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 이승칠의 세상이야기
창녀 구원론[4]:열린수요예배
이승칠  |  gooneye7805@msn.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5년 06월 15일 (수) 00:00:00 [조회수 : 3886]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걸어서 왔던 길을 무엇에 쫓긴 듯 버스를 타고 집에 온 영이는 오늘의 계획인 빨래도 구석에 그냥 둔 채 벌렁 누워 버렸다. 명동을 주름잡겠다는 소녀의 꿈이 청량리에서 밤꽃들의 성경에 대한 해석과 설거지를 하는 젊은 예수쟁이를 만남으로 초반부터 무너져 버리는 것 같았으며, 돈 이야기를 하는 여자와 기다린다는 남자의 만남은 현대판 이수일과 심순애의 신파극인 것이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당황하지 않고 목표 달성을 위해 힘차게 달려 온 자신이 아닌가! 나의 굳센 의지와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가? 중앙선에서 무너지면 김포공항은 구경도 못하고 추락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화이팅을 외치며 일어나야 하는데….
영이의 귀에는 8년 전, 입에는 시원한 아이스케이크가 맴돌고 북 치는 소리와 동네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들려 온다. 아래 부자 동네 교회에서 달동네에 큰 북과 아이스케이크 통을 앞세우고 전도를 나온 대열에 영이도 합류해 있었던 것이다.

“여름 성경학교에 참석합시다. 모두 모여 노래하고 무용하며 하나님 말씀을 배웁시다! 할렐루야! 아멘!”
천정이 높은 집에서 피아노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난 한 후에 들려 주는 이야기 속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할렐루야와 아멘 소리는 처음 들어 보는 것이었지만, 아멘이나 타불이나 상관없이 어린이들만 모여서 웅성대니 재미가 있고 기분이 좋았기에 이날로부터 달동네 아이들이 부자 동네의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언니, 이 빵 아이들 오면 주세요.”
영이는 정신없이 나오면서도 나함빌딩의 1층의 제과점에서 산 팥빵과 크림빵이 든 봉지를 조심스럽게 내어 밀었다. ‘무슨 이런 것을’ 하면서 반가워 할 삼돌엄마인데 도리어 빙그레 웃는 것이다.
“삼촌, 삼촌.”
삼돌 녀석은 빵을 담은 봉지에 그려진 디즈니랜드 만화 송아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삼촌을 찾는 것이다.
“영이야, 니 밥 묵욱나?”
“이상한 식당에서 충무 김밥을 먹었는데 정신이 없어예~”
“니, 철수식당까지 구경했나?”
철수식당? 아무리 정신없이 나함건물 실내구경을 했지만 철수라는 상호는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역시 부산 자야들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자갈치의 시끄럽고 설치는 기풍은 벗어날 수가 없는기라. 자갈치를 잊으면 부산사람 아이제. 이제 부산의 자갈치 영이가 서울의 청량리 철수를 만나다. 영이야, 나와 같이 놀자. 철수야, 나와 같이 놀자. 영이와 철수는 바둑이와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사고칠 일이다. 두 놈이 사고를 치더니 이제 니까지 끼어 들었네.”

자갈치와 국민학교 국어 주인공들까지는 이해가 되나 그 이후로는 영이의 머리를 벗어난 이야기였다. 서울의 철수, 두 놈의 사고, 영이 자신은 무엇에 끼어 들었다는 말인가? 이상한 주문을 외운 삼돌엄마의 설명이 시작되려고 하는데 마당에서 할머니의 큰 기침소리가 들리자, 삼돌엄마는 사슴처럼 날렵하게 일어나고 삼돌녀석은 뒤뚱거리며 뛰어 나가기에 영이도 자연적으로 엉덩이를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건장한 체격에 늙은 호랑이를 연상케 하는 모습의 할머니가 작은 보따리와 염주를 손에 쥐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절에 다녀 오는 길인 듯 싶어 보였다. 삼돌엄마의 소개에 할머니도 반갑다며 자기 집같이 부담 갖지 말고 놀러 오라며 어깨를 쓰다듬어 주시기에, 초량의 주지스님과 같은 느낌을 받았으며 노인의 주름은 삶의 나이테며 흰 머리는 월계관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떠 올라 가슴에 맴 돈다.

