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언덕이라는 생활신앙지를 시작한 지도 벌써 7년이 접어들고 있습니다. 김포의 농촌교회 월곳교회의 회지로부터 시작한 푸른언덕은 그간 농촌지역 속에 숨은 생활신앙 이야기를 발굴하고 함께 그것을 공유함으로서 미흡하나마 미국을 포함한 전국 6개지역에 뿌리를 내림으로 이제는 각 지역별로 한 호씩 특집을 맡아 내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발전은 단순히 강단 위의 신학이나 성전 내의 신앙의 차원을 넘어서서 어떻게 하면 생활 속에서 신앙을 실천하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가족들의 노력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제 개인적으로 오늘의 푸른언덕은 단지 7년전에 시작한 것이 아니라 1965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65년 감신 냉천동산에서 지금 우리 푸른언덕 가족인 김흥진 권사와 이현주 목사 등과 함께 펴낸 <線>은 바로 푸른언덕은 바로 푸른언덕의 모태입니다.

그 당시 내게 신앙은 결코 생활과 동떨어진 이데아가 아니라 살며 느끼고 끊임없이 모순과 투쟁하는 프락시스의 세계였습니다.

그 때 나는 線의 의미를 창간호에서 <對話의 廣場에서 扮裝치 않은 모습으로 連結시키는 일 그것이 線의 意味이다. 普遍的인 價値創造는 企待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울부짖음이 울부짖음으로 그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음을 自認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30년이 흘렀습니다. 線은 7호를 끝으로 울부짖음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밝혔듯이 <正直히 時代를 보는 일>, 그것이 그 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있어서의 線의 의미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正直히 時代를 보는 일>을 푸른언덕으로 선을 이었으며 정직히 시대를 볼 뿐 아니라 시대의 소리를 듣고 외치고 그리고 정직한 시대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푸른언덕을 통하여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나름대로 일정한 결과물을 얻었습니다. 김포에 <푸른언덕교회>가 시작되어 지역속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매회 2,000여권의 책자가 6개 지역에서 읽히고 있으며 가족들의 물질 나눔을 통하여 수는 적지만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푸른언덕의 결과물을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합니다. 바로 푸른언덕의 신학을 창출하자는 것입니다. 신학하면 무슨 대단한 이론이나 학문처럼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우리의 살아온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방향을 정하면 끊임없이 실천을 통하여 검증하자는 것입니다. 책상 위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한 먹물들이 아니라 현장에서 민중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우리가 이루자는 것입니다. 푸른언덕의 신학은 고정적인 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푸른언덕 가족들이 그려내며 살리는 것입니다. 진정 푸른언덕의 신학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이루어 나가는 것이며,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하는 작업이 아니요 가슴을 열고 일하는 사람들이 일구어 가는 것입니다. 푸른언덕의 신학은 이 시대에 생명이 있음을 알리자는 것이요, 꿈에만 그리던 하나님의 나라를 현실화시키자는 것입니다.

나는 수 많은 신학이론 가운데 또 하나의 신학이론을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푸른언덕의 신학은 우리 가족들의 틀거리입니다. 바로 우리의 틀거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박흥규 한 사람의 푸른언덕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푸른언덕이 되기 위한 시발입니다. 흩어진 가족들이 이 일을 위하여 함께 가슴을 맞대고 거친 숨길을 터트릴 수 있다면, 아픔을 감싸주는 따뜻한 손길을 맞잡을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우리들의 천국, 하나님 나라 문턱이 아니겠습니까? 소극적으로 책을 읽으며 “나도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혹은 “아! 그런 아픔도 있었구나”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생각을 위하여, 그 아픔을 위하여 이러한 일을 하자고 제안하고 참여하는 사람 열 사람만 있다면 푸른언덕의 신학은 이미 완숙한 것입니다. 남궁억 선생이 무궁화 동산을 가꾸러 일하러 가자고 창가를 부를 때 살아있는 민중이 그 뒤를 따랐듯이 오늘 푸른언덕을 가꾸자는 이 음성에 여러분도 삽들고 나서시기를 바랍니다.푸른언덕 

