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구멍만한 부엌에서 연탄을 갈아 넣고는, 이 동네는 각 집의 쓰레기통이 대문 앞에 붙어 있고 개인 청소 리어카가 다니며 수거를 한다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을 기억하면서, 대문에 달린 쪽문으로 향하면서 부산 달동네의 두부장수 종을 흔드는 소리에 쓰레기 통을 머리에 이고 쓰레기 차로 향하는 행진에 비해서는 훨씬 문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이는 골목에서 담에 붙은 쓰레기통의 문을 열고 연탄재를 쓰레기통을 버리는데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강한 시선을 느꼈기에 두려운 마음으로 연탄집게를 꼭 쥐고 살며시 뒤를 돌아보니 크고 시커먼 개가 입을 멍하게 벌리고 침까지 흘리며 영이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구 자야!”
외마디 소리를 낮게 지른 영이는 쥐고 있던 연탄집게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뒤로 약간 물러 났다.
“시커먼스, 이리 와! 아가씨, 놀라지 말아요, 물지는 않아요. 젊은 여자만 보면 멍해지는데 오늘은 더 유별나네.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어린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서 있는 개의 주인인 듯한 수수한 차림의 30대 중반의 부인이 시커먼 개를 부르면서 정중히 사과를 한다.
“어언지예~, 괜찮심더.”
영이는 사투리를 될 수 있는 대로 쓰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했는데도 커다란 시커먼 개의 등장으로 정신이 없는 것이다.
“아이구야! 경상도 아가씨네, 고향이 어데요?”
“예, 부산인데 이 곳에서 자취 생활을 하려고 어제 이사를 왔어예.”
“아이고~, 반가봐라. 서울의 골목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다니. 우리집에 들어가서 커피 한잔 하입시더.”
같은 사투리를 쓰는 고향 사람이라는 인연에 몇 마디의 사투리들이 오간 후에 아주머니는 영이의 팔목을 당기고 네 살 정도의 꼬마도 영이의 치마를 힘껏 당기는 통에 이상한 초대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옷이 이래서….”
“서로 마주 보고 살면서 무슨 소리를, 마침 우리집에 나 혼자 있으니 걱정은 붙들어 매소.”

시커먼스는 자신이 침을 흘린 낮선 자가 초대를 받자 신이 난 듯 꼬리를 흔들면서 자기의 집을 안내하는 것이다. 집의 구조와 크기는 영이의 자취 집과 똑같은데 마당에 장독이 유난히 많고 빨래 줄도 많았으며 시골집처럼 메주, 씨레기들이 줄에 매 달려 있었으며 안방은 안주인같이 검소하게 꾸며져 있었으며 장난감이나 책들은 자유롭게 널려 있었다.

방안에서 유일하게 고급품으로 보이는 앞 면에 유리의 문이 있는 빨간 자개농에서 커피 포트를 꺼내 급하게 물을 끓인 아주머니는 상대의 의사도 묻지 않고 커피 한 술에 크림과 설탕을 세 술이나 붓고는 영이에게 건네 준다.
“입에 맞을랑가 모르겠네. 그러나 커피잔은 우리집에서 제일 이뿐 놈으로 골랐어예.”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처음 만난 두 고향사람은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을 했다. 아주머니는 막내 아들의 별명이 삼돌이라, 삼돌엄마라고 골목 사람들이 부르고 과부인 시어머니와 함께 살며 회사에 다니는 외아들인 남편은 ‘통근길’이라는 별명을 가진 모범생이며 4세, 6세, 8세의 아들 셋을 낳음으로 3대 독자 집안을 스트라익 아웃을 시켰으며 평범하나 다복한 가정이라고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소개한다.

고향 이야기를 하면서 삼돌엄마가 영이의 동네에서 얼마 멀지 않는 곳에 살았다는 사실과 특히 중.고등학교 선배라는 사실에 더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기에 영이는 서로를 빨리 만나게 해 준 시커먼 개에 대해 궁금하여 삼돌엄마에게 물어 보았다.
“나도 전에는 개를 키워본 적이 없어. 5년 전에 삼돌아빠가 부산에서 서울로 발령을 받았기에 이 집을 사서 이사를 왔는데, 전 주인이 자신들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에 곤란하다며 정이 든 시커먼스를 키워줄 것을 부탁하는 기라. 색깔도 검고 이뿐 구석이 없어 마음이 내키지 않았는데, 전 주인의 말이 이 동네는 담이 낮아 도둑을 한번씩 당했는데 시커먼스 덕분에 1년 동안 도둑놈 구경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는 소리에 한번 키워 보기로 했다 아이가.”