   

철수식당에 대한 궁금증을 풀지도 못한 채 자신의 방으로 온 영이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이상한 약속에 마음이 안정이 되지를 않았다. 하필 교회의 전도사와 약속을 하여 안절부절못하는 자신이 우습기도 했기에 영이는 벌떡 일어나 설합을 열고 애지중지 아끼는 사진첩에서 자갈치 시장에서 엄마와 꿈장어를 먹으면서 웃고 있는 모녀를 쓰다듬었다. 엄마는 자신에게 꿈장어를 먹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선의 배를 따야 했던가! 조그만 부엌에서 딸의 장래를 위해 물을 떠 놓고 천지신명에게 손바닥이 불이 나도록 빌었고 절에서 부처님에게 무수한 절을 한 엄마가 아닌가, 그런데 나는 오늘 예수쟁이와 약속을 한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서로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는 선인들의 말씀을 항상 좋아했던 영이였기에 모임이 시작되기 전에 도착하여 전도사께 사정을 이야기 하고 오는 것이 도리라 싶어 양동 친구들이 선물한 중고 화장대에 앉았다. 영이에게 화장이란 것은 세수를 한번 더 하는 것과 같을 뿐인데, 그래도 오늘은 양동 친구들이 선물한 크림으로 얼굴을 깨끗이 닦아 내었더니 자신도 놀랄 정도로 얼굴이 청결해 보이기에 화장을 함으로 여자들은 새로 태어나고 화장을 지움으로 다시 죽는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며칠 후의 입학식 때 입으려고 준비한 제일 단정한 옷을 선택한 것은 8~9년 만에 스스로 찾아가는 교회이기 때문이요, 신을 모시는 곳은 신성한 곳이라는 인식이 영이의 가슴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오후 6시 5분, 천천히 걸어도 30분에는 나함빌딩에 충분히 도착할 수가 있다. 예수를 부인하기 위해 영이는 어두움이 시작되려는 길을 손수 찾아가는 것이다. 예수 아니 예수님은 누구인가? 마리아의 아들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아버지는 누구인가? 혹시….

   

“오늘 성경시험을 치는데 선생이 실력이 모자라 잘 가르치지 못해 미안하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나의 체면을 세워 주기 바란다. 성경시험은 답이 거의가 예수이다. 그러나 우리 반의 정확한 실력을 우리만 알기 위해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예수님이라 쓰자. 꼴찌를 해도 좋으니 절대로 남의 것을 훔쳐보는 도둑놈이 되어선 안돼.”

5학년 겨울에 교회에서 학교식으로 성경시험을 보았는데 우리 반 주일학교 선생님이 솔직한 애걸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넉 달이나 교회를 다녔어도 여자가 사과 먹은 이야기 밖에는 모르는 것이 우리 반의 현실이었으나, 이 일이 성경에서 제일 중요한 이야기라는 깨달음은 영이에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러분, 성경시험 결과를 발표 하겠습니다. 거의 비슷한 성적이라 목사님은 아주 기쁩니다. 그러나 한가지 마음이 아픈 것은 예수님을 예수라 적은 학생들이 많아요. 하나님을 하나라고 부릅니까? 기쁘게도 5학년 여자 2반은 예수님이라고 올바르게 적었습니다. 그래서 올해의 우수반으로 선정합니다.”

성경지식보다 인간성 교육에 중점을 두시는 주일학교 담임 전도사님의 발표에 영이반은 서로 곁눈질 하며 얼마나 웃음을 참았던지, 며칠동안 배가 당겨 화장실에서 변을 보는데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은 영이가 학교 성적이 저조하여 우울할 때나 한번씩 환경의 어려움으로 절망에 빠질 때마다 자신을 되살려 주는 추억의 샘이었다.