<1994년 푸른언덕    편집및 사업계획>

1월: 새로운 출발(호서지역 담당)  3월: 교육       (서울지역 담당)  5월: 치유 (광주, 전남지역 담당)

7월: 환경 (김포, 강화지역 담당)  9월: 푸른언덕 기념호    (강원지역 담당)

11월: 밑거름     (미주지역 담당)

전영자의 신앙얘기로  초대합니다

우리교회 주보는 요즘 여느 목회자가 하는 것처럼 8면으로 발행된다. 잠깐 그 내용을 소개하면 1면은 ‘귀있는 자여···’라는 난으로 시가 실리고 2, 3면은 예배순서, 그리고 4, 5면은 ‘말씀과 함께’ 난으로 그 주일의 설교가 실리며, 6면은 오늘 얘기를 하고자 하는 ‘전영자의 신앙얘기’ 그리고 7면은 ‘짧은 얘기, 긴 생각’ 난으로 명상꺼리가 실리며 마지막 8면은 ‘가족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과 헌금영수기가 실린다. 주보의 형식이나 내용은 별로 자랑할 것이 없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전영자의 신앙얘기’만은 어디 다른 교회의 것과는 비교를 사양한다.

진실로 맑은 글을 쓴다는 것은 맑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좋은 사람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그러나 글을 읽지 않고도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하여 글을 쓰지 않는다면 그 보다 더 어리석음이 어디있겠는가?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냥 마음으로 알면 좋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러나 글을 쓰는 일은 자기 존재의 확인이다.

특별히 아무도 알아 주지 않고 알리고 싶어도 알릴 수 없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글은 소중한 것이다.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아니 죽어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자신의 존재의 확인을 하려는 앙깐 힘, 어떤 사람들은 비웃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라고 코웃음 칠 수도 있다. 그러나 존재의 확인 만큼이나 전영자의 신앙얘기는 우리에게 새 힘을 불어 넣어준다. 지식인의 머리에서 나오는 죽은 글이 아니라 살아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생활 속에서 체험되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성한 몸을 가진 것을 당연한 것

으로 여기고 온갖 불평 불만꺼리를 찾고 있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몸짓이기 때문에 그렇다. 푸른언덕에 그녀의 글이 매 회 실려서 푸른언덕 효림교회 주재기자가 되었지만 푸른언덕과 같이 전국적인 유명 격월간지(?)가 아닌 우리교회 주일회보에 매주 실는 전영자의 글은 이른 새벽 선창가에 나가서 막 들어온 배에서 꺼낸 펄펄 튀는 생선을 회 쳐먹는 그 맛이다. 이 맛깔나는 전영자의 신앙얘기를 오늘은 특별히 두 편 소개해 볼까 한다.

어머니께 드리는 글

사랑하는 어머니.

야곱이 잃어버린 아들 요셉의 인도로 애굽왕 바로 앞에 섰을 때, 자기 평생을 가리켜 나그네 인생이라고 하면서 험난한 세월을 살아왔다고 자기소개를 했었지요. 이제 회갑을 맞으신 어머님의 인생길을 뒤돌아보니 야곱보다 더 험난한 인생길을 살아오신 듯 합니다. 남편 없이 어린 자식들 키우느라 눈물 마르실 날 없으셨던 어머니 아직 여전히 병든 딸을 돌보랴, 안팍 살림하시랴, 늘 고단한 삶을 살고 계시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어머니를 보고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들을 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복을 어머니께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 불행한 사람으로 비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어머니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택하셔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보잘 것없고 소망이 없는 모녀를 소망을 가진 주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복 그 자체이신 주님이 우리의 주요, 아버지가 되셨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은총인지요.

그러므로 어머니, 이제 우리는 복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참 복이신데 어찌 그 자녀가 복없는 사람이겠습니까? 우리는 복을 받을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분의 성품 때문에 우리를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 옛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약속하셨지요.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창 12:26).

