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대륙 횡단기를 시작하며  

그러던 중 올초 당당뉴스의 편집국장으로 취임한 동기 심자득 목사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글을 써 기고하라는 요구를 수차례 받았다. 하지만 작년 11월 1일 귀국해 이번 주일이면 꽉 채운 4개월이 되는 시점에서 내가 쓸 수 있는 글의 한계는 명확하다. 지금 내가 몸담아야 할 현장의 현실이 복마전처럼 얽혀있는 상황에서 아직까지는 제3자 또는 관찰자의 시점에 머물러있을 수밖에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그리 많을 리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미국이라는 타국에서 경험한 과거의 일들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다행히 내게는 평범한(?) 유학생활후기나 이민체험담 외에 귀국 전 1개월에 걸쳐 두 돌이 되기 직전인 막둥이를 포함해 세 아이를 이끌고 미국 대륙을 횡단했던 여행의 추억이 있다. 그래서 동기사랑이 나라사랑이라는 마음 하나로 이를 여러 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다만 계속해서 걱정되는 것은 감리교 사태의 해결방안이 요원해 보이는 지금 나의 미대륙 횡단기가 시의적절한가 하는 의문이다. 해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연재를 하려 했으나 앞서 밝혔듯 동기 심 목사의 거듭되는 요구를 계속해서 거절하기 힘들고 예상외로 감리교 사태의 해결이 지연됨에 따라 연재를 미룰수록 기억의 신선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생겨 미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글의 연재를 시작하려 한다.  

* 여행의 개요  

먼저 여행의 일정 및 준비사항을 대략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 달 남짓한 기간 중 로스엔젤스에서 머문 1주일을 제외하면 실제 여행에 소요되는 시간은 25일 정도였다. 일정은 워싱턴과 뉴욕, 보스톤, 메인 지역 등 동부를 종단하는데 10일, 캔사스와 콜로라도를 거쳐 옐로우스톤까지 이동한 후 남하해 라스베가스까지 7일, 그리고 그랜드캐년과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주에 산재해있는 국립공원들을 7~8일에 걸쳐 방문하기로 했다. 물론 일별 계획을 따로 정했지만 워싱턴에서 3박4일 머문 이후의 일정이 계속 어긋났기 때문에 여기서 구태여 이를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연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느 곳을 거쳐 어떻게 이동했는가를 소개하려 한다.  

▲ 애틀랜타에서 LA까지 7000마일을 달리는 동안 별 문제가 없었던 시에나를 배경으로 온가족이 포즈를 취했다. 이 사진은 보스톤 지역에서 목회하는 장재웅 목사가 찍어준 것이다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여행비용은 10여일 정도 동기 및 선배 등 동문들의 집에서 머물기로 약속이 돼있는 점을 감안해 적당한 수준으로 정했다. 일단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모텔비는 평균 60달러 이하에서 해결하기로 했고 점심과 저녁 식사비용을 각각 40달러씩 80달러 정도 지출하기로 했다. 연료비 역시 일정이나 지역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평균 300마일 정도를 이동하는 것으로 계산해 40달러로 잡았다. 이외에 자동차 수리 등 예상치 못한 지출이 있을 것을 감안해 매일 20달러 정도의 여윳돈을 비축하기로 해 매일 200달러씩 30일 동안 총 6,000달러를 사용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이 부분 역시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많이 생겼지만 그에 대해 적절히 대처함으로서 나중에 LA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여행 중 사용한 경비는 5,800달러 정도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연재를 진행하며 구체적인 내용들이 언급될 것이다.  

* 첫날(애틀랜타-노스캐롤라이나) 

출발은 애틀랜타. 9월 29일 처제네 식구들과 늦은 점심을 먹고 노스캐롤라이나주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아침에 떠나 노스캐롤라이나의 하이포인트에서 목회하는 김덕신(82학번) 선배를 만나 점심을 먹고 버지니아까지 가 숙소를 잡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애틀랜타 출발이 늦어지는 바람에 날이 저문 뒤에야 노스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전에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해 새집을 찾느라 조금 시간이 더 걸려 8시가 넘어 덕신 선배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늦게까지 우리를 기다리던 형수님이 차려준 저녁을 먹으며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1985년 봄에 처음 만났던 덕신 선배는 감신에 입학한 후 얼떨결에 들어간 학보사의 편집국장이었는데,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천방지축 신입생에게 언론에 대한 호기심과 그 중요성을 일깨워줬던 은인이었다. 졸업 후 거의 연락이 없이 지내다 몇 년 전 하이포인트로 오면서 연락이 돼 이후 가끔 소식을 주고 받고 얼굴을 보던 사이였기 때문에 미국을 떠나는 길에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선배였다.  

플로리다, 조지아, 알라바마, 테네시, 사우스 & 노스 캐롤라이나 등 소위 동남부지방이라 불리는 6개주에 살고 있는 동문들은 지방회 등 각종 모임을 통해 얼굴을 볼 수 있어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가까이 지내는 편이었다. 물론 서로 사는 곳들이 멀어 1년에 한두 번 만나기가 쉽지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 중 꽤 많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지만 막상 애틀랜타를 떠나면서 따로 연락을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미국을 떠나는 이유와 한국에 들어가 어떻게 살거냐는 틀에 박힌 문답이 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자리잡고 살고 있는 그들에게 아무 대책없이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무작정 귀국길에 오른 내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지는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덕신 선배는 이민목회과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터라 동병상련의 아픔같은 것이 있어 전화만 하고 떠나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였나. 오늘밤이 지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하는 애틋한 마음까지 더해져 장시간 운전으로 인해 피곤했음에도 밤늦도록 감신에서의 추억과 앞으로 살아갈 일들에 대한 걱정 및 격려들을 주고받았다.  

▲ 애틀랜타를 떠나기 전 처제네 식구들과 식사를 한 후 세 아이와 조카 수민, 수진이가 함께 한 모습. 생애 첫 이별을 경험한 큰 딸은 이날 이모와 헤어지는 것이 서러워 이 사진을 찍은 후 많이 울었다. 10년 동안 동거동락했던 막내동생과 헤어지는 아내 역시 평소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많이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