   

영이는 석양의 길을 걸으면서 교회 생각을 하니 교회에 대한 추억들이 뚝이 터진 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교회에 같이 다니던 달동네 친구들 중에 서울로 공부하러 온 사람은 영이 혼자 뿐이며 아예 중학교 때부터 다른 방향의 버스를 타게 된 것이다. 그래도 길에서 만나면 제일 반가운 친구들이기에 한참이나 수다를 떨고는 헤어져야 속이 풀리는 것이다.

5학년 말 2월, 예배를 마친 주일학교 선생님이 어디로 가자고 하더니 교회 근처의 자기 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는데 큰 집의 안방에는 큰 자개상에 먹을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대형 텔레비전, 전축, 번쩍거리는 자개농들이 달동네 애들의 눈을 둥그렇게 만들었다.
“바닥에 앉지 말고 방석 위에 앉아라. 너거는 내한테 특별손님이니 누나 시집갈 때 예단으로 보내려는 방석인데 너거가 먼저 앉아봐라.”
다다미 바닥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에도 선뜻 방석 위에 안지를 못하는 것은 번쩍이는 비단에 네 모퉁이에는 금슬들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너거들과 잠시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왔네. 이 재수생이 대학에 붙어 모래 서울로 간다. 너거들과 7개월 동안 만남은 재수생활에서 제일 즐거웠고 보람된 일이었다. 예수님 사건은 내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끼라. 그 동안 믿음이 부족한 나를 잘 따라 주어서 대단히 고맙데이. 많이 묵거라.”
“선생님예~, 너무 슬프게 말하지 마이소. 우리가 슬퍼집니다.”
평소에 교회에 올 때마다 어린 동생을 업고와 옆 반 남학생들에게 놀림을 받는 순남이 훌쩍거리며 말을 한다.

“울지 마라. 웃으면서 잠시 이별을 하자. 그러나 나도 6개월 후에 너희들을 다시 보고 싶지만 세상일은 모르니 우리들이 다시 만날 때 서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한데이. 서로 다른 길로 가 있거든 서로 손을 잡아주도록 하제이.”
그 분처럼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사랑해 주는 분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지 그 해 4월부터 영이와 친구들은 거의가 교회를 다니지 않았는데 달동네 아이들에게는 권위보다 솔직함과 진정한 사랑이 절실히 필요 했던 것이다.

다시 여름방학이 왔기에 동생을 업은 순남이만 교회로 가 보았으나 선생님을 주일학교에서 찾지를 못해 또 다시 훌쩍거리며 언덕 길을 올라왔으나, 방학이 끝날 무렵 아이스케이크를 빨며 싱글거리는 순남을 따라 친구들은 동네 놀이터로 가 보았더니 그네에 순남의 동생을 안고 선생님이 앉아 있는 것이다.
“선생님예~. 와 이제 옵니까?”
“서울 가더니 신사되 왔나예.”
“잘 있었나! 내 쪼매 늦었제.”
선생님이 들고 온 과자 보따리가 풀리면서 이야기 보따리도 같이 풀렸기에 늦더위에 땀이 흐려는 줄도 모를 정도로 선생님의 서울 이야기에 웃음 보따리도 다 풀려 버렸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새 달에 새 해에
아니아니 내일 바로바로 내일 만나자 안~ 녕

유년주일 예배가 끝나면 여자 5학년 2반은 둥그렇게 서서 이 노래를 부르며 다음주일을 약속을 했다. 동광동 놀이터에서 이 노래를 마치고 내려가는 선생님의 쓸쓸하게 보이는 뒷모습이 마지막이었으나 달동네 애들의 마음에는 오랫동안 간직 되어 있었다.

