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교리의 폐해

먼저 우리의 삶을 방해하는 잘못된 지식과 가치관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러한 가치관들이 우리의 바탕 믿음체계를 형성하여 우리의 언행심사를 지배하고 그에 따른 삶을 만들어 내고 있다.

a) 심판자 또는 감시관 같은 하나님

우리가 불가피하게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도 그에 영향을 받게 된다. 아이들이 부모와 어떤 관계를 갖느냐가 그들의 삶에서 중요한 요인이 되듯 말이다. 우리가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하나님을 심판자나 감시관 같은 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널려 있다. 이 생각은 외적인 행동들을 내적인 행동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을 만들어내게 된다. 외적인 행동은 의식에 참여한다든지, 단식과 자선과 육체적 보속행위와 같은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제도나 형식, 의례 같은 것들에 의해 우리의 가치를 평가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외형적으로 감시관의 눈에 나지 않을 행동들을 선택하게 한다.

또한 보상심리를 만들어 낸다. 나 자신이 모든 선행을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 갚아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경기장의 관중석에 하나님이 앉아서 관람하시는 동안에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혹은 하나님의 총애를 받아 내기 위해 하나님을 회유하려는 싸움을 벌이는 것과 같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잘하면 하나님은 엄지손가락을 쳐드시고 우리가 잘못하면 엄지손가락을 내리시는 분이된다.

어떤 말씀이해 때문일까? 하나님은 ‘저기 멀리’ 계시면서 이 천체를 기계적으로 관리하신다는 잘못된 말씀이해에서 비롯된 결과들을 보여 준다. 우리는 하나님과 완전히 결별되어 있어서 이 지구상에서 고통을 받으며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반면에, 하나님은 저 멀리 천국에서 우리를 감시하시고 심판하신다는 신념이다. 하나님을 이렇게 알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지기가 어렵다.

이 같은 말씀이해의 부정적 측면은 사람으로 눈가림 작전을 하게 만든다. 진실한 마음으로가 아니라 자신의 어떤 바램의 성취를 위하여 율법주의적 태도를 형성하게 된다. 의무적, 가식적, 위선적, 아첨적, 타협적, 굴복적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언행심사를 생성하게 된다.

b) 지나친 내세 지향.

신앙의 목적에 관한 문제이다. 하나님은 육체의 삶을 통해 영혼을 완성하기를 원하시는데, 다시 말해 육체를 가진 이 세상에서의 삶을 통해 영적인 속성을 완성하여야 하는데, 사람들은 대개 오직 사후에 천국 가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시험을 보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시험문제를 넉넉하게 풀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시험은 그 사람의 실력을 평가해 주는 방편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삶도 시험문제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내세 중심신앙은 지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 대신에 종교생활을 통해 하늘나라에 가는 것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게 하였다. 이러한 관심은 하나님으로부터 저 세상에서 상을 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쌓는 노력으로 나타나곤 한다. 주일 예배에 충실하게 나가고 금요일에는 절대로 고기를 먹지 않으며 주일마다 헌금을 넉넉하게 낸다. 마침내는 내세에서 그의 모범적인 신앙에 대하여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지옥을 피하고 연옥의 기간을 줄이려고 하나님과 흥정을 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종교생활에 전심하는 그 밑바닥은 하나님이 저주하시어 지옥으로 보내실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하나님을 회유하려고 하는 것일 것이다. “만일 내가 매주 예배에 꼭 참석하고 내 죄를 고백하면, 이러한 태도를 갖게 한 그 가치관 자체는 결코 바꾸지 않더라도 만사가 잘 될 거야”하는 것이다.

지나친 내세 지향성은 다분히 목회자에 의해서 요구되어지는 교회 존립이나, 교회부흥이나 종교체제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교회는 이것들을 위하여 성도들에게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진짜 목적은 종교체제 유지이면서도 내세우는 명목은 천국 확보인다.

그래서 성도들은 교회에서 요구하는 갖가지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은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소원과 자신의 영혼의 완성이 아니라 사후에 천국에 가는 자격을 얻을 심사로 행하는 종교 활동을 만들어내게 된다. 교회활동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런 활동들은 자신의 영혼을 온전히 경작해 가는 방편과정이다. 아무리 교회에서 요구하는 활동들을 열심히 하였다 해도 영혼이 온전해지고 아버지의 형상으로 완성되어지지 않으면 결국 그런 활동은 별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어떤 말씀이해 때문일까? 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하나님과 이웃을 똑같이 무조건 사랑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영혼이 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반 사람들로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에게 보여 주어야 하는 일차적인 의무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미래의 보상에 대한 강조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 정의의 의무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들에게 믿음은 천국 가는 방법으로밖에 인식되지 못한다. “믿음 = 내세천국”이란 공식이 “믿음=삶”이란 복음의 능력을 지나치게 축소화시켜 버린 결과이다.

현실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영적 성숙이나 실력이 검증되는 것이다. 후에 살필 것이지만 인간경작 진리에서 말하는 것처럼 현실의 삶에서 자신의 영적인 생명이 확증되어야 한다. 현실의 삶은 자신 속에 내재되어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인격화시키는 영혼의 수업이다. 육체의 삶에서 검증되지 않은 영적 속성들은 유효할 수 없다.