삼돌엄마는 5년 전에 시커먼스를 만나게 된 인연을 생각하며 마루 밑에 앉아 있는 시커먼스를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 본다.
“진짜 5년 동안 아무일 없었어예?”
대낮에 뜨고 있는 눈까지 빼간다는 도둑놈 소굴이라는 서울에서 5년 동안 아무 일이 없었다는 사실은 긴장해 있는 영이에게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아침에 밥을 먹고 큰 놈 원호와 함께 기운차게 출근을 하고는 큰 놈과 함께 힘이 빠져 퇴근을 하고는 아이들과 놀기만 하고 밤에는 잠만 자는데 우리 골목에는 도둑의 그림자도 없었어. 신기한 일이제.”
삼돌엄마의 성격이나 말하는 투로 보아서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 보였으며 도둑이 없는 골목이라니 어쨌든 기분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곤란한 일은 한두 번 당했제.”
“우짜노~, 개가 사람을 물었나 보지예?”
영이는 누구에게나 한가지 장점이 있으면 반드시 한가지 단점이 있다는 논리대로 즉각 반응을 보였다.
“요즘은 개가 사람을 물면 보신탕 집에 보내야지, 식구처럼 대할 수 있나?”
손을 가로 젖는 난색을 표하면서도 삼돌엄마는 빙그레 웃는 것이었다.
“궁금하제? 우리 옆집은 노인 부부가 살기에 소일 삼아 2층 방 두개를 사용하여 대학생 4명을 하숙 시키는데, 여름에 덥다고 마당에서 벌거벗고 목욕하거나 문 열어 놓고 옷 벗지 마래이, 그 집 창문이 다 무너질끼라.”
“정말로예?”

삼돌 엄마는 놀래는 영이의 모습에 빙긋이 웃었고 말하는 영이 자신도 웃음이 나왔지만 실제로 하숙집 2층에서 영이의 마당은 물론이고 방도 조금 보이기 때문이다.
2년 전에 홍능에서 조금 위에 있는 멋쟁이 여대생이 많은 희경대학 신입생인 옆집 하숙생이 의논 할 일이 있다며 찾아 왔었다고 한다.
“삼돌어머니, 시커먼스를 좀 잘 단속 해 주셨으면 합니다.”
“와, 니를 좋아하던데…, 무슨 일 있었나?”
옆집 하숙생은 머리를 끌적이며 한참이나 뜸을 들이고 눈치만 보더니 겨우 말문을 열었다고 한다.
“실은 우리 대학 정문은 모든 개들이 와서 연애하는 장소가 되어버려 여대생들이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등교할 정도입니다.”
“신흥 대학이라 학교가 번창하려고 개들까지 합세하여 새끼를 치러 모이는 모양이제.”
“문제는 연애하는 개 중에 시커먼스가 제일 설친다는 사실이고 더 큰 문제는 나만 보면 연애를 중단하고 뛰어와서 반갑다고 꼬리를 흔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대생들이 저에게 연애박사의 개 주인 즉 ‘연개소문’이라는 별명이 붙어 입장이 난처 합니다.”
“좀 더 친해지면 ‘영계백숙’이 되겠다이.”