   

8년 전의 추억에 사로 잡혀 복권이라도 당첨된 사람처럼 싱긋이 혼자 웃으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온 길이 벌써 6층 전용 엘리베이터에 도착하였다. 영이는 발걸음을 돌리고 싶었으나 유년 주일학교 선생님의 추억을 오늘은 더 간직 하고 싶었다. 말씀만 드리고 쏜살같이 돌아서면 된다. 예수쟁이에게 잡히면 나의 지금의 생활에 혼돈만 올 따름이다. 예수 모르고도 지금의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는가. 마음을 굳게 가지고 천천히 엘리베이트의 출발단추를 눌렀다.

오후 6시 28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안내하는 분이 계시기에 전도사님을 찾았더니 미소를 지으며 식당 옆의 큰 교회 문을 가리킨다. 조심스럽게 교회 문을 열자 영이는 대중탕의 문을 잘못 열고 남탕에 들어온 여자처럼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 옆의 식당보다 2배나 높은 하늘색의 천정, 오른쪽 창문에는 붉은 커튼이 줄을 서 있으며 앞의 강대상이 아래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상한 공간이었기에 영이가 멍하게 서 있었는데 누군가 손을 당기며 자기 옆의 자리를 내어 주며 앉으라고 권한다.
“할렐루야!”
“아멘!”
영이가 의자에 앉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외침의 소리와 동시에 북소리와 전자기타와 전자오르간이 울리며 노래가 넘친다.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거룩한 백성들 거기서~ /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새로운 어항으로 옮긴 열대어처럼 멍해 있던 영이는 잠시 후에 정신을 가다듬고 앞을 자세히 바라 보았는데, 중앙에 드럼이 있고 좌우에 바이올린, 전자오르간과 전자기타가 한 쌍씩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5명이 가수처럼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밴드의 마이크까지 총12개. 게다가 중앙의 큰 북에는 ‘라합반주대’라고 붉은 글씨로 적혀 있고 자신이 찾아온 전도사는 간편한 난방차림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열심히 드럼을 치고 있는 것이다.


밴드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어 대는 사람, 두 손을 나비처럼 허공에 띄우는 자, 연신 손뼉을 치며 발을 굴리는 자, 두 손을 모아 앞으로 약간씩 흔드는 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몸이 좌우로 움직이는 이상한 모습들이기에 라디오에서 들어 본 혀 꼬부랑 목사의 교파 같았다.


몇 해전 영국의 팝송가수가 여자대학의 초청으로 대학강당에서 공연할 때 TV에서 보여준 여대생들이 광란하던 모습을 연상케 하였는데, 이 덕분으로 골목마다 빗자루를 들고 기타 치는 흉내를 내는 꼬마 병정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무대 위의 연주자나 관객은 TV에서 본 모습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는데, 열정은 같으나 그들의 눈과 마음은 하늘을 향해서 있는 것 같았으며 마이크를 잡고 노래 하는 사람들은 경건함과 기쁨이 몸에 배여 있는 것이다.


전도사의 드럼 뒤에는 피 흘려 죽어가는 예수가 없는 나무 십자가만 붙어 있었으며 천정이 상당히 높은 것을 보아 아마 6층의 천정을 헐고 7층과 합친 듯 하였다. 갑자기 양쪽에서 손을 잡으므로 영이의 양 손은 위로 올려지며 자연히 일어서게 되었다. 왼쪽에는 영이에게 자리를 권한 영이 또래의 여성이었고 오른쪽에는 30대 중반의 아주머니였다.