그렇습니다. 어머니,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자녀답게, 그리스도인 답게 살면, 사람들이 주님을 뵈온 것 같아서 절망한 사람이 힘을 얻고, 불안에 싸여있던 사람이 평화를 느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복의 근원이 되는 게 아니겠어요. 어머니, 이제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서 어머니의 남은 생애동안 복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요. 

주님이 언제나 어머니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이글은 지난 4월 10일 실린 것인데, 그 전 주간(4월 5일)에 있었던 어머니의 환갑을 기념하여 드리는 글이다. 평생을 청상과부로 늙은 어머니, 아들 하나 딸 둘을 키우다가 아들을 가슴에 묻고 이젠 수족을 움직일 수 없는 여식을 뒷바라지 하느라고 그 흔한 즐거움, 그 흔한 기쁨도 없이 살아온 어머니, 그 어머니를 향하여 드리는 마음의 선물인 것이다. 어머니는 이 글을 읽고 어쩔 줄을 몰라했단다. 우리 교우들도 이 글을 읽고 자신에게 주는 글같이 좋아했다.

다음에 소개하는 글은 4월 17일에 실린 글인데, 그녀의 집을 방문하는 우유배달하는 아주머니를 만난 후에 느낀 느낌을 글로 표현한 것이다. 그녀의 방은 어떤 사람도 거절하지 않는 열린 공간이다. 그리고 그 방에 드나드는 사람은 그녀에게서 위로와 평강을 얻고 돌아간다. 또 그녀는 그들을 통하여 세상을 보고 듣고 그것을 신학화하는 것이다.

중단없는 전진

우리집에 이틀에 한 번씩 우유배달을 오는 분은 30대 초반의 젊은 주부이다. 곱상한 외모에 요조숙녀 타입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우유를 가져오는데 그녀의 우유배달을 하게 된 동기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얘기인즉 그녀는 8년 동안이나 중풍으로 자리에 누우신 시어머니의 병구환을 했다고 한다. 사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시어머니의 시중 드는 일이 참으로 힘들어서 가끔씩 울기도 많이 했단다. 그 시절에는 아이들과 시어머니를 돌보느라 다른 일에는 전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이 지낸 세월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그녀는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면서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회의가 생기더란다. 아이들도 이미 자라서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으므로 엄마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는 시간을 어떻게 할까 궁리끝에 자신의 노력으로 손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우유배달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땀흘려 얻은 댓가로, 교회에 나간지 얼마되지 않아 믿음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조자 잘 모르지만, 하나님께 십일조도 드리고 또 그 돈에서 얼마를 떼어 어려운 이웃도 돕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녀와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이제 막 신앙생활의 걸음마를 시작한 그녀의 신앙에 비해 수십년이나 신앙생활을 해왔다는 나의 신앙은 신선함도 열의도 없는 맹탕인 것을 퍼뜩 깨달은 것이다. 살아 숨쉬는 믿음이 아니라 화석화되어 허물만 남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 말씀대로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 경우였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스승이니 날마다 도전받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믿음이 삶을 변화시키는 역동적인 힘이 되도록 말씀을 불쏘시게 삼아 끊임없는 자기 혁신의 불을 지펴야 한다. 주님을 닮기 위해 쉼없이 성장하지 않으면 있는 믿음마저 빼앗겨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늘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분임을 가슴 깊이 새겨 둘 일이다.

우리교회 교우들은 전영자를 사랑한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 사이로 비치는 하나님의 맑은 세상과 그녀의 앙깐힘을 들여 쓰는 신앙얘기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내가 이 글을 푸른언덕에 실는 것은 전영자의 신앙얘기를 듣기를 원하는 사람을 부르기 위함이다. 전영자의 신앙얘기를 듣 기를 원하는 사람을 부르기 위함이다. 전영자의 신앙얘기를 듣기를 원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구억말로 오시오.

                                                         김영란(효림교회 사모) 푸른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