삼돌엄마는 일어나서 손짓발짓으로 하숙생의 흉내를 내었고 영이는 삼돌이를 안고 흥미롭게 들으면서도 혹시나 시커먼스가 한국대학까지 올까 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시커먼스를 어떻게 교육 시켰는데요?”
“철 없는 후배야, 나도 아들이 셋이지만 바람 난 남자는 부모도 못 말리는데, 내가 어찌 바람 난 개까지 교육 시키겠노. 한달 뒤에 얌전이 학생은 하숙을 옮기고 너희 학교 학생이 새로 들어 왔다. 너희 학교는 멀어서 니는 걱정을 안 해도 된데이.”
영이는 혹시나 하는 걱정이 사라져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으나 시커먼스가 여자 하숙생을 대했던 경험에 대해서는 묻지를 못했다.
“그런데 말이다. 작년에 똑 같은 일이 또 발생 된기라. 하숙 치는 옆집 할머니와 마음 상할 일이라 무척이나 걱정을 했는데 삼돌할머니가 해결을 했다아이가.”
바람 난 시커먼스와 희경대 신입생 남학생이 더불어 한 골목에서 살게 한 삼돌할머니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영이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였기에 바싹 다가 앉았다. 영이의 궁금증을 눈치 챈 삼돌엄마는 일어선 채로 허리에 양손을 대고는 목과 어깨 운동을 하더니 갑자기 양손을 불끈 쥐고 한쪽씩 번갈라 흔들며 구호를 외친다.
“시커먼스, 힘내라! 개들아, 물러가라!”
개가 사람을 먼저 알아보고 즐거운 연애를 중단하고 사람에게 올 것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 재미보고 있는 개에게 ‘수고하십니다’라고 아는 척을 해야 한다며 연일 계속되는 군사정권에 대한 학생들의 데모를 풍자한 삼돌할머니의 구호였다.
“시커먼스, 힘내라! 개들아, 물러가라!”
“시커먼스, 힘내라!”
“개들아, 물러가라!”
이미 부산에서도 데모 풍경에 익숙한 영이는 삼돌이의 손을 붙들고 구호를 따라 외치다 마침내 삼돌이를 껴 안고 방안을 데골데골 구르며 웃음보따리를 펼쳤다.

서울 온 지 삼일째 되던 날 아침, 영이는 몇 가지 일용품을 구입하기 위해 정보를 얻고자 주인 아주머니보다 삼돌네 집으로 갔다. 어제는 낯설은 서울의 지리를 익히기 위해 제일 먼저 집에서 학교 가는 버스를 타고 몇 번이나 왕복연습을 한 것은, 공부를 잘 한다는 영이도 집을 찾는 데는 3~4번을 가 보아야지 겨우 아는 이상한 머리를 가졌다고 스스로 인정을 하기 때문이다.

“요 앞 큰 길에서 길을 건너지 말고 아무 버스나 타고 두 정류소를 가면 청량리 역이고 건널목을 건너면 광장인데 역의 바로 맞은 편에 새로 지은 7층짜리 빌딩이 있는데 거기 가면 여대생들이 필요한 물건이 값도 싸고 많이 있어. 나함빌딩이야.”
삼돌엄마도 서울에 와서 처음에 지리를 아는데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인지 영이에게 아주 상세히 가르쳐 준다.
“나함빌딩이라고~ 예?”

“응, ‘나와 함께 빌딩’인데 줄여서 나함빌딩이라고 불러. 옥상에 큰 십자가가 있어 금방 찾을 수 있어. 날씨도 좋으니 슬슬 걸어가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데이.”
삼돌엄마의 가르침대로 큰 십자가의 건물을 찾아 나서기 위해 골목을 벗어나자 대로에 고색창연한 홍능의 담장을 대하게 된다. 홍능의 긴 담은 맞은 편 거리를 자연스럽게 주택가로 만들어 준 것 같았고, 담 위로 살짝 머리를 내 민 나무들은 벌써 사춘기 소년들의 작은 여드름 같은 잎사귀가 봄 기운을 가득 안고 있었다.