마치 삶은 잘 익은 사과와 같다. 사과를 살 때 사과의 표면 상태를 관찰한다. 단단하고, 크기도 적당하며 색깔이 좋은 사과가 잘 익어 맛있는 사과이다. 잘 익어서 맛이 좋은 사과는 꼭 먹어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잘 익은 사과는 자동적으로 그런 특징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같이 우리의 삶은 영혼의 표현이다. 영혼이 잘 된 사람의 삶은 아름다운 예술 같다. 때문에 삶을 보면 그 사람의 영혼의 성숙을 알 수 있다.

c) 존재의 무용(無用)감

신앙과 삶의 주체로서 자아상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다. 자신에 대한 가치인식이 올바로 되어있지 않으면 그는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에 대한 인식의 어떠함은 중요한 바탕 믿음체계를 이루어 자신의 삶의 목적, 사고방식, 대인관계, 삶의 모든 문제를 처리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주일날 교회에 나가는 것은 천국 가는 티켓을 상실하지 않을 정도의 의무를 행하는 것이요, 신앙행위에 열심을 내는 것도 모두 자신의 욕심과 영달의 성취를 위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한 방편이기 쉬운 경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신뢰와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여 한 몫 잡으려는 무의식적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 하나님의 도구라는 무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지당한 행동이라 할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기존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하나님을 믿을 때에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치있는 존재가 된다고 가르친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이나 하나님의 자비를 입어 드디어 하나님께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고 가르친다. 이렇게 가치 없는 존재를 구원시켜 놓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요구하는 하나님, 그것을 잘하면 상을 주시지만 못하면 벌주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 앞에서 누가 자신의 가치를 귀하게 느끼겠는가?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 일해서 구원받으면 다행이지만, 자신의 행동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혹시나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존재로 산다면 그 사람이 과연 온전한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자신의 운명이 자신의 결정에 달린 것이 아니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자기 책임을 하지 못하고 또한 한다고 해도 자기 행위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이 사람은 잘 인식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무의식속에는 “하나님이 나를 이용해 먹는데, 나도 적당하게 그 분의 비위를 맞추어 주고 한 몫 잡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있을지 모른다.

어떤 말씀이해 때문일까? 절대예정 및 주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므로 인간의 무용(無用)감을 갖게 하여, 시대적 허무주의가 난무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설명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도구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무의식적 소극성을 만들어 왔다.

인간의 타락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작업이며, 구원받을 사람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을 미리 영세 전부터 정해 놓으셨다고 하는 설명,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절대주권을 행사하여 그 자신이 하나님 됨에 대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고 설명한다.15) 인간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설명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지게 할 수 없다.

d) 거대한 규모의 죄와의 타협16)

신앙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두 개의 분명한 구원관이 있다. 따라서 종종 한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신앙 고백자들이 있다.

한편은 복음을 죄로부터의 구원이라고 간주한다. 그들은 천국의 소망이나 이 땅의 소망보다 이것을 더 크게 생각하고 더 높게 친다. 그들에게 있어 최대의 사실은 죄로부터 구원받는다는 사상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매력이요 영광인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지옥에서 구원받는 것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죄 자체에서 구원받는 것을 죄의 형벌에서 구원받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죄악의 속박으로부터 건지시고 그들을 비참한 상태에서 들어 올려 사랑의 자유를 주시기 위해 보냄 받았다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영광이요 기쁨인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깨닫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복음 구원의 좋은 소식인 것이다.

다른 한 편의 사람들은 지옥에서 구원받는 것에 주로 관심이 있다. 죄에 대한 형벌이야말로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실상 두려움이 그들의 모든 종교적 노력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복음은 죄로부터의 구원의 수단으로 생각되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면죄부의 체계-그들을 죄 가운데 살게 내버려 두면서도 두려움과 위험을 제거해 주는 거대한 장치-로 생각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고 믿기만 하면, 그리고 교회에 참석하기만 하면 무조건 죄사함 받아 지옥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복음 신앙에 대한 자신들의 체계를 면죄부 제도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부르면 틀림없이 화를 낼 것이다. 그들은 이 점을 분명히 생각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사실상 그것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말씀이해 때문일까? 죄에 대한 저주의 공포를 없애 주고 그러면서도 그들을 죄 가운데서 자신들을 위해 살도록 내버려두고 그들이 평생을 죄 가운데서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그들을 천국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면죄부 제도임이 분명한 것이다. 정말이지 그것은 아주 거대한 규모의 타협이다.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거나 한 번 믿은 사람은 결단코 버림받지 아니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로 인해서 온 교회가 평생동안 죄 중에 뒹글더라도 후에는 천국에 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아주 널리 퍼져 있고 흔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회에서 발견된다. 여러분들은 교회 안에서도 세상 적이고 이기주의인 사람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 동화되어서 여러 가지 의무를 소홀히 하며 평생 동안 다소간 죄에 빠질 것을 예상하고 있다.

여러분들이 그들에게 “당신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하고 물으면, 그들은 “아뇨, 옳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왜 그런 식으로 삽니까? ” “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잖아요. 그러니 육체를 가지고 사는 현세에서는 불완전 이상의 것을 기대할 수 없잖아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국 구원을 받으며 죄 용서를 받으리라고 기대한다. 어떻게? 모든 죄에서 진실로 돌아서리라는 강력한 소망이 아니라 복음이, 하나의 거대한 면죄부 제도 - 교황 레오 10세가 발행해서 그 시대의 범죄하는 신앙고백자들을 위로하는데 사용했던 것보다 더 거대한 - 라는 가정 위에서인 것이다.

여기에는 이따금씩 죄짓는 사람들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죄 안에 살고 있으며 또 자기들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사는 날 동안 죄 중에 살 것을 기대하면서도 결국에는 구원받을 것을 바라고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