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입적으로 그분이 이 땅에 사시면서 남긴 무소유가 세간에 지대한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사찰의 주지가 되면 돈과 연결되기에 평생에 주지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1976년에 펴낸 책 ‘무소유’를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며 사셨다고 보입니다.

자신이 죽고 난 후에는 자신의 책이 절대로 재판하는 일이 없도록 선언하였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그의 저서 20여권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날개 돛힌 듯이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분이 천명한 무소유의 선언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분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이 시대에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성경은 신자에게 무소유를 요구하고 있는가? 성경에서 제시하는 신자의 물질관은 어떤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살피기 위해서는 성경의 어느 한 단면만을 보지 않고 전체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먼저 무소유의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소유는 환경적으로 무엇인가를 소유할 여력이 없어서 무엇을 가지지 못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가난하여 가질 여력이 없이 소유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충분이 여력이 있지만 의도적으로 물질을 소유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전에 ‘톨스토이가 가르친 성경이야기’라는 책으로 함께 공부할 때였습니다. 한 집사님이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언급하며 나름의 고민을 내어놓았습니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마 10:9-10).

무소유 요구라고 여겨지는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의 생활을 돌아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그분과 같이 복음서에 기록된 이러한 내용의 말씀을 접하면서 양심에 가책을 받습니다. 말씀을 따라 말씀대로 살려는 마음으로 인해 생겨나는 현상이라는 면에서는 긍정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런 내용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삭개오는 무소유를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재산이 어느 정도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절반을 내어놓겠다고 했습니다.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에게 남는 절반의 재산도 많아집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불의하게 이익을 취한 것이 있으면 사배를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그 고백을 기쁘게 받으셨고 그 집에 구원이 임하였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왜 무소유가 아니냐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 대접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 역시 무소유가 아니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장소였던 마가의 다락방을 생각할 때에 역시 무소유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무소유가 아닌 것에 대해 예수님은 단 한번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소유를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소유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특별한 경우에 특별하게 요구된 것입니다. 한 곳에 정착하여 살지 않고 예수님과 같이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이 부여된 이들에게 특별하게 요구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예루살렘의 교회의 놀라운 모습이 나타납니다. 신자들이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누구 하나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땅과 집을 소유한 이들이 그 재산을 팔아서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그들 가운데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삶의 모습의 대표적 인물로 바나바가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밖으로는 그것을 따르면서 안으로는 아까워하는 마음으로 얼마를 따로 떼어놓고서는 전부를 내어놓는 것처럼 하다가 죽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땅에 팔리기 전에도 그들의 것이고 팔린 뒤에도 그들의 것이라고 합니다. 곧 반드시 팔아서 내어놓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유무상통은 무소유를 실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희년의 성취이고 그분 안에서 성도들이 평균케 하는 원리를 실현한 것입니다. 과거에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로 생활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가족이 하루 동안 먹을 수 있는 양만큼 소유하여 생활하였습니다. 빈부귀천에 따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율법의 희년도 그 의미가 같았습니다. 49년 째는 안식년이어서 경작을 쉬어야 합니다. 50년 째는 희년이어서 경작을 쉽니다. 2년 동안 그 이전에 주어진 것과 경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얻게 되는 것으로 생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51년 째에는 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 새롭게 출발하게 됩니다. 이 시점이 되면 경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있는 물질을 사용하였기에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균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땅은 더 이상 꼭 지켜야 할 하나님의 유업이 아닌 것이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기업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는 율법을 따라 땅을 지켜야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땅을 유업으로 알고 그것을 지켜야 했던 과거와는 달리 땅을 팝니다. 먹기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팔 수 없었고 팔지 않았던 땅을 기꺼이 파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서로 필요에 따라 물질을 공유하며 평균케 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예루살렘 교회가 물질적으로 아주 힘들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소아시아와 유럽의 교회에게 편지합니다. 평균케 하는 원리를 실천하기 위한 물질 사용을 요청합니다. 물질을 씨와 먹을 것으로 나누고서는 먹을 것 이상의 물질은 의의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물질로서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으로 신자들이 각자 자신의 생활에 대한 필요를 채우도록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는 지체들을 위하여 먹을 것 이상의 물질을 내어놓고 나누어서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먹을 것으로 평균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자에게 무소유를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평균케 하는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자는 법정 스님과 같이 무소유를 추구하여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같이 평균케 하는 원리를 실천하여야 합니다. 개교회 내에서, 다른 교회와의 관계에서 평균케 하는 원리를 실천하여야 합니다.

물론 공산주의와는 다릅니다. 조직과 체계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자율입니다. 먹을 것 이상의 물질은 그것을 소유한 당사자의 것입니다. 그것을 평균케 하는 원리를 실천하기 위해 내어놓는다고 하더라도 내어놓기 이전까지는 역시나 그 당사자의 것입니다. 누구도 강제로 그것을 내어놓도록 요구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 당사자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자신과의 관계에서 결정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율로 인해 오늘날의 교회에서 평균케 하는 원리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된 이후로 과거의 한 전설이 되었을 뿐입니다. 교회가 결코 추구할 수 없는 허공의 원리라고 생각하고 재현할 생각조차 가지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를 말하면 많이 가진 이들은 자신의 것을 빼앗으려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경계의 몸짓을 합니다. 그러니 아예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십분의 일을 헌금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신앙적 모습을 갖춘 것으로 생각하는 상황입니다. 안타깝기 그지 없는 현실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소유를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평균케 하는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신자가 그 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삶에서 실천한다면 하나님 나라와 그 의는 이 땅에서 더욱 강력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하루 세끼 먹는 것은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여야 합니다. 아무리 풍성한 문화생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삶을 부요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여야 합니다.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최빈국이라는 사실이 그 반증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주어지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하나님 그분만으로 자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분에게서 주어지는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삶보다 그분과 함께 생활하는 그것으로 만족하며 생을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 그분만으로 자족하며 그분으로부터 주어지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평균케 하는 원리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교회와 신자의 삶의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가난하고 어리석은 모습일 것 같으나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더욱 강력하게 드러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 능력이 오늘날 우리 안에서 강력하게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