홍능의 담장이 끝나고 청량리 역쪽으로 갈수록 영이는 본능적으로 사창가의 냄새를 느끼기 시작했으며 며칠 전에 이모가 청량리역을 지나면서 ‘우리 동네 분젼이라는 말의 뜻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기차역의 종점에는 큰 건물들이 들어서고 그림자 부분에는 옛 형태의 좁은 골목들이 스스로 낮은 가옥을 선택하여 사창가를 형성하는 것은 사람 사는 곳의 생태라는 사실은 영이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삼돌엄마의 말대로 빌딩의 옥상에 광고탑 대신 대형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새로 건축한 최신식 빌딩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었는데 건물 중앙의 대형출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 하고 있었다. 1층에는 제과점, 제화점, 패션점 등이 화려하게 윈도우를 치장하고 있었고 안쪽에는 슈퍼마켓, 미용실, 이용실 등이 있었으며 좌우로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영이는 일층을 한바퀴 돈 후에 오른편의 대리석으로 장식된 윤기 나는 계단으로 조심스럽게 밟으며 이층으로 올라 가 보니 복도의 넓은 공간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 공간에는 아름다운 꽃 화분과 대형 열대어 어항이 벽면에 붙어 있었고 소파들이 한가롭게 놓여져 있어 도시의 삭막함을 잊게 해 주었기에 영이는 2층의 백화점 입구로 빨려 들어가듯이 걸음을 옮겼다.

대형 실내의 벽면에는 바위에 붙은 조개처럼 각각의 독립된 상점으로 꾸며져 있었고 중앙에는 상점들이 사각형의 새로운 윈도우를 구성하고 있었다. 통로가 유난히 넓고 대리석으로 깔려 있어 고급 호텔을 걷는 기분이었고 각각의 윈도우를 천천히 구경하다 들어가서 확인하고 살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3평정도의 작은 매장에서부터 30평 정도의 큰 매장까지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 백화점은 영이가 수학 여행 때 본 대형백화점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대형백화점은 개방된 시설이며 중앙 집중적인 기분이 들었고 이곳은 독립된 업소들이 각각의 멋을 풍기며 조화를 이루어 고급스러우면서도 서민적인 멋을 내는 색다른 멋을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5층의 계단을 올라서자 약품냄새에 영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생하는 엄마를 생각하여 절약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 온 영이지만 이미 자신의 손에는 제법 많은 물건들이 든 쇼핑 백이 들려져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5층의 통로에는 치과, 내과, 소아과, 안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피부비뇨기과, 한의원, 세무사, 변호사, 복덕방, 소개소, 결혼상담실, 관리사무실이라는 이뿐 명패들이 세련되게 걸려 있어 2층부터 4층까지는 백화점 형식이고 5층은 병원과 사무실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5층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영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제일 먼저 들어섰다. 20명 정도는 넉넉히 탈수 있는 대형 엘리베이터였고 수학여행 때 백화점에서 처음 타본 이후 두 번째의 엘리베이터의 탑승이었는데 실내에 ‘Love is Blue’라는 경음악의 끝부분이 잔잔히 흘려 나왔다.
“오늘의 라합식당 음식은 충무 김밥 입니다.”
경음악이 끝나자 상큼한 서울 말씨로 들려 주는 말이다. 곧 이어 ‘내 고향 남쪽 바다’가 흘러 나왔다. 충무 김밥, 서울 온지 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바다의 오징어 무침이 그리워 지는 것이었다. 오늘은 쌈짓돈을 푼 날이니 마지막으로 충무 김밥으로 멋을 내고 내일부터는 쌈짓돈을 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영이는 일층에 내렸다.

이제 2층부터 5층까지 답습을 하였으니 두리번거리지 않아서 촌닭같이 보이지는 않을 것이나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물어 보고 싶으나 경상도 사투리에 어제는 차장 아가씨도 잘 알아 듣지 못하는 망신을 당한지라 자신이 없었다.
충무 김밥을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영이를 나무라듯 앞의 벽면에 ‘라합식당 이용시간 오후1시~오후3시까지, 6층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주세요.’라는 큰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영이가 내린 엘리베이터 바로 옆에 6층 전용이라는 또 하나의 엘리베이터가 대기하고 있었기에 영이는 내친김에 또 한번 작은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작은 공간 속에는 경음악 대신 찬송가가 흘려 나오고 있었고 6층 전용이라 번호판은 필요 없었으나 사람들은 누구나 문 위에 표시된 층 수의 번호를 습관적으로 쳐다본다.
출발의 단추를 누르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양쪽에서 닫히면서 왼쪽 문은 ‘두려워 말라, 나는 너와 함께 함이니라.’오른쪽 문은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되리라.’는 문구가 병풍에 새겨진 듯 나타난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는 두 글자는 양쪽으로 갈라져 있어 문이 열리면 사라지고 문이 닫히면 하나가 되는데 지금 누군가 영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엘리베이터 속이며 제일 놀라운 것은 이처럼 꼼짝없이 보아야 하는 광고를 생각한 사람의 솜씨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찬송가를 들려주며 번호판 대신 ‘사랑, 믿음, 소망’이라는 글자에 차례로 불이 들어오기 시작을 하며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는 것이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다른 건물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엘리베이터 속의 찬송가는 복도에 연결되어 계속 들리고 있었고 20명정도의 사람들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이뿐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머리를 숙이며 상냥한 음성으로 공손하게 하는 인사를 받으며 사람들을 따라 식당의 큰 문을 여는 순간, 영이는 또 한번 촌닭이 되어야 했던 것은 식당의 실내 모습은 대학 기숙사의 대형식당 같았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이와 함께 올라 온 손님들은 입구에 쌓여 있는 큰 쟁반을 하나씩 들고 개방된 주방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곳으로 빠르게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기에 영이도 쟁반을 들고 맨 뒤에 섰다.