“주여!! 주여!! 주여!!”
세 번씩이나 구령을 힘차게 외치더니 서로 잡은 손을 내리고 선채로 양손을 모아 눈을 감고 중얼거리며 기도를 시작을 하는데 마치 주문을 외우는 것 같았다.
“땡!”
종소리가 나자 다들 자리에 앉았다. 무대 위에는 어느새 작은 강대상이 놓여져 있었고 성경책을 편 전도사만 남아 있었는데 드럼을 칠 때 소매를 걷어 붙였는데 이제는 단정히 소매를 맨 평범한 옷차림이었다. 바이올린 소리에 전부 묵상기도를 하자 영이도 따라 머리를 숙였다. 조금전의 폭풍에 비해 너무나 고요한 순간이었다. 마치 물 속에 잠수하여 바다 밑바닥에 숨을 죽이고 붙어 있을 때 느끼는 고요함 같았다.

   

“저의 교회의 수요열린예배에 참석한 이웃 교회의 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은 예배가 경건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하는 반면 수요예배를 일터와 가까운 라합교회에서 드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제사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 자신이 제물이 되어 드리는 제사를 원하십니다.

저는 여러분이 생존경쟁의 삶에서 상처를 입을 때 마다 육신을 위로해 주는 술의 역할도 못하며, 마음의 하소연을 들어 주는 다정한 성품이 못되기에 대신 옥상의 십자가 미끄럼틀에 올라가 보시라고 권유를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 서서 아래의 세상을 바라 보시면 나의 마음에 가득 찬 염려들이 티끌보다 작음을 느낄 것이며, 이런 경우에는 예수님은 어떻게 처신을 하셨을까 하며 예수님의 형상을 생각하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나타난 첫 현상이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던 거룩한 지성소를 가린 성막이 찢어지는 사건이었습니다. 2000년 전부터 예수님은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직접 예수님과 영적 대화를 하는 만인제사장주의의 길을 터 놓았다는 중요한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십자가와 제일 가까운 자리가 강대상입니다. 많은 제사장들을 이 자리에 세우기 위해 라합교회의 수요열린예배는 개방이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올라 오실 수가 있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designtimesp=28352> (창세기2장1-3절)
“오늘의 주제는 창조의 목적인데 복과 거룩 그리고 안식입니다. 이는 복음의 목적이기도 하기에 성경은 반복하여 이 세 가지를 이야기 하는데 우리가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 발표자는 5층에서 복덕방을 하시며 라합노인 노인대학 회장이신 문해석 할아버님입니다.”
머리에는 많은 눈이 덮였으나 얼굴은 동안(童顔)처럼 보이는 노인이 점잖게 큰 기침을 하며 단상에 섰다.

“라합교회가 생기기 전의 저의 복덕방은 노인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한번씩 장기나 화투를 치며 소일하던 동네 사랑방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노인대학을 개설한다는 말에 우리 동네 노인들은 읽어도 재미도 없고 잠만 오는 성경이나 가르칠 것이 뻔하였기에 모두들 비웃으며 한 쪽 귀로 흘려 버렸습니다. 이 건물이 문을 연 다음날 5층의 복덕방에 빵을 짊어진 큰 개와 붉은 책을 가슴에 안은 젊은 청년이 찾아 왔기에, 며칠 전부터 청량리의 명물로 등장한 예수쟁이 전도사구나 싶어 잔뜩 긴장을 했지요. 왜냐하면 약장사와 국회의원 그리고 예수쟁이의 말에는 당할 자가 없기 때문이죠.”
성도들이 즐겁게 웃는 것은 참기름같이 번지러 한 이들의 달콤한 말이 약은 속만 쓰리게 하고, 당선된 국회의원은 숙였던 목이 뒤로 젖혀지고, 뱀 같은 예수쟁이에게 많이 속아 보았기 때문이다.

