그렇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수위가 많이 낮아 그나마 견디기가 들 힘들었습니다. 이제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시라고 말합니다. 아내의 성격에 되돌아서서 나름대로 끙끙 앓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하기만 합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에 대한 제 이해가 옳다면 그는 자신의 허물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대들에게 계속적으로 확인을 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동족 구원의 강한 열정으로 그러한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그것을 위하여서는 자신이 구원에서 끊어지더라도 할 바를 하겠다(롬 9:3)는 자세에서 나온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에 대해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저는 얼마나 초라하고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기 위하여 그렇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머리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알고 그것을 손으로 잘 표현하였지만 발은 그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제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죄인 중에 괴수라면 저는 더 괴수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백은 죄로 인한 영혼의 짓눌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은혜의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학교를 하면 참석자 중에서 외도를 하던 이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마음으로 다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그것을 글로 적어 그 모임에서 자백하고 어떤 이는 마음의 다짐으로 끝냅니다. 그런데 아버지 학교 이후의 삶에서 양자는 많은 경우에 다른 모습을 나타냅니다. 전자는 실제로 외도를 끝내지만 후자는 지속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문제에 해당하는 내용을 이렇게 올리는 이유는 은혜의 방편을 온전히 누리며 성령 하나님께 의지하는 가운데 다시는 그 길을 가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내적으로 여러 번 다짐하였지만 넘어지고 넘어졌던 지난날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공개적으로 잘못을 말하고 다시는 그 길로 걸어가지 않겠다는 고백을 하나님께서 제게 요구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자들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고 저는 그 몸의 한 지체입니다. 저의 잘못된 삶은 한 몸을 해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에 저의 잘못은 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살고자 하는 모든 지체들에게 잘못을 행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제까지 글로 바르게 살아야 함을 그토록 강조하였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저를 너그럽게 용납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긴 글을 읽는 불편을 끼쳐 죄송하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