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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청계천아픈 형에게는 못 가고 어만 청계천만 들러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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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2월 06일 (화) 00:00:00 [조회수 : 1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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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으로 앓는 이종형이 문득 보고 싶었다.
정릉 자택에서 격리되어 있다는
이종사촌형 최만옥.
명동에서 일하는 매형 가게로 가서
누님 안부도 물을겸 그 형 연락처도 알겸
내부 디자인을 개조중인 소공동 지하상가 도로를 통해
여전히 인파가 몰리는 명동에 이르렀다.
매형은 반색하며 나를 반겼다.
이종형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싫다고
손님을 거절하며 두문불출 하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누님도 가 보려다 단념했다 한다.
거기서 성남 큰형수님과 통화했는데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형은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을 정도로
자존심 강하고 투병의지도 강하시구나!
거기를 나와 예전에 큰집 전화부에서 옮긴
형의 집전화로 혹시나 하고 걸어 보니
반가이 형수님이 받으시더니 형을 바꿔 주신다.
"형, 나 일배야.
많이 아프단 말 듣고 이렇게 전화하는 거야."
" .... "
"형, 오늘은 형 얼굴이 유난히 더 보고 싶어
연락처를 알까 하고 일부러 종로까지 나왔어.
형, 내가 형을 좋아하는 거 알지!"
"응."
"형이 가르쳐 준 글씨체로 항상 내 글씨가
이쁘다는 말을 듣는 것, 다 형 덕분이야.
게다가 형이 사 준 영어그림 사전 덕분에
영어를 좋아하게 되고 잘하게 된 것도 형 때문이고."
"에고, 그런 걸 잊지 않고 다 기억하냐?"
"그럼, 내겐 형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데."
형은 자신이 격리되어 보일 수 없어 미안하고
몸이 좋아지면 꼭 보자고 하신다.
"형, 끝으로 형은 내가 예수님 믿는 사람인 것 알지."
"응."
"그럼 내 말 좀 꼭 들어 줘. 지금이라도 형이
예수님 이름을 불렀으면 좋겠어.
하나님이신 그분이 우리 같은 사람이 되시고
형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이야.
몸이 많이 아파 힘들지라도 주님을 불러.
그래야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거든.
형이 죽을지라도 다시 살 수 있거든. 형! 알았지."
"그래."
형의 대답은 힘 없고 다분히 의례적이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걸어 보았다.
더는 긴 통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다음에 또 연락하겠다며 핸드폰 뚜껑을 닫았다.
통화하면서 들러보고 싶던 친구의 명동한의원도 지나치고
첫눈이 언 도보는 완전히 녹았으나
내 발걸음은 더 무거웠다.
형의 고통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얼굴도 못 보고 전화로만 복된 소식을 전하다니...
어린 시절 한 마을에 오래오래 살면서
친형보다 더 살가이 나를 아끼고 어울려 놀아 주던
그 형은 생명 끈이 언제 끊어질지 촌각을 다투는 중인데
나는 떠돌이 여행객처럼 한가로이 도심을 거닐다니....
삼일교에서 광통교를 거쳐 세종로 청계천광장까지 걸었다.
청계천의 급하고 맑은 물이
서울시장의 밝을 明자처럼 밝은 웃음을 흘리며 흐르고
영하의 칼바람길이 된 청계천을 뚜벅뚜벅 걸었다.
물에 어린 키버드나무 잎들이 바작마작 말라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담벼락에 굽은 손처럼 붉게 물든 인동초 줄기들이
황혼기의 성긴 머리카락처럼 나부낀다.
물고기들이 다시 올라오는 청계천 물가를 탐색하며
한컷 한컷 디카에 담으면서도
형의 목소리가 종일 따라다니는 듯 했다.
형이 건강하다면 이맘 쯤이면 세밀화로
청계천의 옛 돌길에 새겨진 문양을
한 컷 한 컷 담아 카드로 보내 주었을텐데...
형이 시대만 조금 일찍 태어났다면
정조대왕 화성 행차도를 그린 도공의 그림처럼
거기서 보란 듯이 반길 수도 있었을텐데...
무명 만화가로 평생 고생하며 사신 형이 눈에 밟혔다.
2005-12-07(화)
화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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