“빵과 우유를 잡수시면서 젊은 놈의 말을 5분만 들어 주십시오. 교회는 천국으로 안내하는 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제일 먼저 천국으로 가실 분들은 어르신들입니다. 현재의 세상은 원기가 왕성한 젊은이들의 판 같으나 지혜의 왕 솔로몬의 아들 르호브암은 어르신들의 충고를 듣지 않아 나라가 둘로 갈라지게 됩니다. 저의 할아버님은 올해 초에 돌아가셨기에 이 젊은 놈에게 사랑의 회초리를 드실 어르신들이 필요합니다. 손자라 생각하시고 도와주십시오. 노인 성경대학에 나와 보시고 재미가 없으면 제가 두 번 다시 권하지를 않겠습니다. 소화도 시켜야 하니 제가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물러 가겠습니다라고 하더군요. 한 건물에 있으면서 먹을 것과 노래까지 선물을 한다는데 누가 거절을 하겠습니까? 여러분! 이 노래를 우리 다 함께 불러 봅시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 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문노인도 과거에는 어머님이 계셨다. 단지 이 세대는 성경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어머님 무릎의 따뜻함은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들은 손주들을 무릎에 앉히고 노인성경학교에서 재미있게 배운 성경 이야기를 들려 주는 기쁨을 실제로 맛보았기에 힘차고 빠르게 합창을 하는 것이다.

“노인들은 눈을 뜨면 오늘 무엇으로 소일을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을 하는데 작년부터 지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고민으로 바뀐 것은 교회에 노인대학, 유치원, 탁아소까지 무료로 운영을 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노인들은 갓난애기부터 유치원생까지 교회에 데려와 맡기고 노인대학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손주들과 점심을 같이 먹고 집에 같이 가는 즐거움은 어디에 비유를 하겠습니까? 게다가 할머니들과 매일 같이 공부하며 노래를 부르니 홀아비인 저에게는 즐거움이 넘치기만 합니다.”
홀아비의 즐거움이라는 문노인의 말에 벌써 실내에는 복을 알리는 잔잔한 웃음소리가 퍼진다.

“복덕(福德)이라는 말은 타고난 복과 후한 마음입니다. 이 동네 사람들이 집을 사고 팔거나 방을 세를 놓을 때 저를 찾아 옵니다. 자신의 보금자리를 펴는 집은 복의 장소입니다. 저의 손님은 대부분 월셋방을 찾는 가난한 자들 입니다. 저는 집주인에게 세들 사람은 같이 한 지붕에서 살아야 하니 돈보다 후한 마음을 가진 자를 선택하고 또한 주인도 후한 마음으로 베풀어라고 권하는 것이 복덕방 입니다.

중국인들은 명절이면 ‘복’자를 쓴 깃발을 꺼꾸로 달아 놓아 폭죽을 터뜨리며 하늘에 감사를 표시를 한다고 하며 한국인들도 인명은 제천(祭天)이라 하여 하늘의 뜻에 맡겼습니다. 그리고 영어 선생인 저의 아들이 재미있는 말을 하더군요. 세상이 말하는 복은 ‘행복’(happiness)인데 행복의 어원은 ‘우연히 만나다. 우연히 일어나다’라는 의미의 ‘해픈(happen)’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즉 행복은 우연이기에 우연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마누라에게 뽀뽀를 해 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축복(blessing)인데 어원이 ‘피를 흘리다. 희생하다’는 뜻의 ‘브레드(bleed)’라고 하더군요. 행복보다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영어를 사용하여 미안합니다. 하지만 노인성경대학에서는 매일 10분씩 영어를 배우는 것은 새 글을 배워야 변하는 세상을 따라갈 수가 있어요.

그리고 목사님이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축복합니다’라고 하면 그 말로 인해서 복이 금방 쏟아지는 줄로 착각하는데, 축복이란 말은 ‘빌 축(祝)’‘복 복(福)’이라는 두 한문 글자를 합해 놓은 말로서 복을 빈다는 뜻이지 복을 준다’는 뜻은 아니죠. 그래서 ‘축복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을 주시기로 간절히 소원한다’는 의미입니다.