홀에서 환히 보이는 주방에는 30여명이 흰 스카프로 머리를 묶고 가슴에는 ‘라합 봉사대’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는 연한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김밥을 싸고 있는 분, 물오징어를 조리하는 분, 콩나물 국을 퍼는 분…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유일하게 주방과 홀을 구분하는 테이블 위에는 김밥, 물오징어 무침, 넓게 썬 무시김치, 양념 된 어묵이 접시에 담겨 있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콩나물국이 한 그릇씩 놓여 있기에 들고만 가면 되는 것이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으리라> (야고보서1장14~16절).

음식이 진열된 테이블 위의 공간의 프랑카드에 이 표어가 큰 글씨로 쓰여져 있고 그 위에는 최후의 만찬의 대형사진이 붙여져 있었으며 테이블의 끝에는 수저가 있었고 충무 김밥의 수저인 나무 이쑤시개까지 놓여 있었다. 충무 김밥 한 접시, 콩나물국, 보리차를 쟁반에 담은 영이는 빈 자리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젊은 여성들이 많이 앉아 있는 곳을 택하여 살며시 앉았다.
멋적은 분위기 속이나 나무 이쑤시개로 김밥부터 차례로 입에 넣고서 조심스럽게 씹어 보았더니 오징어무침과 어묵에 바다기운이 감돌며 매운 고추가루 양념 맛이 한껏 입안을 젖혀 주어 타향의 고독을 씻어 주었기에 사람에게 제일 간사한 부분인 혀를 탓할 수가 없었다.

음식을 천천히 씹으면서 영이는 주위를 꼼꼼히 살펴 보았는데 테이블은 12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긴 것이었고 의자는 접어 세워둘 수가 있는 것인데 둘 다 약간 낮다는 기분이 들었으나 전부 극동강철에서 만든 실용적이면서 고급품이었다.

특이한 것은 주방과 입구를 제외한 부분의 벽면에는 책들이 가지런하게 꽂혀 있었고 사이마다 꽃 화병이 있었으며 벽의 바닥에는 꽃 화분들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 책과 꽃으로 실내 장식한 식당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제일 영이의 눈에 신기한 것은 특색 있고 고급스러운 식당장식에 비해 손님들은 정장의 신사로부터 남루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 외출복이 아닌 집안에서 입는 편안한 옷을 입고 있는 여자들도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 건물의 모든 것이 화려한 그릇에 된장국을 담아 놓은 듯 한 묘한 분위기였다. 어묵을 집다가 하늘색 띠를 두른 쟁반에 글이 쓰여져 있기에 그릇을 살며시 들어 보았다.

