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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방문기7할머니가 묻어 두신 보물
박인환  |  gojumool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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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1월 21일 (월) 00:00:00 [조회수 : 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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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으로 돌아오기 위해 배를 탔을 때다.

 “은전! 은전!” 누군가가 나를 향해 큰 소리로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 데 처음에는 그 말이 무엇인지 몰랐다. 휘 둘러보니 낯설지 않은 사람이 나를 향해 “은전! 은전!” 하면서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남포항에 입항할 때에 제일 먼저 만났던 출입국관리소직원 중 젊은이(33세)었다. 배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모두 우리가 남포에 도착할 때 맞이했던 출입국관리소직원들과 도선사들, 그리고 세관 직원들이었다.

며칠 만에 나를 보고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이 은전이었나보다. 남포외항에서 남포항으로 들어가는 몇 시간 동안 출입국관리소 직원 두 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이야기 중에 “나는 실향민 2세다. 부모님이 평북 태천출신이신데 3차 숙청 대상자가 된 것을 미리 알고 월남하였다”고 하였더니 “쯪쯔.. 고거 잘 모르고서 내려가셨구만요. 우리 공화국에서는 지주들 땅만 빼앗고 죽이지는 않았단 말입니다” 하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시작으로 잠시 설전이 오갔다.

나:“에이, 그런 소리 마시오. 해방직후 북에서 공산정권에 죽은 사람이 한 두 명입니까? 죽이지도 않는데 모두 월남을 한답니까? 지주라고 죽이고 기독교인이라고 죽이고... 오죽하면 고향과 재산 버리고 월남을 했겠습니까?”"공산당에게 가족 잃고 이를 갈며 월남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북쪽사람:“아니 그런 말씀 마시라요. 사람 많이 죽인 건 미국놈이디 우리가 아닙네다. 기독교인도 미국놈들이 다 죽였시오. 미군들이 교회는 폭격하지 않을거라면서 다들 교회로 들어갔는데, 교회마다 폭격했시오. 살아남을 사람도 교회로 모였다가 다 죽은 거디요.”

나:“당신들이 북쪽에서 미군이 사람 죽인 것만 얘기하는데, 남쪽에서는 지방 빨갱이들이 붉은 완장차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어요. 그런 사실은 모릅니까?”
북쪽사람:“처음 듣는 얘깁네다?”

나:“그러니까 당신들은 북한정부에 유리한 것만 교육받은 것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교육받지 못한 것입니다”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핑계로 서로 죽인 겁니다. 그러니 과거에 누가 더 죽였느니 어쩌니 하는 것 가지고 싸울 필요 없습니다”

이렇게 공격하면서도 속으로는 “우리도 역시 일방적인 교육만 받았는 걸.” 하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가 초등학교인가 중학교인가에서 배운 교과서에는 ‘공산당에 의해 학살된 시체’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 사진이 공산당이 아닌 아군에 의해서 죽은 부역자들의 사진이라는 기사를 접하고 깜짝 놀란 일이 있다.

 그런 것이었다. 북의 김일성정권은 김일성정권대로 그리고 남쪽의 이승만정권과 곧 이어진 군사정권은 군사정권대로 저마다 자기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남북분단을 교묘히 이용해 온 것이다. 그러니 피차 진실을 가르치지 않은 것이다.

초반부터 너무 예민한 얘기가 오갔다 싶어 화재를 비정치적인 방향으로 돌렸다.
나:“우리가 북한에서 아주 잘 사는 집이었다는 데 남쪽으로 내려와서 죽도록 고생했다”

북쪽사람:“땅이 얼마나 되었었답니까?”
나:“농지 삼사만 평에 술도가 두 개에 산도 있었다고 하고...”
북쪽사람:“만오천평부터 지주로 취급했습네다. 그런데 토지문서는 보관하고 있습네까”
나:“피난 통에 다 잃어버렸다지요. 그런데 그거 가지고 있어봐야 휴지조각이지 뭐 합니까?”
북쪽사람:“그래도 모르디요. 아하, 고걸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 때 그 사람이 무 슨 의도로 땅문서가 있는지를 물었는지 잘 모르겠다.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나:“이미 60년이나 지나갔는데, 남북통일 되더라도 우리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네요. 그래서 저는 땅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북쪽사람:“그럼 뭐 다른 게 있습네까?”
나:“예, 월남하기 직전에 일정시대 때 쓰던 은전 두 항아리를 할머니가 부엌바닥에 파묻으셨다고 하더군요. 요즘 남쪽에서는 그 은전 하나만 내다 팔아도 큰 돈 됩니다. 남북통일 되면 나는 제일 먼저 우리 부모님 고향집에 가서 부엌바닥을 파서 은전을 챙기려고 합니다.”

내가 신이 나서 은전얘기를 하니까 이들이 아주 흥미롭게 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왕 내 차지가 되기 어려운 것 까짓 거 크게 인심을 썼다. “그런데 혹시 남북통일 되기 전에 당신들이 평북 태천에 갈 일이 있거든 태천읍에서 제일 큰 집터 부엌바닥을 파서 그 은전 챙겨서 부자되시오.”

언젠가 다시 돌아와서 파내실 요량으로 할머니가 정성껏 파두어 놓으셨다던 은전 두 항아리는 돌아가신 할머니는 물론 살아계신 어머님 허락도 없이 내가 마음대로 인심을 써 버렸다.

그 말을 하고 나니 마음 한 구석에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의 물결이 이는 듯하였다. “저녀석들이 찾기 전에 내가 먼저 가서 찾아야 할 텐데” 하는 어리아이같은 마음도 불쑥 드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들이 태천에 ‘보물찾기’ 하러 가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내 말을 농담으로 여겼는지도 모르고, 또 그들이 그 말을 믿는다고 해도 북의 사회가 우리처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북의 출입국직원이 닷새 만에 나를 보고 반갑다고 하는 말이 하필이면 “은전! 은전!”이라니...
이 친구, 아마 ‘은전’에 귀가 솔깃하긴 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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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천 (24.86.153.230)
2005-11-22 03:23:52
기사 읽으면서 웬지 묘한 긴장감...
기사 읽으면서 왠지 묘한 긴장감이 있었는데...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군요

전 북한 사람이 목사님 말 듣고 가서 은전 파서 하나는 목사님께, 하나는 당국에..

뭐 이런 식으로 처리 되는 건 줄 알았지 말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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