불행한 집안 환경에 ‘어머님! 왜 절 낳으셨는가요?’하며 슬퍼하거나 실망을 할 때도 있으며, ‘당신의 육체적 즐거움을 채우기 위해선가요?’라고 개수작을 떠는 저주 받을 호래자식도 있습니다. 어떠한 환경에서 태어나던 탄생은 복이며 우연한 행복이 아니라 선택 받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공정하신 분입니다. 팔방미인의 속에는 팔방추녀가 담겨있듯이 외모에 나타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속성에는 인간이 경험할 수가 없는 비공유적속성과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공유적속성으로 분류되는데 공유적속성에 지혜, 능력, 거룩, 공의, 선이 있습니다. 거룩은 ‘벤다, 분리하다’의 의미인데 구약의 가장 탁월한 종교적 용어라고 성경대학에서 배운바 있습니다.
안식은 문자 그대로 편안한 휴식으로 구약시대는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참된 안식이 이루어 지는 곳이 천국인데 우리는 이생에서 일주일에 한번 천국을 소망하며 보내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 (창세기12장2-3절)
“6일 간의 창조, 에덴동산, 가인과 아벨, 노아의 홍수에서도 창조의 3가지 목적을 말씀하나 성경에서 최초로 복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사람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실제적으로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불순종 이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상당히 멀어져 있었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합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이 선택한 아브라함이 무릎을 꿇는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전개 되는데 복은 메시야를 말하기에 복음이라는 말이 니온거죠.”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 (창15:1)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이국(異國) 땅을 전진하는 아브람은 마누라를 누이라 속이며 살 정도로 두려웠을 것인데 '두려워 말라’는 힘찬 격려의 말씀을 하십니다. 복을 받았는데 왜 두려워 합니까? 복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아브라함에게 설명을 하십니다.

거룩은 분리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방패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막아주기에 거룩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자면 축구나 농구경기에서 공격자는 골대를 정면으로 보고 있으며 수비자는 골대를 등지고 있습니다. 앞 걸음을 치는 자와 뒷걸음을 치는 자가 달리기를 하면 승부는 뻔하며 공격자의 화려한 속임수동작에는 이길 수 없지만 방법이 딱 한가지 있지요. 예수라는 방패를 세우는 것입니다. 꼭 잡고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허리띠를 붙들고 그 분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이기는 길입니다.

상급은 ‘되돌려 준다’는 의미입니다. 하루를 열심히 살면 잘 때 두 다리를 펴고 편안히 자며 아침에는 상쾌하게 일어납니다. 인생을 신앙으로 열심히 살면 편안한 수면과 새 세상에서 깨어나는 상급을 받게 됩니다. 사람의 탄생만큼 큰 복은 없으며 하나님의 보호아래 거룩한 삶을 살며 죽음 후에 마지막 날에 받는 영생만큼 큰 상급은 없다고 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 (마1:1)
“이 말씀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1000년 후에 다윗을 통해 또 1000년 후에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며 신약이란 새로운 세계를 전개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작은 것에서부터 이루어 나가는 모습을 성경은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크게 될 놈은 떡잎부터 다르다는 교훈에 조기교육이 시행되고 있으며, 좋은 족보에 좋은 자식이 나온다는 개념에 족보타령만 하며 혈연과 지연으로 뭉쳐있는 한국사회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세상의 방법으로 사는 것도 현명하지만 애초부터 인간은 몹쓸 죄인이며 나그네임으로 이 세상에서 복음을 통해 죄사함을 받는 삶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모태신앙의 출발도 중요하지만 결승점에서 회개한 십자가의 강도도 중요하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정작 내일이면 하늘나라에 갈 노인들을 위해 노인 성경대학을 열어주신 교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의 어른답게 충고의 가르침을 한 문노인은 돋보기를 벗어 주머니에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자 할머니들이 제일 큰 박수로 응답을 한다.

   

“이번에는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하나 사회생활이나 교회생활에 정상인보다 더 열심이신 이창환 형제의 차례입니다.”
강대상과 성도들이 앉는 의자 사이에는 굉장히 넓은 공간이 있는데 여기엔 많은 사람들이 훨체어에 앉아 있었으며 이 중에서 한 분이 자신의 훨체어의 바퀴를 밀며 단상으로 올라온다.