“야~, 나의 수준에 맞는 산수이다. 그런데 글자는 너처럼 되게 복잡한 사연이네.”
수미의 빈 그릇을 대강 치우고 쟁반을 한참이나 보던 미숙의 촌평이다.
“미숙아, 너의 수준에 맞는다고 했으니 남자하고 여자를 반죽하듯이 이것도 한번 풀어 봐.”
“솔직히 나의 수준에 맞는 단순한 문제는 내 팔자처럼 꼭 함정이 있더라. 고스톱보다 더 힘들지만 공짜밥 먹고 이빨을 쑤시면서 풀어보라는 퀴즈이니 잠시 머리를 굴려 보자. 우선 7은 일곱째 날은 말하는 것 같고 복을 주사…. 복(福)자는 재수가 붙는 글이라 우리 집 요강에도 적혀 있고 나도 손님이 없는 날에는 복자가 쓰인 팬츠를 입으면 그날은 숏타임, 롱타임이 막 터져 나오는데…. 거룩은…”
미숙은 입에 물고 있던 이쑤시개를 쟁반의 글씨에 갖다 대면서 골몰히 생각에 잠긴 듯하였다.

“거룩한 천사의 음성 내 귀를 두드릴 때…”
수미는 둘째 손가락으로 작은 지휘를 하며 영이도 즐겨 듣는 짐 리브스의 번안곡 ‘희망의 속삭임’을 나지막하게 들려 준다.
“아~, 너가 손님이 없는 날, 흥얼대는 노래구나. 천사를 보고 거룩하다고 말하는구나.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는 창세기 1장 1절과 같은 이야기고, 일곱째 날에 안식을 하다. 7은 일곱째 날이므로 복, 거룩, 안식이 3에 속하는 것일세. 알겠나! 신참.”

영이의 비어 있는 옆 자리의 손님이 두고 간 쟁반에도 영이의 것과 다른 글이 적혀져 있었는데 지금 두 아가씨는 2번째 쟁반의 글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컨닝하는 학생처럼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
미숙이라는 아가씨는 영이보다 2살 정도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신참이란 소리는 영이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이 느껴진 것은, 한국대학의 주관식 국어 독해력 문제는 체조 선수가 공중에서 몇 번이나 회전을 하는 묘기를 보이는 것 같은 난해한 글도 풀이를 했는데 쟁반에 적혀 있는 글들은 하나도 이해를 못하는 영이인 것이다.

“자~, 그러면 3 에 무엇을 더 하면 7입니까?”
미숙 유치원 선생님의 질문에 수미는 손가락 4개를 펴서 살짝 흔들어 보인다.
“잘 했어요. 그러면 4개는 무엇을 말하죠? 사탕 4개, 맥주 4병, 동서남북, 콘돔 4개면 하루 벌이는 되는데 …. 너의 쟁반이나 나의 쟁반에 있는 퀴즈의 결론은 적혀있는 4개의 문장에서 주인공은 하나님이란 사실이야. 수미야! 죽을 4는 찾지 못했으나 주인공은 찾아 소화가 되었으니 집에 가서 서로 두 탕씩 뛰면 네 탕이니 이것으로 일수 돈이나 찍자.”

두 아가씨는 테이블 마다 놓여진 중앙에 빨간 십자가가 새겨진 휴지로 자신의 입 언저리와 테이블을 깨끗이 닦고는, 쟁반을 들고 앞 자리의 영이에게 살짝 미소까지 보내며 엉덩이를 살래 흔들면서 입구쪽으로 가는 것이다. 아가씨들의 미소는 그들의 대화를 훔쳐 들은 영이에게 동반자 의식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아 그들을 따라 주방의 끝에 남자분이 그릇을 열심히 씻는 곳으로 향했다.
“전도사님, 잘 먹었습니다.”
“저녁에 만납시다.”
앞의 아가씨를 따라 움직이던 영이는 전도사라는 말을 듣고 ‘아차’ 싶었으나 모른 척하고 쟁반을 내밀었다.

“저~, 음식값이 얼마입니까?”
그릇을 씻던 남자는 잠시 손을 멈추더니 몸을 오른쪽으로 90도 틀어 영이를 바라본다. 머리에는 하얀 해군모자를 썼고 역시 라합봉사대라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으며 조금 큰 키에 돗수가 높은 안경을 낀 30세 정도의 건강미가 넘치는 남자였다.
“처음 오시는 손님에게는 비싸게 받아야 하지만 돈 대신에 한가지 부탁을 합시다. 오늘 수요열린모임에 한번 참석해 주세요.”
남자는 해군모자를 벗고 머리를 살짝 숙이며 영이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밥 한 그릇에 예수쟁이의 술법에 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내색은 할 수가 없었다.