“극보수주의 교파에서는 흠 있는 제물을 제사에 드리지 않는다고 하여 지체부자유자는 성직자가 되지 못하고 하고 있는 실정이나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베푼 이적 중에 눈먼 자, 앉은뱅이, 귀머거리, 벙어리 등의 병신들이었다는 사실과 이는 자신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묘한 말씀을 하심을 주목해야 합니다. 라합교회는 지체부자유자에게 예배에 참석할 수가 있도록 온갖 시설을 해 주시고 병신도 강대상에 서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체부자유자와 병신이란 말을 번갈라 사용을 하는 것은 이 건물처럼 이 교회도 버터와 된장이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았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요한복음3장16절)
“복은 독생자이신 예수이며, 거룩이란 여기선 믿는 자를 말하며 안식은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즉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사랑을 제일로 말씀하십니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사도행전1장7~8절)
“복은 성령이 임하면’이고, 거룩은 ‘권능을 받고’이며 안식은 ‘증인이 되는 것’이겠죠. 특히 이 땅에 사는 성도들이 증인이라는 말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여야 하며 전도하는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 (엡1:3)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 (로마서6:22)
<또 미리 정한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롬8:29~30)

   

“신약시대는 너무 신나는 일이 벌어집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는 거룩함에 이르러 영생을 얻죠. 하나님이 택한 자는 복을 의미하며 의롭다 함은 거룩이며 영화롭다는 안식을 의미합니다.
“창조목적의 뜻을 조금 더 상세하게 표현한 것이 주일 예배시간에 고백하는 사도신경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며’는 복이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거룩이며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나이다’는 안식이기에 사도신경은 믿음을 고백하는 예식인 것 입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43:7)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 (사60: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 (겔36:21-22)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 (눅2:10~11)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 (신10:12~13)

   

“그러면 천지창조와 복음의 최종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철학자 칸트, 현대 자유주의신학자 슬라이어막허, 리츌은 인생의 행복에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인간들의 찬송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도 있지만 세상에 많은 고난과 불행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완전히 실패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많은 교훈대로 하나님의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가르침이 올바르다고 봅니다. 신성만을 중시한 중세교회가 타락함으로 이성만을 중시하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으나 이 시대도 타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타락을 막는 길은 행위언약을 주신 신성과 돕는 배필인 이성이 연합하여 원시복음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장애자들을 위해 봉사해 주시는 성도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창환 형제가 한 손에는 성경을 가슴에 쥐고 한 손으론 훨체어를 밀면서 단상을 내려오는 동안 성도들은 성경을 찾던 손을 멈추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 준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많은 분들이 유년주일학교 반사를 해 보셨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 중에 달동네 여자 5학년 2반은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학생들입니다. 담임목사님의 가짜 미국 박사학위 소동으로 주님을 떠날 각오를 하였기에 뒷모습이 쓸쓸하게 보였나 봅니다. <이산가족 찾기 2번 >이 되겠군요.
요새 “조용기 목사님, 은퇴를 하시고 계속 복음을 전하십시오.”라는 계속적인 글을 올려 별 소리를 다 듣고 있는데, 1970년도 순복음교회에 대해 손벽을 치고 고함도 지른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이고 현재에도 순복음 예배에는 한번도 참석치를 못해 보았습니다.

열린수요예배의 무대 모습은 사할린의 뽀로나이스커란 시골에서 한국 장로회 교회와 미국 오순절 교회가 신년 합동예배를 같이 들렸는데 이때 오순절 교회의 예배 드리는 모습을 보고 삽입을 한 것입니다.
삼돌네 가정이 미국에서 순복음교회를 다니는데 요새 나의 행동을 알면 큰 일인데….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 일이라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물러가라!”를 외치던 누나와 삼돌이도 저의 마음을 알아 주f리라 밑씁니다!!

이승칠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106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